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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頌(原文)
沆瀣潄①淸碧玉條 朝霞含윤閵②翠禽舌.
〔李白云 荊州玉泉寺 靑③溪諸山 有茗艸羅生 枝葉如碧玉 玉泉眞公常采飮〕
원문교정(原文校訂)
①수(潄):빨래할 수(潄)자는 다예관본에는 속자(俗字)인 수(潄)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본자(本字)인 수(漱)로 되어 있다. 원자인 수(漱)로 교정한다.
②윤(潤):윤(潤)자는 윤달 윤(閏)자와 같은 자이다. 다예관본에는 윤달 윤(閏:閏)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윤택할 윤(潤)자로 되어 있다. 이 윤(潤)자는 석오본의 윤택할 윤(潤)자가 맞는 글자이다.
③청(靑): 푸를 청(靑)자는 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푸를 청(靑)자로 되어있으나, 이백의 시문에는 맑을 청(淸)자로 되어있다. 맑을 청(淸)자로 바로 잡는다.
第二頌(校訂文)
沆瀣漱淸碧玉條 朝霞含潤翠禽舌
[李白云 荊州玉泉寺 淸溪諸山 有茗艸羅生 枝葉如碧玉 玉泉眞公常采飮]
제2송
항해수청벽옥조 조하함윤취금설.
[이백운 형주옥천사 청계제산 유명초라생 지엽여벽옥 옥천진공상채음]
제2송
푸른옥(碧玉)같은 줄기는 맑은 이슬(沆瀣)①로 깨끗하게 씻었고, 새의 혀(禽舌)같은 이파리는 아침 이슬(朝霞)②을 담뿍 머금었네. [이태백(李太白)③이 말하기를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가 있는 청계산(淸溪山) 일대에는 차나무가 가득 번성하는데, 그 가지와 잎은 푸른 옥(碧玉)과 같다. 옥천사의 스님 진공(眞公)이 항상 이 차를 따다가 마신다.]
주(註)
①항해(沆瀣):밤중에 내리는 맑은 이슬 기운이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원유(遠유)에 「여섯가지 기운(六氣)을 먹고 항해를 마시며 정양(正陽)으로 양치질하고 조하(朝霞)를 머금는다」라고 하였다. 주(注)에 능양자(陵陽子)의 명경(明경)에 말하기를「겨울에 항해를 먹는다」라고 하였다. 항해는 북방의 밤중에 내리는 기운이다. 한서(漢書)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상권에 보면「항해는 물 흐르는 소리」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항해는 북방의 하늘에서 야밤 중에 내리는 이슬 기운을 가리킨다.
②조하(朝霞):아침 일찍 맑은 햇볕을 받아서 구름이 아름답게 비 치는 것을 말함. 아침 안개, 싱그러운 아침 안개를 말함. 항해편 참조.
③이태백(李太白):이백(李白:701~~762년) 당나라 때 시인. 자는 태백(太白)이요,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면주(綿州) 창명(昌明)의 청련향(靑蓮鄕)으로 이사 하였다. 지금의 사천성 백양현 부근이다.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때 한림(翰林)에머물렀으나 곧 버리고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시를 지었다. 낙양(洛陽)에서 두보(杜甫)를 만나 깊이 서귀었다. 낭만파 최고의 시인이요, 시선(詩仙)으로 추앙을 받았다.
④옥천사(玉泉寺):호북성 당양현(當陽縣) 서쪽 옥천산(玉泉山)에 있는 절. 산 위는 푸른 숲이 울창하고 사계절 내내 푸르므로 취한산(翠寒山)이라고도 하며, 산에 유굴(乳窟)이 있고 옥천(玉泉)이 그 사이로 교차하여 흐른다. 수(隋)나라때 천태종의 3조인 지자대사(智者大師)가 와서 산 후로는 이름을 옥천이라하고 산 아래에 옥천사가 있다. 선종(禪宗)의 신수대사(神秀大師)도 일찌기 이 절에서 주석하셨다.
해설(解說)
제2송
제1구:차나무의 푸른 줄기는 푸른 옥(碧玉)같은데 맑은 이슬(沆瀣)로 깨끗하게 씻어 아름답고,
제2구:푸른 새의 혀(翠禽舌)같은 차나무 이파리는 아침 안개(朝霞)를 담뿍 머금어 싱그럽다.
원문주:이태백이 차시의 서문에서 말하기를 형주(荊州: 호북성 江陵縣)의 옥천사가 있는 청계산 일대에는 좋은 차나무가 가득히 번성했는데, 그 가지와 잎이 푸른옥(碧玉)과 같다. 옥천사의 주지스님인 진공대사는 항상 이 차만을 따서 애음하였다고 한다.
