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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환경단체의 활동과 성과 / 박병상 | ||||
특집 | 환경재앙,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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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20일부터 이틀 동안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아셈, ASEM)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렸다. 김대중 정권 시절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다는 정상들의 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 아시아와 유럽의 NGO 회원들이 ‘아셈 2000 민간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10월 17일부터 닷새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놓고 정상들의 사교장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열띤 포럼을 이어갔는데, GMO(유전자 조작 농산물과 그 농산물을 재료로 가공한 식품)의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잠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20여 농작물의 유전자가 조작되고, 미국과 우리나라 슈퍼마켓에 보이는 가공식품의 90% 가까이가 GMO 옥수수이거나 GMO 콩이 절대 또는 어느 정도 섞인 시절이 요즘이다. 다시 생각하면 까마득한 옛일로 기억할 수 있지만, 당시 민간 GMO 포럼에 참여한 유럽 그린피스 대원은 자신들의 성공담을 자부심처럼 전해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 독일 국적의 식품공학 박사인 그는 세계 최대의 식품 가공업체인 네슬레를 굴복시킨 체계적인 행동과 그 성과를 우리와 공유하고자 했다 네슬레에서 판매하는 아침 시리얼, 콘플레이크였다고 했다. 출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제품을 대상으로 GMO 옥수수가 얼마나 포함되었는지 묻자 대답을 회피한 회사에 유럽 그린피스는 구체적인 질문을 쏟아낸 모양이다. 시장에 막 선보인 콘플레이크의 종이상자에 적힌 옥수수 원료를 추적하니 언제 어느 항구에서 어떤 화물선으로 하역했던데, 틀림없는지 물었다고 했다. 사실을 근거로 추궁하니 세계적 회사도 부정할 수 없었을 텐데, 질문은 이어졌다. 그 화물선을 추적하니 언제 어느 농장에서 생산한 옥수수가 30% 정도 섞여 선적한 것을 파악했고, 그 농장은 GMO 옥수수를 전량 재배해왔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종이상자에 담긴 콘플레이크에 적어도 30%의 GMO 옥수수가 포함돼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회사 차원에서 확인해줄 수 있겠는가? 유럽 그린피스는 네슬레가 잡아뗄 걸 대비해, 부정하면 연구시설을 갖추어 즉각 검증할 수 있다는 걸 암시했다고 한다. 그린피스의 체계적 추적에 이은 질문에 네슬레는 하루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다음 날 이실직고했고, 전 유럽에서 해당 상품과 재고를 회수해 소각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고 포럼에 참여한 그린피스 대원은 증언했다. 네슬레의 퍼포먼스는 다른 식품 가공업체로 이어졌다고 한다. 우리 제품에 GMO는 없다는 상품광고는 매출이 증가하는 파급효과를 빚어 겔로그나 다농과 같은 회사에서 GMO를 가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만들었다는 건데, 아시아는 달랐다고 한다. 아셈 2000 민간포럼에 참석한 홍콩 그린피스 대원은 유럽에서 팔리지 않는 가공식품이 아시아에 쏟아진다며 성토했는데, 우리는 당시 어떠했을까? 이름 있는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 여성단체와 종교단체에서 중견 활동가를 파견해 만든 연대단체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에서 한국네슬레에 질문서를 보냈다. GMO 옥수수가 포함되었는지 어리석게 묻자, 현명한 대답이 나왔다. “우리는 한국의 법률을 잘 따르고 있다.”라고.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에서 GMO가 섞였는지 검사하겠다고 한국네슬레에 으름장을 놓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불가능했으므로.
