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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8월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청주] 빈 콩깍지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탈출 40, 16 - 21. 34 - 38
† 복음 : 마태 13, 47 - 53
알폰소 성인은 1696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신심이 두터웠던 그는 법학을 공부한
뒤 변호사로 지내다가 사제의 길을 선택하였다. 1726년 사제품을 받은
알폰소는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를 설립하고, 올바른 그리스도인
생활을 위한 설교와 저술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는 나폴리 근처에
있는 고티의 교구장 주교로 활동하다가 다시 수도회로 돌아가 1787년에
선종하였다. 윤리 신학의 대가로 존경받던 알폰소 주교를 1839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 탈출기의 마지막 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지 일 년이
지났을 때 모세가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명령하신 대로 성막을 세워
봉헌하였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이로써 하느님께서 광야에서 순례하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시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바다의 온갖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에
비유하신다. 곧 의인이든 악인이든 모두 하늘 나라에 초대되지만, 악인인
채로 남아 있다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이사를 가게 되면 버릴 물건이 적지 않은데, 그것을 대체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예전에는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가 이제는 전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정말 필요한 줄 알고 비싸게 장만했다가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지만 그대로 두기에도 버거워서 어쩔 수 없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오늘 복음 말씀에 적용한다면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가 이제는 전혀 필요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과거에는
자랑거리였으나 지금은 쓰레기처럼 여겨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경력, 학력,
사회적 명성 등이 그러합니다. 둘째, 정말 필요한 줄 알고 비싸게 장만했다가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것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데
중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질서한 우정이나 불필요한 텔레비전 시청, 오락 등이 그러합니다. 마지막으로,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지만 그대로 두기에도 버거운 짐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 어렸을 때부터 지니고 있던 마음의 상처나
열등감 등이 그러합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정화되려면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하겠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 매일 미사 -
◈ [청주] 빈 콩깍지|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3년 다해 8월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연중 17주간 목요일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븐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태13,47-53)
<빈 콩깍지>
저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성모동산이 있는
아름다운 성당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아주 작게 느껴져도 그
멋스러움은 여전합니다. 지금은 주차장이 되어있지만 텃밭에는
콩도 심겨져 있었고 들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밭모퉁이에는
가로등이 밤새 켜 있었습니다. 가로등 가까이에 있는 콩과 들깨는
다른 것보다 훨씬 더 키가 크고 잎도 넓었습니다. 그러나 가을 추수
때에 보면 열매가 없었습니다. 겉은 화려했지만 정작 속은 빈
껍데기였습니다. 낮에는 햇빛을 견디고 밤에는 어둠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입니다. 결국 곳간에 채워진 것들은 겉보기에는
초라했던 콩이고 들깨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마태16,27).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양으로 갚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여정 안에서
겪을 것을 다 겪으면서 견디고 받아들인 삶의 모양을 헤아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 감춰져 있는 악이 나타나지 않고 그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 하더라도, 혹은 외적으로는 아무런 흠이 없고 유능한
사람으로 드러날지라도 그 사람의 참된 모습은 ‘마지막 날’ 추수 때에
밝히 드러나므로 지금누리는 것들이 헛된 기쁨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처한 어려움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기를 희망합니다. 시편저자는 노래합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 126,6).
예수님께서는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을 끌어올려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태13,48).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로마2,6). 사실 하늘의 그물은 빠져나갈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여정이 이미 좋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과거에 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이세상의 삶은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습니다.