제2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나무의 줄기와 잎이 벽옥(碧玉)이나 취금설(翠禽舌) 같은데, 줄기는 맑은 이슬(沆瀣)로 몸을 씻었고, 이파리는 아침 안개(朝霞)로 덮여 있다는 말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송의 인용문헌은「분류보주이태백시권 (分類補註李太白詩卷)」 의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답족질승중부증옥천선인장다 병서(答族姪僧中孚贈玉泉仙人掌茶 幷序)의 싯구 중 서문이다.
「여문형주옥천사(余聞荊州玉泉寺) 근청계제산(近淸溪諸山)산동왕왕유유굴(山洞往往有乳窟) 굴중다옥천교류(窟中多玉泉交流) 기중유백편복대여아 (其中有白蝙蝠大如鴉) 안선경(按仙經) 편복일명선서(蝙蝠一名仙鼠) 천세지후체백여설(千歲之後體白如雪) 서즉도현개음유수이장생야(栖則倒懸蓋飮乳水而長生也)기수변처처유명초라생(其水邊處處有茗草羅生) 지엽여벽옥(枝葉如碧玉)유옥천진공(唯玉泉眞公) 상채이음지(常采而飮之) 연팔십여세(年八十餘歲) 안색여도화(顔色如桃花) 이차명청향골숙이어타자(而此茗淸香滑熟異於他者) 소이능환동진고부인수야(所以能還童振枯扶人壽也) 여유금릉견종승중부시여(余遊金陵見宗僧中孚示余) 다수십편권연중첩기장여수 호위선인장(茶數十片拳然重疊其狀如手 號爲仙人掌) 다개신출호옥천지산광(茶蓋新出乎玉泉之山曠) 고미적인지지견유겸증시요여(古未覿因持之見遺兼贈詩要余) 답지수유차작후(答之遂有此作後) 유고승대은지선인장다(有高僧大隱知仙人掌茶) 발호중부선자급청련거사이백야(發乎中孚禪子及靑蓮居士李白也) 상문옥천산(嘗聞玉泉山)
산동다유굴선서여백아(山洞多乳窟仙鼠如白鴉) 도현청계월명생차중석(倒懸淸溪月茗生此中石) 옥천유불헐근가려세방진채복윤기골(玉泉流不歇根柯麗芳津採服潤肌骨) 총노권녹엽지지상접(叢老卷綠葉枝枝相接) 연폭성선인장사박홍애견거(連曝成仙人掌似拍洪厓肩擧) 세미견지기명정수전(世未見之其名定誰傳) 종영내선백(宗英乃禪伯) 투증유가편(投贈有佳篇) 청경촉무염고참서자연(淸鏡燭無鹽顧慙西子姸) 조좌유여흥장음파제천(朝坐有餘興長吟播諸天).」
「집안 조카 중부선사가 보내 준 옥천 선인장차를 받고 답하다」라는 오언고시 서문 중에서 내용 몇 구절만 빼내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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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頌(原文)
天仙①人鬼俱愛重 知爾爲物誠奇絶 炎帝曾嘗載食經.
[炎帝食經云 茶茗久服 人②有力生③志]
원문교정(原文校訂)
①선(仙):신선 선(仙)자는 다예관본에는 선(仙)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선(僊)자로되어 있다. 선(僊)자는 선(仙)자의 고자(古字)이다.
②인(人):사람 인(人)자 앞에, 하여금 령(令)자가 들어가야 한다. 다경(茶經) 7지사(七之事)에 보면,「염제식경(炎帝食經) 다명구복(茶茗久服) 령인유력열지(令人有力悅志)」라고 되어 있다.
③황(怳):다예관본에는 황홀할 황(怳)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즐거울 열(悅)자로 되어 있는데, 열(悅)자가 맞는 글자이다. 다경에는 열(悅)자로 되어 있다.
第三頌(校訂文)
天仙人鬼俱愛重 知爾爲物誠奇絶 炎帝曾嘗載食經.
[炎帝食經云 茶茗久服 令人有力悅志]
제3송
천선인귀구애중 지이위물성기절 염제증상재식경.
[염제식경운 다명구복 령인유력열지]
제3송
천인(天人)이나 신선(神仙)이나 사람이나 귀신이나 모두가 다 애중(愛重)히 여기나니,
너의 타고난 성품 참으로 기절(奇絶)함을 알겠구나.
일찌기 염제(炎帝)①신농(神農)씨가 맛을 보고 식경(食經)②에 기록해 두었네.