어리둥절했던 시절의 환경운동
1990년대 초,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파주에 모였다. 환경운동연합이 공식 출범하기 전, 공해추방운동연합의 일원으로 농민과 뜻을 모아 골프장을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에 나선 것인데, 생태 전문가의 일원으로 초대돼 골프장 예정 용지 생태조사의 일정을 함께 소화한 적 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무뎌진 시절이었지만, 군 트럭과 지프형 자동차가 드나드는 거리의 분위기는 집회 현장이 처음인 ‘학출’ 처지에서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활동가의 안내로 골프장 예정 용지의 양서류를 조사했고 계곡의 돌을 들출 때마다 당시에도 희귀했던 꼬리치레도롱뇽 무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임무는 거기까지였다. 골프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간단한 서류로 작성해 환경단체 선임 활동가에게 전한 뒤 철수하려는데, 함께 참여한 식물학 전공학자인 선배가 하루 더 머물며 주민의 이야기를 듣자고 권해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서 밤새 막걸릿잔을 기울이던 젊은 활동가 대부분은 과거 민주화운동에 매진한 경험이 있었다. 1991년 3월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우리 사회에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염 저감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군사독재정권 이후 누적된 환경문제는 1980년대에 조금씩 현실로 드러났지만, 당시 전국 규모의 언론은 일시적이거나 지역의 문제로 간단하게 취급하곤 했다. 1985년의 일이다. 석유화학과 비철금속 공장이 운집한 당시 울산시 울주군의 온산공단에서 지역에 참을 수 없는 악취를 안겼다. 하지만 일부 주민의 이주로 어설프게 봉합되고 문제는 확대되지 않았다.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명백히 밝히지 않았는데, 1991년 구미공단의 두산전자가 페놀 원액 30톤을 누출시킨 사건은 달랐다. 마시는 물의 검사 항목에 페놀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예전 군사정권이었다면 보도를 자제했을 텐데, 시대가 바뀐 것이다. 페놀의 존재와 위험성을 비로소 알기 시작한 시민사회는 충격을 받았고, 때를 같이해 공해추방연대는 대기업 두산의 대표 상품인 OB맥주를 거리에 쏟아버리는 행동에 나섰다. 그 사건은 시민들에게 환경단체의 존재와 가치를 심어주었다. 이후 환경운동연합이 1993년 공식 태동했고, 회원이 늘어났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군사정권은 강압적인 태도를 일상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금서로 여기던 다양한 책이 봇물 터지듯 출간되었다. 격렬했던 민주화 열기가 빚은 결과일 텐데, 정권의 억압적 태도가 느슨해진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치열했던 학생운동도 조용해졌고, 분위기를 타면서 환경에 관심을 가진 크고 작은 모임은 뜻을 서로 모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모습을 갖춘 환경단체는 지역으로 활동영역을 넓혔고 그 과정에서 작은 모임과 연합하기도 했다. 군사정권의 눈치를 살피던 언론도 사슬을 벗어던졌다. 새로운 모임과 활동에 관심을 표명했고 방송 매체도 호의적으로 취재에 나섰다. 학교라는 온실에서 실험과 논문 쓰기로 전문가 경력을 쌓으려던 젊은 생물학자도 1990년대 초부터 멋쩍게 환경단체와 보조를 맞췄다, 환경단체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거대 개발사업에 문제를 제기할 때 엉거주춤 참여했다. 어리숙한 행동에 용기를 불어넣으며 동행하던 당시 서울시립대학교의 이경재 교수의 권유 덕분이었다. 환경운동에 직접 참여한 적이 없어 피동적으로 응했던 초보 생물학자였던 필자는 진주환경운동연합과 지리산국립공원과 인접한 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산청양수발전소 건설 현장 방문을 지금도 나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리산 남쪽 사면의 감나무마다 잘 익은 감을 높은 가지에 매달았던 때였다. 진주에서 두세 시간 비지땀을 흘리며 오른 반천리 상부댐 부지는 꼬리치레도롱뇽이 큰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무거운 방송 장비를 들고 올라온 기자들은 화면이 중요했고 노랗고 날씬한 꼬리치레도롱뇽을 처음 보며 신기해했다. 