냉동실에서 꺼낸 노파의 시신은 뼈와 가죽만 남아 처절하리만치 앙상했다. 가족들은 통유리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내가 노파의 팔을 펼치자 주사바늘 자국으로 퍼렇게 멍들어 있던 양쪽 손목이 드러났다. 그는 나무 막대처럼 뻣뻣한 노파의 팔과 몸을 알코올에 묻힌 거즈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사내의 행동은 기민하고 침착했다. 혜선은 묵묵히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노파의 배는 쭈글쭈글하게 오그라져 있었다. 그곳은 빈 황무지처럼 음습하고 피폐해 보였다. 자식들을 어루만지던 손과, 자식들을 보고 웃음 짓던 노파의 얼굴은 사내의 손놀림에도 무표정했다. 노파의 시신 위로 아기처럼 울음을 터트리던 노파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노파는 병문안을 갈 때마다 혜선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손을 놓아버리면 영영 지옥 속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듯 그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간호사들과 한참 실랑이를 한 뒤에야 노파는 마지못해 혜선의 손을 놓아 주고서는 손을 흔들었다. 혜선은 눈물로 뒤범벅이 된 노파의 얼굴을 외면하며 뒤돌아서서 종종 걸음을 쳤다. 노파는 혜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문에 기대어 서서 그러고 있었다.
-새벽에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돌아가셨더래.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우영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묻어 있었다.
새벽에 노파의 부음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혜선은 놀라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일을 맞이한 것처럼 담담한 마음이었다. 전화를 끊고 난 혜선은 아직 새벽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희뿌연 방안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즈께 밤에는 느그 아부지가 꿈에 보이드라. 하얀 옷얼 입고 노랗게 핀 장다리꽃 옆이서 자꾸 손짓을 안 허냐. 나넌 있는 힘을 다 흠서 느그 아부지 있는 곳으로 갔제. 나가 다가스먼 또 멀찌감치 떨어져서 환히 웃음서 어서 오라 글고……. 뭔 걸음이 그리
도 빠르등가 따라가기가 오지게 되등마. 참말로 무슨 꽃이 그리 끝도 없이 피어 있등고이, 사방 벌판에 노란 장다리꽃이 끝도 없드란 말다.
혜선이 마지막으로 노인병원을 찾았을 때, 노파는 말했다. 병실 창 너머에 시선을 두고 있던 그 눈빛은 텅 빈 듯 공허해 보였다. 어쩌면 그 때부터 노파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사내는 물건에 묻어있는 오물을 닦아내듯 노파의 시신을 꼼꼼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평생을 힘겹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 거무스름한 색깔로 거즈에 묻어 나왔다. 몸을 닦아낸 사내가 숱이 빠져 듬성듬성 남아 있는 노파의 흰 머리칼을 이마 뒤로 빗어 넘겼다. 머리칼을 뒤로 넘기자 뼈만 남은 노파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윽고 사내가 노파의 몸을 한지로 싸기 시작했다. 노파의 몸이 흰색 한지에 파묻힐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노파의 오른 발은 바깥으로 휘어진 채 굳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모양으로 발가락 사이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사내는 억지로 발가락을 오므려 한지를 뒤집어 씌웠다.
-이제 고인과 마지막입니다. 저승길로 가시기 전에 뵈실 분들은 뵈십시오.
노파의 몸에 노란 삼베옷을 입힌 사내가 창 너머에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간 혜선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굳어버린 노파의 얼굴을 감싸 안고 중얼거렸다.
-차라리 잘 된 거야 엄마. 이제 다 잊고 편히 가세요.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무심한 얼굴로 노파의 몸을 내려다보다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이 퇴장하자 노파의 얼굴에 노란색 수의가 씌워졌다. 이제는 영영 볼 수 없을, 그 마지막 결별의 순간이 견디기 힘든지 우영이 꺽꺽 울음을 삼켰다.
이윽고 다른 사내 하나가 오동나무로 된 관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노파의 유체를 흐트러지지 않도록 묶었다. 노파의 유체는 긴 나무토막 같았다. 유체를 관에 옮긴 사내 중 하나가 가족들을 향해 말했다.
-고인의 유품이 있으면 떠나실 때, 같이 보내도 됩니다. 유품이 있으면 가지고 나오시지요.
혜선은 화장대 서랍에 간직해 두었던 노파의 은비녀와 참빗을 사내에게 내밀었다. 한평생을 자식들에게 주기만 했던 노파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하찮은 것들뿐이었다. 그들은 그것들을 한지에 싸서 관에 넣고는 관 뚜껑을 닫은 뒤 위에 하얀 천을 덮었다.