실패가 없다는 것은 지금 정신을 차려 알곡의 삶을 살면 된다는
의미요, 성공이 없다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우리 마음이 하느님 안에
평안히 쉴 때까지는 그 어디에서도 평안치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추수라는 심판의 두려움에 주눅 들지 말고, 새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이 과거를 발판 삼아 오늘을 새롭게 하고
그리하여 복된 내일을 희망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가까운
사이라 해도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마음은 천 개의 산이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뱃속까지
환희 들여 다 보십니다(예레17,9). 사람이 하는 일이 제 눈에는 옳게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그 마음을 헤아리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마음속을 보시는 하느님 앞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분 마음에 드는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맺는 모든 열매가 주님 그릇에 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커다란 희망
2013년 다해 8월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어제 오후에 인천교구 신부들과 생명평화 기원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점점 생명과 평화가 경시되는 이 세상 안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미사를 함께 봉헌하자고 모임을 만든 것이지요. 그래서 어제는 인천의
송림동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성당은 아이들이 참 많네.”
아마 방학 때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많이 미사에 참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한 미사에 그것도 평일에 봉헌하는 이 미사에 아이들이
참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지요. 더군다나 요즘 어린이 미사에도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의 일들이 생각납니다.
저의 경우, 놀이터가 바로 성당이었습니다. 친구들도 많았고, 놀 것도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당에 오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지요. 그러다보니
미사 보는 것도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이때의 기억 때문에
신부가 되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을 보면, 냉담하다가도 쉽게 성당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렸을 때 가졌던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경우, 놀이터가 학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당이 그리 친숙한 공간이
아니라 그럴까요? 냉담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아예 성당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최종 목표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살아서 그 나라를 체험해 보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나중에 그 나라에 들어가서도 ‘이곳이 하느님 나라가 맞는 거야?’하면서
의심하지 않을까요? 결국 살아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해 보지 못한다면,
죽어서 만나는 곳도 반쪽짜리 하느님 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지금 하느님 나라를 느끼고 경험해야, 먼 훗날에 만날 하느님 나라를
기쁘게 맞이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말하고, 어른들은 돈 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는 노력으로 어떤 것을 하고 계십니까?
이미 왔지만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선 이미
온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기 위한 노력을 우리 모두 아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 이웃과 이루어지는 따뜻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커다란 희망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법정).
생명평화 기원미사를 봉헌한 송림동성당.
‘해야 할 것’과 ‘하면 좋은 것’
어떤 형제님과 대화를 하는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저는 본당에 교무금을 내지 않습니다. 성당 재정이 엉뚱한 곳으로만
쓰는 것 같아서 도저히 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본당에는 헌금만
내고, 교무금이라 생각하면서 해외원조기금을 내고 있습니다. 어려운 해외의
어린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니까 보람도 느끼게 되어서 저의 대자들에게
말했더니, 이제는 대자들도 교무금을 모두 해외원조기금으로 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형제님의 이 말에, 신부들이 하기 싫어하는 말이지만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아마 위의 형제님은 교회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사랑을 하시겠다고
선택하신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에서 못하고 있으니까 자기라도
하겠다는 심정인 것이지요. 그러나 교무금의 원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십일조는
성경에도 나오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반드시 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자선활동, 후원회 활동 같은 것은 하면 좋은 것으로, 내가 해야 할 것을 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 하는 것입니다.
사실 만약 모든 신자들이 십일조, 아니 삼십일조씩만 봉헌해도 교회가 하지
못할 것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활동, 각종 사회복지,
건축 활동……. 모든 것이 가능하지요. 그런데 지금 현재는 백일조도 봉헌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많은 신부님들이 ‘돈, 돈, 돈’을 외치는 것은
아닐까요?
‘해야 할 것’과 ‘하면 좋은 것’을 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해야 할 것을
남도 하지 못하게 방해하지는 맙시다.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테오 신부 -
◈ [기타] 보람있는 일을 하십시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보람있는 일을 하십시오.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2013년8월1일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 들인 그물과 같다.”
(마태오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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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기에 주어진 우리의 이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고 귀한 보물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시간의 흐름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육체도 별 수 없이 늙어가고 자연스럽게 기력도 쇠해진다. .
이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마음으로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려는 이들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가끔 사람들은 물어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고.
나 역시 잘 살고 있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부족한 모습이 더 크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상 깨달은 대답이 하나 있다.
