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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리수 시낭송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꽃구름
* 보리수시낭송모임 30주년 기념사화집 『저마다 목소리는 강물 따라』*
서 문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는 일은 거의가 아쉽기만 하고 다시금 그 길이 되돌려진다면 그 어떤 자세와 감회로 펼쳐낼 것인가를 사념에 더듬어 헤아려지게 될 것이다.
30년이란 고비, 그래 한 해, 한 해가 고비였다고 생각이 모아진다. 「보리수시낭송모임」이 분명히 30주년을 맞이했다. 「보리수시낭송모임」연혁란에도 밝혀있지만 1982년 12월 첫째 토요일, 맨 처음 을지로 6가 ‘보리수’ 다방에서 창립 낭송회를 성황리에 가졌던 감격이 새롭기만 하고 이날껏 매월 첫째 토요일을 거르지 않고 또박또박 시낭송회를 열어온 것이 이제는 지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아로새겨졌다.
50여 평 크나큰 ‘보리수’ 다방이 시를 애호하는 청중으로 넘쳐나 다방입구 복도에 스피커까지 설치했던 시절이 아직토록 우리 모두의 가슴에 풍요롭기만 하다.
초창기 상임시인으론 황금찬 시인을 비롯하여 홍윤숙 시인, 고인이 된 정공채 시인, 박재삼 시인, 그리고 김지향 시인, 최은하 시인, 조병무 시인, 박현령 시인, 임성숙 시인, 이창년 시인, 김영석 시인, 이재호 시인들을 모셨고 회원 시인들은 그동안 백여 명이 넘게 활동하였다고 회상된다.
그때 초대시인으론 서정주 시인, 박두진 시인, 구상 시인, 김경린 시인, 조병화 시인, 김춘수 시인, 박태진 시인, 김남조 시인, 문덕수 시인, 박희진 시인, 성찬경 시인, 이생진 시인, 등 시단의 기라성들이었다.
우리 시낭송회는 상임시인들을 필두로 매월 번갈아가며 두 세분의 초대시인을 초청하여 낭낭한 육성의 시낭송과 함께 시작여담, 문학강좌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외부인들의 음악연주도 감상할 수 있었고 회원시인들의 시낭송과 시공부는 열성적인 시간이요 자리였다.
그리고 그간 시낭송회를 이끌어오는데 협찬처로는 서울시(문화과), 한국문예진흥원, 서울시문화재단과 유무명의 시인, 지인, 그리고 업체들이 있었음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협찬의 손길들은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그 이후로는 우리 시낭송모임에 참여하는 식구들의 자조적 협력으로 어렵사리 오늘에 이르러오고 있다.
시를 쓰고 아는 것은 우리들의 실생활과 정신에 아름다운 정서를 함양하는 것일 테고 시를 낭송한다는 것은 실제 생할에 그 아름다운 정서를 직접적으로 적용하려는 활력이 아닐까 싶다. 시의 세계를 한 켠으로 보면 유식한 변설로 보다도 어머니나 고향, 조국, 그리고 , 그리고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여백이요 노래가락같은 것이랄 수 있잖을까.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계기와 도전을 계획해야 한다. 그 많고도 많았던 난관을 이겨 내 온 것을 더 이상 침 튀겨 뱉으려 하고 싶지 않다. 그 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이 하늘 아래서의 찬연한 보람을 깊이 간직하고 휘날리며 내일의 무지개를 기대할 따름이다.
30년이란 세월을 함부로 말할 게 아니겠지만 우리는 또 다시 앞으로 30년을 바라보며 시의 등불을 밝히고 시의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하겠다. 튼실한 우리 안에서
자,「보리수시낭송모임」을 위한 축배의 잔이다.
우리, 자축의 잔을 힘차게 높이 들자꾸나.
2012년 12월 1일
상임시인 최 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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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님을 만나면
황 금 찬
내가 언젠가 어머님이 계시는
나라로 갈 것이다
그때 어머님이 나를 몰라보시면
어떻게 하나
그것이 큰 걱정이다 .
어머님은
지금의 나보다 젊어서 그 나라로
가신 것이다.
