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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통하여 성장하자.
성경본문: 잠언 12: 1-14
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2.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3.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5. 의인의 생각은 공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궤휼이니라
6.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7.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패려한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9. 비천히 여김을 받을찌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체 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10.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1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12. 악인은 불의의 이를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14.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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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어른들은 이 세상을 고해 바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그 고해 바다에 떠있는 일엽 편주와 같다고 합니다. 지극히 작은 배 한 척이 망망 대해에 떠서 항해하고 있는데 항해하다 보면 어떤 때는 고요한 바다로 순풍에 돛을 단 듯이 미끄러져 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금방이라도 삼킬 듯한 한 넘실거리는 파도와 싸우며 항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파도와 싸우다 어떤 배들은 파선하기도 하고 어떤 배들은 다행스럽게 피하여 항구까지 들어오는 배들도 있습니다. 오늘 대선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시는 여러분들은 이 고해 바다를 항해하시면서 주님의 은혜로 파선 당하지 않고 저 천국까지 성공적으로 항해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풍랑을 만나고 파도를 만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통을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오늘 본문에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요, 훈계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잠3:11-12에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5:11-14에 보면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하노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그 종말이 비참하게 된 사람이 후회 막심해서 울부짖을 것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잠9:7,8에 보면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징계하는 자도 도리어 흠을 잡히리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거만한 사람을 책망하면 책망하는 사람이 도리어 화를 당할까 두렵다고 말씀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을 책망해야 효과가 있지 어리석고 거만한 사람은 책망해도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새 어른들이 길거리를 가다 학생들이 잘못하는 것을 보고 "야, 너 그러면 안 된다"하다가는 욕을 당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이 그런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잠13:24에 보면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라고 했고, 잠13:24에 보면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고, 잠15:5에 보면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잠15:12에 보면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라고 했고, 잠19:18에 보면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 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망 있는 아들을 징계해야 바로 되지, 소망 없는 자식은 징계하면 오히려 빗나간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잘못되면 초달을 해서라도 바로 잡아 주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 징계, 훈계는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남을 충고하고 잘 못된 것을 책망할 때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때에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내 아들이 잘못 행할 적에 부모는 매를 때립니다. 내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의 아이가 잘 못 행하는 것을 보면 혹 욕은 하고 지날지 모르지만 때리거나 책망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도 아니고, 사랑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징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징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무사르'(musar)인데, 과실을 범한 자에 대한 처리를 뜻하는 것이지 형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사랑하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나갈 때, 혹은 잘못된 길로 나갈까 봐서 부모가 훈계하고, 때리고, 책망하고, 혹은 채찍으로 매를 드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는 분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런 고통을 겪고 어떤 분은 말하기를 "목사님, 이번에 하나님께 되게 맞았습니다"라는 말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내가 당하는 어려움은 하나님께 얻어맞은 것이고, 그 일로 내가 정신이 들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갔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복 받을 사람입니다. 되기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의 경우도, 부모한테 꾸지람을 받거나, 야단맞고 얼굴이 시뻘개서 머리를 벅벅 긁고 매맞은 자리를 툭툭 치면서 "에이, 아버지한테 혼났어! 혼났어"하는 아이가 있는데, 이건 바로 되는 아이예요. 반대로 잘못해서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았는데 원망을 하고 투덜거리고 불평하면서 "어, 내가 뭐했는데 때려"하는 아이가 혹 있는데, 이건 소망 없는 아이입니다.
징계란 성경이 말씀하는 것처럼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때려 보셔서 아시겠지만 자녀들을 때릴 때 매맞는 애가 아픕니까, 때리는 부모가 아픕니까? 부모가 아픕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할 때가 있는데 우리를 징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점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눈물나는 일입니다. 손해나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데 따라서 징계가 축복이 될 수 있고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옛날 어른들도 그랬지만 이 시대에 우리의 고민과 갈등도 그런 것일 것입니다. 시편 73편 같은 곳을 보면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건강하고 고난도 없습니다. 재앙도 없습니다. 돈도 더 많이 법니다. 그런데 신앙을 따라 바르게 살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며 아침마다 시련이 있고 가정에 아픔이 있습니다. 이게 도무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래서 시편 73편 16절에 보면 "내가 어찌하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했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될 때! 낙심하거나 원망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전에 나가 하나님 앞에 간구하면, 하나님이 여기에 대한 해답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시73:21절-28절 이하에서 말씀하기를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이 시인은 고통 속에서 낙심할 뻔했지만, 하나님의 성소에 가서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을 통하여 주를 가까이 하게 되었고, 주님의 능력의 오른팔에 붙들림을 받는 체험을 통하여 신앙이 성숙해 지는 기회로 삼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가 넘어지고 또 넘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팔이 그 동안 우리를 붙들어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가 때로는 매를 때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아이가 매를 때리는 아버지를 신뢰하여 도망가지 아니하고 아버지 가까이 가서 아버지 품에 매달리면서 "아버지, 아버지, 내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도 품에 안기는 아들을 더 이상 때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혹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고통스러워 할 때! 그런 때일수록 더욱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 품에 안기시기를 바랍니다. 시32:9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가까이 두고 싶으신 것입니다. 