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달 교수의 역사칼럼(50)
권중달(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하시태평(何時太平)
어느 때가 되어야 세상이 태평하겠는가?
세월은 흘러 어김없이 또 한해를 넘긴다. 사람마다 새해에는 지난해 보다는 좀 더 나아지길 바란다. 그 바라는 최고의 내용은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하는 태평성대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역사에는 태평성대라고 부를 만한 시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태평한 세월이 오기를 바라는 염원한 경우가 더 많이 띈다. 그러나 태평세월이 그냥 오는 것은 아니다. 이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태평한 세월이 올 방법을 준비하거나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에 성세(盛世)가 오면 해야 할 일을 미리 준비한 황종희(黃宗羲)와 태평한 시대가 올 조건을 제시한 악비(岳飛)가 있다.
황종희는 명왕조(明王朝) 말기에 태어나서 만주족의 청(淸)에게 조국 명왕조가 멸망하는 것을 눈으로 본 사람이다. 물 밀 듯 내려오는 청군(淸軍)에 대항하려고 무장 조직을 만들었지만, 이 오합지졸을 가지고 잘 훈련된 청군을 당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분명하였다.
그는 물러앉아서 명왕조가 왜 망했는지를 생각하고 다시 멸망하지 않고 치세(治世)가 이어갈 수 있는 제도를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이다. 책 이름을 왜 명이대방록이라고 했을까?
명이(明夷)는 주역(周易)의 괘(卦)이름이다. 명이괘는 불, 광명이 땅속에 있는 상태를 형용한 괘이다. 명이의 세상은 어둡고 캄캄한 상태이다. 황종희는 자기가 살고 있던 암울한 시대를 명이와 같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대방(待訪)이란 누군가 특히 세상을 밝게 잘 다스릴 꿈을 가진 명군(明君)이 방문(訪問)해 주기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오면 자기가 연구한 치세(治世)를 이룰 방법을 제시하겠다는 요량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황종희의 꿈이 실현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청(淸) 왕조의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강희제(康熙帝)는 그에게 명왕조의 역사를 쓰는 책임을 져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의 제자 전조망(全祖望)을 보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한족(漢族) 왕조에 의해 이루어지길 바랐던 태평 시절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꿈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만주족 청왕조의 강희제에 의하여 60년 통치 속에서 전에 없던 성세(盛世)를 이루었다.
태평성세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금(金)에게 쫓겨 남쪽으로 내려왔던 남송 시절에도 있었다. 북송의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이 요(遼)를 멸망시키고 내려고 온 금군(金軍)에게 포로가 되자, 겨우 살아남아 남쪽으로 내려간 조구(趙構)가 남송(南宋)의 황제로 자립하여 후에 고종(高宗)으로 불리지만 그의 남송군은 금군(金軍)이라면 내려온다는 말만 들어도 도망하기 일쑤였다.
그 가운데서도 자기 군대를 철저하게 훈련해서 금군(金軍)과 싸워서 승리하는 장군이 있었다. 그가 악비(岳飛)이다. 그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전투가 없는 시간이면 장병들에게 어김없이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또 그의 병사가 민간에게 삼베 한 오라기라도 빼앗는다면 바로 참수(斬首)하는 엄격한 군율(軍律)을 적용하였다. 반면에 부하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으면 장군인 자신이 약을 지어 주었고, 조정에서 상금이라도 내리면 철저히 공평하게 분배하였다.
그러하니 악비의 군대는 강했고 금군과의 전투에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고 승리하였다. 그래서 금군(金軍)에서도 “산을 흔드는 일은 쉬워도 악가(岳家, 악비의 군대)의 군대를 흔들기는 어렵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하니 사람들은 악비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남송의 군대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서 남송은 항상 전전긍긍이었고, 기회만 있으면 금과 화의(和議)하려고 애썼다. 남송 고종(高宗)은 굴기(屈己)해서라도 화의하고자 했다. 굴기란 자기가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굽히겠다는 말이니, 금에게 온갖 것을 다 내주고라도 화의하겠다는 의지(意志)를 다졌다.
이에 따라 재상인 진회(秦檜)는 화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지만, 남송을 위해 잘 싸우는 악비가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악비를 모함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이 처사를 본 장군 한세충(韓世忠)이 진회에게 불평하자 진회는 한세충에게 ‘분명한 증거는 없지만 그 일의 본체(本體)는 막수유(莫須有)지요.’라고 대답하였다.
막수유(莫須有)라는 말은 원래의 뜻은 “혹 있을 것”이라는 말이지만 그 후로 ‘덧붙여 주고 싶은 죄가 있다면 적합한 말꼬리를 찾지 못한다고 하여도 걱정할 것은 없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뜻의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잘 싸우는 악비라고 하여도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 그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사(賜死)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비가 죽기 전에 어떤 사람이 “천하는 어느 시기가 되어야 태평할 것인가?”라고 그에게 물은 일이 있다. 그는 한마디로 대답하였다. “문신(文臣)이 전폐(錢幣)를 아끼지 않고, 무신(武臣)이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으면 천하는 태평해진다.” 문신은 서류를 가지고 움직이면서 돈을 벌려고 들고, 무신은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다 죽기를 무서워하여 도망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바로 자기 할 일만 제대로 하면 태평세월이 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치세를 위해 제도를 연구한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을 떠올리면서 지금도 정비해야 할 제도가 산처럼 쌓여 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또 모함받고 죽어가면서도 각기 자기 할 일을 다 하면 태평 시대가 올 것으로 여긴 악비의 말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답답하다.
국회는 제도를 정비보다 패거리 싸움으로 헛되이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상황과 노동계건 교육계건 자기들 본연의 일을 하는 데 쓰는 노력보다 정치투쟁에 온 힘을 기울이니, 태평성대의 달성에 필수 요건인 제일을 제대로 하는 각득기소(各得其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이런 모습이 고쳐진다면 새해에는 태평세월이 오겠지만 그럴까! 그럴까!
첫댓글 좋은 역사평론에 감사드립니다. 명이대방록으로 출발하여 악비의 이야기로 결론을 지었네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소환하거나 국회제도를 고치는 일을 하지 않고는 우리나라의 장래가 어둡습니다.
상하양원제로 헌법을 고치고 전문가 집단이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1997년? 쯤, 중국 항주에 있는 악비묘(사당)를 찾아 간 일이 있습니다.
악비의 충성이야 다시 말할 나위 없지만 진회에 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악비의 사당에 있는 진회의 조그마한 석상은 400년 동안에 9번이나 다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왜일까요? 이 곳을 찾아 오는 관광객들이 다투어 침을 밷고 발로 차고 돌을 던져서 파괴되었기 때문이라는군요.
보국안민을 철학으로 실천하는 악비를 죽게 만든 진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았던 것이지요.
진회의 석상이 그렇게 파괴된 것은 방문객들의 정의감 때문이라는 사실이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애국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지만 진실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자사자리를 위하여 양심을 버리고 윤리나 법을 배반하고 후안무치한 행동을 보여주는
이른 바 지성인들, 특히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을 보게 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입니다.
우리는 그 언제나 진정한 양심을 찾고 정의롭고 용기 있는 국민이 될 수 있을지 모르는 형편이라고
낙담하는 형편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교헌 <<장강은 흐른다>> 원미사 1998. pp.269-271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