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선비족.
이세민은 수백 년 동안 자신의 선조 즉, 선비족이 거대한 고구려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때를 떠올리며 이제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동이족의 일파인 오환과 선비족은 전통 유목민족이다.
흉노족의 지도자들이 자체 분란으로 전쟁에 패하여 북흉노는 서쪽으로 도망가고 나머지 한쪽, 남흉노의 지도자들은 한족과 결탁하여 만리장성 이남으로 자리를 옮기자, 또 다른 흉노의 일파인 선비족이 대흥안령 산맥의 북쪽에 위치한 선비산에서 남하 南下하여 초원을 지배한다.
선비산 출신이라 선비족이라 칭한다.
선비족은 신체가 크며 기세가 사납다.
유목민 특유의 특징을 대표하는 종족이며, 유사이래 有史以來 지속적으로 고구려의 지배를 받아 왔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고구려의 요구에 따라 용병 用兵으로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선비족은 말갈족과 거란족 등과 비교해 볼 때는 늘 대우가 시원찮았다.
그 이유가 같은 동이족으로 인정은 하지만, 변방인 북방 출신이라 하대 下待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에 불만을 품고 족장들은 고구려의 지배를 벗어나려 다각도 多角度로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거대한 고구려의 위력에 의해 계속 무위로 돌아갔다.
그들의 궐기 蹶起 계획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중, 그 선비족의 일부가 중원으로 진출하여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정권을 잡았다.
선비족 출신, 당 고조 이연과 그 아들 이세민의 중국 정복기 征服記다.
이제 중원을 정복하여 힘이 강성해지자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할 숙원 宿怨이 있다.
조상들인 선비족을 지배했던 고구려에 앙갚음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이유가 별도로 또 있었다.
관중과 중원을 모두 차지한 당나라.
이제는 동이족의 적자 嫡子를 가려야만 한다.
하늘에 태양이 둘이 있을 수 없는 이치다.
지금까지는 강성한 고구려가 모든 동이족의 적자로 즉, 선우(單于: 당시 유목민족은 왕 중의 왕을 선우로 칭함)로 자타가 공인해 왔다. 그러니 이러한 명성과 지위를 빼앗아 오든지 아니면, 멸망을 시켜야만 선비족이 북방의 실질적인 선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세민은 고구려 침범 사전에 백제를 멸망(660년)시키고, 뛰어난 지략과 용병술을 발휘하여 돌궐의 설연타를 굴복시킨 후, 동돌궐까지 복속시켰다.
그렇게 고구려의 우호 友好 국가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이제 북방의 유목민까지 모두 통합한 결과로 황제보다 더 위대한 칭호를 받게 된다.
천가한 天可汗이라 불리게 되었다.
역대 중국의 최고 통치자는 황제 皇帝 아니면, 천자 天子라 칭하였다.
‘인간을 다스리는 중앙의 최고권자’, 아니면 ‘하늘의 아들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천가한 天可汗’이라면,
하늘과 같은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그러니 하늘의 아들이 아니라, 자신이 곧 하늘이라는 의미다.
중원뿐만 아니라 만천하를 통합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남은 건 오직 고구려뿐이다.
중원을 넘어 막북과 서역의 일부를 차지하고는 이제 천하를 제패하려 한다.
그래서 서열을 가려 선비족인 당이 천하의 주인이자 동이족의 적자임을 만천하에 공표 公表하고자, 고구려 왕에게 ‘당 황궁에 입조 入朝하라’라는 제안을 몇 번이나 하였으나, 고구려는 이를 무시해 버린다.
고구려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들이 지배하였던 수많은 부족 중의 한 부족이 어찌어찌하여 중국 대륙을 통일하더니, 이제는 형 노릇 할 태세다.
가소롭기 짝이 없다.