이년 전 겨울, 혜선은 눈길에 다쳐 골반 뼈를 수술한 노파의 병실을 찾아갔다. 노파의 다리는 깁스를 한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머드로 이 먼 곳까장 왔냐. 나 이런 꼴 볼라고 그 먼디서…….
마른 풀잎처럼 퍼석하게 누워있던 노파는 혜선을 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혜선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노파의 손을 잡았다.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메마른 손이었다. 노파에게도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시절이 있기나 했을까 싶게 까칠한 손은 검버섯으로 얼룩져 있었다.
병원에서는 노파의 골반 뼈에 쇠를 박아 넣고 단단하게 마무리를 했지만 골다공증으로 자생력을 잃은 노파의 다리 회복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노파의 거취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가족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노파를 노인 병원으로 모시자는 것이었다. 자식들이 다섯이나 있는데도 노인 병원에 맡겨야한다는 현실이 참담했지만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막막했다.
-이십년 동안 나가 까탈스런 엄니 모셨소. 인자는 잘난 형님들이 엄니 한 번 모셔 봇시요. 셋째 며느리가 어깃장을 놓았다.
-셋째야. 우리 그렇게 감정적으로 하지 말자. 내가 모시고 싶어도 직장에 매여 있는 몸인데 어떡하겠어. 잠시 잠깐도 어머니 옆에 떨어져 있으면 안 되고 노상 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잖아도 요즘 교장 승진문제로 골머리가 지끈거려 죽겠다, 정말.
30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해 온 큰며느리가 말했다.
둘째 며느리는 서울 아파트에 어머니를 모시면 어머니가 적응을 못할 뿐더러 불편해해서 안 된다, 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동안 노파는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눈치를 받고 있던 처지였다. 막내 우영이네 집에 기거하던 노파가 눈 쌓인 아파트 앞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사단이 난 것이었다. 혜선은 노파를 노인 병원으로 보낼 순 없다며 그녀가 모시겠다고 나섰다. 아들들은 등에 진 짐짝을 내려놓은 듯 다행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고마워했다.
퇴원 후, 노파를 집으로 모셨던 혜선은 노파의 머리카락부터 당장 잘라 내자고했다. 그런데 노파가 이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이었다.
-왜 그래요. 엄마. 긴 머리 거추장스럽고 간수하기도 귀찮은데 깔끔하게 잘라내면 좋잖아.
-싫어야. 머리크락 잘라내뿔믄 남세시러바서.
-하이고, 무슨 그런……, 지금 엄마가 스스로 간수도 못하면서.
혜선은 싫다고 거부하는 노파를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은비녀로 틀어 올린 노파의 머리칼을 풀어 헤치고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기 시작했다. 길게 자란 노파의 흰 머리카락은 흉물스러워 보였다.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자 노파가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울었다.
혜선은 노파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목덜미 부분을 바리캉으로 다듬어 주었다. 노파의 앙상한 뒷덜미가 허옇고 까칠하게 드러나 보였다.
-얼마나 좋아 이리도 시원하고 간편한 걸.
혜선의 말에 노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느그 아부지 앞에 요 꼴로 어츠케 간다냐? 추접스러바서.
순간 혜선은 의아했다. 쓸모가 없어진 노파의 은비녀와 참빗을 화장대 서랍 속에 넣어 두며 물끄러미 노파를 바라보았다.
거울을 들여다보던 노파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생전에 느그 아부지가 나를 여자로 본 줄 아냐? 나라고 꽃단장 흐고 몸치장 흐고 싶은 맘이 없었간디. 새끼들 갈치고 묵고 살랑께 그럴 정신이 어디 있었겄냐. 느그 아부지가 밖으로만 돔시로 나 속을 얼매나 썩혔냐. 그 많든 재산 계집질에, 허구헌 날 술타령에 노름질로 다 날래뿔고. 한 번은 느그 아부지가 어뜬 년 헌티 미쳐서 딴살림을 차랬단 소릴 듣고 분에 못 이겨 찾아갔었제. 문 앞 댓돌 우에 느그 아부지흐고 그 년 신발이 쌍 나란히 놓여 있는 거슬 봉께로 가슴이 벌벌 떨리드라. 문을 박차고 들어가고 싶은디 심장이 벌렁거려 당최 들어갈 수가 있어야제. 할 수없이 돌아서 나오는디……. 지금 와서 그런 말 뭐 흐겄냐만은……나넌 악착겉이 새끼들만 갈쳐야 쓰겄다 흐고 이를 악물었제. 새끼들 여봐란 듯 흐게 갈쳐서 느그 아부지 앞에 큰소리 탕탕 침서 살란다 허고 작심을 했제.
