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부부관계,
(결혼인듯 결혼아닌 결혼같은)
글,편집: 묵은지
나이든 사람들이 시대(時代)의 변화(變化)를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시중에 떠도는 시사성(時事性) 짙은 유행어(流行語)를 접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때 부터 젊은 세대들 사이에 '깜놀'이라든지 '먹방'이나 '지못미' 등과 같은 줄임말이 낯설게 유행하더니 지금은 모두가 그렇게 하지않으면 자칫 왕따를 당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세대가 어떻고 누가 어떻든지간에 묵은지에게는 일단 알아듣고 소통(疏通)이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ㅠㅠㅠ 그런데 최근에 줄임말이 아닌 새로운 용어로 묵은지를 실감(實感)나게 느낌을 준 낱말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졸혼(卒婚)'이란 신조어(新造語)인데, 이 말은 이웃나라인 일본에서 여류작가(女流作家)인 '스기야마 유미코'(사진)라는 사람이 지난 2004년에 발간(發刊)한 '졸혼을 권함'이란 책자(冊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졸혼이란 말을 거부감(拒否感)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데 묵은지도 우리 또래에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주 의미(意味)있는 말이 아닐까 싶어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의 '황혼이혼(黃昏離婚)'이란 말이 귀에 익숙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는 황혼이혼의 추세(趨勢)는 사실 우리에게도 사회문제(社會問題)로 심각(深刻)하게 다가서고 있는 것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本格的)으로 대두(擡頭)되었던 황혼이혼의 현상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그 과정을 짚어보아 묵은지의 시각(視覺)으로는 그동안 우리사회의 '가정(家庭)'이라는 울타리에서 인고(忍苦)의 미덕(美德)이란 허울을 뒤집어 씌우고 억눌려 살게했던 두터운 보수(保守)의 경직성(硬直性)에서 과감하게 탈피(脫皮)하려는 진보(進步)된 또다른 현상으로 비쳐져 보입니다. 그동안 모진 삶의 여정(旅程)에서도 오로지 가정만은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일방적인 희생(犧牲)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참을성의 강요(强要)는 자기 자신의 남은 인생을 위해 행복하게 살고자하는 그마저의 바램을 가로막고 억제(抑制)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과감히 이를 거부(拒否)하고 자신을 위한 삶을 추구(追求)하려는 사고(思考)의 전환(轉換)이 놀라울 정도로 급격(急激)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현상은 너나없이 넘쳐나는 정보(情報)의 세상을 가까이하며 살다보니 자신의 보다 넓어진 시야(視野)로 삶을 뒤돌아 보고 비교(比較)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스스로를 자각(自覺)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期待感)과 함께 자신감(自信感)도 갖게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랜 결혼생활을 통해 갖은 고생(苦生)과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으면서 자기들 스스로 세상으로 나갈수 있도록 성장(成長)시킨 자식들을 바라볼 때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대견함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회한(悔恨)과 함께 뒤따르는 어떤 못이룬 아쉬움들이 앞선 것도 부정(否定)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현상(現象)은 남편의 입장이든 아내의 입장이든 다를바가 없다고 보여집니다만 얼마전 칠순을 넘긴 연기인(演技人)인 '백일섭'씨가 방송 토크쇼에 출연(出演)해서 뜻밖의 졸혼에 관한 발언(發言)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졸혼이란 용어 자체는 아직까지 생소(生疏)한 말이었는데 백일섭씨가 졸혼을 선택한 자신의 진지한 얘기를 들려주어 황혼이혼을 결심했던 사람들이나 그밖의 많은 관심있는 시청자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게 하였습니다. "내 자신을 위한 진정한 삶을 찾는다면서 굳이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여태 살아왔던 사이를 극한적인 이혼까지 몰고 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보다 신중한 생각을 되새기게 하였던 내용이었습니다.
