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장래희망'이 디자이너였어요. 그때만 해도 파는 연습장이 없어서 엄마가 갱지라고 하는 누런 시험지를 묶어서 연습장을 만들어 주셨지요. 꽤 오랬동안 갱지 연습장에 갖가지 옷을 입은 여자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당연히 제가 자라서 '디자이너'나 그게 아니라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교에 가서 진짜 그림을 그리고 보니 제 생각처럼 되지 않는 거예요. 그럴듯하게 밑그림은 그렸는데 수채화 물감은 어찌나 번지던지, 내 붓질은 왜 언제나 그어놓은 선을 불쑥 넘어가는 건지..... 그림이랑 나는 인연이 없구나 하고 '장래 희망'을 포기했습니다. 덕분에 옷감을 재단했을지도 모를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시작은 이러했어요.
(사람 얼굴을 그리는데,) 앗, 실수, 그만 한 쪽 눈을 크게 그리고 말았어요.
(다시 고쳐보려고 했는데, 앗, 또 실수, ) 이번에는 다른 쪽 눈을 더 크게 그리는 실수를 했네요.
코리나 루켄 작가의 <아름다운 실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작가는 다르게 그려진 사람 얼굴에 안경을 씌웠어요. 짝짝이던 양쪽 눈이 안경 덕분에 두드러져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팔꿈치는 뾰족하고 목은 너무 길게 그려졌습니다. 그러자 작가는 이번엔 긴 목에 장식을 그렸어요. 나풀나풀 레이스와 쪼글쪼글 주름을 더했죠. 기형적이던 모습이 모딜리나니의 여인처럼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와~ 괜찮은데요!'
<아름다운 실수>는 이렇게 실수 연발인 작가의 그림이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책 겉표지를 열면 '툭' 하고 한 방울 떨어진 잉크 자국이 보입니다. 작가는 이렇게 '본의 아니게'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자신이 겪었던 실수 과정에서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눈도 짝짝이고 목도 길게 둥둥 떠 있는 아이는 신이 나서 노란 풍선을 들고 친구들에게 달려가는 아이로 '변신'합니다. 아이가 날아가듯 들고가는 노란 풍선들이 마치 실수에 대한 '훈장'이라도 되는 거 같아요. 페이지를 더 넘기다 보면 작가가 '실수'를 포기하지 않은 게 고마워질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아이들의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실수, 우리의 존재론적 조건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약빠른 고양이가 밤눈 어둡다', '홍시 먹다 이빠진다' 등등 실수에 대한 속담들이에요. 인터넷에 쳐보면 70가지가 넘는 속담들이 나와요. 동물, 음식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끌어들여 '실수'를 경고합니다.
어디 속담뿐인가요. 사자성어도 많고, 명언도 매우 많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제 각각이에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처럼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독려하는가 하면, '경험이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수에 붙이는 이름이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실수', 자체를 우리 인생의 과정 자체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고전 중의 고전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달리 해석하면 무수한 신과 인간들의 '실수의 역사'가 아닐까 싶어요. 스핑크스조차 지혜로 이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한 채 '친부'를 죽이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요.
음악가 오르페우스 역시 지옥까지 달려가 아내를 구했지만 그 아내는 실수로 인해 끝내 지옥의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리스 로마 신화가 대중적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실수담'들의 '서사성' 때문 아닐까요.
속담에서부터 신화까지 그러고 보면 실수는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 아닐까란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존재론적 조건임에도 우리는 늘 그 '실수'로 인해 힘들어 하며 살아갑니다. 저처럼 '장래 희망'을 '포기'하기도 하구요. 코리나 루이켄의 <아름다운 실수>는 바로 우리의 존재론적인 '조건'인 실수에 대해 '괜찮아, 괜찮아' 하며 등을 두드려주는 거 같습니다.
현대로 올수록 '심리학'은 '자아'의 의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나치의 포로 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외부의 상황조차도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마티 셀리그만이나, 선행한 사건 자체보다 그걸 해석하는 '주체'의 의지가 사건의 결과를 달리 보게 만든다는 앨리스의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의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눈이 짝짝이거나 목이 길게 그려졌어도 안경을 씌우고 레이스를 그려넣듯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실수>가 '아름다운' 이유는 안경을 씌우거나 덧칠을 하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조금씩 멀어지는 그림들, 이상하게 그려져서 바위가 되어버린 동물도, 풍선을 들고 달려가던 아이도, 그저 멀리서 보면 나무가 있는 풍경 속의 한 부분이 되어갑니다. 더 멀어진 그림 속 소녀는 점점 줄어들어 한 점으로, 그리고 다시 그조차도 불분명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보이나요? 이런 저런 실수들이'
토성을 돌고 있는 우주선에서 찍은 사진에서 지구는 그저 밝게 빛나는 한 점, 1픽셀(사각형의 점으로, 디지털 화상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이다)에 불과합니다. 1픽셀에 불과한 지구의 모습을 보면 그 속에서 '안달복달'하는 현실이 참 별거 아니게 느껴지며 '여유'를 찾게 되지 않던가요.
그처럼 이리저리 '실수'를 만회하던 그림들이 한 점인가 싶게 멀어지는 전경 속에서 우리가 '몰입'해 있는 '실수'에 대해 보다 너그럽고 여유로운 시선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그림책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실수는 시작이기도 해요
자꾸만 실수를 해서 그림을 포기하려 했던 시절의 저에게 이 그림책을 선물하면 어떨까요? 그 시절의 제가 이 그림책을 봤다면 어쩌면 지금쯤 저는 '자판'을 두드리는 대신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까요? 그러려면 '타임머신'이 필요하겠죠. 여러분은 어떤 실수를 한 자신에게 이 그림책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부디 여러분의 실수는 '타임머신' 없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실수이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실수
코리나 루켄 (지은이), 김세실 (옮긴이), 나는별(2018)
첫댓글 아름다운 실수가 아름다운 이유..
표현이 너무 예쁜것 같아요..
괜찮아..괜찮아..실수해도 괜찮아~^^
기운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