젊은 시절, 가난 속에서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느라 억세게만 살아온 노파였다. 그것은 어려운 시절을 꿋꿋이 이겨내려 했던 노파의 겉모습이었을 뿐, 진짜 내면에는 아직까지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남아 있음을 혜선은 새삼 느끼고 있었다.
혜선은 노파의 기분을 돌리기 위해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았다. 목욕하는 걸 가장 좋아하는 노파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노파의 가슴은 탄력을 잃어 축 늘어져 있었고, 아랫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했다. 자식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빼앗긴 노파는 껍질만 남아 온전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오남매를 키우느라 정신도 육체도 다 소진해 버린 노파는 욕조 밖으로 손을 내리고 혜선에게 몸을 맡긴 채 중얼거렸다.
-옛날에 우렁이가 살았드란다. 우렁이가 새끼를 낳았는디 새끼들이 지어미 속을 다 파 묵고 나와서 동동 떠내려가는 우렁이를 보고는 우리 엄마 시집가네. 그러드란다.
-엄마도 시집가야 겠네?
농담이랍시고 툭 말을 던져놓고 멋쩍게 웃어대는 혜선에게 노파가 눈을 흘겼다.
-말 허는 거 흐고는.
푸르고 울창한 산의 기름진 토양이 되어 자식의 나무들을 쑥쑥 자랄 수 있게 해주었던 노파, 그녀는 믿음직한 산처럼 든든하게 자식들을 받쳐주던 안식처였다.
빈소에는 문상객들이 연이어 찾아 들었고 빈소 입구 양쪽으로 화환들이 늘어서 있었다. 혜선은 영정 사진 속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노파의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문상객들이 향에 불을 붙이고 그 앞에서 절을 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빈소에 남아 있던 큰 상주가 읍을 하며 상례를 취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어떻게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거래처 사장인 듯 한 남자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 연세가…….
-여든 여섯입니다.
-노환이셨군요.
-자식으로서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나오시지 않아 들여다보니 이미 운명을 하셨더군요.
큰아들은 그 남자를 바라보며 진짜 죄인이 된 듯 한 얼굴로 말했다.
혜선은 큰아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큰아들은 혜선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눈길을 피했다.
-그동안 노령이신 어머니 모시느라 얼마나 애를 많이 쓰셨습니까?
노파가 노인 병원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찾아보지도 않았던 큰아들은 겸연쩍은 얼굴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노파에 대한 죄책감이었는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었는지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복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86세까지 수를 누리시고 그리 편하게 가셨으니.
거래처 사장의 말에 큰아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하듯 그들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에는 셋째 아들이 들어 놓은 상조회의 계군들이 몰려와 있었다. 밤을 새기로 작정을 한 그들은 농담짓거리를 하며 식당 안을 왁자지껄 웃음바다로 만들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술을 마시며 화투들을 치느라 시끌벅적 소란스러웠다.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 노파의 장례식은 성대한 축제장 같았다. 밤이 이슥해서도 계속 밀려드는 손님들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혜선은 노파의 다리 골절만 완쾌되면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걸어 다닐 정도로 회복이 되었는데도 노파는 자식들을 위해 희생만 하던 예전의 노파가 아니었다. 식탐이 많아지고 눈동자는 의심으로 번들거렸다. 먹을 것을 숨겨놓고 몰래 먹는다고 서운해 했으며, 오로지 자신밖에 생각 못하는 이기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렸다. 게다가 결벽 증세까지 있었다. 식사할 때도 깨끗이 삶아놓은 수건을 식탁위에 깔고 그 위에 손을 얹어야하고, 냅킨, 물 컵 등을 준비해야 했다. 음식이 조금만 묻어도 금방 화장실로 들어가 씻어야 하고 뜨거운 것은 뜨겁다고, 매운 것은 너무 맵다고 타박을 했다. 느닷없이 쑥떡이 먹고 싶다, 녹두전이 먹고 싶다 해서, 녹두가루를 사다가 전을 지지면 맛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혜선이 가장 견디기 힘든 건 하루 종일 그녀를 졸졸 따라 다니며 일일이 참견을 하는 것이었다. 주방으로 욕실로 따라 다니며 왜 설거지를 쌓아두느냐, 몸에 안 좋은 커피는 왜 마시느냐, 수건을 쓰면 제자리에 두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작 노파 자신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변기의 물을 내리지 않았고, 가스 불에 음식을 데우고서도 가스 불을 잠그지 않았다. 혜선은 노파에게 절대로 가스 불을 만지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으나 노파는 번번이 그 일을 잊어버리고 가스 불을 만졌다. 불안해진 혜선은 한시도 노파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주방 건너편으로 이제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한 언덕 위로는 푸른 기가 가득했다. 분주히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혜선을 노파가 불렀다.