[염제 신농씨의 식경에 이르기를 「차를 오래도록 마시면 사람이 힘이 생기고 즐거운 뜻을 얻는다」고 하였다]
주(註)
①염제(炎帝):삼황(三皇) 오제(五帝) 중의 한 사람으로서 옛날 고대 국가의 제왕이다. 백성을 교화하여 농업을 일으켰으므로 신농씨(神農氏)라고 하며, 또는 불(火)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여 화덕왕(火德王) 또는 염제(炎帝)라고도 한다. 처음에 열산(烈山)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열산씨(烈山氏)라고도 하며, 진(陳 : 하남성 진주부)에 도읍을 두었다가 나중에 곡부(曲阜: 산동성 곡부현)로 옮겼다. 성은 강(姜)씨이며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 같은 우상(牛相)을 한 모습이다. 백 가지 풀을 씹어 맛을 보아 약초를 가려내어 약을 만들었으며 이로서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니 의약의 신으로 숭배 받기도 했다. 이와같이 처음으로 방서(方書:의약서)를 저술하여 백성의 질병을 치료했고 시장을 세우고 화폐를 사용하였다. 삼황이란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씨를 말한다. 중국인들은 동이족(東夷族)인 이들의 역사를 전설로 취급하고 있다.
②식경(食經):신농씨의 식경은 전해지지 않고「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3권만 전한다. 약칭「본초」또는「본초경」이라고 하는데 한(漢)나라 초기에 지어진「신농본초」가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실려있다. 당 고종(高宗)때 이적(李勣) 등이 명을 받아 수찬하고 도홍경(陶弘景)이 주(注)를 달아「본초경」7권을 만들고 뒤에 소공(蘇恭)과 장손 무기(長孫 無忌) 등이 더 증보하고 주를 붙여 53권을 만들었다. 이것을「당본초(唐本草)」라고 하며 개원(開元) 년간에 진장기(陳藏器)가 또「본초습유(本草拾遺)」를 저술했다. 후에 명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저술한「본초강목(本草綱目)」이 유명하다.
해설(解說)
제3송
제1구:하늘나라 사람(天人)이나 신선(神仙)이나 사람이나 죽은 귀신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차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모두 차를 올린다.
제2구:차의 성품이 기이하고 신령스러워 모두가 좋아하게 됨을알겠다고 하였으며,
제3구:염제 신농씨가 일찌기 차를 먹어보고 그 신효함을 식경에다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원문주:염제 신농씨가 저술한 식경에 보면 차를 오래도록 마시면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운 기분과 힘을 얻는다고 하였다.
제3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의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덕스러워 하늘나라 사람이나 신선이나 귀신이나 사람이나 모두가 한결같이 차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염제 신농씨가 이를 증명하여 일찌기 그의 저술인 식경에 차의 효능을 기록하여 놓았다고 한다. 그 효능은 차를 오래도록 장복하면 힘이 솟고 즐거운 기분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3송의 인용문헌은 다경의 7지사(七之事)인데, 원문은 초의선사의 저술이고, 원문주는 다경의 구절을 인용하였다.
다경(茶經) 7지사(七之事)에 보면,「神農食經 茶茗久服 令人有力悅志」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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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頌(原文)
醍醐甘露舊傳名.
[王子尙詣雲①齋道人 于八公山 道人設茶茗 子尙 味之曰 此甘露也②. 羅大經瀹湯詩 松風檜雨到來初 急引銅甁離竹爐 待得聲聞俱寂後 一甌春雪勝醍醐]
원문교정(原文校訂)
①운(雲):운(雲)자는 담(曇)자로 고쳐야 한다. 다예관본에는 운(雲)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담(曇)자로 되어 있는데, 예장왕(豫章王) 자상(子尙)이 찾아간 사람은 담제도인(曇濟道人)이다.
②예장왕 자상(子尙):예장왕 자상에 대한 기록은 생략된 부분이 많다. 전문(全文)은 다경(茶經) 7지사(七之事)에 보면, 「송록(宋錄) 신안왕자란(新安王子鸞) 예장왕자상(豫章王子尙) 예담제도인어팔공산(詣曇濟道人於八公山) 도인설다명(道人設茶茗) 자상미지왈(子尙味之曰) 차감로야(此甘露也) 하언다명(何言茶茗)」이라고 했다.
第四頌(校訂文)
醍醐甘露舊傳名.
[宋錄 新安王子鸞 豫章王子尙 詣曇濟道人於八公山 道人設茶茗 子尙 味之曰 此甘露也 何言茶茗. 羅大經瀹湯詩 松風檜雨到來初 急引銅甁離竹爐 待得聲聞俱寂後 一甌春雪勝醍醐]
제4송
제호감로구전명.