그것은 보람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보람이란 옳지 않은 일로는 절대로 얻어지는 마음이 아니다.
어느 누가 옳지 않은 일을 하고 그 결과에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잘못 만들어진 사람이다. 절대로 이기적인 생각이나
행동에 의해서 얻어진 결과에 대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될 아름다운
말이다. 보람이란 힘들고 어려워도 옳은 일을 했을 때 성패를 떠나서
얻어지는 기쁨이다.
어쩌면 우리 각자의 마지막 날에 각자의 삶을 뒤돌아볼 수 있는 기준은
보람 있는 일을 얼마나 했는가를 떠올려 보는 일이 될 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은 보람을
느낀 시간들이었다.
이 세상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예외 없이 누구나 죽음으로 마무리를 한다.
삶이 허락되어 있는 이 시간들 안에서,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할 일 모두가 보람 있는 일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장 잘 살 수 있는 길이자 행복한 삶이라 믿기 때문이다.
삶이 무척 복잡하게 보이는 듯 해도,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는 간단한
구조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 간단한 구조의 시간들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보람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실천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수도회] 하느님의 낚싯대에 걸린 대어
2013년 다해 8월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하느님의 낚싯대에 걸린 대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여서 그런지 낚시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까운 바다가는 주말이면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로
빼곡합니다.
가끔씩 전문 낚시꾼들의 경험담을 듣고 있노라면 밤새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그놈의 낚시가 뭔지 한 낚시광은 이사 가는 날, 식구들
한눈 판 사이 낚시터로 뺑소니쳤다가 부인에게 찍혀 평생 고생하고
있답니다. 특히 대어와 씨름하다가 놓친 경험담을 풀어놓을 때는 세상에
그런 영웅담이 따로 없습니다.
참 아름다운 낚시꾼 부자 이야기도 있습니다. 낚시가 평생의 취미였던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홀로 고향에 남아계시는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전갈을 들은 아들은 고민 끝에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낙향합니다.
이미 아버지는 병마와 싸우느라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보아하니 떠나실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버지께 아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혹시 꼭 해보고 싶은 소원 한 가지 있으세요?”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왜, 저기, 산 너머 강가 우리가 늘 가던 송어 포인트 있잖아? 거기
한번만 가보고 싶어.”
아들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습니다. 젊은 시절
기골이 장대했던 아버지였는데 너무나 가벼워서 아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윽고 키 큰 소나무 아래 깊고 맑은 여울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송어 낚시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낚시채비를 준비하는
아버지의 손이 설렘으로 가늘게 떨렸습니다.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
낚싯대를 드리웠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큼지막한 생애 마지막
송어를 한 마리 낚았습니다.
아들은 맑은 개울물로 녹차를 끓여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숯불을 피워
아버지가 직접 잡은 송어를 구워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송어 한 마리를 남김없이 다 드셨습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오랜만에 아무런 통증 없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편안한 얼굴로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곤히
잠들었습니다. 아들도 그런 아버지 옆에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들이 눈을 떠보니 아버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에는 희미하나마 흐뭇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 비유 말씀도 ‘고기잡이’에 관한 비유말씀입니다.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 어부였던 사람들이 여럿이었으며 갈릴래아 호숫가를
배경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기잡이 비유는 훨씬 현실감 있게
와 닿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은 구체적이고 또 명료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알아듣기 쉬웠습니다. 오늘 비유 말씀을 천천히 묵상해보니
낚시 갔을 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전문 낚시꾼들이 낚시를 할 때는 우선 ‘대상어’를 선택하고 거기에 맞는
채비를 준비합니다. 낚싯대며 미끼며 물때며 노리는 고기를 잡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낚시꾼들이 주로 노리는 고기는 민물 같으면 붕어이죠. 또 루어낚시로는
베스입니다. 바다로 나가면 대상어는 돔이나 농어, 광어나 우럭입니다.