당연히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당 황제로서는 두 차례의 대규모 원정에도 불구하고 패퇴를 당하였으나, 또다시 크나큰 위험을 무릅쓰고 고구려 정벌이란 최후의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연개소문의 사후에 그 아들들이 내분을 일으키자, 이를 이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 위험한 도박이 성공하였으니 그 기쁨은 말할 수조차 없다.
고구려를 멸망(668년)시킨 후, 승전의 축하연을 베푼다.
고구려 정벌의 일등 공신인 정벌군 총사령관인 80세의 노장군 老將軍 이적 대장군을 황좌皇座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별도로 자리를 만들어 승리의 축하주를 직접 따라준다.
이적 대장군은 고명대신 顧命大臣(전대 前代의 유훈 遺訓을 받은 신하)이다.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그러자 시녀와 무장들이 흥이나 어울려 검무 劍舞를 추고 있었다.
어느 정도 흥취 興趣가 오르자, 황제 이세민은 평소에 느끼고 있었던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가까이에 있던 대신 중, 무인 武人 출신 장군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역대 歷代 가장 강한 도검법 刀劍法이 무엇이라고 경 卿들은 생각 하시오?”
천하를 통일하였으니 이제는 네 것 내 것이 따로 없다.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 參羅萬像이 당 唐의 것이다.
모든 것이 당 황제 이세민의 것이니, 산천 山川과 인종 人種 가릴 것 없이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즉, 삼라만상 參羅萬像 모든 것의 선악 善惡과 우열 優劣을 공정하게 가려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객관적으로 판단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더구나 전쟁에 승리한 기념으로 자축하는 연회장이다.
나름 무예에 일가견 一家見이 있다고 자부하는 무장 武將들의 눈동자가 빛난다.
주거니 받거니 돌아가는 술잔과 더불어, 무신들의 입에서는 역대의 유명한 도 검법 刀 劍法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결론은 대다수의 무장 武將이 제안한 조선세법 朝鮮勢法으로 정해졌다.
이세민 황제도 적극 수긍 首肯한다.
“세상에 여러 도검술 들이 많지만 역시 조선세법만큼이나 위력적인 검법은 없을 것이요”
“그 조선세법 朝鮮勢法을 한번 구경하는 것이 짐의 소원이요”
전략과 무술에 상당히 조예 造詣가 깊은 당 황제 이세민이 극찬한 ‘조선세법’
검법의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단군조선 시대에 창안되어 동이족 사이에서 널리 사용하던 검법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명칭이 세법 勢法이다.
즉, 일반적인 현란한 기교 技巧를 부리는 검술이 아니라, 묵직한 힘을 바탕으로 하여 도법 刀法을 전개한다는 뜻이다.
‘도산검림 刀山劍林’이란 말도 있다.
수많은 무기가 산재 散在하여 위험스러운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 뜻이지만,
도는 산처럼 크고, 검 劍은 그 큰 산에 자라는 나무처럼 많이 들어차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도가 검보다 더 크고 위압적이란 것을 나타내고 있는 단어다.
위세가 대단한 것만큼 도의 길이도 길고 무게도 상당할 것이다.
당연히 도주 刀主의 힘도 세어야만 한다.
그러니 조선세법을 익히고 전개하려면 우선 신체가 커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이족의 동이 東夷와 일맥상통 一脈相通한다.
동이란 뜻이 동쪽의 큰 활(大弓)을 사용하는 대인 종족이란 의미이니,
유목민족의 동이족은 농경민족의 하화족과 비교할 시, 신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이족이 주변의 여타 종족에 비해 신체가 큰 이유 중, 하나가 단백질이 풍부한 콩을 선사시대 先史時代부터 섭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라고 하니, 신뢰성 높은 학설이다.
그러니 하화족과의 전투가 벌어지면, 일당백 一當百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당 人當 2~3인은 충분히 상대했을 거라고 볼 수 있다.
백만 대군이 몰려와도 3~4십 만 명으로도 거뜬히 물리칠 수 있었다.
좁쌀이 밤 세워 굴러가도 큰 호박 한번 구르는 것보다 못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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