[송록 신안왕자란 예장왕자상 예담제도인어팔공산 도인설다명 자상미지왈 차감로야 하언다명. 라대경약탕시 송풍회우도래초 급인동병이죽로 대득성문구적후 일구춘설승제호]
제4송
제호(醍醐)①나 감로(甘露)②는 옛부터 그 이름이 전해 오는구나. [송록(宋錄)③에 신안왕(新安王)인 자란(子鸞)④과 예장왕(豫章王)인 자상(子尙)⑤이 담제도인(曇濟道人)⑥을 팔공산(八公山)⑦으로 찾아갔다. 도인이 차를 대접하니, 자상(子尙)이 맛을 보고 ꡒ이것은 감로(甘露)이다, 어찌 차라고 하시오ꡓ라고 하였다. 라대경(羅大經)⑧의 약탕시(瀹湯詩)⑨에 「솔 바람소리(松風)⑩전나무에 빗방울 지는 소리(檜雨)⑪일어날 즈음에, 급히 탕관(銅甁)⑫을 죽로(竹爐)⑬에서 내려 놓았네. 비 바람소리 고요하게 그친 뒤에 끓인 한 잔의 춘설차(春雪茶)는 제호(醍醐)보다도 좋구나」라고 했다.]
주(註)
①제호(醍醐):우유(牛乳)의 정액(精液)이다. 열반경(涅槃經) 성행품(聖行品 第七之四)에 보면, 소(牛)에서 우유가 나오고 우유에서 낙(酪)이 나오고, 낙에서 생소(生穌)가 나오고, 생소에서 숙소(熟穌)가 나오고, 숙소에서 제호가 나온다. 제호가 최상이다. 지금의 치즈와 같은 것이다.
②감로(甘露):달콤한 이슬로 천하가 태평하면 하늘이 내려주는 상서로운 이슬기운이다. 미로(美露), 천주(天酒), 고로(膏露), 서로(瑞露), 신장(神漿), 달즉고빈(達卽古賓)이라고도 한다. 이슬이 어리는 모양이 기름같고 맛은 엿과 같다. 그래서 감고(甘膏), 주장(酒漿)이라고도 하며,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내리는 상서로운 것으로, 감로가 내리면 죄수를 사면․석방하고 잔치를 베풀어 하늘의 은택에 감사하곤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종, 세조때에 감로가 여러 번 내린 적이 있었다. 세조는 감로가 내리자 죄수를 사면하고 백관의 진하를 받았다.
③송록(宋錄):수(隋)의 경적지(經籍志)에 실려 있는 송략(宋略)과 송춘추(宋春秋)를 가리켜 송록이라고 한다. 신안왕 자란과 예장왕 자상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④신안왕(新安王):신안왕 자란(子鸞)은 남조(南朝) 송(宋)의 효무제(孝武帝: 재위 453~464년)의 여덟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은귀비(殷貴妃)이며 자란이 어려서 부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자 이를 미워하여 형(廢帝 : 劉子業)이 등극하자 자란에게 죽음을 내렸다. 나이 겨우 10세였다. 후에 형이 폐위되고 숙부 명제(明帝: 재위 465~472년)가 즉위하자 신안왕(新安王)에 봉해졌다. 기념이 되게 신안사(新安寺)를 세우고 고승 법요(法瑤), 도헌(道獻), 담빈(曇斌) 등을 초대하고 담제도인(曇濟道人)을 사주(寺主)로 모셨다.
⑤예장왕(豫章王):예장왕 자상(子尙)의 자는 효사(孝師)이며 효무제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부왕 효무제의 총애를 받다가 자란(신안왕)이 태어나자 부왕의 사랑이 자란에게로 쏠리고 말았다. 폐제가 즉위하자 양주(楊州) 남서주(南徐州)의 도독(都督)이 되었다가 명제(明帝)가 승하하자 후폐제(後廢帝)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나이가 겨우 16세였다.
⑥담제도인(曇濟道人):하동(何東: 山西人) 사람으로서 13세에 출가하여 석승도(釋僧導)의 제자가 되어, 수양(壽陽:지금의 안휘성 봉대현)의 팔공산(八公山) 동산사(東山寺)에서 수도하였다. 열반경(涅槃經)과 성실론(成實論)을 읽고 심취했으며, 후에 효무제 대명 2년(大明二年: 458년)에 스승과 함께 경도(京都)의 장엄사(莊嚴寺)로 옮겨 살았다. 담빈(曇斌)과 동시대 사람으로서 차의 달인이다.
⑦팔공산(八公山):일명 북산(北山)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안휘성 수현(壽縣) 북쪽에 있다. 해발 160미터의 작은 산이지만 남북조시대에는 국경으로 군사 요충지였으며 한(漢)나라 회남왕(淮南王:劉安)의 묘(廟)가 있다. 회남왕은 회남자(淮南子: 신선술책)의 저자로서 신선술(神仙術)을 좋아하여 항상 여덟 명의 신선들을 초청하여 연단술(鍊丹術)을 닦았다. 팔공(八公)이란 산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⑧라대경(羅大經):남송(南宋) 때의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는 경륜(景綸)이다. 과거에 입제(入第)하여 용주(容州)의 법조연(法曹椽)이 되었다. 저서로 학림옥로(鶴林玉露)가 있다.