그리고 다들 노리는 것이 잔챙이가 아니라 팔뚝만한 월척입니다.
운이 좋아 큰 녀석들이 올라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습니다. 콧노래가 끊이지 않습니다. 환한 얼굴로 잡은 묵직한
고기를 어망에 넣어둡니다.
그러나 주로 올라오는 녀석들은 원하지도 않는 녀석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손가락만한 복어새끼며 미끼만 신나게 따먹는 놀래미 새끼들, 피라미
녀석들입니다.
그런 녀석들이 올라오면 낚시꾼들은 다들 재수 없어 합니다. 바늘에서
빼자마자 멀리 던져버립니다.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다신 올라오지 마라,
좀 더 커서 와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부들이 그물에 잡힌 고기들을 크기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분류하는
것처럼 세상 종말에 우리도 그렇게 분류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낚싯대에 걸린 대어가 되어야겠습니다. 낚시 바늘에
걸려 올라온 우리를 보시고 하느님께서 흐뭇해하실 큰 물고기로
성장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보시며 반겨주실 큰 물고기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묵상해봐야겠습니다.
돈보스코 탄생 200주년 기념
제 3차 돈보스코 성지 순례 단원 모집
일시: 2013년 12월 27일(금)~2014년 1월 7일(화)
참가 인원: 인솔자 포함 30명
인솔자: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외 살레시오 수도자들
문의 및 신청: 02) 828-3525, 828-3515, 010-6817-9484
돈보스코 성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에서
기획한 돈보스코 성지 순례가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게 됩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 알차고 의미 있는 순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여러 성인들 영성의 진원지를 여유 있게 피정처럼 순례하면서 진행될
것입니다.
돈보스코 성인의 땅 토리노와 로마는 물론이고 성모님 발현지 루르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향기가 남아있는 안시, 프란치스코 영성의
언덕 아시시, 베네딕토 성인이 수도하신 수비아코 등의 도시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례할 것입니다.
교육계 종사자들, 청소년 지도자들은 물론 돈보스코를 좋아하는 사람들,
일반 신자들에게도 좋은 영성쇄신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 [기타]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2013년 다해 8월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련장은 지독한 습기와 싸우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 놓지 않고, 제습을 조금한 소홀히 하면 습기는
곰팡이와 함께 찾아옵니다. 방은 많고, 행사는 계속되고 며칠 동안
사제관 주방엘 가지 못했습니다. 어제 손님이 와서 잠시 갔더니,
습기는 벽 한곳에 곰팡이를 심어 놓았습니다. 8월의 첫날입니다.
우리들 마음만이라도 아주 맑고, 화창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1986년, 군대를 가기 전까지 신학교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외출도
일주일에 3번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부제님들은 자율적으로 외출을
하셨습니다. 학생들은 신협을 운영하였고, 도서구매반도 운영하였습니다.
저는 신협의 업무이사였기에 학교 매점을 운영했습니다. 자유롭게 토론을
하였고, 그 당시는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던
시대였습니다.
1989년, 군대를 제대하고 신학교에 복학했을 때는 ‘보통사람의
시대’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에게 독재라는 말을 쓸 수는
없었습니다. 신학교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하던 것들은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도서구매반도,
신협도 없어졌습니다. 학생들의 외출도 횟수가 줄었고, 저학년은
아예 외출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제님들도 허락을 받아야 외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참 자유롭게 신학교 생활을 하던 제게는 왠지
낯선 분위기였습니다.
원감신부님은 복학생들의 면담을 하였고, 면담 때는 심도 있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저도 긴장을 하면서 면담을
하였습니다. 예전의 면담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었는데 당시의
면담은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제게 질문한 것은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였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아닌가요?
