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카지노
남편은 펜션 여름 성수기가 끝나면 고생했다고 연례 행사처럼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고 한다.
참 오래전의 일이다.
어느 청명한 가을 날, 도로엔 코스모스가 피고 전형적인 옥색 하늘에 콧바람 쏘이기 좋은 날!
한국에도 카지노라는 곳이 생겼다고 해서 호기심 많은 나는 꼭 한번쯤은 구경하고 싶었다.
광산 경기가 좋을 때 정선군 고한읍에서 언니와 형부가 철물점을,
정선읍에서는 오빠와 올케가 포목점을 하면서 살았다.
언니, 오빠 집에 갈 때는 풍기에서 중앙선 완행열차를 타고 제천역에 내려서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거기서 또 증산까지 가서 한번 더 갈아타야 할 만큼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다.
다행히 제천역 플랫폼에서 파는 따끈따끈한 가락국수 맛은 전국에서도 유명했다.
가락국수 한 그릇씩 먹을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락국수의 그 맛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겨울이면 열차 안 난로의 연료가 조개탄이었다.
고물 같은 기차는 강원도 오지에 다 모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그래도 새록새록 생각나는 처녀 시절의 추억이 있던 곳이라 다시 가보고 싶었다.
정선 가는 길. 풍광이 아름다운 호젓한 국도로 달리는 기분은 처녀 총각 때만큼이나 가슴이 설렌다.
고한. 옛날에 까만 석탄물이 흐르던 개울가에 공중화장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볼일을 보면 자동으로 내려가는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그 시절의 풍경은 어디로 가고 바라보기에도 부담스러울 만큼
거대한 빌딩들이 라스베이거스를 방불케 하는 모습들이다.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하는 카지노. 우리도 한번 들어가 보자.
밤에 보면 황홀한 루미나르에 조형물이 있고 분수 쇼를 한다는 호수!
올라가면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물에 물레방아와 주변의 조경들이 운치가 있다.
입장권을 사기위해 줄을 서 있는데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하고 절차가 복잡하다.
입장료가 5천원, 왜 이렇게 비싸지! 혼자 중얼거렸더니 옆에 안내원인지
“비싸면 안 들어가면 되요"하고 퉁명스럽게 내 뱉는다. 완전 배짱이다.
공항 나갈 때처럼 가방의 소지품 검열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입장했다.
정신없는 소음 속에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묘한 눈빛의 인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살림을 포기한 것 같은 아줌마들도 수두룩했다.
여러가지 게임기가 즐비해 있다.
남편은 원하는 게임기 앞에서 당신 2만원 나 2만원만 잃고 가잖다. 하지만 나는 안한다고 했다.
남편은 게임기에 만원을 넣었는데 금새 돈이 빵원이 되었다.
또 만원을 넣고 몇번 작동을 하더니 또 빵원이다. 자기는 끝났다고
나에게 만원을 주면서 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만원이면 꽁치가 몇 마리인데...ㅋ
남편은 2만원 잃고 아쉬운지 "본전은 찾아야지!" 한번만 더한다는 것을 극구 말렸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지 다시 만원을 넣고 시작한다. 잠시 후 보너스 3만원이 뻥 터졌다.
3만원에서 몇 천원 붙기에 동작 그만! 하니 남편이 말도 잘 듣는다....ㅎㅎ
입장료까지 4만원 투자해서 3만7천원 환전했는데 3천원은 어디서 찾지?
음료수 무한리필 코너가 있는데 양껏 마시고 본전 찾아서 나가자~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라도 왠지 몇 번은 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카지노를 뒤로하고 나왔다.
돈 따서 회도 먹고 했으면 좋겠지만 크게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정선에 왔으니 우리 정암사에 가볼까?
천년고찰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정암사.
신혼 때 오빠네 집에 왔다가 들른 적이 있는데 너무나 고즈넉한 풍경에 반했던 곳이다.
요즈음 너무나 바뀌었다.
자연 그대로를 오롯이 느꼈던 옛 모습의 환상이 깨질 것 같아 그냥 동해 바다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음료수라면 평소 한잔도 잘 안 마시는데 본전 찾으려고 마신 음료수가 문제였다.
사방이 뻥 뚫린 도로에서 얼마나 자주 신호를 주는지 곤혹을 치른다.
소탐대실(小貪大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