밤새 채워둔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바지를 훌렁 벗어버린 노파의 뜨뜻한 아랫도리에서는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순간 혜선은 코를 막았다. 기저귀를 빼내어 휴지통에 넣고 더운 물 수건으로 노파의 아랫도리와 허벅지를 신경질적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음모가 다 빠져버린 노파의 생식기는 굳게 닫혀 있었다. 밤새 화장실 들락거리는 것을 힘들어 해서 채워둔 기저귀지만 노파 스스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도, 번번이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노파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창피함도 몰라? 아무리 딸이라지만 부끄러운 줄도 모르냐구. 만약 내가 없으면 사위한테 이렇게 갈아달라고 할거야?
혜선은 앙상한 노파의 아랫도리에 성인용 기저귀를 갈아 끼우며 짜증을 냈다.
노파는 울먹이며 말했다.
-나가 잘못했다. 언능 죽어 없어져야 쓸껀디 무담씨 살아서 니할라 괴롭히고 있는갑다 시방. 잠자데끼 살짝 가부렀으믄 원도 없겄는디.
-맨날 그 소리. 엄마 혼자 오래오래 살아.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겠어 진짜.
혜선은 노파에게 소리를 지르며 포악을 떨었다.
노파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던 혜선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시장 떡집에서 사온 따끈한 인절미를 노파에게 내밀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그것을 받아든 노파는 주춤주춤 싱크대로 가더니 떡을 물로 씻는 것이었다.
-왜 그래 엄마?
노파는 혜선을 힐끗 돌아보더니 말했다.
-떡에 허연 것이 안 묻었냐. 씻어 묵어야제.
혜선은 노파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무려면 딸이 못 먹을 거 묻어있는데 드시라고 하겠어? 그렇게 딸을 못 믿어요?
노파는 떡을 씻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손사래를 훼훼 치며 말했다.
-그것이 아니여. 떡에 뭐시 묻어서 그러제이. 암껏도 아닌 거 갖고 무담씨 그래싸아. 참말로.
그 일이 있고부터 혜선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노파는 주눅이 들어갔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도 혜선은 노파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장을 봐왔다. 냉장고에 음식들을 사다 채워놓으며 언제든지 꺼내 먹으라고 했지만 노파는 항상 혜선에게 허락을 받고서야 냉장고를 열었다.
그날도 노파의 점심을 챙겨주고 난 혜선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항상 그녀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노파가 귀찮기도 하고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 노파와 같이 있으면 숨이 막혔다. 혜선은 방에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워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혜선은 못 들은 척 대꾸하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왜 그래요?
혜선은 신경질적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나 요거 하나 묵어도 되겄냐?
노파는 강정을 손에 든 채 문밖에 서서 혜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말했어요. 다 엄마 잡수시라고 사다 논거야. 그냥 잡수시면 될 걸 왜 자꾸 날 귀찮게 해. 진짜.
다시 문을 쾅 닫고 난 혜선은 오디오의 음악 볼륨을 더 크게 높이고 있는 대로 물건들을 집어 던졌다.
한참 후에 밖으로 나가보니 집안이 조용했다. 혜선은 노파의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노파는 침대 위에 앉아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신혼 시절, 어느 이름 모를 산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혜선 아버지가 노파의 어깨를 감싸고 활짝 웃고 있었고, 노파는 그 옆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요 때가 젤 좋았제. 요 때가 느그 큰오빠 임신해 있었을 때여.
-천연두로 저세상 갔다던 그 오빠?
-그러제. 내 자석이 안될라고 그랬등가, 어찌 그리도 잘생기고 포동포동 이뻤등고 잉. 어디 나가믄, 모도 다 이쁘담서 보듬고, 쓰다듬고 했제. 그 해에 천연두가 돌아 댕게서 다덜 주사들을 맞혔는디, 이 미련흔 어매가 젖살 올라 통통흔 애기 주사 맞으믄 살 빠진다고, 안 맞혔드만 병이 붙어서…… 금쪽같은 우리 애기 몸에 열꽃이 피고……무신 약을 써도 안 듣드만, 저 세상으로 안 가뿌렀냐.