그때 어떤 내용으로 인터뷰에 응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런 계곡에 댐을 세워 물을 채우면 생태적 위치가 중요한 개구리들과 생태 지표종인 꼬리치레도롱뇽이 감소할 것으로 주장했을 것이다. 이후 산청양수발전소 인근은 찾아가지 않았다. 1992년 늦은 가을 양수발전소 착공 전에 현장을 방문했던 진주환경운동연합은 이후 허탈한 상태로 몇 차례 찾았겠지만, 지역의 중요한 관광지처럼 지금도 홍보되는 반천리 산청양수발전소는 그 단체의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 같다. 신라 말기의 유학자 고운(孤雲) 최치원이 머물렀다는 전설이 남은 산청 고운동계곡은 양수발전소에 내줄 자연공간일 수 없다. 당시 생태조사에 참여한 환경단체는 “민족의 정기가 살아 있고 우리나라 생물종의 30%가 보존된 천혜 자연의 보고”인 곳을 파괴하며 지리산을 지켜온 주민들을 내쫓는 양수발전소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외쳤다. 꼬리치레도롱뇽만이 아니다.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황조롱이가 관찰되었지만, 양수발전소 건립을 막지 못했다. 생태계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드물다. 환경단체와 현장을 누비는 학자는 보기 어렵지만, 개발을 원하는 측을 은근히 배려하며 피해자 앞에서 전문가 위세를 펴는 학자는 지금도 수두룩하다. 그들은 천연기념물이라도 다시 찾아올 것으로 장담하고, 환경을 평가하는 관청은 그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다. 생태계 파괴에 저항하고 개발 예정지역의 현황을 파악하는 행동이 환경운동연합의 주요 활동은 아니었다. 환경단체 출범 초기는 좌충우돌해야 했다. 단체의 지속성과 건강한 활동을 위해 회원을 늘려야 했지만, 정부나 기업도 환경의식이 일천하니 마음이 급했다. 환경단체의 일은 끝이 없었다. 최악의 독성물질인 다이옥신이 배출되는 소각장 문제를 제기하면서 주민들과 반대운동에 나서야 했고,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반대운동, 동강댐 반대운동으로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환경운동도 시민운동의 일환이므로 일방적인 반대보다 시민과 함께 행동할 대안 찾기를 모색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책이 일부 보수 언론에서 나왔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막무가내 개발에 환경단체는 당장 절박했다. 합리적 절차를 무시하는 개발에 저항해야 했다. 점잖은 문제 제기는 귀담아듣지 않았기에 반대운동에 돌입해야 했다. 1994년 12월 한 방송뉴스에서 느닷없이 기정사실로 보도한 직후 추진한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그랬다. 1994년 12월 창립한 인천환경운동연합이 사무실 집기를 들여놓기 무섭게 몰두해야 했던 반대운동은 회원 관리에 할애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인천의 환경단체만으로 힘이 모자라 노동단체들과 연대해야 했다. 과학적 합리성을 담보하지 않고 핵폐기장 적지로 지정한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천의 환경단체는 덕적도와 굴업도 주민과 합세해 정부와 핵폐기장 추진 세력이 내놓은 자료를 하나하나 반박했고, 집회와 시위 그리고 비공식 토론회와 공청회를 거푸 열었다. 당시 한 차례만 실시하면 그만인 공청회는 반드시 막아야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버둥 치던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좌석을 이미 선점하고 공청회장 외부에서 환경단체를 차단하던 경찰력에 분노하며 좌절해야 했다. 굴업도 핵폐기장은 결과적으로 추진할 수 없었다. 당시 과학기술부 차관은 환경단체의 항의에 그만 말실수를 했다. ‘과학은 정치의 시녀’라고 실토한 것이다. 굴업도가 거대한 단일 응회암이므로 핵폐기장 적지라고 발표했지만, 실상과 달랐다. 삼척동자가 보아도 굴업도에 지진과 절리의 흔적이 명백했다. 하지만 정치가 과학에 굴종을 강요한 것이다. 9명의 주민이 거주하므로 굴업도를 정치적으로 밀어붙였던 거였다.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저항한 환경단체의 노력은 정치권을 움직이게 했고, 핵폐기장 계획은 결국 무산되었다. 1990년 11월 충청남도 안면도를 육지로 잇는 다리를 불타오르게 한 핵폐기장 반대 항쟁도 정부의 무리한 추진이 화근이었다. 1994년 1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이어진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기록은 백서로 보전돼 있다. 중앙정부가 볼 때, 인천은 서울의 관문에 불과한 곳일 때가 많았다. 지금도 인천공항은 치외법권 지역이다. 