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으러 나갔는데 겨울이 온 몸으로 내게 접근해왔어요. 이 정도의 날씨면
눈도 올 것 같은 기세입니다. 짬뽕 밥을 시켜 먹었는데 19살 겨울 친구들과
내기 당구를 칠 때 먹었던 그 맛이 났어요. 건달 하던 명호 형이 생활을 일찍
접고 남 초등학교 앞에 중국집을 차렸는데 동생 장 준호가 제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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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 형은 담양에서 놀지 않고 광주시내(PJ)를 나갔기 때문에 형의 사이즈
가 얼마큼 되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때 우리랑 최소 5년 이상 차이가 났고
친구 형이라서 우리는 명호 형을 간보거나 만만히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명호 형에게 건달 인사를 했어요. “형님! 나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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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 우리 그룹과 2년가량 같이 놀긴 했어도 녀석은 라일락 파에서
일찍부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아웃사이더처럼 애매한 관계로
우리랑 친구를 먹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편먹기를 치려면 6명이
필요한데 준호가 당구를 치지 못했기 때문에 녀석은 철가방에 짬뽕 7그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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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해 오면서 종종 게임돌이를 봐주었을 것입니다. 당시 게임비가 10분에
200원이었고 단판으로 끝내면 대략 90분가량이 소요됐는데 게임 비 18.000원
+짬뽕(1500씩7=10.500)+땅콩밀크(600씩7=4200)+담배(솔)500씩2갑(1.000)
total 33.700이 나옵니다. 피 튀기는 전투가 시작 되고 1등은 담배 2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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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받고 꼴지는 독박을 쓰는 겁니다. 탁곤 250, 상준200, 승한400,
일도250, 효석200, 종석150을 쳤는데 승률은 탁곤이나 상준이 대략 60%
가량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검둥이 상준이 녀석은 저를 가지고 놀았고
간간히 고(高)점자들하고 내기 당구를 쳐도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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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면 날마다 당구장으로 출근을 했고 이때에 다방이란 다방은 다 돌아
다녔는데 특별히 스케줄이나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다방에 외상값이 늘어갔고 당구장마다 외상값 없는 데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는 마담이 CEO 체제로 레지들을 관리했는데 중앙다방 마담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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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가 나이스했습니다. 담양에 당구장이 3개가 있었어요(올림픽, 아인,
매일). 아인 당구장 상용이 형은 카운터 위에 '외상사절'을 붙여 놓고도
카운터에게 우리가 오면 전화를 하라고 했는지 언제 나타나서 우리를
기다렸어요. 연병, 지면 0 되는 겁니다.
2022.11.26.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