그랬더니 신부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신학을 공부한 사람의 수준으로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제일 소중한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사랑을 하는 것도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것이고, 봉사를 하는 것도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것이고, 용서하는 것도 하느님 나라를 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반드시 많은
고난과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도 거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자유로웠던 신학교와 모든 것이 통제 되었던 신학교를
체험했습니다. 그 둘은 서로 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자유로웠던 신학교에 적응을 못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던 신학교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된 신학교를 이해하지 못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모내기를 하지 전에 벼는 모판에서 지내야 했고,
비닐하우스에서 보호를 받아야 했음을 이해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용문 수련장을 생각합니다. 공기가 좋고, 물이 맑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곳을 하느님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건물이 낡고,
벌레들이 많고, 서울 가려면 너무 멀고, 은행을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이곳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용문 수련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열매를 맺는 사람은, 이곳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은 아마도 이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느낄 것입니다.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언젠가는 끝(종말)이 있게 마련
2013년 다해 8월1일 성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종말이란 말이 교회에서 중요한 말이지만 세상에선 무시하고 맙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세상의 모든 건 물질이며 물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은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는 끝(종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사람들은 싫어하고 때론 거부도 부정도 하고 살지요.
교회 교리는 이 종말론을 유종의 미로 맞이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실을 마치 그림처럼 알기 쉽게 표현해 주심에 감사해야죠.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오 13,49~50)”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대구] 생선을 먹다가 …
‘광어 · 우럭 · 도다리 · 쥐치 · 농어 · 참돔 · 다금바리’ 이 생선들을 어디선가
보신 기억이 있지요? 횟집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다 같은 생선인데 어떤 건 비싸고 어떤 건 싸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건 바로 ‘맛’에 있습니다.
‘사람의 입맛’이지요. 사람들에게 맛있는 생선은 비싸고 맛없는 생선은 싼
것입니다. 사람들의 입맛이 기준이 되었던 것이지요. 기준에 의해 구분되는
것은 생선의 경우만이 아닐 것입니다. 생활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물에 가득 찬 고기를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도’입니다. 식용이든 관상용이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나쁜 것입니다. 똑같은 고기라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종말에 천사들이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는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를 생각하던 중 도움이 되는 성경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코린토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5장 10절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게 됩니다.”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는다니 뜨끔하지 않나요?
과연 지금의 나는 의인의 대열에 들 수 있나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으면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작은
웃음이라도 나눠주세요. 활짝 웃으며 스마일!
- 이수환 신부(대구대교구 원평천주교회) -
길 떠날 준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나요?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바꾸는 것이 두렵습니까?
하지만 길을 떠날 준비를 서두르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경험하세요.
- 안젤름 그륀의《머물지 말고 흘러라》중에서 -
◈ [기타] 그런 사람 있습니다.
2013년 다해 8월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40장 16~21. 34~38절)
오늘 저와 다른 형제님들 몇 분이 장봉 공소 작업에 지원을 나가기로
했었습니다. 본당 형제님들이 기술이 많으셔서 기술적인 지원을 해
주는 것인데요. 하루 작업으로 조금 벅찬 양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첫 배를 타기로 약속을 하고 배터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휴가 기간이라
차가 아침부터 엄청 많더라고요. 탈 자리가 없어서 다음 배를
기다리는데요. 어떤 해양구조팀장이라는 분이 가까이 오시더니
‘장봉 가시냐.. 가시면 짐 좀 실을 수 있겠느냐..’ 고 물어 오셔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자리도 남아서 같이 타고 갔는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도면
해양구조 책임자라고 하시더라고요. 장봉에는 교대해야 해서
가는 거라고 하셨는데요. 회장님이 그분에게 ‘바다에서 그런 거
하는 건 봉사로 하는 거예요?’ 하고 물어보니,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봉사요? 요즘 먹고 살기도 힘든데 봉사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시더라고요. 그 얘기를 차 안에서 아무 보수 없이
봉사하러 가는 다른 네 명의 형제님들이 들으면서 ‘여기 있는데...’
