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인 총각무에 양념을 막 버무리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섰다.
그의 안색은 몹시 흐렸고 지쳐보였다.
“여보, 어디 많이 아프세요?”
내 말에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말없이 손가방을 안방에 두고 서랍을 열어 속옷을 챙겨서는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른 김치 담그던 것을 마무리 하였다.
주섬주섬 식탁 주변이며 부엌을 정리정돈하고 내 헝클어진 몰골도 거울을 보며 적당하게 단장을 하였다.
옷장을 열어서 검은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남편이 들어섰을 때의 내 차림새는 어저께 외출 복장 그대로였었다.
“가볍게 먹고 이따가 냉면 해먹자!”던 남편의 말을 듣고 이른 시간에 적은 량의 저녁을 먹었고 티브이를 보면서 남편 뒤에 누웠었는데 눈을 뜨니 이미 그가 출근한 후의 새벽녘이었다.
화장까지도 지우지 않고 널브러져서 자는 아내를 그는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내 삶에 조금 바쁜 일이 있다고 나는 이리도 펑퍼짐해져도 상관없는 것인가?
나를 향해 자맥질을 하여본들 나만 부끄러운 일이다.
세면장에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젖은 그는 팬티만 입고서 어설피 나섰다.
그러나 나를 쳐다보는 표정은 영 유혹적이거나 감상적이지 못해 보였다.
침대에 벌렁 드러누운 그 옆에 베개 하나를 벽에다 세우고 기댔다.
“선풍기를 밤새 틀어 놓아서 감기 걸린 것 같아!”
어쩐지...
나또한 일어났을 적에 한쪽 목에 담이 온 듯 아팠고 온 몸이 무거웠다.
“당신, 오늘은 왜 도서관에 안가냐?”
남편의 물음에 어벌쩡해졌다.
“여보, 드디어 몸살이 온 것 같아요. 아침 내내 몸이 아프고...”
내 넋두리를 듣는 그의 표정이 별로 심각해 뵈지 않는다.
마른 코만 훌쩍거리고 있었다.
“난 더 아퍼!”
둘 다 멀뚱하게 티브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도 없는 낮 시간에.
다른 때 같았으면 그가 서둘러 씻고 오라고 떼를 쓰며 기어올랐을 터인데.
또 아니면 내가 자발적으로 섹시한 슬립 한 장 걸치고 밍밍한 분위기를 애교 떨며 걷어 내었을 터인데.
남편은 일에 지쳤고 나는 문자에 지치고 말았다.
그는 거실로 가더니 컴터를 켰다.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맨트들.
“앗싸~!”
“피 하나 주세요!”
“삼 광 입니다!”
그가 즐기는 컴터의 맞고 게임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나는 대출한 책을 가방에서 꺼냈다.
도대체 신소설의 처음작인 「이인직의 혈의누」가 어떤 내용이었던지 기억도 나지 않았거니와 그냥 슬그머니 넘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장은 한 장 두장 잘도 넘어간다.
가장 시급한 것이 문제집 푸는 것이겠으나 저리도 절제되지 못하는 맨트가 남발하는 분위기에서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는 것은 내 머리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있음이다.
나는 벌레 기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책을 보아야만 내용에 몰입될 수 있는 단순한 형의 뇌 구조를 가진 사람이다.
딸아이는 티브이 켜 놓고도 문제를 술술 푸는 것을 보면 나를 닮지 않았음이다.
아들 녀석은 나를 닮은 것 같다.
제 누나가 꼼지락대는 것조차 싫은 내색을 노골적으로 하니까.
여하튼 나는 책 속에 머물다가 잠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빠, 쌀밥 보리밥 해요!”
언제 왔는지 아들과 더불어서 그는 손바닥을 오므렸다가 폈다가 재미가 한창이었고 그 소리에 잠이 깼다.
남편은 아이 손을 잡고 “쌀! 쌀! 쌀!” 하면서 계속 뺐고 아이는 드디어 골이 잔뜩 나서 따져대고 있었다.
“아빠, 그렇게 쌀! 하면 어떻게 해요!”
아이의 항의에
“그래, 나는 네 진짜 아빠가 아니잖니!”
남편은 더 약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어렸던 적에 나의 아버지가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라고 놀리시는 통에 밤새도록 눈이 퉁퉁 불 정도로 울었던 기억이 났다.
남편은 것도 모자라서 아이에게 진짜 아빠가 아니라고 놀려먹고 있었다.
처음 아이에게 그 말을 하였을 적에 아이는 눈물이 글썽하여서 내게 살짝 와서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을 하였었다.
