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몸살 앓는 PD수첩 피디들 |
“업무방해는 우리가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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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크게 떨어졌다. 국경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조사 국가 179개국 중 69위를 차지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은 분명해 보인다. 김제동이 ‘짤리고’ 100분 토론에서 손석희씨도 물러났다. 그러나 손의 주인, ‘드러난 얼굴’은 없다. 그러면서 언론자유를 지키겠다며 맨얼굴을 드러낸 ‘바보’ 같은 이들의 고통은 계속 되고 있다. <시사IN>은 MB시대 ‘언론 난민’을 만났다. | 이춘근 PD는 방송 편집실 대신 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11월4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19법정.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로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 기소된 PD수첩 제작진 5명에 대한 세 번째 공판이 속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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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PD수첩 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까? 사진은 지난해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반론보도 청구 소송 선고 공판 장면. | 오후 2시에 시작한 재판은 이날 저녁 8시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법원을 나서는 이 PD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금요일 방송 예정인 프로그램의 편집을 끝내지 못하고 법원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 PD는 현재 'W'를 맡고 있다. “밤새워 편집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하는 이 PD는 전날도 밤을 샜다.
이 PD는 “어른들이 ‘화병 난다’라고 말하는 게 이런 느낌인가 보다. 답답한 법정 안에선 피곤해도 잠이 안 온다”라고 말했다. 6시간이 넘는 공판이 끝나고 나온 이 PD를 비롯한 제작진 5명은 “업무방해는 우리가 받고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서초동 법원을 나선 제작진들은 다시 여의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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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 4월 MBC본사를 압수수색하려다 기자와 PD 등 MBC 노동조합의 반발로 포기했다. | 지난해 4월29일 MBC PD수첩은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내보냈다. 정부는 PD수첩 제작진들을 ‘촛불의 배후’로 지목했다. 검찰은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 등 피해자의 고소 없이 수사를 시작했다. 명예훼손 사건은 피해자가 고소 등 처벌의사를 밝혀야 처벌이 가능한 ‘반의사불벌죄’이다. 그런데도 정식 고소도 없이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결국 정 전 장관은 수사가 한참 뒤인 지난 3월에야 정식 고소를 했다. 이에 앞서 전담수사팀을 지휘하던 임수빈 부장검사는 “헌법에 비춰볼 때 기소는 무리이다”라며 사표를 냈다. 임 부장은 ‘공안통’으로 잘 나가는 엘리트 검사였다. 엘리트 검사가 자신의 인생과 맞바꾸며 주춤했던 사건은 수사팀이 바뀌면서 급물살을 탔다. 지난 3월25일 이춘근 PD 체포를 시작으로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김은희 작가의 개인 이메일을 압수수색해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결혼한 이춘근 PD의 ‘달콤한 신혼생활’은 체포·압수수색·재판으로 얼룩졌다. 이 PD는 “대학 때 운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 경찰서 한 번 안 가고 졸업했는데 어쩌다보니 서른다섯 살에 수갑을 차봤다”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보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남들은 깨소금이 쏟아진다는 신혼 때, 그의 신혼집은 압수수색을 당했다. 재판 때문에 아기를 가지려던 계획도 잠시 미뤘다.
그는 법원 출석을 위해 평소 입지 않는 ‘양복’을 꺼내 입었다. 이 PD가 양복을 입고 방송국에 나타나면 동료들은 ‘오늘이 재판 날’임을 안다. 이 PD를 만나는 동료 선후배들은 “잘 하고 오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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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장일호 김보슬 PD(왼쪽)와 김은희 작가(오른쪽) | 결혼식을 앞두고 체포됐던 김보슬 PD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출국금지를 당해 가지 못했던 신혼여행에 대해 묻자 김 PD는 “재판 때문에 물 건너갔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예전에는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게 유일한 목표였는데, 이제는 재판을 이기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방송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PD수첩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다른 프로그램들을 맡고 있지만, ‘정상적’으로 일하기가 쉽지 않다. 이춘근 PD는 “한창 일할 나이이고, 다루고 싶은 아이템도 많은데 법정에 불려 다니다보니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무리하면서까지 기소를 한 게 결국 일을 못하게 하려는 의도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김보슬 PD도 “재판이 어떻게 끝나든 정부가 의도한 효과는 제대로 거둔 것 같다. 지금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시사프로그램이 있나? 정부 비판하면 이렇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본보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촛불’은 꺼지고 ‘광우병 논란’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제작진들은 소송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다. 민사소송 6개와 형사소송 1개, 모두 7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민사소송은 변호인단이 대리할 수 있지만, 형사소송은 피고인들이 직접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출석만 하는 게 아니라 제작진들은 변호인단을 도와 재판을 준비해야 한다. 이춘근 PD는 “법적 대응을 위해 방송할 때보다 더 깊이 공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은희 작가는 “광우병에 대해 새 프로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조능희·송일준 PD 등 5명의 제작진이 돌아가며 재판을 준비해 그나마 부담을 덜었다.
이날 공판은 수의학 및 병리학 전문의를 비롯해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관리본부 관계자 등 증인 7명이 참석했다. 변호인단 쪽 증인 3명과 검찰 쪽 증인 4명은 ‘다우너 소’의 광우병 진단 여부 및 사람과 소 사이에 ‘종간 장벽(다른 종의 생물끼리는 바이러스가 잘 전염되지 않는 현상)’의 존재여부를 두고 다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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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장일호 시사 교양프로그램인 W를 편집하고 있는 이춘근 PD | 여의도로 발걸음을 옮기던 이춘근 PD는 “두 차례 재판에서 검찰이 허위사실로 지목했던 축이 많이 무너졌다.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12월2일, 민동석 외교통상부 외교역량평가단 단장,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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