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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녹)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베드로 대성전과 성 바오로 대성전 봉헌
말씀의 초대
뛰어난 율법 학자 엘아자르는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관장 자캐오의 집에 들어가 묵으시며,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남기려고 합니다.>
▥ 마카베오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6,18-31
그 무렵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19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20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22 그렇게 하여 엘아자르가 죽음을 면하고,
그들과 맺어 온 오랜 우정을 생각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23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애, 많은 나이에서 오는 위엄, 영예롭게 얻은 백발,
어릴 때부터 보여 온 훌륭한 처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법에 합당하게 고결한 결정을 내린 다음,
자기를 바로 저승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소제목은 “예수님과 자캐오”입니다. 4복음서 가운데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 고유한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던 길에 예수님께서 예리코를 지나실 때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루카 19,2). ‘마침’이라는 낱말에서 우리는 자캐오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이 운명적이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나 봅니다. 루카 복음서는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19.3)라고 합니다. 그 까닭을 같은 절에서는 “키가 작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키 작은 이가 예수님을 뵈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았다면 적어도 한두 사람은 그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을까요? 자캐오가 예수님을 뵐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아마도 그가 “세관장이고 또 부자”(19,2), 곧 죄인으로 불리며 따돌림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자캐오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뵈려고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갑니]다”(19,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 아래에 이르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19,5).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받던 자캐오의 이름을 불러 주셨고, 간신히 나무 위에 올라가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에게 ‘나 여기 있으니, 그만 내려오라.’고 하시며,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셨지요. 이는 자캐오에게 행운 가운데 행운이요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던 자캐오가 말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19,8). 예수님의 관심과 사랑이 그에게 닿아 마침내 꽃을 피웁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과거보다는 미래에 희망을 두시는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복음의 주요 인물로 예리코 출신의 자캐오가 등장합니다. 자캐오라는 이름의 의미는 ‘깨끗한 사람’입니다.
아는 수녀님 중에 수도명이 자캐오인 분이 계셔 처음에는 의아해했습니다. 자캐오도 성인이신가? 공식 성인 반열에 오르셨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캐오는 예수님으로부터 정식으로, 공식적으로 구원을 확정적으로 선포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분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9)
이 선언으로 너무나도 당연히 자캐오는 하늘나라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회심한 자캐오는 후에 카이사레아 지역의 주교로 사목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당시 그는 징세 청부업자에 해당하는 세관장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세무서 서장쯤 되는 높은 자리였습니다.
요즘이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당시 부정부패가 만연했습니다. 뒷돈이 오고 갔고, 상납이 당연시되었습니다. 과중한 세금의 희생자들은 가난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자캐오는 세리들의 상관으로서 상납을 받아 큰 부자가 되었지만, 동족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캐오는 예수님께서 예리코를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그는 호기심 반 재미 반 그분의 얼굴을 보려고 길로 나왔지만 군중에게 가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키가 유난히 작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자캐오의 머릿속에 묘안 한가지가 떠올랐습니다. 냅다 달려 돌무화과 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조금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이고, 그렇게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 순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반전이 벌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올라와 있는 돌무화과 나무 앞에 딱 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을 올려다보신 다음, 자캐오를 부르시며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죄하시고 순결하신 구세주 예수님께서 죄인중의 대 대죄인, 세관장 자캐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세상 따뜻하고 자상한 음성으로 말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그 존귀하고 거룩하신 주님께서 죄인인 자캐오의 집에서 숙박을 하시겠답니다.
찰라의 순간이었지만, 받은 감동이 너무나 컸던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감동을 주체못한 자캐오는 이런 말씀을 그분께 드렸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이심전심이라고 한없이 너그럽고 관대하신 예수님의 크신 마음이 자캐오에게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의 따뜻함이 철옹성이나 얼음장 같았던 자캐오의 마음을 활짝 연 것입니다.
그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으시는 친구가 되어 주시는 주님, 그가 저지른 악행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단죄하지 않으시고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시는 주님, 과거보다는 미래에 희망을 두시는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휴가 둘째 날은 교구청 인사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교구청에 8년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신부님이 오면 아침 미사와 아침 식사를 함께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교구청에 있으면서 손님 신부님을 맞이했는데, 지금은 손님 사제가 돼서 교구청을 방문했습니다. 교구장님과 신부님들이 따듯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이야기를 하였고, 교구장님은 2년 후에 있을 세계 청년대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구장님은 숙소를 어디에 정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동창 신부님이 있는 본당에서 지냈는데, 지금은 전진상 영성 센터에 머물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흥 5동 본당 신부로 있을 때 전진상 의료원에 있는 분들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명동에 숙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영성 센터 소장님이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손님을 기쁜 마음으로 환대하였듯이, 저를 따듯하게 대해 준 교구청 신부님들과 영성 센터 소장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독서에서 90세의 노인 엘아자르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엘아자르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엘아자르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어겨 이교 제사의 음식을 먹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결한 음식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엘아자르는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 떳떳할 수 있습니다. 