⑨약탕시(瀹湯詩):약탕시라는 시제(詩題)는 초의선사께서 편의상 임의로 붙인 제목이다. 학림옥로 권3에 수록된 싯구중 일부만을 골라 인용한 것이다. 원 시제는「인보이일시운(因補以一詩云)」이다. 친구 이남금의 시를 보완했다.
⑩송풍(松風):탕관에서 물 끓는 소리가 마치 소나무에 바람 스치는 소리처럼 쏴하고 나는 것을 말한 것이다.
⑪회우(檜雨):물 끓는 소리가 마치 전나무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같이 나는 것을 말한 것이다.
⑫탕관(銅甁):구리병은 찻물을 끓이는 탕관을 말한다. 차를 우리는 다관(茶罐)이 아니라 물을 끓이는 그릇이다.
⑬죽로(竹爐):찻물을 끓이는 화로를 말하는데, 화로의 겉을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 싸서 만들었다. 대나무를 쪼개서 화로의 겉을 감쌌기 때문에 만져도 뜨겁지가 않다.
해설(解設)
제4송
제1구:맛 좋기로 소문난 제호(醍醐)나 달콤한 이슬 감로(甘露)는 천하에 이름난 기이한 물건이다.
원문주:남조송(南朝宋)의 역사를 기록한 송록(宋錄)에 보면, 신안왕 자란과 예장왕 자상 형제가 함께 팔공산에 사는 담제도인을 찾아갔더니, 담제도인이 차를 끓여 대접했다. 차를 마셔 본 자상이 말하기를 「이것은 차가 아니라 감로입니다. 어찌 차라고 합니까」라고 말했다. 차가 감로처럼 달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라대경이 읊은 싯구에 춘설차가 제호보다 좋다고 하였다. 탕관(구리병:銅甁)을 죽로(竹爐: 대화로)에 올려 놓고 솔바람 소리가 나도록 물을 끓여 울궈낸 한 잔의 춘설차는 제호와도 비길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4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서 맛있기로 이름난 제호나 감로보다도 더 좋고 달콤하다고 하였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4송의 원문은 창작된 송구이고 그 뜻을 보충한 원문주는 다경과 학림옥로에서 인용하였는데, 다경 7지사(七之事)에 보면,
「송록(宋錄) 신안왕자란(新安王子鸞) 예장왕자상(豫章王子尙) 예담제도인어팔공산(詣曇濟道人於八公山) 도인설다명(道人設茶茗) 자상미지왈(子尙味之曰) 차감로야(此甘露也) 하언다명(何言茶茗)」이라고 되어 있고, 학림옥로 권 3에 보면 「여동년이남금운(余同年李南金云) 다경이어목용천연주위자수지절(茶經以魚目湧泉連珠爲煮水之節)․․․ 인보이일시운(因補以一詩云) 송풍회우도래초(松風檜雨到來初) 급인동병이죽로(急引銅甁離竹爐) 대득성문구적후(待得聲聞俱寂後) 일구춘설승제호(一甌春雪勝醍醐)」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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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頌(原文)
해①酲少眠證周聖.
[爾雅檟苦茶 廣雅荊巴間 采葉其飮醒酒 令人少眠]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해( ) : 다예관본에는 해( )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해(解 ) 자로 되어 있다. 해( )자는 해(解)자의 속자(俗字)이다.
第五頌(校訂文)
解酲少眠證周聖.
[爾雅檟苦茶 廣雅荊巴間 采葉其飮醒酒 令人少眠]
제5송
해정소면증주성
[이아가고다 광아형파간 채엽기음성주 영인소면]
제5송
술을 깨워주고 잠을 적게 한다는 것은 주나라 성인(周聖)①이 증명했네.
[이아(爾雅)②에 가(檟)는 쓴 차(苦茶)라고 하였고, 광아(廣雅)③에는 형주(荊州)④와 파주(巴州)⑤에서 차잎을 채취해서 마시니 술을 깨워주고(醒酒),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少眠)⑥하더라고 하였다]
주(註)
①주성(周聖):주나라 성인, 즉 주공을 말한다. 성은 희(姬)요. 이름은 단(旦)이다. 주 무왕의 아우로, 형의 아들인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에 등극하자 주공이 섭정을 하였다. 관제(官制)를 정하고 예악제도(禮樂制度)를 창제하였으며 주나라의 문물을 완비하였다. 공자(孔子)는 꿈 속에서라도 주공을 보기를 간절히 바랬다.
