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5,44).
제5절 다섯째 계명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20,13).
“살인해서는 안 된다.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그러나 너희에게 말한다.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
판에 넘겨질 것이다.(마태5,21-22)
2258“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왜냐하면 그것은 그 생성 시초부터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 연결되며 또한 모든 생명의 목적이기도 한 창조주와 영원히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무죄한 인간의 목숨을 직접 해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Ⅰ.인간 생명의 존중
성경의 증언
2259성경은 형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이야기에서, 인류역사의 시초부터 원죄의 결과인 분노와 욕망이 인간 안에 내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하느님께서 형제 살해의
악랄함을 보고 말씀하셨듯이, 인간이 인간의 원수가 되었다.‘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창세4,10-11).
2260하느님과 인류가 맺은 계약은, 하느님의 선물인 인간생명과 인간의 살인적 폭력성을 잊지 않도록 짜여 있다.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 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창세9,5-6).
구약 성경은 항상 피를 생명의 신성한 표지로 여겼다.이러한 가르침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것이다.
2261성경은 다섯째 계명이 금지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탈출23,7).무죄한 사람을 일부러 살인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황금률과 창조주의 거룩하심을 중대하게 거스르는 것이다.이러한 살인을 금지하는 법은 예외 없이 유효하다.이 법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누구나 지켜야 한다.
2262주님께서 산상 설교에서 “살인해서는 안 된다”(마태5,21)는 계명을 상기시키시며, 여기에 분노와 증오와 복수하는 일까지 금지하신다.한 걸은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빰을 내밀 것과, 원수를 사랑할 것을 당신 제자들에게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셨으며,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고 말씀하셨다.
정당방위
2263개인이나 집단의 정당방위는 ,고의적인 살인죄가 성립되는 무죄한 사람의 살인을 금지하는 데 대한 예외가 아니다.‘자기 방어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하나는 자기생명의 보존이요, 다른 하나는 공격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
전자만이 의도적인 것이며, 후자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다.
2264자기 사랑은 도덕성의 기본 원칙이다.그러므로 자신의 생존권을 존중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존권을 존중하는 것은 정당하다.자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공격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할지라도 살인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2265정당방위는 권리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진 사람에게는 중대한 임무가 될 수 있다.공동선을 지키려면 불의한 공격자가 해악을 끼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이러한 까닭에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책임을 맡겨진 시민 공동체를 해치는 공격자를 물리치는 데 무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2266인권과 시민 사회의 기본 규범을 손상시키는 행동의 확산을 억제하는 국가의 노력은 공동선 보호 요구에 부합한다.공권력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을 부과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형벌의 첫째 목표는 잘못으로 발생한 페해를 바로잡는 것이다.죄지은 사람이 이 형벌을 스스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속죄의 효과를 지니게 된다.그리고 형벌은 또한 치유를 위한 것으로서, 되도록 죄지은 사람의 교정에 이바지해야 한다.
고의적인 살인
2269다섯째 계명은 어떤 사람을 간접적으로나마 죽이려는 의향으로 자행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한다.도덕률은 중대한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을 죽을 위험에 놓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위험에 놓인 사람에게 도움을 거절하는 것을 금한다.
인간 사회가 기근으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 데 대하여 구제책을 세우고자 노력하지 않고 묵인하는 것은 파렴치한 불의이며 중대한 죄이다.폭리를 추구하며 탐욕스러운 행위로 인류 형제의 굶주림과 죽음을 유발시키는 상인들은 간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며, 그책임은 그들에게 돌아간다.
본의 아닌 살인은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울 수 없다.그러나 적합한 이유 없이 죽음을 초래하게 행동을 했다면,비록 살해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중죄를 면하지 못한다.
“간헐적 몰입은 비움에서 기초한다.모든 것이 가득 채워진 상태에서 몰입에 임한다는 것은 마치 찻잔을 가득 채운 채로 다시 찻잔을 채우길 원하는 어리석은 교수와 같다.주변은 물론,머릿속까지 빈틈없이 물건들과 잡념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어떻게 진정한 자신을 일깨우고 만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먼저 몸과 마음에서 불필요한 생각과 스트레스 등을 비워냄으로써 순탄하게 간헐적 몰입의 길로, 들어갈 수 있음을 꼭 명심하길 바란다.휴식과 비움의 순간이야말로 간헐적 몰입의 문을 열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그러니 오늘이라도 당장 나를 둘러싸다 못해 잠식하고 있는 물건들이 있다면 하나하나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불필요한 것들부터 해방감을 느껴 보길 바란다.그리고 이를 통해 비워진 마음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간헐적 몰입/책추남 조우성 著/84~85쪽)
시작
또 하나의 기다림
걷다
봄으로
그길 그숲
봄이 오고 있었다
손톱끝
살캉거리는 바람에
버들강아지 솜털위에
언땅이 녹아 내리는
발자국에
봄이 오고 있었다
(시작/황선심)
‘교황님,
커피를 망치고 계십니다.
우리 이탈리아인 (나폴리인)이 마시는 그대로 드세요.”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폴리의 한 카페에서 에스프레스의 쓴맛을
덜기 위해 물을 부었다가 바리스타에게 혼쭐이 났다고 한다. 특히 나폴리
에서는 에스프레소를 ‘신성시’까지 한다고, 우리처럼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행위는 ‘신성모독’에 가깝다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어쩌라구요,
소리치며 오늘도
'아뜨' 한잔에
‘커피 브레이크’를 즐기는 난 행복하다.
늘 행복하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