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0:19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20 그 자손은 여전하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무릇 그를 압박하는 자는 내가 다 벌하리라
매년 4월 19일은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서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자유를 외친 날을 기념합니다. 과거에는 이를 ‘4·19 사건’이라 불렀으나, 이제는 ‘혁명’이라 칭합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개인의 통치가 아닌 국민에 의한 통치로 전환되는 국민의 존엄성을 회복한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존엄성 회복은 억압에서 자유를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번영을 향한 강력한 생명력을 얻는 과정입니다.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
하나님은 우리가 비천한 삶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비천함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의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원하십니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많은 국가와 많은 사람이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되어 자유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 백성들 또한 이러한 해방을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정치적 해방보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결박에서 영원히 해방하여, 성령의 은혜로 감사와 즐거움이 넘치는 ‘회복의 노래’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렘 30:19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나오리라’ ax;y: (3318 야차 CW.VQAZMS ax;y:w]) 나가다. 진행하다. 떠오르다.
우리의 믿음은 감사와 즐거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신앙고백입니다. 본문의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의 뜻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특별히 구별된 우리를 향한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실 것을 확신하기에, 이에 대한 감사와 즐거움의 표현입니다. 이는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진정한 예배를 통해 믿음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상황이 좋아졌기에 입으로 흥얼거리는 정도의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빛으로 떠오르게 하여, 하나님 자녀로서 자존감을 회복시키시는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즐거움의 소리는 환경에 지배받는 감정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빚어지는 영적 가치관의 확신입니다.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계속되는 중동의 전쟁으로 세계 평화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생명줄을 놓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듯합니다. 하지만 과거 70년대 중동의 ‘오일쇼크’로 전 세계가 신음할 때, 우리나라는 중동의 사막으로 달려가 도시를 건설하며 경제적 ‘번성’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의 역사를 주관하시어, 고난의 삶에서 벗어나 감사와 즐거움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번영의 통로로 바꾸셨습니다. 그 역사를 기억하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렘 30:19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번성케’ hb;r; (7235 라바 CW.VHAXCS !~ytiBir]hiw])
많게 하다. 위대하게 만들다. 풍성하게 하다.
중동의 전쟁은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이같은 시기를 ‘야곱의 환난의 때’라고 말합니다. 중동의 전쟁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여, 모두가 고초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 환난에 매몰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를 영적 번성의 기회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번성’이란 정체된 상태를 깨뜨리고 지금보다 더 풍성해지는 생명력입니다. 번성하는 자는 결코 ‘쇠잔’하지 않습니다. 쇠잔은 존재가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냉혹한 현실이 우리의 풍성함을 갉아먹으려 할지라도, 이 위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전쟁은 땅의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지만, 우리의 간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더욱 위대하고 풍성한 존재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렘 30:7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우리는 환경에 휘둘리며 슬퍼하기만 하는 비천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강력한 은혜로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십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수많은 전쟁의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하나님께 돌아와 영적 회복을 이루었고, 그 결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약속과 성령의 동행하심이 이룬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우리는 하나님께 분명한 정체성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지만,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고한 의식으로 십자가의 길을 당당히 걸으셨고, 죽음을 이긴 부활의 승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비천함의 자리를 영화로움의 자리로 바꾸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렘 30:19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영화롭게’ db'K; (3513 카바드 CW.VHAXCP !yTid]B'k]hiw])
영광을 돌리다. 돋보이게 하다. 풍부하게 하다.
세상은 재산과 직업, 외모 같은 겉모습으로 자신을 돋보이려 합니다. 때로는 이런 것들이 풍족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실체는 눈에 보이는 환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풍요인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타인의 시선에 갇혀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돋보이도록 빛나게 하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우리는 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복은 자신의 수고나 노력의 결실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의 고백에서 비롯되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비천’하다는 것은 작아지고 사소해지며 무시당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비천하게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화롭게 하시겠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가벼운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단단히 붙잡아 주시는 영화로운 존재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우리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가벼운 삶이 아니라,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고 흔들림 없이 형통한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자신의 삶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화로운 존재입니다. 입술의 감사와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믿음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