이교 제사의 음식을 먹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엘아자르의 인품과 덕망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엘아자르는 그러한 제안을 거부하였습니다. 비록 본인은 이교 제사의 음식을 먹지 않았지만, 많은 젊은이가 엘아자르가 이교 음식을 먹은 것으로 알고 따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교 음식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는 평가와 평판이 문제였습니다. 엘아자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엘아자르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본보기로 남기고 죽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캐오는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마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음이 열린 자캐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의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의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던 자캐오가 구원받았던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이 피해를 준 사람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아 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으로 구별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느님 앞에 솔직한 사람들입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과거 때문에 단죄받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허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현재의 반성과 뉘우침으로 미래의 구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을 생각합니다. 교회는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 생각합니다. 지금 아프고,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와 신앙인들은 바로 예수님을 친구로,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신앙인들이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지금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 병든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늬만 교회요, 겉모습만 신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하기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올 한 해를 돌아볼 수는 있습니다. 나의 발자국이 누구와 함께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 병든 이, 굶주린 이와 함께한 발자국이었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과 함께한 삶이었고, 그 길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아름다운 만남>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루카 19,4ㄴ-5ㄱ)
나 당신을
애써 보려는
까닭은
당신께서 나를
기꺼이 보아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 그대를
기꺼이 보는
까닭은
그대가 나에게
애써 보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나 당신께
애써 들으려는
까닭은
당신께서 나에게
기꺼이 들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 그대에게
기꺼이 듣는
까닭은
그대가 나에게
애써 들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나 당신을
애써 안으려는
까닭은
당신께서 나를
기꺼이 품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 그대를
기꺼이 품는
까닭은
그대가 나에게
애써 안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e Philippine Duchesne)
활동년도 : 1769-1852년
신분 : 수녀원장, 선교사
지역 :
같은 이름 : 뒤센느, 뒤셴, 뒤셴느, 로싸, 로즈,
필리핀 프랑스 그레노블에서 부유한 어느 상인의 딸로 태어난 로즈는 그 도시 근교에 있던 쌩뜨 마리 당 오(Ste-Marie-d’en-Haunt)의 방문수녀회에서 교육을 받았고, 강력하게 결혼하기를 요구하던 양친을 뿌리치고 17세 때에 방문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791년의 프랑스 공포 정치 동안에는 그 수녀회가 프랑스에서 추방되었으나, 자신은 몰래 집으로 돌아와서 병자들을 방문하거나 교육하는데 헌신하였으며, 혁명의 희생물로서 감옥에 갇힌 성직자들을 찾아다니며 찾아다니며 위로하는 일을 하였다.
1801년, 교황 비오 7세와 나폴레옹이 국가와 교회간의 평화스런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협정 체결 후, 그녀는 자신이 교육을 담당해오던 곳에 수도원을 재건하려고 크게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녀는 마더 마들렌느 소피 바라는 설득하여, 마더 마들렌느가 성심회를 세우는데 기여하였고, 자신과 다른 네 명이 청원자가 되어 그 다음 해에 서원하였다.
1818년, 그녀는 4명의 수녀와 함께 미국으로 파견된 분원의 원장이었고, 세인트 루이스 근교인 세인트 찰스에 미국의 첫번째 성심수도원을 세웠다.
그들은 미시시피 서안에 무료학교를 처음으로 운영하다가, 다음 해에 세인트 루이스의 플로리샌트로 옮겼다.
많은 난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동체는 크게 꽃피울 수 있었고, 1828년경에는 미시시피 강변을 따라 6개의 분원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1840년에 미국 지부장직을 사임하고는, 켄사스의 슈가 크릭크에서 인디언들을 위한 학교를 시작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71세였다.
그러나 불과 1년 후에 건강이 나빠서 떠나고 말았지만 그녀의 정렬적인 활동은 큰 발자취를 남기게 하였다.
그녀는 세인트 찰스로 은퇴하여 지내다가, 1852년 10월 18일에 귀천하였다. 그녀는 1940년에 시복되었다. 1988년 7월3일 요한 바오로2세께서 시성하였다.
성 바룰라 (Barula)
활동년도 : +304년
신분 : 소년, 순교자
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같은 이름 :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증언에 의하면 성 로마누스(Romanus)는 시리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와 안티오키아 교회의 부제였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 출신으로 기혼자였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그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투옥되는 것을 보고 용감하게 일어나서 박해자의 말로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는 체포되었고 산채로 구워 죽이라는 형을 받았다. 그는 최후 진술을 통하여 참되고 유일한 하느님께 대한 깊은 사랑을 호소하여 듣는 이를 감동케 하였다. 프루덴티우스(Prudentius)의 시에 따르면 그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로마누스는 7살의 성 바룰라라는 소년과 함께 순교하였는데, 성 바룰라에 대해 어떤 확실한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학자들은 그를 시리아의 순교자인 성 바를라암(Barlaam, 11월 19일)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한다.
성 오도 (Odo)
활동년도 : 879-942년
신분 : 수도원장
지역 : 클뤼니(Cluny)
같은 이름 :
프랑스의 르망(Le Mans) 출신인 성 오도는 앙주(Anjou)의 백작 풀크 2세(Fulk II)와 아키텐(Aquitaine)의 공작 빌리암(William)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19세 때에 삭발례를 받고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성당에서 활약하다가, 오세르(Auxerre)에서 레미기우스(Lemigius)의 지도하에 인문학을 공부하던 중 특히 음악에 심취하였다.
그는 브장송(Besanion) 교구의 바움(Baume)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된 후 그곳의 수도원 학교 교장을 맡았다가 클뤼니 수도원의 제2대 원장이 되었다. 또 그는 교황 레오 7세(Leo VII)의 요청을 받고 로마(Roma)의 알베리쿠스(Albericus) 공과 이탈리아의 후고(Hugo) 왕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였다. 그는 클뤼니 수도원의 영향을 전 유럽으로 파급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그는 찬미가를 비롯하여 윤리와 구원에 관한 글을 남겼고, 오릴락(Aurillac)의 성 게랄두스(Geraldus, 10월 13일) 전기를 기술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