②이아(爾雅):책 이름, 13경(十三經)의 하나로,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내용으로 보아서 한나라때 학자가 지은 것이 틀림 없다. 일설에는 주공이 지은 이아를 공자가 증보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爾)는 가깝다(近)는 뜻이고 아(雅)는 바르다(正)는 뜻으로, 가까이 많이 쓰이는 말을 바로 잡는다는 뜻에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천문지리의 이름, 음악기재의 이름, 초목조수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문자를 설명한 것인데 제자(諸子) 잡서(雜書) 중에서 인용한 것도 많으나 경서 특히 시경(詩經)에 관한 문자를 설명한 글이 많으므로 경서 중에 넣었다. 진(晉)나라의 곽박(郭璞)이 주(註)를 달고 송(宋)나라 형병(邢昺)의 소이아주소십일권(疏爾雅注疏十一卷)이 이것이다.
③광아(廣雅):책 이름. 삼국시대 위(魏)나라 장읍(張揖)이 찬술함. 장읍이 이아가 취하지 못한 삼창(三倉), 방언(方言), 설문(說文)과 한나라 학자들의 제경전주(諸經箋注)의 어휘를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듦. 이아를 널리 증보했다고 하여 광아라고 함. 상․중․하 3권으로 총1만8천1백5십자를 수록했다. 당나라 이후에 10권으로 나눔. 청나라 왕념손(王念孫)의 광아소증(廣雅疏證)이 있다.
④형주(荊州):주 이름. 옛 구주 중의 하나로서 형양(衡陽)을 형주라고 함. 한무제 때 13자사를 두었다. 현재의 호북․호남 두개 성과 하남․귀주․광동․광서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⑤파주(巴州):주 이름. 본래 한나라 파군(巴郡)의 탕거현(宕渠縣)이다. 북위 연창3년에 파주(巴州)로 설치했는데 수나라때 청화군(淸化郡), 당나라때 다시 파주로 고치고 명․청때는 보령부(保寧府)로 민국 2년에 파중현(巴中縣)으로 고쳐서 사천성(四川省)에 소속시켰다.
⑥소면(少眠):다경에는 불면(不眠)으로 다릉도경(茶陵圖經)에는 소면(少眠)으로 되어 있다. 초의선사는 다경이 인용한 다릉도경의 소면(少眠)을 인용하였다. 차를 마시면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덜 자게 한다는 것이다.
해설(解說)
제5송
제1구:차를 마시면 술을 깨게 하고 잠을 적게 한다고 했는데 이는 이미 주나라 성인 주공(周公)이 증명한 바이다.
원문주:이아라는 책에 보면, 「가(檟) 나무는 쓴차(苦茶)이다」라고 하였고 광아라는 책에 보면, 형주와 파주에서 나는 차잎을 채취해서 마시면 술을 깨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고르고 적게 한다고 하였다.
제5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를 마시면 술을 깨게 하는 효능과 잠을 고르고 적게 하는 효능이 있는데 특히 중국 형주와 파주에서 나는 차에 효과가 더 있더라고 하였다.
인용문헌(引用文獻)
다경의 7지사(七之事)에서 인용하였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周公爾雅 檟 苦茶 廣雅云 荊巴間 採葉作餠 葉老者餠成以米膏出之 欲煮茗飮 先炙令赤色 搗末置瓷器中 以湯澆覆之 用葱薑橘子芼之 其飮醒酒 令人不眠」
이 대목은 북송(北宋)의 태평어람(太平御覽) 권867 명(茗)조에도 실려 있는데, 현존하는 광아(廣雅)에는 이 기록이 실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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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六頌(原文)
脫粟伴菜聞齊嬰.
[晏子春秋 嬰相齊景公時 食脫粟①飯 灸三戈② 五卵③ 茗菜 ④而已]
원문교정(原文校訂)
①식탈속반(食脫粟飯):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다같이 식탈속반이라고 되어 있으나, 원문을 인용한 다경에는 식탈속지반(食脫粟之飯)이라고 되어 있다. 갈 지(之)자가 생략되어 있다. 갈 지(之)자는 첨가해도 되고 생략해도 무방하다. 초의선사는 이를 생략하였다.
②구삼과(灸三戈):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 다 같이 창 과(戈)자로 되어 있으나 다예관본에는 창 과(戈)자를 주살 익(弋)자로 바꿔 놓았다. 후세 사람이 고쳐 놓은 것이다. 창 과(戈)자로 쓰면 구운 고기 세꼬치(灸三戈)가 되고, 주살 익(弋)자로 쓰면 구운 세 마리 새고기(灸三弋)란 뜻이 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다경 원본에는 모두 창 과(戈)자로 되어 있다.