-그 얘기는 우리에게 늘 하신 얘기잖아요. 엄마.
-느그 아부지랑 애기를 묻고 무덤가에 넋을 빼고 앉았는디, 그 때도 봄이었등가 무덤가에 장다리꽃들이 노랗게 피었드랑께. 그 위로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날아가는디 그거이 내 새끼 넋인 거 맹키어서 한정 없이 울었제. 인자 나는 어찌 살끄나. 아까운 자석 짠해서 나는 어찌 살 끄나……. 날이 저물어 집에 와 봉께 느그 오빠 똥 기저귀가 한쪽에 뭉쳐 있는디, 나는 그거슬 코에 박고 울었니라.
-냄새 안 났어. 엄마?
-내 새끼 몸에서 나온 똥인디 뭔 냄새가 난다냐.
이틀 동안 한숨도 잠을 못잔 혜선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혜선은 빈소 옆에 딸려 있는 빈 방으로 가서 누웠다. 다행히 병원 영안실은 가족들 외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빈소가 텅텅 비어 있었다. 노파를 모신 빈소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복도에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났다. 혜선은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눈이 쓰려왔다. 하지만 신경은 더욱 예민해지고, 의식은 오히려 말갛게 개어왔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어 나갔다. 그러나 50을 세어도 정신이 또렷해졌다. 벌떡 일어나 벽에 붙은 형광등 스위치를 끄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갑자기 시야가 캄캄해지자 어두운 관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왈칵 무서움이 밀려왔다. 사방에서 이름 모를 원혼들이 혜선을 향해 손을 뻗쳐오고 있는 것 같았다.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친 혜선은 일어나 다시 형광등 스위치를 올렸다.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혜선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겪었을 노파를 생각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노파를 향해 손을 뻗쳐 오는 것을 느끼며,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해 볼 수도 없이 받아 들여야만 했던 공포로 인한 소스라침. 노파의 죽음은 점점 더 진한 색채로 그녀의 머릿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노파를 노인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섰을 때, 혜선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노파의 몸부림이 점점 더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노파가 혜선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 했을 때 그 손에서 느껴지던 미미한 떨림. 그 느낌은 그녀의 몸에 붙어서 평생을 질기게 따라다닐 것 같았다. 그 느낌은 몇 년 전, 토끼를 버릴 때의 느낌과 똑 같았다.
계절은 이제 막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 끝 무렵이었다. 당시 혜선은 생후 3개월 쯤 된 토끼를 얻어다 키우고 있었다. 털이 하얗고 눈이 앵두 알처럼 귀여운 토끼였다. 베란다 한쪽을 판자로 막고 토끼장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토끼의 모습을 보며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가 힘없이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혜선은 토끼를 안아 올렸다. 토끼의 눈이 허옇게 흐려 있었다. 무슨 일일인가 하여 토끼의 배 부분을 살펴보던 혜선은 토끼를 팽개쳐 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기습을 당한 토끼는 놀라서 몇 발자국 움직이더니 땅바닥에 엎드린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토끼의 아랫배에는 구더기 떼가 수없이 우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혜선은 토끼의 내장까지 침범해 꿈틀대는 생명의 혐오스러움에 진저리를 쳤다. 순간 그녀에게서 살기가 뻗쳐 나왔다. 토끼의 목을 덥석 잡아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토끼가 꿈틀거리며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혜선은 자신도 모르게 가해지고 있는 포악이 두려워 갑자기 손을 떼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죽음으로 빨리 끝을 맺어주는 것이 토끼를 위하는 길인 것도 같았다. 토끼는 서서히 숨이 끊어져갔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손에서 느껴지던 감촉의 떨림. 그 미지근하고 소름끼치는 두려움은 혜선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토끼를 검은 봉지에 넣어 아파트를 나온 혜선은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삽으로 구덩이를 깊게 팠다. 혜선은 토끼의 아픔을 처음부터 돌보지 못한 자신의 실책과, 토끼를 죽인 그 벗어버리고 싶도록 생생한 끈적거림을 지워버리기 위해 구덩이 속에 토끼를 던져 넣었다. 토끼가 구덩이 속으로 푹 꼬꾸라졌다. 혜선은 그 모습을 외면하며 다급히 흙을 메우기 시작했다. 흙은 쌓여갔으나 가슴 속은 오히려 수렁처럼 깊고 어두워져갔다. 흙을 다지려고 구덩이를 메운 자리에 올라섰을 때 발 한쪽이 쿨렁 내려가는 것 같아 소스라쳐 뛰어 내렸다. 그 순간 온몸으로 오싹 소름이 돋아났다. 토끼의 죽음은 땅에서 발뒤꿈치를 지나 혜선의 손아귀까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고 있었던 것이다.