1940년
그때 어머님의 연세가 57세
나는 23
어머님이 가시고
나는 60년을 더 살아 있다.
지금 나는
가실 때 어머님보다
늙고 병들었다.
내가 어머님을 만나면
나를 몰라보시고
“어느 마을에서 살던 노인이지?”
그때 나는 할 말을 못 찾을 것 같다.
어머니! 전 어머니의 아들
금찬입니다
제 음성은 기억하시겠지요?
나는 뻐꾹새의 소리로 울어본다
뻐꾹, 뻐꾹
어머님의 둘째 아들
뻐꾹새
금찬입니다,
뻐꾹 뻐꾹
이제 아시겠습니까.
말씀하셔요
아시겠다고
아들은 늙어도 아들이고
젊었어도 어머니는 영원한
어머니다.
갈매기 우는구나
정 공 채
갈매기야 자꾸 울기냐
울음이사 나에게도 있는 것을.
배가 떠나도 울고
배가 닿아도 울고
어찌 된 것가
울음이사 울 때 우는 건데.
그래, 너는 恨 묻은
魂의 조각들.
가도 울고
와도 울고
울며 날며, 날며 우는
애 타는 바닷손수건.
갈매기야 자꾸 우는구나
울어라, 울어.
빈 배로 떠날 때 울었으면
滿船으로 닿을 때도 울 줄 알자구나.
갈매기
우리 갈매기야
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 재 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 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숲으로 가리
최 은 하
숲으로 가리.
우리 사랑이 자리 잡았을 때
얼싸안고 숲으로 가리
숲 속으로 걸어 걸어서
들어서서는 황혼을 맞으리.
돌아올 길을 잃으면 더 없이 좋으리.
나의 사랑이 꽃인갑다 싶을 때
그 불씨 욱여안고 숲으로 가리.
숲 속으로 들어가선 아침을 맞으리.
바다나 강이 보이는 숲에서 눈을 뜨리.
숲으로 가리.
우리네 사랑이 어두워지기 전에
눈 내리는 겨울 숲 숲으로 가리.
숲 속으로 깊이 들어
교회당의 종소릴 들으리.
내 맨처음과 마지막의 기도문을 떠올리리.
오늘 하루가 다 가기 전에
까마귀떼 우짖다 잠든 숲으로 가리.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나도 잠드리.
허구헌 꿈 속의 꿈으로 고이 잠드리.
숲으로 가리.
이 세상 태어나 배우고 익힌
사랑이란 말 허뜨려버리기 전에
이제 어둡게 우거진 숲으로 가리.
숲 속에서 숲과 함께 바람을 맞아
사라지는 바람이 되리
한줄기 바람소리로 남으리.
망향가(望鄕歌) ․ 2
황 송 문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솜씨에 장맛이 달아
시래기국 잘도 끓여 주던 어매여!
어매 청춘 품앗이로 보낸 들녘
가르마 트인 논두렁길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동짓날 팥죽을 먹다가
문득, 걸리던 어매여!
새알심이 걸려 넘기지를 못하고
그리버 그리버, 울엄매 그리버서
빌딩 달 하염없이 바라보며
속을음 꺼익 꺼익 울었지러!
앵두나무 우물가로 시집오던 울엄매!
새벽마다 맑은 물 길어 와서는
정화수 축수 축수 치성을 드리더니
동백기름에 윤기 자르르한 머리카락은
뜬구름 세월에 파뿌리 되었지러!
아들이 유학을 간다고
송편을 쪄 가지고 달려오던 어매여!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에 월매나 시장허꼬?
비행기 속에서 먹어라, 잉!
점드락 갈라먼 월매나 시장허꼬
아이구 내 새끼, 내 새끼야!
돌아서며 눈물을 감추시던 울 엄매!
어매 뜨거운 심정(心情)이 살아
모성(母性)의 피되어 가슴 절절 흐르네!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볼라요!
지나는 기러기도 부르던 어매처럼
나도 워리워리 목청껏 불러들여
인정(人情)이 넘치게 살아볼라요!
자운영(紫雲英) 환장할 노을 진 들녘을
미친 듯이 미친 듯이 밟아볼라요!