늘 아버지의 집에서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구만 세상을 좋아하고, 세상 취미에 빠져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짐승에게 재갈 물려 끌고 가듯이 우리에게 재갈을 물리시지 않겠습니까! 그 재갈이 무엇입니까! 징계요, 채찍이요, 시련이요, 고통이 아니겠습니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고통을 당할 때, 힘이 들 때, 낙심이 될 때, 번민이 많을 때 주님께서 여러분을 가까이 부르시는 줄 믿으시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문제도 해결 받으시고 신앙의 성장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고통은 괴로운 것입니다. 이 고통은 너무나 괴로운 것이 되어 주님도 십자가 지는 일을 피하려고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다 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원치 않게 당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의미로 볼 때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말씀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나이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잘못된 길로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난 당한 후에 주의 뜻을 깨닫고 바른 길로 가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시119:71절 말씀을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때도 많았습니다. 그저 내 생각대로 살고, 내 형편대로 살고, 내 계획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이런 징계를 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난 다음에야 '아하,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 아니었었구나! 내가 미련한 짓을 하였구나, 내가 매 맞을 짓을 하였구나."하고 깨닫고 간증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욥5:17-20을 보면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희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매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 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히12:5-13을 보면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하시고 고통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해스러운 일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믿으면 아무 어려움도 없어진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고통 환난, 역경, 질고, 실패, 파산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성경에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약속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오히려 성경은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대는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세상이 아닙니까! 이것이 세상 현실입니다. 세상에 나는 게 고통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올 때 울고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 중에 웃고 나오는 아이를 보신 일이 있습니까! 늙는 게 고통이요, 병나는 게 고통이요, 죽는 게 고통 아닙니까? 그러므로 세상살이는 고통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동일하게 고통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모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유전적으로, 사회적으로 질병이나 사고나 실패나 슬픔이나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감기가 유행할 때 바이러스균이 예수 믿는 사람한테는 안 들어갑니까? 다 들어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실직을 당할 수 있고, 예수 믿는 사람도 부도날 수 있고, 예수 믿는 사람도 퇴출 당할 수 있습니다. 다 당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이 당하는 것과 믿는 사람이 당하는 것은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 이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고난을 받지만 그 미치는 영향과 결과가 아주 다르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용광로이지만 나무가 들어가면 다 타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금광석이 들어가면 불순물은 다 타버리고 순금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에 귀신에 붙들려 점을 치던 불쌍한 여인을 고쳐 주었습니다. 얼마나 잘했습니까! 그런데 그 일로 붙들려 들어가서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힘을 당하고, 발에 착고가 채워지는 기가 막힌 일을 당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분한 일입니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 밤중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런 가운데서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 결과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자결하려던 간수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온 집안이 구원을 얻었고, 따라서 빌립보교회의 기초가 튼튼히 서게 된 것입니다. 같은 고통이지만 바울과 실라에게 있어서는 놀라운 결과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과 실라의 경험만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모든 성도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불신자와 똑같은 고통, 고난, 시련을 받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타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과 고난을 이용해서 더 높이 비약합니다. 더 큰 일을 합니다. 신앙이 더욱 성장합니다. 욥은 고백하기를 고난과 시련을 경험한 후에 그의 신앙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욥42:5을 의지하여 볼 때 "귀로 듣기만 하던 신앙이 이제는 눈으로 보는 신앙"으로 성장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시간에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누구든지 주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빌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롬8:35에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했습니다.
간신히 가 아니라 거뜬히, 넉넉히 이긴다고 했습니다. 고전10:13에서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우리를 계속해서 땅을 바라보게 하고, 아래 것을 바라보게 하고, 그렇게 하다 결국은 어두움에 빠지게 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영혼을 위로 향하게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불행스러운 일들! 슬픔, 질병들, 고난, 시련, 역경,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비전(Vision)을 얻고, 새로운 용기를 얻고, 새로운 능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실패를 승리로 바꾸고, 염려 근심을 찬송과 기도로 바꾸어 버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고난, 고통의 때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시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하였습니다. 시107:4-7에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여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고, 아골 골짜기처럼 캄캄하고 답답하고 괴로운 길을 걸어갈 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고 첩첩 산중 같아 보일지라도 위를 바라보면 하나님이 보인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방은 다 막혔어도 하늘은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부르짖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듣기 위해서 항상 하늘 문을 열어 놓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약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고통과 실패와 시련과 질병과 슬픔은 나의 신앙을 성장 시켜 주시기 위한 시험입니다. 중학교 시험에 합격하여야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 시험에 합격하여야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 시험에 합격해야 대학생 되는 것처럼 이 시험을 통과하여 옳다 인정하심을 받으면 생명의 면류관과 신앙의 성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평생을 지나실 때 어려움을 당하시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혹시 당한다 해도 낙심하거나 상심하지 말고,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담대함과 믿음으로 이 어려움을 잘 이겨, 오히려 신앙의 성장의 기회로 삼고, 여러분의 삶에 큰 축복의 기회로 바꾸어 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움과 고통은 주님께 가까이 나갈 때인 줄 아시고,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 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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