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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8일 월요일 [(백)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도미니코 성인은 1170년 스페인 북부 지방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덕을 쌓는 데 몰두하던 그는 사제가 되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적인 설교로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다. 도미니코 사제는 1206년 설교와 종교 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도미니코 수도회를 세우고 청빈한 삶과 설교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강조하였다. 1221년에 선종한 그를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사제였던 에제키엘 예언자는 유배지인 바빌론의 크바르 강 가에서 환시 중에 주님의 발현을 본다(제1독서).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은 성전 세를 면제받는 게 당연하지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이 없으니 내라고 이르신다(복음).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성전 세 납부 문제로 논란이 일어납니다. 당시 스무 살 이상의 유다인 남자들은 성전 세를 낼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들이 세금을 자녀들에게도 거두느냐고 질문하시자, 베드로는 남들에게서만 받는다고 대답하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니 하느님께 성전 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지요. |
진리를 관상하십시오! 그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수도공동체! 하면 언뜻 생각하기에 다툼이나 분열, 상처나 괴로움은 전혀 없는 지상천국으로 상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수도공동체 역시 또 하나의 세상일 뿐입니다. 근본적으로 결핍된 존재들,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모인 수도공동체이다보니 그 안에서 구성원끼리 벌어지는 옥신각신, 티격태격, 아옹다옹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와 너무나 다른 너로 인해 상처입고 괴로워합니다. 반대로 그로 인해 또한 행복해지고 그와 더불어 성화의 길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고통도 당하고 십자가도 크지만 수도공동체, 그 안에서 성장도 하고 기쁨도 누리는 사랑과 증오로 섞여진 맛있는 비빔밥 한 그릇이 수도공동체인 것입니다. 이렇게 만만치 않은 수도공동체 생활 해나간다고 ‘쌩고생’하는 봉헌생활자들에게 참으로 큰 귀감이 되는 성인(聖人)이 한 분 계십니다. 스페인 태생의 명설교가이자 정통 가톨릭교회의 수호자이면서 도미니코 수도회 창설자이신 도미니코(1170~1221) 신부님이십니다. 도미니코회 역사 자료에 따르면 그는 언제 어디서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복음의 전달자라는 신원의식을 드러냈습니다. 낮 동안 동료들과 엮어가는 수도생활 속에서 그는 더없이 명랑하고 소탈했습니다. 얼마나 다정다감하고 붙임성이 많았는지 그의 주변은 언제나 그를 존경하는 동료 수도자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러다가 밤 시간이 다가오면 그보다 더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주 밤새워 기도하곤 했는데, 너무 열심히 기도하다보니 동료 형제들이 그의 기도소리에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덕행 중에 눈에 띄는 것 한 가지는 그의 과묵함입니다. 그는 수도공동체의 분열과 상처의 주원인이 되는 말을 지극히 아꼈습니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은 주로 이런 때였습니다. 하느님을 찬미 할 때. 형제들을 칭찬할 때. 하느님 앞에 형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드릴 때. 무엇보다도 도미니코 신부님은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그의 탁월한 인품과 높은 성덕에 감화를 받은 그 지역 교황대사가 몇 번에 걸쳐 그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 마다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교직에 오르기보다는 공동체 형제들과 더불어 겸손하고 가난한 한 수도자로 남기를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도미니코 신부님이 살아가셨던 12~13세기는 교회, 정치, 경제적으로 급변하던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발달, 여러 국가들의 출현이 있었지만 그에 따른 빈곤층을 양산했습니다. 십자군은 이슬람과의 끝도 없는 전쟁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이런 저런 이단으로부터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 청빈주의, 극단적 금욕주의를 지향하는 이단들이 성행했는데, 알비 지방의 카타리파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선물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가 바로 도미니코 신부님이셨습니다. 도미니코 신부님은 여러 이단들로부터 가톨릭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통 교리에 능통한 설교단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유능한 설교자들로 구성된 도미니코회를 창설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정통 가톨릭 신앙의 파수꾼으로서 선봉에 선 도미니코회 회원들은 언제 어디서건 누군가의 회개를 위해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갑니다. 그들의 모토인 ‘진리를 관상하십시오! 그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에 따라 밤낮없이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공부하고 그 깨우친 바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도미니코 신부님께서 남기신 모범 가운데에서 오늘 날 우리 사제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말로서 만의 설교’가 아니라 복음 선포자가 먼저 복음대로 살아감을 통해 가르치는 ‘행동이 뒷받침되는 설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설교의 배경에는 늘 깊은 하느님과의 일치와 기도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한 때 우리나라에서 일부 종교인들의 사치스런 삶이 쟁점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백 평이 넘는 빌라에서 살고 삼억이 넘는 자가용을 타고 별장까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신도들이 주는 것이라 말하고, 다윗이나 솔로몬, 예수님도 다 부자셨다며 자신들의 사치를 정당화합니다.
