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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껌. 흔히들 값이 너무 쌀 때 '껌값'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요즘은 각종 기능성 껌들이 앞다퉈 선보이면서 '껌값'이라고 무시해버릴 수만은 없는 가격이 됐다. |
◆ 껌값은 '껌값'이 아니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자일리톨 껌 한 통은 500원이다. 작은 곽 하나에 6알의 껌이 들어있다. 가로·세로 1.5㎝, 높이 0.7㎝의 작은 껌 한 알당 가격은 83.3원. 크기에 비하면 꽤 비싼 금액이다. 껌을 두 줄 높이로 쌓아 책 사이즈(4*6형)를 만들려면 2만9천600원이 든다. 평균 1만~1만5천원 선인 소설책 한 권보다 껌값이 훨씬 비싼 것이다.
현재 백화점에서 팔리는 가장 비싼 껌은 수입품으로 일본제 '헬로키티껌'이 차지했다. 5알이 든 한 통에 1천원(27.5g)이다. 국내 제품으로는 최근 선보인 '천연치클껌'이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17개가 든 한 통 가격이 2천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택시 기본료(2천200원)보다 껌값이 더 비싸다.
우습게 보이는 '껌값'이지만 모아보면 엄청난 금액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만다. 홈플러스 대구점 한 곳에서 한 달 동안 팔려나가는 껌 가격의 합계는 1천만원 정도이다. 매장 관계자는 "껌은 단품으로 놓고 보면 보잘것없지만 모으면 작은 부피에도 불구하고 금액이 크다"며 "부피가 큰 스낵류 등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이런 껌값이 더욱 비싸질 전망이다. 껌 한 통을 구입할 때 소비자가 내야하는 폐기물 부담금이 오르면서 껌값 역시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현재는 500원짜리 껌 한 통에 판매가의 0.27%인 1.35원을 폐기물 부담금으로 내야 하지만 2012년에는 이 부담금이 9원으로 무려 7배나 인상될 전망이다.
그러면 과연 껌값보다 싼 것은 뭐가 있을까? 당황스럽게도 '쌀값'이 껌값에 비견될 만한 싼 것의 대명사로 꼽힌다. 한끼 쌀값 200원. 벌써 5년 전부터 한끼에 200원 수준이었던 쌀값이 껌값보다 하락한 지 오래다.
◆ 껌값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처음 국산 껌을 생산한 곳은 해태제과였다. 해태 풍선껌과 설탕껌, 뽑기껌이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껌값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0원에 불과했다. '껌값'일까? 1972년 자장면 한 그릇 값이 3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껌값'이라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금액이었다. 1973년 처음 출시된 롯데의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후레쉬민트'는 껌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널리 알려진 제품. 기존 제품들보다 크기와 부피를 늘리고 향을 첨가해 국내 껌 문화의 초석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1978년 껌값은 30원으로 인상됐다. 당시 촬영된 해태 쥬스껌 광고에는 배우 정윤희와 가수 김세환이 청재킷에 청바지를 차려입고 등장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자장면값이 100원으로 급격히 뛰어오르며 다른 어떤 제품에 비해 껌값이 싼 제품으로 인식되게 됐다. 이후 자장면값은 1천원, 2천원, 3천원 등 계속 뛰어오른 반면 껌값은 30원에서 100원, 300원, 500원 선으로 인상됐다.
1990대 껌 성분으로 각광을 받았던 것은 '후라보노'. 오리온과 롯데, 해태는 후라보노이드 성분을 함유한 껌을 동시다발적으로 내놨다. 그리고 2000년 들어 껌 업계를 평정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자일리톨 성분이다. 2000년 롯데제과가 다시 내놓은 자일리톨이 인기를 끌면서부터 해태제과, 오리온이 앞다퉈 치아재생 기능을 갖춘 자일리톨 신제품(62개짜리 대형포장)을 선보였다. 이로 인해 한 봉지 3천원대이던 껌값이 드디어 5천원을 넘어서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다시 인하돼 3천~4천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지금은 자취를 감춘 '추억의 껌'들은 중동에서 맹활약 중이다. 오리온 제과는 20년 전부터 '바나나껌'을 중동에 수출해 연간 2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해태제과도 딸기맛·바나나맛·멜론맛 등 5가지 과일 맛이 나는 껌을 '해태껌'이라는 이름으로 중동지역에 수출해 지난해 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 천연 치클
껌은 천연수지나 합성수지에 감미료와 향료 등을 혼합하여 구강 내의 체온과 타액으로 적절한 도수로 연화시켜 감미료와 향료 등이 녹아서 나오게 배합한 것이다. 껌의 원료는 크게 기초제, 당류, 향료, 기타 재료인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제. 원래는 사포딜라(sapodilla)의 수액에서 채취한 치클(chicle)이 껌의 기초제로 쓰이지만 원료가 워낙 고가이다보니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껌은 합성고무로 만들어진다. 열대고무추출액에 '초산비닐수지'라는 화학성분을 첨가해 만든 것이다. 초산비닐수지는 석유에서 추출한 물질로 접착제나 페인트에 쓰이기도 한다.