애기 무덤가에 장다리꽃들이 노랗게 피었드랑께
날이 갈수록 노파는 식욕을 잃어갔다.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거실 소파에 나와 앉아 있는 햇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자다 깬 해선은 새벽에 어두운 거실에 홀로 앉아있는 노파의 모습을 보면 소스라쳐 놀라곤 했다. 의사와 상담을 했지만 별 도리가 없다고 했다. 혜선은 그녀가 잠이 오지 않을 때 복용하던 수면제를 노파가 복용하는 혈압약과 위장약 속에 넣어 노파에게 먹였다. 그 약을 먹고도 노파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무서바서 당최 못자겄다이. 잠만 들라 글먼 시커먼 저승사자가 날 잡으러 온단 말다.
혜선은 밤새 노파 곁에 앉아 팔 다리를 주물러주고, 노파가 잠이 들기를 고대했으나 허사였다. 노파가 잠이 들었다 싶어서 살며시 자리를 뜨면 어느새 깨어서 혜선을 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하는 수없이 혜선은 수면제의 양을 두 배로 늘려 노파에게 먹였다. 그날 밤이 되자 노파의 몸에 고열이 나면서 토하기 시작했다. 해선은 집에 남아 있는 해열제를 먹이고 이마에 찬물수건을 얹어주며 수시로 노파의 체온을 체크했다. 그러나 한 시간쯤 지나자 다시 열이 나면서 토했다. 혜선은 좌약으로 된 해열제를 노파의 항문에 투약시키고 알약으로 된 해열제를 다시 먹였다. 새벽 3시가 지나자 노파는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노파가 화장실에 들어간 지 오래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노파가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바닥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채 넋을 놓고 있었다. 119에 전화를 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는 폐 엑스레이와 소변 검사, 혈액검사, 위내시경 검사를 했다.
노파의 위내시경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 정밀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위암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문제는 정밀검사를 해서 위암 판정이 나도 지금 상태로는 수술이 어렵습니다. 너무 노쇠하셔서 수술도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고, 설령 수술이 잘되었다고 해도 회복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의사는 공연히 수술을 해서 생명을 단축시킬 필요 있겠느냐며, 퇴원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파를 퇴원시킨 혜선은 더 이상 자신이 없었다. 형제들의 논의 끝에 노파를 노인 병원으로 모시자는 결론을 내렸다.
막내 우영이 노파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누나네 집에서 계시다가 만약 더 아프기라도 하면 이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요. 엄마, 당분간만 병원에 계시다가 병 나으면 그 때 우리 집으로 가요. 네?
우영의 말에 노파는 훌쩍훌쩍 울었다.
-힘들어도 꾹 참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약 잘 드시면 반드시 좋아질 거예요. 엄마, 너무 서운해 하지 말고 당분간만 병원에서 치료를 합시다. 알았죠? 우리가 수시로 엄마에게 갈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우영이 노파를 설득하자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 병원으로 떠나는 날 아침에 비가 내렸다. 혜선과 우영은 노파의 짐을 싸들고 노인 병원으로 향했다. 말없이 비 오는 차창 밖만 바라보고 있던 노파는 체념을 했는지 차에서 계속 잠을 잤다. 우영은 차 안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그의 얼굴에 착잡한 표정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곤 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노인병원은 황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잔뜩 흐린 하늘은 낮게 가라앉았고 대기 속으로 부연 황사 먼지가 그들의 얼굴 위로 덮쳐 왔다. 우영이 노파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들어갔다. 담당 의사를 만난 뒤, 원무과에 입원 수속을 마치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입원실 입구는 행여 노인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철제로 칸막이를 쳐 외부와의 접촉을 막고 있었다. 창가에는 휠체어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노인, 지팡이를 짚고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복도 양쪽으로 열어 놓은 병실 안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침대 하나씩을 차지한 채 누워있었다. 노파는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는 터널을 건너듯 천천히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6인 실의 병실로 들어선 간호사가 노파를 창가 쪽으로 안내한 뒤 환자복을 가져다주었다.
