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심성 깨끗하다’ 생각에 닦을 게 없다 착각하면 망상 / 대원 스님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치고 들어보였다.) 아시겠습까?
구구는 팔십삼이요 육육은 삼십육이로다.(九九八十三 六六三十六)
백운은 천만리에 자유로이 오고가고(白雲千萬里 自由往來)
구월 국화는 서리 속에 향기를 떨치고,(九月菊花霜裏香)
가을 단풍은 붉은 색이 봄꽃을 능가함이로다.(紅葉赤色過春花)
김 씨 집에 가을 곡식을 수확하고 춤을 추며,(金家秋穀舞收穫)
이 씨 집 한 마당에는 풍악의 노래 소리가 흘러넘치도다.(李家一場風樂歌)
이 가운데 불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인과 범부와 시비유무가 종적이 없음이로다. 필경 어떠한 것입니까?
(주장자를 한 번 치고)
맨발로 얼음과 눈을 밟으니(跣足踏氷雪)
바햐흐로 찬 것이 뼈골에 사무침을 알았도다.(方知徹骨寒)
할!
시회대중은 이 도리를 아시겠습니까?
만약 알지 못했다면 산승이 또 한 번 이르겠습니다.
장부의 품성은 본래부터 천진해서 움직이고 그치는데 있어 일체처에 다 융합합니다.
모든 것에 융합하지만 절대 집착하고 머무르는 바가 없습니다.
마치 고기가 물에 있는 것 같아서 성품에 맡겨 올라오고 내려가고 뜨고 잠길 뿐입니다.
새가 허공에 걸림 없이 나는 것 같아서 의심할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아시겠습니까?
(주장자 한 번 치고)
한 기운은 말하지 아니해도 많은 모양을 머금고 있으니(一氣不言含有象)
만 가지 신령스러운 물건이 어느 곳에서 공평무사함을 버리겠는가(萬靈何處謝無私)
금일 대중께 다시 고인의 언구를 빌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 물었습니다.
“꿈 가운데 육바라밀을 설하니 깨어있을 때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수보리가 말했습니다. “이 도리는 깊고 깊어서 내가 능히 말하지 못함이라.
이 회중에 미륵대사가 있으니 네가 가서 물어라.”
사리불이 드디어 미륵대사에게 가서 묻자 미륵대사가 말했습니다.
“누가 미륵이며, 누구를 가리켜서 미륵이라 하겠는가.”
운봉열이라는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일렀습니다.
“당시 나에게 사리불이 물었던 것처럼 꿈 가운데 육바라밀을 설하니
깨어있을 때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하고 물었다면 이렇게(수보리였다면) 말하겠습니다.
할! 당시에 만약 저 일할을 했던들 제3에 떨어지고 제4에 떨어지는 것을 면할 것이로다.
또한 수보리가 ‘이 뜻이 깊고 깊어서 네가 가 물어라’ 했을 때
나 같으면 ‘과연’이라 할 것이다.
또한 미륵이 ‘누가 미륵이며 누구를 가리켜서 미륵이라 하겠는가’ 한 대목에 있어
나 같으면 ‘어디로 갔습니까?’하고 되물었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확실하게 이 문제를 판가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모필로 글을 씀에 손 머리 위에서 나타나고(毛筆書寫手頭現)
눈은 가로로 놓여있고 코는 바로 있으니 사람사람이 같음이로다.(眼橫鼻直人人同)
이 신령스런 구슬은 자나 깨나 여여하여 다르지 아니하며(此珠覺寐如不異)
하나의 둥근 공은 파도 위에서 놀음이로다.(一圓空毬波上遊)
할!
오늘이 결제날입니다. 우리 부처님이 말씀하신 요지는 ‘인과’(因果)입니다.
팔만대장경에서 인과를 떠나 한 말씀은 없습니다.
‘인’이란 근본 마음의 체, 즉 심성체(心性體)를 말하는 것으로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심성의 체를 밖으로 드러내는 순간 반연(攀緣)을 만나 천태만상으로 나타납니다.
천태만상으로 나툰 것이 ‘과’입니다.
‘본래심성이 깨끗하다’ 해서 그 심성에 대해 닦을 것도 없다 생각하면 착각이요 망상입니다.
본래심성의 자리가 깨끗한 줄 알았다면 생활 속에서 자유롭고 멋지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수행을 통해 본래심성의 자리를 명확히 알아 체득한 사람은
큰 열매를 맺어 만인에게 공양을 베풉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유자재하게 살지만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음은 물론이고
만인에게 허물을 잡히지 않아 존경받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 (因) ’을 심었기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과 (果) ’를 얻어 베푸니 무한대로 써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 씨앗을 갖고 있지만 싹 조차도 제대로 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견해로 잘못 알고 있으니 그 종자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 계실 때 제자들과 거닐 던 중
어느 강가에 이르러 고탑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제자가 “저 고탑은 헐고 무너져 가는데 왜 수리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까?” 하고 묻자
부처님께서 그 사연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인과 (因果) 가 있습니다.