하는 미소를 지으셨는데요. 그분의 이야기,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하는 이야기와 그런 일을 하러 가는 형제님들을 보면서, 새삼
‘형제님들의 봉사와 헌신이 작은 것이 아니구나.. 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 거 같은데요.
그 비슷한 모습이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이동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광야에서의 생활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막까지 지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은 그 누구보다도 크고 열정적인 것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불평과 불만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고 선택되었다는 이유로 남들이 안 하는 고생을
하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그 일이 야훼 하느님의 영광을
조금 더 가까이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거
같습니다.
그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아마 공소에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도 하지
않을 그런 일을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하나 만들어 내는 신자들
덕분에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이들이
조금씩 생기는 거 같습니다. 봉사 하러 왔다가 미사 보러 오는
분들도 있고, 놀러왔다가 미사 오는 분들도 조금씩 생기고, 오랜
냉담을 풀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구경하러 오는 분들도 있고, 신자여서 한 번 둘러보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분들이 한 번 둘러보면서 느낄 어떤 편안하고
소박하고 성스러운 느낌들.. 아마도 신자들이 성모 동산을 꾸미고,
성전을 짓고, 작은 공사들을 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헌신이 주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가
아니라 지금 공소 안에 아주 가까이 있는 분으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거 같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영광이 지금 여기에 드러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예비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강아지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얌전하고 조용하신 자매님이 “나는
강아지는 못 키우겠어..” 하자, 다른 자매님이 이렇게 쏘아붙이셨다.
“동물을 사랑해야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악하지 않아~
그러자 얌전하고 조용하신 자매님이 대답하셨다.
“나는 강아지 안 키워도 악하진 않은데...”
- 밤송이 신부님의 묵상 글 -
◈ [기타] 엉덩이와 같은 사람이 되자.
2013년 다해 8월1일 성 이냐시오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엉덩이와 같은 사람이 되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사람들이 심판받는 것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해주십니다. 물고기를 잡아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어부가 던져 버리듯 천사들도 세상 종말에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좋은 고기, 혹은 좋은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며칠 전에 엉덩이에, 아니 정확하게 항문 옆에 치루가 생겨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겨울에 첫 발병이 했는데, “괜찮겠지.” 하고 연고만 바르고
하였는데, 자꾸 안 좋은 증상이 일어나서 진료를 받았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엉덩이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였는데, 이번에 수술을
받으면서 엉덩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엉덩이는 궂은 일을 다 하면서도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엉덩이가 아프면 책도 읽기 어렵습니다. 공부하는데 늘 머리가 중요하고
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엉덩이가 아프니 한 시간도 책상에 앉기가
어렵습니다.
묵상기도도 쉽지 않습니다. 엉덩이가 무던히 견디어주어야 몇 시간이고
앉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세를 잡느라고 분심 중에 있어야
하고, 또 그리로 생각이 집중되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걷는 것도 어렵습니다. 걸을 때 엉덩이가 아프면 어기적 걸어야 하고,
빨리 갈수도 없습니다.
매일 가는 화장실 가는 일도 정말 힘듭니다. 변기에 앉아서 냄새가 나도
다 참고 묵묵히 견디어 내는 엉덩이는 인내의 천재입니다.
그러면서도 엉덩이는 자신을 알아달라고 전면에 나서지 않고 언제나
겸손하게 뒤에 숨어 있습니다. 또 살이 많아서 울퉁불퉁해도 다 참아
받으려 하고, 조금 불편해도 살이 무르기 때문에 저항하지 않고 적당히
적응을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 좌욕을 자주 하라고 하였습니다. 좌욕을 하면서
엉덩이에게 고마움을 많이 표현합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
그리고 네가 그토록 소중한지 몰라 미안하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 활동을 하고 자신을 과시하며,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당에서 묵묵히 궂은일은 다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려하지 않고, 언제나 겸손하게 하느님 곁에 머무는 사람이 바로
의인이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희망 신부님의 묵상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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