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名唱1
허 열 웅
높고 낮은 음표들이
초록의 나라에 모였다
숲에서
노래자랑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새들도 청중
뭉게구름은 하늘에 두 귀를 걸어놓고
무심히 지나던 낮달도 멈춰있다
새벽 이슬로 목을 적신 무리들이
가슴으로 쓴 서정시 토해낸다
지휘자없는 오케스트라가 연주되고
득음을 한 여름 햇볕이 갈채를 보낸다
7일을 노래하기 위해
7년을 어둠 속에서 갈고 닦은 솜씨가
70년 넘은 가슴을 온통 흔들고 있다.
(필자 졸시 ‘명창名唱’)
다산 정약용은 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숲 속에서 매미 우는 소리 듣기와 달밤에 시냇물에 발 씻기라고 했다. 맴맴매엠... 쓰르람 쓰르람...매미가 하소연 하듯 감정을 섞어 노랠 부른다. 땅 속에 오래 있다가 밖에 나와 눈이 부셔서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하기야 기다림에 얼마나 서러웠을까, 7년이 넘는 세월을 땅 속에서 살다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느 누가, 어느 무엇이 이토록 긴 시간을 참고 견디겠는가? “거기 누구 없어요? 내 노래를 들어보세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랍니다. 목 놓아 마음껏 외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랫동안 적막하고 외로웠던 날들의 기억을 쏟아내듯 푸른 숲을 흔들고 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의 노래를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애절한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아파트 17층이다. 베란다에 키가 좀 큰 나무 몇 그루 기르다보니 매미가 나무에 앉으려다가 들어오지 못하고 방충망에 앉아 우는 때가 많다. 나는 대나무 돗자리를 깔고 누워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을 읽다 말고그 노랠 듣는다.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소리의 음향은 그 재료에 따라 다르다.
명주실이 떨리는 소리는 옹글고, 말총이 떨리는 소리는 무겁고, 갈대가 흔들리는 소리는 가볍고, 눈 위를 밟는 설피소리는 뽀득거린다. 어머니가 두드리던 다듬잇 소리는 또렷또렷 박자를 맞추며 초가집 울타리를 넘어 멀리멀리 퍼졌다. 그 소리는 듣는 사람들의마음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는 매미 소리를 들으면 우선 시원한 바람소리로 들린다. 높고 낮은 음을 낼 때마다 합죽선合竹扇을 흔드는 것처럼 시원함을 느낀다. 그럴 때면허공 속을 조용히 흔드는 바람의 빗살무늬도 보인다. 오늘도 저음으로 시작하여 고음으로 치솟다가 스러져 그늘 속으로 흩어진다.
소리는 세월 따라 세상 따라 닮기도 하는 모양이다. 방학숙제인곤충채집을 위해 매미채를 갖고 어릴 때 듣던 매미소리는 아늑하고조용했다. 깨금발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도 어느 새 뚝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시끄러운자동차 소음은 물론 사람들이떠들어도막무가내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가까이 가도잘 날아가지 않는다.매미의 노래는 암컷을 유혹하기위해서라고 한다. 소리가 클수록 암컷들이 호감을 갖는다고한다. 짧은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뜨겁게 목 놓아 크게 울어야만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옛 우리 조상들은 매미에게서 여러 가지 德을 가진 선비의모습을 관찰했다고 한다. 첫째는 곡식이나 채소를탐하지 않으니 염치가 있고, 둘째는 다른 곤충과는 달리 집을짓지 않아 검소함이 있고, 셋째는 이슬만 먹고 사니청렴결백하고, 넷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친 백성을 위로하는 것 등이었다. 매미는 섣불리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참을성 있게 기다릴 줄 아는인내력을 존중해서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사람들은 매미처럼 느긋하게 기다릴 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낱말은“기다림”이라 했는데 나는 여유 있게 기다리고 뜸들이기보다는지명수배자 처럼 쫒기 듯 살아온 것 같다. 숭고한 인내심으로 태어나 찰나의 일생을 치열하게 사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생멸을 부딪쳐가며 펼쳐지고 또 흘러간다. 매미소리는 삼복의 뜨거운 허공을 흔들다 덧없이 소멸한다.
8월의 무성한나뭇잎사귀를 흔드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마지막 울음을 토하는 매미울음 소리다. 여름을 흘려보내는 매미가제 노래에 귀가 타들어가도록 밤늦게 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열대의 밤을 뒤척이며 먼 옛날 곤충채집 숙제를 하기위해 매미의 등에다 핀을 꽂을 때 바르르 떨던 슬픈 날갯소리를 이명耳鳴으로듣는다. 일주일이라는 평생을 노래 한 곡으로 마감 하며 투명한 옷자락을 나무에 걸어놓고 미련 없이 떠나가는 매미의 아름다운뒷모습을 본다. 아직도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미늘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나를 볼 때 세월이 늘 인간의 의식을 성숙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하루살이는 저녁을 넘기지 못하고 매미는 봄가을 모르고 삶을 마감한다. 칠십년의 연륜이 쌓인 나를 뒤돌아보면 어정쩡하게 빗나가는 일기예보처럼 살아온 내 모습이 부끄럽다. 비는 주춤했지만 날씨는 눅눅하고 몸은 찐득찐득하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지도 모르겠다. 이제 얼마 있으면 장마가걷히고 폭염이 마지막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때 조용히 찾아올 매미의 명창을 들으면서 그가 우리에게 준 교훈‘기다림의 미학’과 ‘참 선비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첫댓글
자연을 노래한 시
읽는 이의 마음도 또한
자연이어라
큰 울림의 내공이 깊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