범마달다왕이 지혜롭게 국정을 살폈으나 자식이 없자 신명을 다해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느 날 연못에 핀 연꽃 위에 한 아이가 앉아있었는데 몸에서 향기가 났습니다.
왕이 기뻐하며 안으려 하자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대왕께서 왕자를 얻기 위해 항상 정성 드리시는 것을 보았기에
왕의 원력에 따라 왕자가 되려 여기에 나타났습니다.”
왕이 정성스럽게 키우려 했으나 그 아이는 연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무상을 깨달아 열반에 들고 말았습니다.
왕은 슬퍼하며 아이를 화장한 다음 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했는데
그 탑이 바로 강가에 놓인 고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아이는 과거세 가라가손타 부처님이 출현하셨을 때
수많은 재보를 지닌 한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었습니다.
여색을 좋아했던 그 장자는 한 음녀를 만나면서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해 갔습니다.
더 이상 그 음녀에게 줄 돈 마저 없자 잠자리를 거절 당합니다.
장자의 간청이 계속되자
그 음녀는 “좋은 꽃을 사서 주면 하룻밤 다시 만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꽃 한 송이마저 살 돈이 없던 장자는 옛 부처님의 탑을 헐어
그 속에 있던 꽃을 훔쳐 음녀에게 주고는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룻밤 쾌락의 대가로 악창을 얻고 말았습니다.
온 몸에 악창이 생겨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했던 장자는
어느 날 우두전단향 가루를 몸에 바르면 나을 것이라는 의원의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장자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집을 팔아 얻은 돈으로 전단향을 샀습니다.
전단향을 창병에 바르려는 순간 장자는 잠시 자신을 되돌아 본 뒤
‘내가 지금 아픈 것은 창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라 생각하고는
전단향을 자신이 허물었던 그 탑 위에 올려놓고 서원했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저의 몸을 가엾이 여겨 악창을 제거해 주시옵소서.”
장자는 전단향을 피워 탑을 감싸게 하고 꽃을 올리며 진실로 참회했습니다.
그러자 창병이 나은 것은 물론이고 모공에서도 향기가 솟아났습니다.
그 장자는 이 공덕으로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고 수행해 벽지불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과는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결제에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완벽하지 못해서입니다.
내 본성이 깨끗한 줄 알지만 경계에 접하는 순간 흔들려 잘못된 인을 심고 맙니다.
악인에 따라 맺은 열매는 독일뿐이니 누구에게 공양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부처라 하는데 정말 부처인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1700공안 화두에 의지해 공부하면 그동안 갖고 있던 병통은 봄날 얼음 녹듯 다 없어지고
천진바탕의 본래면목을 찾아 무한히 쓸 수 있는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청허 휴정 스님의 오도송을 들어 보세요.
10년을 단정히 앉아 마음의 성을 굳게 지키니 (十年端坐擁心城)
깊은 숲의 새는 길들여져 놀라지도 않는구나. (慣得深林鳥不驚)
어젯밤 송담(松潭)에 비바람 사납더니 (昨夜松潭風雨惡)
고기는 한 뿔이 남이요 학은 세 번 울도다.(魚生一角鶴三聲)
(4구의 또 다른 해석.
고기는 연못 귀퉁이에 모여 있고 학(鶴)은 세 번 울며 날아가네. /
고기는 한 뿔이 남이요 학은 세 번 울며 날아가네.)
선정의 세계에서 둘이 아닌 하나임(不二)을 극명하게 보이며 터져 나온 일갈입니다.
놀라기 잘하는 새가 사람이 와도 놀라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여여부동(如如不動)한 경계를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의 바탕에서 한껏 비바람치듯 탁 터져 버리니(3구에서)
‘고기는 한 뿔이 남이요 학은 세 번 운다’는 사자후를 뿜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4구에 인과도 있고 청정한 본성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멋진 오도송을 지을 수 있습니다.
분심을 갖고 용기를 내어 보십시오.
오늘의 결제도 크나 큰 ‘인’을 심는 것이니 그만큼의 ‘과’의 열매를 얻을 것입니다.
본래 심성의 자리가
깨끗한 줄 알았다면
생활속에서 자유롭고
멋지게 쓸 수 있어야
1700공안 의지해 공부하면
병통은 얼음 녹듯 없어지고
천진바탕의 본래면목 찾아
무한히 쓸 수 있는 열매 얻어
이 법문은 2008년 11월 12일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에서
한암 대원 스님이 설한 동안거 결제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대원 스님은
194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57년 상주 남장사로 출가했다.
고암스님을 은사로 득도,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후 40여 년 간 해인사, 상원사, 동화사, 불국사 등 전국 선원을 찾아
효봉, 경봉, 향곡, 성철, 월산 스님 등 당대 선지식 문하에서 수행했다.
1986년 옛 제석사 터에 학림사(鶴林寺)를 세우고, 오등선원(五燈禪院)을 개설해
수행납자들을 제접하고 있으며 시민선원을 열어 재가불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출처 :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