산 새
김 년 균
소나무숲이 우거진 내 고향 마을에는
산새들이 언제나 우리를 지켜본다.
겉으론는 바다같이 파랗게 보이지만
바람이 조금만 불어와도 우수수 떨어지는
솔잎처럼 언제 질는지 알 수 없는
작은 목숨의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서 등허리에 땀 흘리며
천년만년은 살아갈 듯이
욕심을 내던 사람들,
그러나 어느새 바람 탄 솔잎처럼 떨어질 때엔
여기에 이른 것이 한없이 아쉬워서
만장(輓章)을 지어 앞세우고
꺼이꺼이 우는 자식들 뒤따르게 하며
하늘에 알리듯이 펄럭이는 상여 속에
묻히어 가던 그 마을의 사람들,
산새는 언제나 그들을 보고 있다.
그들이 떠나서 어디로 가는지도
산새는 모두 알고 있다.
햇빛 물고기에 관한 명상
가 영 심
나는 햇빛이고 싶었다
햇빛의 신선한 고기떼가 되어
푸른 등지느러미를 푸득이면서
도시의 숲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싶었다
수맥을 차단 시킨 무수한 콘크리트 빌딩
목마름 속에서
비상구 안에 갇힌 삶을 탈출하고 싶었다
육교를 오르내리며
욕망의 높낮이를 숨 가쁘게 재어보다가
지하도 입구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의 가난과 비애를 스치며
시간의 빠른 물살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
금빛 비늘 아름답게 번쩍거려도
막막한 날엔 뽀골뽀골 아가미로 내뱉는 생의 물음표
생의 고통도 덧없음을 알아버릴 때
나는 적당히 해초처럼 무심한 세상을 끌어안는다
더 깊은 수심의 바다 속으로 심해어 되어
헤엄쳐가기 위하여.
사랑의 입상(立像)
- 바다의 설화 (1)
김 일 순
나는 언제나 바다였다.
넘실대다가 뒤척이는 몸짓으로
그대에게 가득한 하늘이다.
배를 띄워 그대와 만나는 꿈
나의 오늘은 갈증이다.
바다의 눈빛과 숨결
뜨거운 맞닿음으로 타오른다.
불꽃은 마구 번지어
나는 잿더미 속의 한 마리 새
새의 울음으로 밤을 맞는다.
다그쳐 불러쌓는 그대 이름 가운데
아침은 피어나고
한 숭어리 꽃과 별이 된다.
그 어떤 바람에도 출렁거릴 뿐
바다는 언제나 수평선을 잃지 않는다.
아득한 너머로부터
눈부신 태양을 품었다가
그대와의 한 하늘 자리에
오직 열광으로 떠올린다.
눈 내리는 날 저녁
유 소 향
투명한 겨울 날
하룻내 방안에 갇혔다가
창문 열고
초저녁 녘에
맨 먼저 떠오르는
별 하나 바라본다.
그냥 잠들 수 없는 이 허공
어디쯤에서
아득히 날아온 손길인가.
은은함만 뿌려 덮는가.
다행히도 익은 기억으로부터 되살아나는
고향 길 고샅에서
나는 누구라 만나더라도
유정의 깊이를 어우를 수 있으리.
시방, 어둠의 빛은
너로부터 묻어나고
내 겹겹의 허무는
하얀 침묵으로만 쌓인다.
눈 내리는 추억의 저녁
영산포* 구다리 위에 뜬
노오란 달 하나 품으면
겨울 아닌 겨울을 날 것 같다.
* 영산포 ; 나주시에 있는 지명, 내가 태어난 곳임.
오 늘
정 민 욱
음악이 흐르고
막이 오르면
분장을 마친
배우가
무대에 선다
다른 배역들이
어우러지는 무대에서
나는 햄릿이 되고
돈키호테가 된다
머무는 시간이
흐르는 속에
빈 가슴을 채우면
가슴에
허무가 쌓이고
막이 내린다.
