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약속, 차관직 승낙한 심영섭차관
모든 이에게 마음과 행동으로 친절하라
4대강 모니터링 구축사업의 초석 마련
심영섭 전 환경부차관(37년생)이 2022년 1월 12일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환경부 출신으로 한강유역한경청장 2회 역임,환경공무원교육원장,국립환경과학원장과 환경부차관을 지낸 유일한 인물로 잔잔한 인품과 공직자로서 주변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과학원장과 장관을 지낸 인물은 윤성규 전장관이 있다.)
서울출신으로 1965년 한양대 공대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1967년 보건사회부 환경위생과 9급(보건원보) 특채로 강원도지역 마약감시원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공직생활중이던 1975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80년 환경청이 발족되면서 초대 수질관리과장으로 부임 (수질제도과장 한상욱,토양관리과장 김시평,해양보전담당관 류시경,수질국장 박재주,서정현)하여 영원한 환경인으로 족적을 남겼다.(심차관의 친형인 심한구 씨는 보건사회부 의료제도과장으로 퇴임했다.)
환경청 폐기물관리국장(86), 환경청 서울지청장, 시설국장(88),환경처 수질보전국장, 폐기물자원국장(91),환경공무원교육원장(94),환경부 한강환경관리청장(95),국립환경연구원장(96-97),강원대학교 환경공학과 초빙교수(98),제9대 환경부 차관(99.5-2000.1)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했다.(짧은 기간 손숙,김명자 장관과 함께 환경부를 이끌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정부까지 수질정책의 중심인물로 일본 자이카(일본 국제협력기구,JIKA)의 협조를 받아 전문인력도 없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하천과 4대강 모니터링 구축사업의 초석을 마련하고 하천과 호소수의 부영양화 연구를 시작했다.
소규모하수처리장건설과, 합병정화조 사업과 연계하여 G7사업을 출범시켰다.(G7사업은 92년 시작되어 98년까지 1천억원이 투자되었다.)
국립환경과학원장 시절에는 중국 연변대를 방문하여 하천과 개발에 따른 자연생태의 평가와 지표방안을 제시하여 한,중간의 실질적인 환경교류의 서막을 장식했다.(김중위장관시절 한,중환경협력이 시작되었다.)
악취와 폐수등 환경오염의 현장인 용인지역의 경안천을 3개월에 한번꼴로 시찰하면서 하천유지관리와 돼지등 축산분뇨에 대한 개선방안과 퇴비화 전략을 구축했다.
산업단지 폐수유출로 낙동강 100km정도까지 물고기(우무) 폐사사건이 발생하자 과학원 전문연구원 14명을 급파하여 폐사원인이 악성폐수 무단방류로 산소결핍에 의해 물고기가 폐사했다는 과학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90년대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홍사덕,이해찬,홍준표,신계륜,권철현,김문수,오세훈,박영숙의원등 정치계의 걸죽한 인물들이 활약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환경부 차관, 수질국장과 과학원장등을 역임하는 과정에서 수질문제가 자주 발생되어 환경노동위원회 국회의원들에게 자주 불려다녀야 했던 심영섭차관은 13대 총선에서 낙마하고 14,15,16대 3선의원을 지낸 박명환의원(38년생,경복고,고려대정치외교)과는 처남,매부관계(배우자 박옥희여사의 오빠)로 심차관에게 날라오는 화살을 박의원이 방패막이를 해주기도 했다.
처남,매부사이는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노년을 즐길 때에도 마포의 한 보신탕집에서 약주 한잔을 기울이며 정겨운 동반자로 극히 최근까지 삶의 체온을 나눴다.
박의원이 13대 선거에서 낙마하고 마포의 나그네로 살아가던 시절 박명환후보를 돕는 방향을 모색해보라는 심차관의 부탁에 마포지역에서 서너차례 지역환경을 주제로 한 사랑방 환경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선 후 환경노동위원회 활동은 하지 않았다.)
환경부차관시절(비서 정병철,건설자원협회장) 내,외부적으로 바쁜 일정속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을 일일이 차관실 밖까지 배웅을 하자 1분1초가 빠듯한 정병철비서가 초조한 마음에 손님은 정중히 배웅해 드릴테니 그 시간을 아껴 결제업무를 처리하자는 건의에 대해 심차관은 “이 사람아 내가 배웅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청탁을 하러 왔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는 손님들이야. 그 분들의 섭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 문밖까지 나가는 걸세”
공직생활을 하면서 새내기 공직자들에게 반드시 이르는 말은“누구에게나 친절하라‘였다. (심영섭차관의 기독교 신분은 집사였고 부인은 권사이다)
공직생활을 끝내고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간 심차관은 사회친구가 운영하는 서교동에 위치한 ‘신원휄트’ 사옥의 사무실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홀홀단신 충청도를 떠나 서울에 안착한 신원휄트 회장의 청춘시절 심차관이 살던 집에서 기거할 당시 심차관의 부친(심종우)내외가 살갑게 대해주면서 그 정분이 전파되어 사랑의 보은적 관계가 유지되었다.