③오란(五卵):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알 란(卵)자에 한 점(․)이 빠진 글자( )로 되어 있다. 다경 원문 중 가장 오래된 송(宋 : 左圭) 백천학해본(百川學海本)에는 토끼 묘(卯)자로, 명(明 : 吳旦) 가정본(嘉靖本)에는「 」자로, 명(明 : 湯顯祖) 옥명당본(玉茗堂本)에는「 」자로, 청(淸 : 吳其濬) 식물명실도고장편본(植物名實圖考長編本)에는 (卯)자로, 민국(民國 : 張宗祥) 설부본(說郛本)에는 (卯)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고전서(四庫全書)에는 알 란(卵)자로 되어 있는데 알 란(卵)자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
④명채(茗菜):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명채(茗菜)의 나물 채(菜)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경 원본인 백천학해본이나, 가정간본이나, 옥명당본에는 쑥 래(萊)자로 되어 있고, 식물명실도고장편본이나 설부본이나 사고전서에는 나물 채(菜)로 되어 있다. 나물 채(菜)자를 취하면 차나물(茗菜)이라는 뜻이 되고 쑥 래(萊)자를 취하면 차(茗)와 쑥(萊)이라는 뜻이 된다. 여기에는 초의선사 원본에 있는 나물 채(菜)자를 쓰기로 한다.
第六頌(校訂文)
脫粟伴菜聞齊嬰.
[晏子春秋 嬰相齊景公時 食脫粟(之)飯 灸三戈(弋) 五卵 茗菜(萊)而已]
제6송
탈속반채문제영.
[안자춘추 영상제경공시 식탈속(지)반 구삼과(익) 오란 명채(래)이이]
제6송
제(齊)나라 안영(晏嬰)①은 껍질 벗긴 조밥과 차나물을 먹었다고 들었네.
[안자춘추(晏子春秋)②에 제나라의 경공(景公)③ 때에 재상을 지낸 안영이 껍질 벗긴 조밥과 구운 고기(새) 세 꼬치와 다섯 개의 알과 차 나물을 먹었다고 하였다]
주(註)
①안영(晏嬰):안영(BC?~BC500)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대부(大夫) 약(弱)의 아들. 자는 평중(平仲)이며 시호도 평중(平仲)이라고 하고, 현재 산동성 래(萊:高密縣 주변)지방에서 태어났다. 제나라의 영공(靈公:BC581~552)과, 장공(莊公:BC553~548)을 섬기다가 경공(景公 :BC547-490)때에 재상(宰相)이 되었다. 평상시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덧옷(狐裘) 한 벌을 30년이나 입었다고 한다. 그의 전기는 사기(史記 : 卷62 列傳)에 실려있다 한다.
②안자춘추(晏子春秋):책 이름, 제나라 때 안영이 편찬한 책으로 옛 이름은 춘추(春秋), 한서 예문지에서는 안자(晏子)라고 했고,사기(史記)나 수서(隋書)에서는 안자춘추라고 함. 내외편(內外篇) 합쳐서 전 8권인데 215장(章)으로 이루어졌다. 1972년에 산동성 임기현(臨沂縣) 은작산(銀雀山)의 서한묘(西漢墓)에서 출토한 안자(晏子) 목간(木簡) 일부가 있는데, 지금의 안자춘추의 장절(章節)과 똑 같다.
③경공(景公):제나라의 국왕으로 장공(莊公)의 뒤를 이었다. 장공의 배다른 동생으로서 중신 최저(崔杼)가 장공을 살해하고 저구(杵臼)를 옹립하니 이가 곧 경공이다. 경공(BC547~490)은 대단히 사치스럽고 용렬한 사람이었다. 안자는 이를 보필하여 검약함을 몸소 실천하였고, 간쟁(諫諍)을 많이 하였는데, 훗날 안자춘추에 이 간언들이 수록되었다.
해설(解說)
제6송
제1구:제나라 때 안영은 껍질 벗긴 조밥과 차나물을 먹었다고 들었다.
원문주:안자춘추라는 책을 보면 제나라 경공 때에 재상을 지낸 안자가 평상시 껍질 벗긴 조밥에 구운 고기 세 꼬치(구운 새고기 세 마리)와 알 다섯 개와 차나물을 먹었다고 한다.