“네 얼굴 거울 놓고 쳐다봐라! 아빠와 엄마랑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니?”
이렇게 말을 해도 아이가 미심쩍어 해서
“종완아, 네 모습이 아빠 어릴 때와 꼭 같데! 친척들이 하시던 말 기억나지 않니?”
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그제야 눈물을 닦았었다.
이제는 남편이 여하한 농담을 하여도 제법 넘어간다.
어리석은 아이의 성격을 바꾸기 위하여 남편은 늘 이러하게 아이 길들이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쉽지 않는 세상에 미리미리 닳아지게 그는 오늘도 노력을 하는 것이리라.
아이와 신명나게 장난질을 하던 그는 내가 일어나자 갑자기 머쓱한 듯 조용해 졌다.
장난질에 탄력이 붙은 아이는 남편 옆에서 칭얼대고 있었으나 귀찮다는 표현까지 해 대었다.
식탁에서도 김칫국에 밥 반 공기 뚝딱 말아서 후루룩 먹고는 금세 자리를 탈탈 털고 일어났다.
안방으로 냉랭하게 돌아서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지난해가 생각났다.
“60대 부부도 일주일에 부부관계를 두 세 번은 한대!”
책과 씨름하며 서늘한 침대에서 남편은 나를 그렇게 힐난(詰難)하고 있었다.
“여보, 이거 드세요!”
생강에다가 집에 남은 한약재 털어 넣고 푸욱 끓인 잡차(雜茶)를 담은 머그 컵을 그에게 내 밀었다.
“아니, 차라리 수박 먹겠어!”
밥을 먹고 수박 서너 쪽 먹지 않으면 삶이 불행한 사람이다.
부엌으로 향하며 섭섭한 마음이 불현듯 몰리어 들었다.
수박 썰어 담은 접시를 안방에 들이고는 싸늘한 마음으로 불 꺼진 식탁에 쪼그리고 앉았다.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나가는 기억들.
신혼 때에 남편의 사업실패로 어음들이 종이조각처럼 폐휴지가 되었던 때.
빨간 딱지 붙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롯데월드 주변의 석촌호수에서 두 밤을 보냈던 기억이 났다.
심야에 불을 밝히던 포장마차들의 행렬.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나던 롯데월드의 형상은 동화 속에 머무는 듯 아름다웠다.
‘그 어렵던 날들 속에서도 우린 하나도 불행하지 않았어!’
그래, 오히려 그러한 설움들이 우리의 사랑을 더욱 애틋하게 달궈 주었었다.
서로 바쁘다고 잠시 사랑을 밀치고 있다고 우린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다.
속으로는 더더욱 쌓여지고 있는 것이야.
남편은 벌건 속살이 제 멋대로 야금야금 먹혀진 끄트머리의 수박 잔해들이 담긴 접시를 내게 들고 왔다.
그의 눈빛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입니다.)
* 딘스족(Double Income No Sex) *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생존하려고 몸부림치는 맞벌이 부부들에게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과 스트레스, 피로누적 등의 이유로 성(sex)없는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세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과 더불어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다.
첫댓글 딘스족이란 말이 그런 뜻이였군요 인터넷.......글이 쓴 웃음을 지어내게 하는 군요....딘스족 해당....
에고, 새벽에 졸면서 쓴 글이라서... 아무리 읽어도 어색한 문장이 있어서 다듬었습니다. 들판나들이님, 저도 요즘 딘스족에 해당하니 가슴 쓰리지 마소서! 모... 쌓았다가 차곡차곡 하지요.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니... *^^* 향긋한 날 되세요!
저는 딘스족은 아니지만 (일단 맞벌이부부가 아니어서) ..왠지 딘스족같단 느낌이..(제가 출장이 잦아 성없는 결혼생활 자주 영위하는데 ㅎㅎㅎ) ..재미있군요~ 오늘은 일찍 들어가 와이프를 좀 안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
저도 딘스족에 해당되는것 같은데...저희의 경우에는 스트레스, 피로누적보다는 애정부족이 아닐까...훗..재밌는 글 잘 읽었다 아룁니다.
컴퓨터 고스돕 치다가 '쌀밥! 보리밥!' 게임하려면...그거 죽을맛이었을텐데요 ㅎㅎㅎ 운영자님 안직 감기 안떨어져써여? 간단히 떨어뜨리는 방법은? 뽀뽀 100번 해서 떠맡기기 ㅎㅎㅎ 딘스족!! 물론 이비도 부분 해당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