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동서양 두 대왕의 미의식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페르시아 다리우스 황제도, 조선의 정조대왕도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사람은 예술가일 듯한데, 예술가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가치를 역설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동서양의 두 왕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동서양 두 대왕의 이야기로 풀어보겠습니다.
알렉산드 대왕에 의해 멸망되기 전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황제가 세운 페르세폴리스궁은 다리우스 즉위 직후부터 착공해서 손자 크세르크세스왕 때까지 3대에 걸쳐 약 60년간 지어졌습니다. 약 5만평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학적 유물이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알렉산드대왕에 의해 파괴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궁전이었습니다. 수백 개나 되는 웅장한 기둥 하나에,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라는 말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제국이 신의 보호 아래 만세를 누려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현륭원에는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묘소가 있다는데,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이장 할 생각이 있었는데, 묘소로 수원의 화성이 낙점되었다고 합니다. 현륭원의 뜻은 '현부의 은혜에 융성하게 보답한다'는 의미로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절실하면서도 지극한 효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현륭원의 조성과 더불어 수원 신도시 건설, 화성 축조, 현륭원 행차의 과정을 통해 수원부와 인근 읍민들에게 여러 가지 행정적 대민 특별 조처를 시행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정조가 수원을 화성으로 개칭하고 성을 쌓기 시작하니, 신하들이 볼멘소리로 물었습니다. 성은 굳세었으면 되었지 어찌하여 이토록 아름답게 짓습니까 하고 하니, 정조는 <아름다움이 적을 이기느니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원래 화성은 아름다운 성이란 뜻입니다.
정조가 수원 화성을 완공하고 새 도시 수원이 나아갈 방안을 여덟 글자로 압축해 제시한 문구가 ‘호호 부실, 인인 화락’ ‘집집마다 부유하고, 사람마다 화목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조대왕이 화성을 세운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한 이유와 유사합니다. 또한,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죽은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지었으며, 정약용이 거중기를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화성 축조를 통해 수도의 북쪽(평양, 개성), 서쪽(강화), 동쪽(광주)과 더불어 남쪽에 군사권을 마련하여 왕권 강화에 힘쓰고자 하였습니다. 즉 적군이 한양으로 진군하는 것을 막는 수도권 지역의 1차 저지선인 셈입니다. 정조는 자신이 꿈꾸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대신들과 의논하며 철저하게 서로 계획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정교한 석축술을 보여준 것이 이 화성입니다.
오늘 여기 계신 에세이문예 가을호를 읽고 계신 여러분들의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니 화성을 완공하고 크게 기뻐하셨다는 정조대왕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정조대왕은 우리 역사에서 문학을 발전시킨 임금입니다. 정조대왕 스스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관료를 선발하는 부분에서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탕평책을 통해 전국에 있는 실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 관리로 채용하였습니다. 조선의 문학 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대왕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잘 아는 왕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문장화국 덕화만방’의 가치를 실현한 왕입니다. ‘문장화국지인’이란 조선시대 이상적인 인간상을 몸소 실천해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