요즘 코로나19 시국이므로 한 방송사의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은 외국 젊은이들을 초청하지 않지만, 그 방송은 인천을 거의 조명하지 않는다. 인천공항에 내린 외국 젊은이들은 예외 없이 서울로 움직였다. 항공사에서 ‘서울 · 인천공항’이라 말하는 인천공항은 서울의 관문인가? 드넓은 갯벌이었다. 문제 제기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묻혔다. 1,400만 평의 갯벌을 매립하므로 해양 생태계 파괴를 염려하며 대안을 요구했지만, 그 목소리는 미약했다. 대부분 언론은 환경단체의 연약한 외침을 가차 없이 외면했다. 지금도 인천은 환경문제의 도가니에 가깝다.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으로 지친 환경단체는 몸을 추스르기 전에 영흥도 화력발전소 반대운동에 매진해야 했다. 한국전력이 전력생산 분야를 5개 회사로 분리했고, 그중 한 곳인 남동전력주식회사에서 영흥도에 80만 킬로와트급 화력발전소 2기를 추진할 때였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지역 환경단체들이 연합해 영흥도 주민과 더불어 반대운동에 돌입했고, 철두철미하게 졌다. 시간과 돈과 권력에 격차가 현저했기에 지친 주민이 먼저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고, 인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자신의 생일에 구금되고 말았다. 발전소 건설 관련 제도는 업체의 편의를 노골적으로 지원한다. 시민의 감시는 거의 없고, 있어도 형식적이므로 환경단체가 저지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환경단체 활동가는 그 상황에서 자칫 범법자가 되고,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인천의 화력발전소만이 아니다. 전남 영광군의 핵발전소 역시 환경단체와 연대한 시민단체 그리고 시민들은 억압을 피하기 어려웠고, 핵발전소는 자신의 의지대로 핵반응로의 수를 착착 늘렸다. 기획에서 건설, 시설의 운영관리 영역에 시민의 감시가 차단되므로 사고 가능성은 무시로 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광군에 있는 핵발전소는 어떨까? 외부 콘크리트 층에 균열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공에 문제가 있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고가 없으면 그만인가? 환경단체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남동전력회사는 화력발전 계획 초기에 인천시와 선뜻 합의해 석탄화력 2기로 한정한다고 못 박았지만, 연막이었다. 발전 사업자는 시민사회와 맺은 합의를 간단히 무시한다. 지자체와 가진 합의마저 연연해 하지 않은 전력회사는 국가 전력 계획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며 2기씩 두 차례 발전 시설을 추가했고, 현재 6기의 화력발전 설비를 맹렬하게 가동하고 있다. 300만 인구의 인천시가 소비하는 전력은 막대한데, 그 전력의 두 배 이상을 생산하는 영흥도 화력발전소로 인해 인천시는 생산직 일자리를 늘리지 못할지 모른다. 커다란 공업단지를 여럿 가진 인천시는 영흥도에서 쏟아지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설비 확대가 어려울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의 절반 가까이 영흥화력본부가 독차지하지 않는가. 인천 시민들이 그 화력발전소가 배출하는 초미세먼지의 세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신 인천 환경단체는 공동조사단이라는 위원회에 모여 영흥화력본부의 관리와 운영을 분기마다 감시하지만, 무력한 게 현실이다.
시민사회에 파고드는 환경운동
지난 1월 21일 그린피스는 한국전력 서초지사 벽면에 레이저빔 영상을 투사했다. “해외 석탄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10억 마리 넘는 야생동물을 희생시킨 호주 산불 근거 영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진 것이다.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 중의 하나인 호주에서 발생한 지난해의 거대한 산불이 기후위기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캠페인은 우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린피스의 레이저빔 캠페인은 처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벌이는 캠페인 대부분도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들였다. 