그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예수님은 당신은 머리 누일 집도 없으셨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느님나라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 하시고, 하느님나라가 가난한 이들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방송이 되자, 많은 국민들이 종교인들도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도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뜨끔하였습니다. 미사예물과 활동비 명목으로 한 달에 백만 원 정도의 돈을 받고 있기는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세금을 내본 적이 없었습니다.
역시 불교와 개신교의 많은 종교인들은 세금 내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합니다. 나름 소신 있게 주장하는 내용이, 신성한 일을 하는데 왜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받는 돈들이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수입 명목일 때는 세금을 내야하는 것이 더 당연할 것입니다.
저는 나중에 다른 신부님께 우리도 세금을 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제들은 이미 세금을 내고 있다는 하셨습니다. 교구청에서 일률적으로 내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법적으로는 내지 않아도 되지만 굳이 문제가 되고 싶지 않기에 내기로 결정하였고 이미 오래전부터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찌 보면 같은 종교인으로서 다른 종교의 종교인들을 배신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 법적으로 안 내도 되는 것을 왜 내며 신자들이 낸 교회의 돈을 축내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안 좋은 인상을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어리둥절해서 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성전 세를 거두는 사람들이 “당신의 스승은 성전 세를 내십니까?”라고 물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미리 아시고 베드로가 물어보기도 전에 예수님은 당신은 성전 세를 낼 필요가 없는 사람임을 설명해주십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느님께서 사시는 집이고 하느님의 아들이 그 집에 산다고 하여 아버지께 돈을 바칠 필요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일을 하는 예수님이나 그분의 제자들이 성전에서 돈을 받는 것이 더 합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예수님은 꼬치꼬치 따지지도, 그들을 설득시키려 하시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낚시를 하여 물고기 입에서 나오는 돈으로 당신 것과 베드로 것을 내라고 하십니다. 즉, 그런 식으로 쓰는 돈은 내 지갑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성전을 위해 내는 돈이란 것 자체가 하느님보시기에 좋은 것이고, 또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이었기에 하느님께서 다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자전거나 자동차의 타이어에는 공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고무만으로는 충격을 온전히 흡수할 수 없어서 고무 안에 공기를 넣을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훨씬 충격이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우리 안에 충격 흡수를 위한 공기를 지니고 살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손해나는 일 같아도 작은 일들은 그냥 접어 넘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작은 일에 갈등을 불러 일으켜서 큰일까지 망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일로 받는 스트레스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것입니다. 죄가 되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굳이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갈등을 빚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시기로 결정하신 때부터 하신 모든 일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습니다.그러나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죄로 우리의 모든 고통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꼬치꼬치 따지며 사는 것도 좋기는 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는 손해 보지 않으려는 자신의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피할 수 있는 분쟁은 피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Payment of the temple t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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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8일(월) 음7/6 聖 도 미 니 코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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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파 이단(미사나 성사를 거부)과의 싸움 과정에
설립자 성 도미니코 님이시여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