최근 한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그동안 '속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자일리톨 껌은 자연성분으로 만들었다고 광고하면서 '건강에 좋은 껌'이라는 허상을 갖게 된 것.
이런 가운데 오리온에서는 최근 100% 천연치클로 만든 껌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천연 치클을 사용하다보니 1통 가격이 2천500원(17개)으로 비싼 편이지만 기존 껌에 첨가돼 있는 합성착색료, 합성착향료, 합성산화방지제 등을 모두 제외하고 천연향료와 천연색소를 사용해 안심하고 씹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추잉껌이 선보인 것은 지난 70년으로 롯데제과가 ‘그린민 트 ’라는 껌을 내놓았다. 67년에 해태제과가 최초의 시가 껌인 ‘ 셀레민트 ’를 선보였지만 추잉을 사용한 껌은 롯데제과가 최초이다.
첫 출시 당시의 껌 값은 10원. 그러던 것이 70년대 중반 롯데제과의 최대 히트상품 중의 하나인 ‘쥬시후레쉬 ’ ‘ 스피아민트 ’ ‘ 후레쉬민트'의 3종 껌이 나오면서 껌 값은 20원을 거쳐 50원까지 올랐다.
70년대 50원 선을 유지하던 껌 값이 100원을 넘어선 것은 80년대 초.
올해 자일리톨 껌 시장규모는 전체 껌 시장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고 말한다. 바야흐로 껌 값을 절대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파원 칼럼/김창원]12년 전과 껌값이 똑같은 일본
1998년 일본에서 한 달 단기체류를 한 적이 있다. 일본 여행이 처음이었던 기자는 비싼 물가 때문에 마음이 늘 편치 않았다. 한번은 편의점에 들어가 껌을 집어 들었는데 껌 값이 자그마치 110엔이나 됐다. 껌 한 통에 1000원이 넘는 돈이 아까워 껌을 내려놓으며 “일본은 껌 값도 껌 값이 아니다”며 불평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에서 살려면 물가에 먼저 적응해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당시 충격이었던 껌 값은 12년이 지난 지금도 110엔이다. 지난해 말 도쿄 긴자(銀座)의 유니클로 매장에는 한 벌에 999엔짜리 청바지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우리 돈으로 1만3000원도 채 안 되는 청바지가 불티나게 팔렸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쇠고기덮밥(규동)의 체인점 가격은 이달 들어 250엔까지 떨어져 9년 전인 2001년 때(280엔)보다도 싸졌다. 어떻게 물건 값이 10년 전과 같거나 오히려 싸질 수 있을까.
일본 통계국 홈페이지를 보니 소비자물가지수(2005년=100)가 1997년 103.0에서 지난해 100.3으로 떨어졌다. 12년 동안 거의 매년 물가지수가 전년에 비해 하락했다. 1989년 부동산 거품 붕괴로 시작된 ‘잃어버린 10년'이 20여 년째 이어지고 있는 일본 장기불황의 현실이다.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자에게는 좋을 것 같지만 경제 전체에는 심각한 주름이 간다. 가격이 내려가면 기업의 이익이 줄어 임금 하락 요인이 되고 이는 소비심리를 꺾어 물건이 안 팔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른바 ‘디플레의 소용돌이'다.
일본 장기불황의 원인은 뭘까.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최근 주요 20개국 가운데 유독 일본만이 심각한 디플레를 겪는 이유를 발견했다. 디플레는 경제성장률이나 실업률보다 인구감소율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변수라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19개국의 인구증가율은 1989년 이후 0.5∼1%대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1981년 0.7%에서 계속 추락해 2007년부터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구가 줄면서 사회 전반적인 활력이 떨어지고 수요 감소에 따른 물가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실제로 일본의 고도성장기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전반이 되는 1970년대 초반이었다. 이때는 노동생산성도 상승하고 물가상승률도 높았다. 그러나 단카이 세대가 은퇴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1990년대가 되면서 디플레와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에 이미 20%를 넘었고 2025년에는 30.5%에 이르게 된다.
일본의 고령화는 불건전한 재정적자 규모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노인복지 관련 세출은 크게 늘어난 반면 세입은 줄어든 탓이다. 일본의 지난해 재정적자 규모는 825조 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74%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본의 재정적자가 구조적인 문제여서 세계 경기가 회복돼도 수지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장기불황을 벗어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푸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당장 불황을 벗어나려는 근시안적 미봉책일 뿐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라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본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일본이 겪고 있는 심각한 장기불황이 앞으로 10년 15년 뒤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답답해진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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