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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세렛트 3
창세기 39: 6-9
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7.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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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12아들 가운데,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야곱은 요셉을 편애하였다.
요셉은 모두 자기에게 절하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형들은 이런 요셉을 시기해서 죽이려 하지만, 마음의 변화로, 애굽의 대상에게 노예로 팔아버린다.
그래서 야곱의 귀염둥이 요셉은, 하루아침에 이국만리에서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다.
부모님의 인자한 모습을, 이제는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애굽에서 노예가 된, 젊은 청년 요셉은, 갖은 교태를 다 부리며, 남성을 뇌살 시키려는, 요염한 젊은 여주인의 유혹을 받았다.
7절을 보면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은 유혹받았다.
1. 유혹
사람이 가장 극복하기 힘든 시험은, 고난이 아니다.
견디기 어려운 시련도, 고통스러운 질병이나, 사업의 실패도, 사랑의 실패도 아니다.
시련을 잘 견디는 사람도, 유혹 앞에 쓰러지는 경우가 많기에, 가장 무서운 시험은 유혹이다.
그래서 영국의 비평가이며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은 "역경은 인간이 견뎌내기 힘들다. 그러나 역경을 견뎌내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번영을 견뎌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했다.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였던,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오직 유혹만은 빼놓고, 무엇이든지 다 뿌리칠 수 있다."
유혹을 뿌리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말이다.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들도, 유혹 앞에서 쓰러졌음을 볼 수 있다.
삼손은 혼자 힘으로, 블레셋 3천명을 죽인 영웅이지만, 여인들의 유혹 앞에서 넘어졌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었던 다윗은, 한 여인의 목욕 장면에 쉽게 유혹되고 말았다.
유혹은 여러 가지다. 돈의 유혹, 잠의 유혹, 놀이의 유혹, 음식의 유혹… 너무도 많지만, 20대 젊은청년 요셉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유혹은, 이성에 대한 감각적인 유혹이었다.
더구나 요셉은 강제로 팔려온 노예이기에, 애굽 땅에 가족도 없다.
고향을 떠나, 이국 땅에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무엇인지 모른다.
타향에 온 사람은, 주변에 붙들어 줄 사람도 없고, 눈치볼 사람도 없다.
그래서 고향을 떠난 사람은, 유혹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런 그를 향해, 남편이 내시인, 성에 굶주린 한 여인이 다가왔다. 정말 넘어지기 쉬운 유혹이었다.
현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힘을 잃어 가는 이유는, 유혹 앞에 너무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시대는, 성에 대한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성해방시대'에 와 있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것들이, 성에 관련된 것들이기에, 성의 자극과 유혹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문화, 문학, 예술, 영화 같은 영상매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이 거의 다, 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탄이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성적 유혹이다.
여학생들 가운데 성적 타락으로 임신하고, 낙태를 시키려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1) 유혹은 어떻게 오는가?
유혹은 장점을 타고 온다. 6절을 보면,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고 했다.
준수하다는 말과 아담하다는 말은, 둘 다 아름답다( )는 말이다.
히브리 말은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반복해서 사용하면 강조다.
그러므로 대단히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유혹을 받게 되었다.
탈무드에는,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어느 날, 애굽의 고관 집 부인들이, 보디발 장군 집에 점심을 먹으러 모였다. 식사 후에 보디발의 아내가, 이 귀부인들에게 진귀한 과일을 대접하면서, 과도도 각자 하나씩 쓸 수 있게 내놓았다.
그때 너무도 잘 생긴 노예 청년 요셉이, 시중을 들기 위해 들어오자, 다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모두 그 쪽을 쳐다보는 바람에, 귀부인들이 들고 있던 과도에, 모두 다 손을 베고 말았다.
그때 보디발의 처가 깊은 한숨을 쉬며 "이것이 내가 날이면 날마다, 당하고 있는 고통이라"고 했다.
요셉이 잘 생기지만 않았어도, 보디발의 아내의 눈에 띄지도 않았고 유혹도 없었다.
외모가 빼어나고 잘 생긴 사람들은, 외모를 통해서 유혹을 받는다. 돈 많고 풍족한 사람들은, 재물 때문에 유혹을 받고,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은 직책 때문에 유혹을 받는다.
축복은 사명이다.
축복을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유혹에 빠져, 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축복을 살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축복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돈, 좋은 머리, 건강을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사용하라.
① 처음에는 눈짓을 했다(7). 영어성경에는 윙크했다고 번역했다.
타락의 출발은, 눈으로부터 온다. 성적 타락은 보는 것을 통해서 온다. 안목의 정욕이다.
그러므로 봐야 할 것을 보라. 나쁜 장면을 보고 끙끙거리지 말라. 눈에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② 동침하자고 요구한다(7).
매우 간단한 말이다. 유혹은 언제나 강하면서도 짧다. 복잡하지 않다.
아주 간편하고,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은 명령이다. 이유가 필요 없다.
또한 이 말 속에는 "네가 나의 원대로 하면, 미래가 보장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미래를 걸고 아주 달콤하게 찾아들고 있다. 달콤할 뿐만 아니라, 아주 무서운 유혹이다.
만약 이 명령을 거절하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
신분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왕따를 당할까봐, 친구들과 함께 범죄하는 경우가 많다.
담배를 펴보라며, 술 한잔 하자고, 원조교제를 하자며, 친구들이 유혹한다.
군인들이 집단으로 유흥가에 갈 때, 혼자서 가지 않겠다는 것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여기서 성도는 왕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도 왕따를 당하셨다.
③ 유혹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10절에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이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날마다' 졸랐다. 얼마나 지속적이고 끊임없는지 알 수 있다.
2. 유혹을 뿌리침
그런데 8절을 보면, "요셉이 거절하며(바예마엔 )…" 여기에 살세렛트 기호가 붙어있다.