이렇듯, 그린피스의 과감한 행동은 유명하다. GMO 옥수수가 실린 거대 화물선의 닻에 매달리는 영상,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안전하다고 발언한 토니 블레어 총리의 관저 앞에 수십 톤의 GMO 콩을 쏟아붓는 영상은 그린피스의 위상을 세계인의 뇌리에 심었다. 연구용이라며 고래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호를 작은 보트로 방해하며 물세례를 받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핵폭탄 실험을 반대하는 그린피스의 ‘워리어호’를 프랑스군이 공격해 침몰시킨 사건은 충격이었다. 그런 희생적 행동은 세계적 반핵운동으로 이어져 요즘 태평양 외딴 섬이든, 남의 나라 사막이든 핵폭탄 실험은 불가능해졌다.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은 보는 이에게 선명한 인식을 각인하기에 활동가의 선망이 되기도 한다. 2011년 한국에 사무소를 설립한 ‘그린피스 코리아’는 우리 시민사회에 어떤 인식을 심었을까? 사무소를 서울에 설치하기 이전에 인천 내항에 워리어호를 몇 차례 정박시키며 홍보하려 노력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2013년 부산 광안대교에서 펼친 행동이 컸다. 핵발전소 폭발 위험 반경은 국제공인이 30km이지만 우리나라 기준은 10km에 불과하다. 고리핵발전소와 25km 떨어진 광안대교에서의 행동은 아슬아슬했다. 80m 상공 케이블에서 뭉크의 〈절규〉를 형상화한 대형 포스터를 펼친 그린피스 대원은 한국의 핵발전소 비상 계획구역 확대를 요구했고, 언론마다 크게 주목했다. 시민사회에 경각심을 심는 행동은 어떤 환경단체든 외면하지 않는다. 2006년 10월 인천녹색연합은 인천의 진산인 계양산에 골프장을 짓겠다는 굴지의 대기업 롯데에 저항했다. 당시 28세 활동가 신정은은 골프장 예정 용지 내 소나무 세 그루를 활용해 설치한 1.5평의 패널로 올랐고, 패널 위 텐트에서 57일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언론은 주목했고, 인천의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계양산 골프장 저지 인천시민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연대한 인천녹색연합은 나무 아래에서 행동했다. 방문자에게 계양산의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설명하면서 나무 위의 활동가를 지원했다.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였던 48세 윤인중 목사가 신정은 활동가의 바통을 받아 이듬해 5월까지 155일 동안 나무에 머물렀고, 계양산은 골프장 위기를 넘겼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윤인중 대표가 내려온 뒤에도 롯데는 골프장 계획을 버리지 않았지만, 대책위원회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숲의 밀도를 왜곡한 롯데가 군사보호구역을 침범하려 한 의도를 숨기지 못하면서 사회문제가 되었다. 2009년 10월, 자연에 대한 존경심 회복을 운동 목표로 하는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제15회 ‘풀꽃상’ 본상을 계양산 맹꽁이에 드리고 부상을 대책위원회에 드리는 행동으로 이목을 끌어들였다. 환경단체의 거듭되는 저항에 밀려 골프장 면적을 줄이던 롯데는 인천시장이 바뀐 이후, 무모한 계획을 접었다. 인천녹색연합에서 계양산의 소나무에 오르기 5년 전인 2001년 5월, 환경정의시민연대 박용신 정책부장은 용인 대지산의 상수리나무 위 10m에 17일 동안 올랐다. 주민은 물론 대지산을 소유하는 문중에서 땅을 지키고자 했어도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려는 한국토지공사는 막무가내였다. 중장비를 동원해 하루 만에 사면부를 벌채하는 행태를 보였다. ‘환경정의’로 이름을 바꾼 당시 환경정의시민연대는 시민 성금으로 한 평 사기 운동으로 대지산 정상 인근 100평을 매입, 그 자리의 상수리나무에 오른 것이다. 환경단체의 저항이 계속되고 언론이 주목하자 한국토지공사는 14일 만에 물러섰다. 그 일원의 대지산을 자연공원으로 보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환경정의시민연대는 법원 공증을 요구했고 박용신 부장은 3일을 더 머물렀다. 박 부장은 나중에 그 순간을 술회했다. 첫 일주일은 상수리나무가 진저리쳤고 이어진 일주일은 받아들이더니 내려가려 하자 아쉬워하더라고. 박 부장의 마음이었겠지만, 다양한 나무와 풀이 어우러지는 숲을 굴착기로 마구 허무는 인간을 생태계의 어떤 생물이 흔쾌해 여기겠는가. 대지산의 숲과 나무에 사과하면서 막아낼 것을 다짐한 박용신 부장은 자신을 받아준 상수리나무의 이름을 ‘장군’이라 붙였고, 용인시에 지부를 설립한 환경정의는 작년 자연공원 보전 20주년 행사를 장군 앞에서 가졌다. 