졸혼이란 말그대로 결혼을 졸업(卒業)한다는 말로 결혼인듯 결혼아닌 결혼같은 상태로 부부(夫婦)가 이혼하지 않고 서로 혼인(婚姻)의 굴레에 구애(拘碍)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영위(營爲)하며 산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따라서 오래도록 살아온 부부가 서로 인연(因緣)을 끊고 살아야 하는 황혼이혼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졸혼은 혼인관계(婚姻關係)를 유지하면서 각자 서로의 삶을 존중(尊重)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方式)의 부부관계입니다. 일본의 경우, 수많은 중년의 부부들에게 자연스럽게 확산(擴散)되고 있으며 이미 그들만의 문화(文化)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부부로서 사랑을 나누며 자녀(子女)들의 교육(敎育)과 성장(成長)을 위해 살아왔지만 일련의 목적(目的)한바가 성취(成就)된 뒤 공허(空虛)하게 사느니 서로가 미뤄두었던 자신의 일이나 취미생활(趣味生活)에 전념(專念)하며 뜻있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서(情緖)로는 서로 사랑을 해서 백년해로(百年偕老)를 한 부부가 자식을 낳아 고생(苦生)하면서 잘 키워놓고 이젠 서로 그동안의 나누지 못했던 사랑과 행복을 나누며 살면 되는거지 도대체 왜? 떨어져 살아야 하나? 라며 아직까지 우리의 관념(觀念)에선 이해(理解)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긴합니다. 하지만 사실 몰라서 그렇지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실질적(實質的)인 졸혼의 형식(形式)을 띠고 사는 경우도 많이볼 수 있습니다. 묵은지의 절친(切親)인 P씨는 몇년 전 직장에서 정년 퇴직후 인천에서 아직 현직(現職) 교장으로 재직중(在職中)인 부인을 두고 고향(故鄕)인 제천에 홀로 내려가 농가(農家)를 짓고 자연(自然)을 벗삼아 글을 쓰며 지내다 주말(週末)이면 올라와 가족과 지내는, 서로 선언(宣言)은 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졸혼의 삶을 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물론 당사자들은 절대 부인(否認)을 하겠지만...) 또 오산에 농장(農場)을 꾸미고 생활하면서 일주일 간격으로 집에 들르는 묵은지의 고교동창인 L씨 등은 표현(表現)은 하지 않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졸혼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위와 같은 자료(資料)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모(某) 결혼정보(結婚情報)서비스 업체(業體)에서 '졸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설문조사(設問調査) 결과 무려 미혼(未婚)남녀의 57%가 긍정적(肯定的)인 반응(反應)을 보인 것은 우리 사회가 가정과 부부의 개념(槪念)이 변화하고 있으며 그동안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자녀들 역시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 심적(心的) 부담감(負擔感)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아 왔는지를 실감(實感)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사회가 비교적 보수적이며 유교적(儒敎的) 사상이 배인 환경에서 이러한 부부의 새로운 또다른 모습을 어떤식으로 받아들이며 또 어떤 형태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아 갈른지는 모르겠으나 자식들을 모두 키워 내보내고 부모로서 할 일을 다한 황혼의 부부가 그동안 자녀를 키우느라 누리지 못한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인생의 후반전(後半戰)을 새롭게 출발하자는 건전(健全)하고 좋은 뜻의 졸혼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앞으로도 지속적(持續的)으로 확산(擴散)되지 않을까 묵은지는 조심스럽게 타진(打診)해 봅니다. 다만 좋은 것도 나쁘게 쓰이면 독(毒)이 되듯이 건전해야 할 졸혼 자체를 한갖 개인의 나쁜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못된 빙자(憑藉)로 그 어떤 좋지못한 선례(先例)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요즘은 흔히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실제로 평균수명(平均壽命)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으며 이렇게 기대수명(期待壽命)이 길어지다보니 황혼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행복을 찾으려는 욕구(慾求)는 그만큼 강렬해 졌습니다. 더불어 개인적인 욕구와 취향(趣向)이 다름으로하여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선택(選擇)한 것이 이유(理由)야 어떻든간에 이혼쪽으로 그 비중(比重)이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25년 사이 무려 14배 가까이 증가(增加)하였다니 앞으로 점점 백년해로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늘어나는 황혼이혼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환경에서 이혼이 주는 반사회적(反社會的) 이미지와 개인의 행복추구 간의 충돌(衝突)이 불가피(不可避)할 수 밖에 없었으며 우리사회에서 이혼이 남긴 문제는 생각보다 매우 심각했습니다. 자녀들과의 갈등(葛藤),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인식(認識) 등으로 이혼후 홀로되어 감당키 어려운 수많은 후유증(後遺症)이 따르게 되는데 이런 절박(切迫)한 상황에서 졸혼의 등장은 이혼의 상처없이 서로의 뜻과 가치를 살릴수있는 그야말로 우리사회에서도 맞춤형 부부관계로 한동안 자리매김을 할 것으로 내다 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은 황혼의 나이에 접어든 부부가 되어 서로의 버팀목으로 취미와 취향을 맞춰서 함께 즐기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두말할 필요없이 더 행복한 모습일 것입니다. 아무리 졸혼이 이혼보다는 나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던 부부가 말년(末年)에 서로 의지(依支)가 되지 못하고 떨어져 산다는 것은 고독사(孤獨死)의 원인이며 불필요한 경제적인 낭비(浪費)를 부르는 등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서로 힘이 되어 살아온 만큼 사실 그 어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속속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잘 알고 편하다는 이유로 어느틈엔가 서로를 무심히 놓아버리게 됩니다. 그동안 살면서 서로가 못다한 것이 있는만큼 이왕이면 같이 노력하여 마지막까지 서로의 끈을 놓치지말고 의지하고 인생의 벗이되어서 둘만의 밑그림을 그리며 알콩달콩 살아 간다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록 부부관계에 있어 최선을 다하지 못한 한없이 부족한 처지인 묵은지의 생각이지만 그런 삶이 그 어떤 누구보다도 부부로서 혹은 자기 자신으로서 가장 성공적(成功的)인 최선을 다한 삶과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