'거절한다'는 말은 강조형으로, "(유혹을) 단연코 뿌리치다, 완강히 거절하다, 딱 잘라 거절하다"는 뜻이다. 그는 안 돼요, 돼요…가 아니라, 단연코 딱 잘라 거절하였다.
니코스 카잔스키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책을 써서 많은 돈을 벌었다.
이 책에서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산다는 내용이다.
인간 요셉도, 성적 유혹을 물리쳤는데, 왜 예수님께서 그런 허무맹랑한 유혹에 빠졌겠는가?
당시의 애굽은, 성도덕이 문란했으며, 노예는 인격이 없는, 짐승 취급을 받았다.
또한 노예는 주인의 마음대로,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었다.
주인의 말을 거역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지만, 주인의 말을 잘 들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요셉은 주인의 후환이 두렵기에, 마지못해서 거절함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여주인을 꾸짖으며, 유혹을 냉정하게 물리쳤다.
맞선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은데 불만을 품고, 홧김에 세워둔 차에 불을 지른 사람이 구속당했다.
신문을 보면, 홧김에 바람피고, 불지르고, 싸움하고, 차를 받고, 농약 마시고 죽은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노예로 팔려온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고, 홧김에 유혹에 넘어갈 수 있었지만, 유혹을 이겼다.
(1) 피끓는 청소년 시기에, 요셉은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나?
청소년 시기에 가장 이기기 힘든 유혹을 이길 수 있다면, 그는 큰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요셉은 유혹을 뿌리치고 이김으로, 그는 총리대신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본문을 생각하고, 깊은 의미를 뽑아 내야 한다.
어떻게 요셉은, 이러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는가?
이국만리 타향에서 이 유혹을 뿌리친 힘은, 신앙과 교육의 힘이었다.
청소년 범죄를 막는 길은, 부모에 의해 어릴 때부터, 철두철미하게 신앙교육을 받는 데서 가능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하는 일은,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2) 그러면 교육이란 무엇인가?
공부를 잘 해서, 성적이 올라감이 교육이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교육이다. 9절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나님 앞에서 행동함,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바로 지식과 지혜의 근본(잠9:10)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례를 멸시하느니라"(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게 만듬이 참교육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 그래서 자기 멋대로 행하기에, 죄를 짖게 된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 타락이다.
성도도, 목사도, 일반인도, 대통령도, 그 누구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참 교육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가짜 교육이다.
하나님을 두려워 함을 구약에서는 '경외'라고 하였고, 신약에서는 '경건'이라고 하였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함과, 경건의 능력이 없으면, 세상이 주는 시험을 이길 수 없다.
지식으로, 권력으로, 돈으로는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유혹을 이기는 힘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경건에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무엇하나?
지난 6월 13일, 멀쩡한 대학생이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학원장인 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하고, 범행 은폐를 위해 시체와 집에 휘발유를 끼얹어 불을 지른 뒤, 친구 집으로 달아나 알리바이까지 조작했다.
아들도 좋은 대학을 다니지만 "명문 S대를 졸업한, 아버지의 권위적 엘리트의식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고, 오래 전부터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몰라도, 그저 좋은 대학만 가면, 좋은 교육이라고 한다.
어리석은 백성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기준을 삶고 살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 되는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
프란시스 쉐퍼는, 타락의 가장 무서운 원인은, 분명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악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각자 자기 생각이 기준이 된다. 자신의 꾀로 살아간다.
많이 배웠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더 무서운 사람이 된다.
굉장히 지능적인 큰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망치는 사람들은, 똑똑한 분들이 아닌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자녀들을 학원과 과외로 그렇게 돌리면서, 성경공부를 위해서는 과외를 하지 않는다.
영혼이 지식만 못한가?
학원에 안가면, 혼내면서, 왜 수련회를 가지 않으면, 그냥 놔두나?
머리털을 뽑아서라도 보내야 한다.
경건의 능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세상이 주는 시험을 이길 수 없다.
지식으로, 권력으로, 돈으로는,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유혹을 이기는 힘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경건에 있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요셉은,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① 듣지 않았다(10). 귀를 막아 버렸다.
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았다. 좋지 않은 소리에는 귀를 닫았다.
전도해 보면, 어떤 분은 믿음의 소리는 듣지 못하고, 꼭 시험들을 소리만 골라서 들었다.
어느 목사가, 장로가 무슨 나쁜 짓을 했더라. 우리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분들이 그리스도인인데, 왜 나쁜 정보만 듣는가? 귀가 복되지 못해서 그렇다.
나쁜 소리를 듣지 말라. 죄의 가능성을 끊어버려라.
② 같이 하지 않았다(10). 피했다. 조금도 타협이 없다.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죄 지을 수 있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왜냐하면 정욕이 지배할 때,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탄은 사람들을 망각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욕의 불은 한 번 붙으면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시험은 싸워서 이겨야 한다. 그러나 유혹은 거절하거나 도망해야 한다.
요셉은 거절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도망하였다(8).
요셉은 유혹을 이기는 방법을 정도로 가고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NO"라고 해야 할 때, 과감히 "NO"라고 말해야 한다. 요셉은 그렇게 했다.
그래도 유혹은 그칠 줄 모른다.
10절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유혹의 강도가 아무리 강해져도, 요셉은 거기에 맞춰서, 강하게 대처한다.
날마다 다가오자, 이번에는 함께 있지도 않았다. 유혹이 강하면 거절도 강해져야 이길 수 있다.
함께 하지도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하지만, 또 함께 하면 안될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요셉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올바른 교육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쁜지 알려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중한 보물, 자녀들을 주셨다. 이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아이로 교육하자.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게 하는 자녀로 만들자.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말라.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