걸핏하면 산불에 휩싸이는 미국 서부 해안은 유럽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거대한 삼나무로 울창했다. 그중 극히 일부가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무어의 숲’으로 보전돼 있지만, 나머지 숲은 대부분 벌채돼 사라졌고, 습기마저 사라지자 화마에 휩싸이곤 한다. 요즘은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로 거대한 나무는 보기 어렵지만 세계로 수출할 나무는 남았다는데, 캘리포니아주 북부와 오리건주, 그리고 워싱턴주가 그런 모양이다. 주민들의 환경의식이 다른 곳보다 높다는 평이 있는 그 일원은 겨울에 눈이 거세다. 겨우내 쌓인 눈에서 흐르는 물이 캘리포니아를 젖과 꿀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 캐나다 밴쿠버에 눈 대신 비가 내렸다. 캘리포니아 북부도 마찬가지였는데, 겨울에 비가 내리는 온난화 현상에 아랑곳하지 않는 벌목회사는 거대한 삼나무들을 호시탐탐 노린다. 미 동부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1997년 주술에 끌린 듯 캘리포니아 북부의 900년 된 삼나무에 올랐다. 자연을 지키려고 폭력도 불사하는 미국의 환경단체 ‘어스 퍼스트(Earth First)’가 삼나무 숲을 지키려 나무에 올라가는 행동에 나서는 곳이었다. 애초 며칠만 동참하려던 버터플라이 힐은 마음을 바꿔 61m 삼나무의 56m 지점을 2년 넘게, 그것도 맨발로 버텼다. 온갖 감언이설과 조롱, 협박과 위험을 견뎌내며 기계톱의 공포를 견뎠고, 두 차례의 생일과 3번의 겨울을 보낸 20대 젊은이는 결국 클린턴 행정부의 보전 약속을 끌어냈다. 처음 오를 때 빛을 내준 달을 생각해 나무의 이름을 ‘루나’로 붙인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한동안 운명을 같이해온 삼나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나무 위의 여자》에 썼다. ‘태양의 도시’ 또는 ‘세계 환경수도’라는 별칭을 가진 독일 남부의 프라이부르크는 에너지 자립마을이 많은 곳으로 이름이 높다. 1970년대 초 핵발전소를 건립하려는 정부에 저항하며 전기를 자급하는 행동에 나섰기 때문인데, 핵발전소에 대한 저항은 격렬했다. 나무에 올라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의 마포 ‘성미산공동체’는 배수지를 위해 산 정상의 나무를 잘라내려 할 때 쏟아져나와 나무를 끌어안았고, 인도 아낙들은 기계톱을 윙윙거리며 다가오는 벌목꾼에게 필사적으로 맞서 나무를 끌어안는 ‘칩코운동’을 전개했다. 나무를 둘러싼 환경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눈물겨웠다.
힘에 부치는 환경운동
우리나라 환경단체는 역사가 아직 부족해 그런가? 거들먹거리는 언론에서 외면해서 그런가? 시간과 몸을 쪼개며 행동해도 파급하는 효과가 기대보다 크지 않다. 그래서 그런가? 회원 수가 그린피스나 지구의벗, 하다못해 독일의 환경단체 분트에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는 개발 행위자에 저항하려면 힘에 부친다. 하는 수없이 다른 환경단체와 연대할 때가 많은데, 환경단체들은 활동 범위가 조금 다르고 나름 특징을 고수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이 굵직한 개발에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다면, 녹색연합은 생태계 보전 운동에 민감하다. 요사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에 관심을 몰두하는 환경단체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활동 범위를 생태계 보전에 집중하는 단체도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역의 작은 생태 공간을 보전하려 애쓰는 생태보전시민모임은 주택이나 골프장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는 습지와 그 습지에 서식하는 생물종의 보전에 애쓴다. 또한, 강서습지생태공원과 고덕수변생태공원에서 학생과 성인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에 앞장선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은평구에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던 때는 지역에 흩어진 습지에 다수 분포하던 양서류의 보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막대한 이권이 걸린 개발에서 생물종의 서식지는 언제나 무시된다. 생태보전시민모임의 눈물겨운 행동으로 건설회사는 은평구 아파트단지 개발 예정지의 금개구리나 맹꽁이 같은 보호대상종을 대체 서식지로 옮길 수 있었다. 다행일까? 