혜선은 수건에 물을 적셔 노파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눈곱이 낀 눈과 입술을 닦아주고 뼈만 남은 노파의 다리와 몸을 주물렀다. 혜선을 낳아주고 키워준 노파의 몸에서는 퇴락한 가을 낙엽 냄새가 났다. 노파의 옆 침대에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늙은 환자가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골반 쪽은 욕창으로 살이 깊이 패어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었다. 간호사가 깊게 패인 그곳에 박혀있는 소독 솜을 빼내고 새로운 솜을 쑤셔 넣었다. 우영과 혜선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녁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병실 안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묵묵히 텔레비전만 올려다보던 혜선이 이제 가야한다며 노파의 손을 잡았다. 노파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노파는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혜선의 손을 붙잡고 따라 나왔다. 엄마 들어가요. 또 올게. 혜선이 노파의 손을 놓으려 하자 노파는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까칠한 노파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 마음 굳게 먹고 있어요. 응? 알았지? 혜선은 아기를 달래듯 노파를 달랜 뒤 손을 빼내려 했지만 노파는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러시면 보호자 분들이 마음 편히 못 가시지요, 할머니.
간호사가 노파의 손을 빼내며 말했다. 혜선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노파가 마지못해 그 손을 놓으며 울었다.
-안녕! 해야 지요 할머니, 안녕.
간호사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노파가 자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눈물로 뒤범벅이 된 노파의 얼굴을 외면하며 뒤돌아서서 종종 걸음을 쳤다. 노파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묘지로 가는 길 양쪽으로 플라타너스 나무에 돋아난 연초록 새순들이 진한 싱그러움을 띠고 있었다. 노파는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땅 속에 묻혔다. 관 위에 흙을 덮고 그 흙을 꾹꾹 눌러 밟으며 혜선은 누워있는 노파를 생각했다. 건조하고 텁텁한 황사 바람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노파의 무덤 앞에서 형제들은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혜선은 맥을 놓은 채 황사로 뿌옇게 흐려져 있는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발인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쳐갔다. 무심코 차창 밖을 바라보던 혜선은 국도변의 길가에 시선을 멈추었다. 노란 장다리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밭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차를 갓길에 정차시키고 내렸다. 혜선은 찬찬히 장다리꽃을 들여다보았다. 온 몸의 진액을 뽑아내어 꽃을 피우느라 시들시들해진 줄기는 키만 껑충 커서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무리를 이루어 피어 있는 노란 장다리꽃 위로 햇살이 통통 튀어 올랐다. 그 위로 흰나비가 날아가고 있었다. 노란 장다리꽃이 둥둥 허공에 떠오르자 수많은 나비들이 떼를 지어 팔랑팔랑 날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혜선은 아버지를 따라, 아기를 부둥켜안고 걸어가는 노파의 환영을 보았다.
● 소설 당선소감 / 차경화
“갈길 멀지만 꿋꿋하게 걷겠다”
소설을 쓰는 일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먼 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았다. 멋모르고 뛰어든 바다 속은 너무 막막했고 두려웠다. 뒤늦은 후회와 절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도망치듯 바닷가로 기어 나왔다. 몸에서는 짠 소금물이 뚝뚝 흘러내렸고, 내 지친 숨소리는 휘몰아치는 파도 소리에 묻혔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울컥 눈물이 나왔다.
습작 시절,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공연히 뜬구름 잡는 짓은 이제 그만 해. 송곳이 자루에 들어가면 삐져나오는데, 당신에게 재능이 있었다면 여태 그러고 있었겠어?”
송곳이 아니었던 나는 자루 속에서 삐져나오지 못한 채로 늘 갈등했고 미완의 언어들과 싸우며 전전긍긍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소설 공부였다. ‘늦은 나이’는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내 아킬레스건이었다. 그것은 항상 나를 위축시켰고 주눅 들게 했다. 이제 와 고백하지만, 소설 응모를 하면서 나는 내 나이를 적지 않았다. 부족한 내게 길을 열어주신 불교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길을 잃고 깜깜한 바다 속을 헤매던 내게도 이제 작으나마 용기가 생긴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 서투르고, 갈 길은 멀지만 꿋꿋하게 그 길을 갈 것이다. 언제쯤이면 내 영혼에서 삶의 소리와 빛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을지. 그 날을 위해 멈추지 않고 그 길을 헤쳐 나갈 것이다.
