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9.26일 최보식 언론인이 올린 글입니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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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25일 김혜경 여사가 유엔총회에서 옆 자리에 배정된 멜라니아 여사와 친교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보도한 기사를 삭제하고, 정정기사를 냈다.
해당 기사는 25일 <멜라니아 옆 비어 있던 ‘한국’ 자리 “좋은 외교기회였는데 아쉬워” 지적도>란 제목으로, 현장에 있었던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이 쓴 것이다.
이 기사는 미국 뉴욕 유엔총회 현장 소식을 전하며 “멜라니아 여사 오른쪽 옆에 있는 ‘한국’이라는 표식이 붙은 빈 의자가 함께 잡혔다"며 "김혜경 여사를 위해 마련된 자리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어 “각국 정상의 배우자들은 유엔총회 연설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 관례”라며 “멜라니아 여사 옆에 배치된 김 여사의 좌석과 관련해 외교가에선 ‘개인적인 친분을 중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여사 외교를 시도해볼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사실에 근거한 아주 상식적인 지적이다. 다른 언론매체에서도 이와 비슷한 보도가 있었고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26일, 중앙일보는 2면에 ‘바로잡습니다’라며, 위의 기사 내용이 잘못됐다고 다음과 같은 정정 기사를 게재했다.
“김혜경 여사가 유엔총회 회의장에 참석하지 않아 멜라니아 미국 영부인과의 옆좌석에 배정됨으로써 친교를 다질 수 있는 외교 기회를 놓쳐 아쉽다고 지적했으나 김 여사는 멜라니아 주최 리셉션 등의 현지 일정들을 준비하고 참여하느라 총회 회의장에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 여사는 다른 나라 정상 배우자들과 외교 활동을 벌였다. 해당 기사는 이 같은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담지 못했기에 바로잡는다.”
언론사가 틀렸으면 정정 기사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정정 기사는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유엔총회 연설 당시 김 여사가 맬라니아 옆자리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김 여사는 이대통령 연설 때도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김 여사로서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나(그 시간에 뉴욕 코리아타운을 방문해 김밥집에 들른 것으로 보도됐다), 신문 기사가 지적한 멜라니아와 '친교' 기회를 놓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지적한 기사가 정정의 대상이 되는가. 이를 정정해주는 중앙일보가 언론기관이 맞나 싶다. 내가 근무했던 조선일보에서는 결코 통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이게 1등 조선일보와 2~3등 중앙일보의 차이일지 모른다.
37년 언론 생활을 하면서, 중앙일보처럼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담지 못했기에 바로잡는다'라는 식의 정정 기사도 본 적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종합적으로' 담은 신문 기사들이 얼마나 되나.
대통령실의 압박이 어떠했는지 서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르겠으나, 중앙일보는 언론사로서 정치권력에 쉽게 타협해주는 오점을 남겼다. 또 자사 기자를 욕먹인 셈이다. 언론으로서의 자존심이 없는, 저널리즘을 포기한 신문사라는 뜻이다
출처 : 최보식의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