활동가들은 한 마리라도 더 옮기려 애썼지만, 알량한 대체서식지에서 제대로 보전되는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니터링 시간과 예산의 제약이 따르기 때문인데, 그건 수도권만의 사정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환경단체의 연대로 모자라 종교단체도 힘을 모은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은 실패했을까? 2006년 4월 마지막 물막이 공사로 해수 유통이 막히는 장면을 바라보며 억장이 무너진 환경단체는 이후에 할 일이 사라진 걸까? 새만금청이 신설되며 정부와 전라북도 당국에서 개발을 서두르지만, 1억 평이 넘는 새만금 일원은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비행장과 태양광발전단지 이외에 구체화한 계획이 없고, 그 계획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33km가 넘는 외곽 제방의 안쪽 드넓은 새만금 간척지는 해수면보다 오히려 낮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펼칠 환경단체의 일은 아주 중요하다. 상식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걱정하듯, 해수면이 상승하고 한층 강력해진 태풍이 해일까지 몰고 온다면, 현란한 계획처럼 개발될 간척지는 어떻게 되겠는가? 개발을 거의 마친 인천공항과 송도신도시 역시 얼마 전까지 갯벌이었다. 해수면보다 높게 매립했어도 기후변화에 이은 해수면 상승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부산 해운대 인근의 마린시티는 2015년 10월 내습한 태풍 차바로 아파트 마당에 물고기가 퍼덕거렸는데, 송도신도시와 인천공항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미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내습한 2005년 8월, 제방을 넘은 바닷물은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에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안겼다. 새만금도 안전할 수 없다. 대형 보로 4대강이 거대한 계단식 호수로 버림받을 때, 전국의 환경단체는 연대했고 행동했다. 그런데도 대형 보가 강물을 흉물스럽게 틀어막았지만, 환경단체의 일은 분명히 남았다. 일에 치어 여력이 없더라도 준비는 해야 한다. 들고나는 바닷물을 차단하는 조력발전소를 반대하느라 강화와 가로림만에서 애를 썼고, 덕분에 그 계획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끝난 게 아니다. 언제 올라올지 모른다. 후손에게 수려한 경관과 다양한 생태계를 보전해 물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872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 미국 옐로스톤에 지정되고, 1967년 지리산국립공원이 우리나라 최초로 지정되었다. 대통령이 지방에 선물처럼 국립공원을 지정한 우리나라는 초기에 유원지처럼 난삽하게 개발되었다. 국립공원이 오염되는 현상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1993년 발족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은 지금도 자연경관과 생태자원을 지켜내고자 활동하지만, 시민 대부분은 그 단체를 모른다. 낙동강과 금강, 태화강과 안성천 주변 도시에서 활동하는 환경단체들은 지역의 생태계와 환경을 보전하려 애쓰지만,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다. 국립공원의 위축을 막고 댐 건설과 초음속비행기 개발까지 저지한 미국의 시에라클럽은 회원이 70만을 헤아린다, 그러므로 강력하다. 우리 생태계 보전을 위한 환경운동은 갈 길이 멀다. 한때 열성적으로 움직였지만, 현재 시들해진 환경운동이 있다. 생명안전과 윤리를 위한 환경운동이다. GMO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수입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일부 농민단체를 제외하면 환경단체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아주 미약하다. 배아줄기세포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환경단체는 요즘 찾기 어렵다. 생명안전과 윤리에 문제가 사라진 건 분명히 아니다. 이권을 노리는 대기업이 끼어들면서 오히려 심각해졌다. GMO 위험성을 극복할 것처럼 등장한 유전자가위 기술은 환경단체가 외면할 사항이 아니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막대한 자금으로 눈독 들이는 ‘바이오 헬스캐어’는 생태계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는데, 관심 보이는 환경단체는 어디 있는가?