상처는 꽃이야
유 회 숙
이맘때쯤
겨울을 건너온 가지마다
가끔씩 어깨를 들썩이는 눈물샘
어디만치 오는 봄을 기다린다
‘보리수시낭송 모임’
별밭 상임시인
정시인이 깁스를 하고 나타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른손
왼손에 팔걸이를 한 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순간 눈물샘이 따스해지는 것은
생각이 번지기 전에 앞뒤 돌아보라고
겨우내 접질리고 부러진 자리
가슴 높이 두 팔을 들어올리시라는 당부
순정한 계절
색소폰 소리로 꽃망울 톡톡 터지고
그러고 보면
여기 서있는 우리 한 그루 나무
3월에는 생각이 나 모두 안녕을 빈다.
꽃은 어떻게 피는가
박 정 희
고요한 거울,
마침내 동백나무에 불꽃이 튄다
남해의 푸른 바다가 빨갛게 물들어
떨며 열리는
작은 면경 세계
이른 잠에서 깨어난 아침 해
일제히 터트리는 함성
물결 따라 꿈틀대고
황홀한 절정으로
내 거울을 밝히는
동백․동백꽃
폴 세잔의 ‘나무와 집’을 그리는 동안
이 동 근
폴 세잔의
‘나무와 집’을 그리는 동안
선생님은 종려나무 잎으로 집을 짓고
응얼거리는 詩心을
굽어보고 계셨군요.
그래요
가뭄으로 거북이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은
논두렁을 손질할
農心을
처참히 뭉개고 있네요,
지는 해 저쪽으로
놀은 물들고
불콰한 꽃들의 응얼거림은
갈라진 거북이등처럼
이 마음도 붉게 물들어 가네요,
그래요, 선생님이 계시는 그곳에
종려나무 꽃은 피어
기쁨에 찬 詩心을 어루만지며
선생님은 종려나무 잎으로
집을 짓고 계셨군요.
폴 세잔의
‘나무와 집’을 그리는 동안
외포리 바다
민 미 옥
가까운 파도는
먼 수평선을 부른다.
멀고도 머나먼 길
햇살을 받는 바다는
땀으로 지칠 줄을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얼마나 많은 사연을 담고
소금을 실어 날랐을까.
푸른 힘줄과 근육으로 꼬여가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는 누구일까, 나를 바라본다.
망망한 바다는 머나먼 길
하늘은 넓은 잎사귀
바다도 넓은 잎사귀
해일로 숨을 몰아쉬며
아득히 손을 흔든다.
촛 불
김 복 희
불꽃은 가녀리게
흔들리고 떨며
어둠을 밝히려 하네.
삶은 유혹의 그네타기
이리저리 흔들리는 심지를
오직 지극한 신념으로
흔들리다 바로 서고
떨면서 털어내야 하는
무한한 정화의 시간
어두운 세상에
자유로운 밝음이 오길
간절히 몸 사르며 기원하네.
투명한 목소리
김 상 화
백담사 계곡의 물줄기처럼
그리운 목소리 들려오고 있었다.
걸음을 걷기조차도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합장하며 걷기도 하였다.
눈 속에 핀 매화처럼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부모의 혼신
고귀하고 소중한 마음
이제야
나도 그렇게 투명해지는
목소리를 기억하면서
본심의 물줄기로 흘러가리.
양수리
이 영 선
그대를 보내기 위해
다시 그 자리에
눈감고
힘겹게 밀어버린 추억 한 그루
물결 속에 파묻혀
멀리 강기슭 돌아나갈 때
굽이쳐 울먹이던 이른 진달래
강물은 생각에 잠겨
제 길로 흐르고
두물머리 긴 다리에 서서
오늘도 계속하는 이별 연습
한쪽,
조금 더 수척해진 산그늘에 적셔
가만히 흐느끼는 물살
<동 시>
바쁜 내 이름
박 겸
내가 태어나
이름이 붙여진 날
우리 가족 이름도 바뀌었어요.
우리 아빠 이름은 겸이 아빠
우리 엄마 이름은 겸이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도 겸이네래요.
닌텐도디에스, 유희왕카드,
내 갖고 노는 것은
모두모두 내 이름이 붙어있어요.
밥 먹을 때 숟가락 젓가락에도
내 이름이 먼저 붙지요.
친구들이 내 이름 부르면
대답하며 웃어주고
어른들이 내 이름 부르면
고개 숙여 인사해요.
날마다날마다 바쁜
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