차관에 취임할 당시에도 사랑하는 아들이 병으로 투병중에 있어 차관직을 거절했었으나 투병중인 아들(故 심재학)이 “걱정하지 마시고 공직자로서 최선을 다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에 심차관은 “같이 노력해보자”며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차관에 취임하게 된다.
둘째 아들인 고 심재학씨는 고려대 내과 혈액암 전문의사로 몽골에 의료봉사를 갔다가 병이 악화되어 귀국하여 병치료를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고인이 전공한 혈액암으로 이승을 하직하게 된다.
심차관의 덕망을 익히 알고 있는 환경부의 많은 직원들이 헌혈을 하기도 했다.
조직관리에서 중요한 비중인 인사문제에서도 직원들이 합당한 사유를 들어보고 지방발령등은 잘 내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큰 아들 심재훈씨도 스위스 취리히 의대 교수로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귀전문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우연히 청계천을 거닐다 모자를 쓰고 종량제 봉투와 집게를 들고 벤취에 앉아 쉬고 있는 어르신을 보았다. 얼굴 앞면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물이다. 차관을 끝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의 심영섭차관이다.
심차관은“자네는 청소부가 되어 본적이 있어. 벙거지를 눌러쓰고 청소를 하고 있으면 누가 날 알아봐. 이들 세계에서도 이야기가 있어. 자네도 한번 해봐. 좋은 글이 많이 나올 거야.”
비록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라지만 한 번도 청소부가 되어 본적이 없다.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심영섭차관이 국립환경과학원장에 재임하던 1996년이다.
수년간 썼던 칼럼중에 제법 쓸만한 것들을 추려 김동환 환경칼럼집 ‘우째 물꼬를 틀꼬’를 출간했다. 국내에서는 환경을 주제로 한 최초의 칼럼집이다.
출간하기 전 원고를 정리하여 심원장에게 찾아가 원고내용을 검토하고 한글자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글을 읽고 난 심원장은 ‘수자원의 오염 현장을 심층파악한 한권의 책’이란 제목으로 글을 남겨 주었다.
-우리는 흔히 어디에서나 물은 늘 있는 것이며 언제 어디서라도 손만 뻗치면 닿을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해왔다. 수돗물 중금속오염,THM,낙동강 폐놀,당산철교 누치,살치 물고기 떼죽음,한강물 납문제,수돗물세균,낙동강톨루엔 오염,수돗물 악취, 영산강 몽탄정수장 암모니아성 질소,목포지역 단수문제등은 수돗물 불신을 가져왔다. 이러한 현장에 불철주야 다니면서 수질오염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에 골몰한 사람이 있다. 김동환 국장이다.(당시는 박사학위가 없었음)
‘우째 물꼬를 틀꼬’라는 책을 접하는 순간 수자원문제에 대해 현장에서 느낀 체험을 기자정신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그의 집념을 보았다. 현장 속에서 일어나는 물 오염 사건을 생동감이 느껴지는 필체와 예리한 통찰력으로 오염 사고를 진단하고 전문인의 관점에서 실제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중략)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수자원에 대한 크고 작은 사건을 직접 체험하면서 학계,정부,국민들이 사건에 대처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고 역동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하천,호소, 정수처리,수돗물,먹는샘물,지하수오염등의 문제점을 확실히 제시하고 그 문제를 보다 새롭고 유효하게 접근해서 환경전문가, 정책입안자는 물론 일반 독자,학생들에게도 큰 도음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96.12(불광동 연구원에서 심영섭)
이 칼럼집에는 정종택 환경부장관,권숙표 연세대의대교수,김양수 문학평론가, 김구연 아동문학가의 축하와 격려의 글이 담겼다.
1부 총탄처럼 뚫린 지하생수, 2부 대형참사의 주범은 물, 3부 멋진 장사꾼은 아름답다, 4부 청소부와 사담 후세인으로 꾸며졌다.
고인이 되신 심영섭차관을 추모하면서 이 책을 다시 더듬어 보니 물 문제가 과거에는 육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사고로 점철되었다면 현재의 물 문제는 미세하고 세부적인 문제로 번져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심영섭원장시절 퇴임후 고향에 땅이 있는 친구,은행을 퇴사한 지인들과 생수사업을 하면 어떠냐는 질문에 절대 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에는 코로나19로 조심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소준섭, 정병철,윤성규,신보균,차승환,류재근,임연택,김동진,김승희,김경호,심무경,곽결호,주수영,정국현,한상준,정연만,박희정,최수만,김학엽,노부호,김영화,박대문,한갑수,이길철(호칭생략)등과 하루 전 부인의 영결식을 마친 처남매부지간의 박명환 전의원이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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