환경단체의 과제
‘아셈 2000 민간포럼’에 참여한 독일 그린피스 대원은 GMO 농산물로 가공한 식품은 유럽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확신했는데, 우리는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서 아무리 외쳐도 우리나라에 둥지를 친 GMO 관련 거대자본은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회원 수백만을 헤아리는 유럽과 미국 환경단체의 목소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 주부들도 많이 사는 미국산 거버 유아식에 GMO 옥수수가 포함된 적 있었나 보다. 회원 100만인 미국 그린피스의 질문을 받은 거버는 애초에는 사실을 부정했지만, 성분 조사에 돌입하겠다는 그린피스에 굴복했다고 한다. 출하된 제품을 회수해 폐기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지만,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매출이 증가하자 경쟁회사인 하인즈도 GMO 옥수수를 넣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수입하는 유아식에 GMO 옥수수가 포함되었을까? 우리 환경단체는 알지 못한다. 성분 조사에 나설 엄두를 낼 수 없다. 지부를 개설한 한국 그린피스의 회원 수는 현재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의 최대 환경단체 회원보다 많지 않을까? 야생동물과 환경보호를 목표로 행동하는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회원 수는 세계적으로 500만이다. 2014년 출범한 한국본부 회원이 내는 회비 총액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모든 환경단체 회비의 총액보다 작을까? 자료에 접근하지 못해 알지 못하지만, 단시일에 우리를 넘어섰을지 모른다. 친절하고 성실할 뿐 아니라 감동적으로 회원을 모집하는 그들의 자세 때문만이 아니다. 이름값에 반응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시민들의 호응도 작지 않다. 유명인들이 거금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미담으로 보도되곤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단체에 대한 경외심이나 부채의식이 그렇게 추동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해외 굴지의 환경단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굳이 파악하지 않아도 선뜻 회원으로 가입하는 시민들이 우리나라에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단한 환경단체의 회원이 되었다는 만족감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건 아니다. 벌써 30년 가까이, 기진맥진하며 행동한 우리 환경단체에 냉담해하는 이유를 먼저 반성적으로 살펴야 한다. 지지하는 정당에 당원이 되어 소정의 당비를 내는 시민이 절대다수인 사회라면, 당선과 권력 유지를 위해 허접한 인물을 의원 후보로 내세우는 정당은 힘을 잃는다. 마찬가지다. 자신과 아이들, 이웃과 생태계의 안전과 행복을 생각해 환경단체 가입하는 걸 당연시하는 사회라면, 기업과 정부는 개발에 앞서 시민 의견을 먼저 물을 것이다. 우리 환경단체의 과제는 무엇일까? 살리기라는 허울로 4대강에 대형 보를 세우려던 정권은 ‘친환경’을 참칭했고, 수자원을 연구하는 대다수 전문학자는 침묵하거나 일부는 정부에 아부하는 논리를 구상했다. 환경단체와 행동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가 없지 않았지만, 그들은 연구비가 몰수되거나 학회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황우석 전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연구 주도권을 행사할 때, 생명공학이 수상하다고 말한 학자는 전공을 국가 연구비가 거의 없는 생명윤리로 바꿔야 했다. 조상이 물려준 유전자마저 사유화되어야 할까? 질 좋은 유전자로 교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유전자가위 기술은 장차 생태계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까? 보건의료보다 영리로 이어질 원격진료와 바이오 헬스캐어는 부자의 몸 관리보다 골방에 밀집 거주하는 외국 노동자의 코로나19 감염에 민감해할까? 자본과 헬스캐어의 긴밀한 관계를 묻는다면 누가 명쾌하게 답해줄 수 있을까? 대학이나 연구소, 또는 정부나 기업에 소속된 전문가가 솔직하게 이야기할 거라 믿기 어렵지만, 환경단체에서 연구시설을 갖추고 조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편향된 연구비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 연구기관에 힘이 있다면 정의로운 의견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유럽과 미국의 그린피스만이 아니라 규모가 있는 소비자단체도 자체 연구기관이 있고, 객관적인 사실을 증명할 능력이 있다. 회원들의 회비가 뒷받침되기 때문인데, 우리는 요원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환경단체의 절박하고 성실한 행동이 시민에게 감동을 준다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다. 시민과 더불어 가려는 환경단체의 행동에 재미까지 느낀다면 빠져나가는 회원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 출범 한 세대가 지난 우리나라 환경단체는 맹아기에서 벗어났다. 코로나19가 탐욕스러운 개발이 빚은 생태계 파괴를 거세게 경고하는 이때, 환경단체의 헌신은 더욱 빛날 수 있다. 식량과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며 물려받은 자연생태계를 거의 잃은 우리는 시방 절박하다. 비록 늦었더라도 위기를 기회로 여기고 구두끈을 바싹 묶어야 한다. 무너진 생태계에서 무서워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속도와 경쟁을 미덕으로 여기는 개발주의를 엄하게 경고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경제정의와 사회정의에 조금씩 눈을 뜨지만, ‘포스트 코로나19’는 새로운 삶을 요구한다. 환경운동의 포스트 코로나19를 생각해본다. 생태계의 다양한 생물종의 생존을 있는 그대로 배려하는 ‘생태 정의’와 다음 세대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세대 정의’가 환경운동을 뒷받침하는 이념이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 시대에 한 그루의 사과나무라도 심어야 하므로. 비록 험난하더라도 반드시 가야만 할 길이다. ■
박병상 |
첫댓글 감사합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