제5송의 전체적인 뜻은 제나라 경공 때 재상 벼슬을 지낸 안자라는 이가 매일 조밥에 구운 (새)고기 세 꼬치와 알 다섯 개와 차나물을 먹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참 좋은 음식이다. 담백하고 칼로리가 많은 음식으로 식생활 개선이라는 차원에서도 좋은 식단이다. 차나물은 특히 밥맛을 돋구고 소화를 촉진시키며 머리를 맑게 해준다. 안자의 검소한 식생활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인용문헌(引用文獻)
다경의 7지사(七之事)에서 인용하였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晏子春秋 嬰相齊景公時 食脫粟之飯 灸三戈五卯(卵) 茗菜(萊)而已」
현존하는 다경은 5개본이 전하는데, 송(宋:左圭)의 백천학해본과, 명(明:吳旦) 가정본과, 명(明:湯顯祖) 옥명당본과, 청(淸:吳其濬) 식물명실도고장편본과 민국(民國:張宗祥) 설부본이 그것이다. 이 외로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실려 있다.
꠳ 동 다 송 7 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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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頌(原文)
虞洪薦餼①乞丹邱② 毛仙示구③引秦精
[神異記 餘姚④虞洪 入山采⑤茗 遇一道士 牽三靑牛 引洪至布瀑⑥山曰 予丹邱⑦子也 聞子 善具飮 常思惠見⑧ 山中有大茗 可⑨相給 祈子他日有甌餼⑩之餘 乞相遺也 因⑪奠祀後 入山常獲大茗⑫. 宣⑬城人秦精⑭入武昌山中採茗 遇一毛人 長丈餘 引精至山下 示以裘⑮茗而去 俄而復還 乃探懷中橘以遺精 精悕負茗而 ]
원문교정(原文校訂)
①회(餼):다예관본에는 먹일 회(餼)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희생 희(犧)자로 되어 있다. 인용문헌인 다경의 신이기(神異記)에는 희생 희(犧)자로 나와 있다. 먹일 희(餼)자를 희생 희(犧)자로 바로 잡는다.
②단구(丹邱):단구자(丹邱子)라는 신선․단구의 구(邱)자가 다경에는 언덕 구(丘)자로 나와 있다. 그러나 청식물명실도고장편본(淸植物名實圖考長編本) 다경에는 구(邱)자로 나와 있다. 두 가지 다 사용한다. 원본을 따라 구(丘)자로 바꾼다.
③구(구):갖옷 구(裘)자와 흡사한 글자로서 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 모두 구( )자로 나와 있다. 가장 오래된 다경 송(宋) 백천학해본에는 떨기나무 총(藂)자로 되어 있고, 명(明) 가정본이나 명(明) 옥명당본 다경에는 구( )자로 되어 있고, 청(淸) 식물명실도고장편본에는 떨기 총(叢)자로 되어 있고, 설부본 다경에는 떨기나무 총(藂) 자로 되어 있다. 초의선사께서는 명나라 때 다경본을 인용하셨던 것같다. 여기에서는 송나라 때 백천학해본을 따라 떨기나무 총(藂)자로 바로 잡는다.
④여요(餘姚):다경의 원문에는 여요인우홍(餘姚人虞洪)으로 되어 있다. 사람 인(人)자가 누락되어 있다.
⑤채명(采茗):채(采)자가 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캘 채(采)자로 되어 있고, 다경에는 딸 채(採)자로 되어 있다. 차잎은 캐는 것이 아니라 따는 것이기 때문에 원문대로 딸 채(採)자로 바로 잡는다.
⑥포폭산(布瀑山):다예관본에는 포폭산(布瀑山)으로 되어 있지만, 석오본에는 폭포산(瀑布山)으로 되어 있다. 다경에도 폭포산으로 되어 있다. 글자의 순서가 바뀌었다. 폭포산(瀑布山)으로 바로 잡는다.
⑦단구자(丹邱子):단구자의 구(邱)자를 언덕 구(丘)자로도 사용한다. 다경에는 언덕 구(丘)자로 나와 있다.
⑧상사혜견(常思惠見):다예관본에는 상사혜견(常思惠見)으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상사견혜(常思見惠)로 되어 있다. 은혜 혜(惠)자와 볼 견(見)자의 순서가 바뀌었다. 다경에는 상사견혜(常思見惠)로 되어 있다. 상사견혜로 바로 잡는다.
⑨가상급(可相給):다에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가상급(可相給)으로 되어 있지만 다경에는 가이상급(可以相給)으로 되어 있다. 써 이(以)자가 누락되어 있다. 이(以)자를 채워 넣는다.
⑩희(餼):주 ①과 같이 희생 희(犧)자로 바로 잡는다.
⑪인전사(因奠祀):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모두 인전사(因奠祀)로 되어 있지만 다경에는 인립전사(因立奠祀) 로 되어 있다. 설 립(立)자가 누락되어 있다.
⑫입산상획대명(入山常獲大茗):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모두 입산상획대명(入山常獲大茗)으로 되어 있지만, 다경에는 상령가인입산 획대명언(常令家人入山 獲大茗焉)이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