그동안 내게 숱한 자극을 주어 글쓰기를 촉진시켰던 남편과,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가족들, 나와 함께 한 글벗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소설을 쓰는 일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먼 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았다. 멋모르고 뛰어든 바다 속은 너무 막막했고 두려웠다. 뒤늦은 후회와 절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도망치듯 바닷가로 기어 나왔다. 몸에서는 짠 소금물이 뚝뚝 흘러내렸고, 내 지친 숨소리는 휘몰아치는 파도 소리에 묻혔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울컥 눈물이 나왔다. 습작 시절,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공연히 뜬구름 잡는 짓은 이제 그만 해. 송곳이 자루에 들어가면 삐져나오는데, 당신에게 재능이 있었다면 여태 그러고 있었겠어?” 송곳이 아니었던 나는 자루 속에서 삐져나오지 못한 채로 늘 갈등했고 미완의 언어들과 싸우며 전전긍긍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소설 공부였다. ‘늦은 나이’는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내 아킬레스건이었다. 그것은 항상 나를 위축시켰고 주눅 들게 했다. 이제 와 고백하지만, 소설 응모를 하면서 나는 내 나이를 적지 않았다. 부족한 내게 길을 열어주신 불교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길을 잃고 깜깜한 바다 속을 헤매던 내게도 이제 작으나마 용기가 생긴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 서투르고, 갈 길은 멀지만 꿋꿋하게 그 길을 갈 것이다. 언제쯤이면 내 영혼에서 삶의 소리와 빛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을지. 그 날을 위해 멈추지 않고 그 길을 헤쳐 나갈 것이다. 그동안 내게 숱한 자극을 주어 글쓰기를 촉진시켰던 남편과,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가족들, 나와 함께 한 글벗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 소설 심사평 / 소설가 성석제
노년의 피폐한 삶, 정밀하게 묘사
삶을 담아내는 그릇인 소설은 환희의 순간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정황을 맞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 번뇌의 양상을 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개인의 하소연이나 한풀이가 돼버리고 만다면 독자가 공감을 할 여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공감이 되지 않으면 감동도 없다. 소설은 근본적으로 감동의 예술이라는 기준에서 일단 10여 편을 가려내고 4편을 집중적인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기리카 傳)은 ‘전’이라는 소설 이전의 동양적 서사양식을 차용한 작품이다. 인도 아소카 왕 과 그의 분신이랄 수 있는 악한 기리카를 입전했는데 예스러운 이야기 방식이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이야기 속의 지옥이 현실의 지옥이 되고 현실에 지옥 같은 삶이 있어 이야기의 지옥으로 변전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근현대적으로 진화된 형식이 아닌, ‘전’의 형식을 빌렸을 때는 ‘전’에 대한 기왕의 상식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전해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고두례)는 과거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감옥 속의 인간사와 만상을 눈에 보일 듯 여실하게 보여준다. 어느 면에서는 정통적인 소설이라 오히려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경험이 강조되다 보니 독자로 하여금 구경거리 이상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또한 사투리 같은 생생한 소리를 그대로 옮겨 적는다고 소설의 문장이 될 수 없다는 걸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푸줏간 남자)는 흥미롭다. 바람을 피운 중년 남자를 능청스럽게 대변하면서 ‘확대경으로 봐야 보이는 사람 뼈에 그린 세밀화’ 같은 순간의 삶의 진실을 슬쩍 드러내 보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얼핏 보면 이야기의 골간에서 벗어나 겉도는 듯한 부분에서 소설의 힘이 느껴진다. 반면 끝까지 시선을 붙드는 보편적인 절실함이 부족하다는 게 아쉬웠다.
(장다리꽃)은 단 한편의 짧은 소설에 생로병사 가운데 생을 제외한 노년의 피폐한 삶을 담아내려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외면하고 싶은 진실, 방문을 잠그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모른 체하고 싶은 현실을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외면하지 못하고 모른 체할 수 없는 기록을 만들고 있다. 오래도록 붙잡혀 있었을 법한 ‘장다리꽃’에서 벗어나 신춘의 나비처럼 약동하는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당선작으로 추천한다.
[불교신문 2390호/ 1월1일자]
첫댓글 딱 지금의 제 경우와 비슷해 각별한 감정으로 읽었습니다. 관세음보살 ()()()
어느 집이나 해당되지요. 자식들이 많고 적고간에 마지막은 저리 가시기 쉽더군요. 관세음보살. ()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
나도 늙어가는것을.... 외로움이 밀려 옵니다
아 경화님이 등단하셨군요. 정말 열심히 공부하시던 분인데 드디어 일내셨네요. 나무님 덕분에 또 경화씨 소식까지 듣게 되었네요. 사진까지 실어 주셔서 확실하게 접수했습니다.
아는 분이세요? 아하...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