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들어가며
본인은 현재 제주도 서귀포시 동홍동이란 곳에서 제주드림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3년 전에 개척하여 현재 출석성도가 열 분 내외입니다. 교단은 예수교대한하나님의 성회입니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딸 하나가 있고 아내는 저와 함께 노인요양원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고 나이는 올해 환갑이 되었습니다.
...
2. 배경
제가 목사로서 생업을 가지게 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난날을 잠깐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순복음교단에서 오랜 시절을 평신도로 봉사하고 섬겼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계획하는 대로 인생을 요리해간다고 하는데 저는 저의 삶을 돌이켜 보면 제 뜻보다는 뭔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리 저리 보내지는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제가 처음으로 복지와 관계를 가지게 된 것도 제가 원해서라기보다는 봉사는 하기는 해야 할텐데 하는 중에 집사람과 딸아이가 봉사하던 장애인교회에서 봉사를 시작하여 제가 섬기던 교회를 떠나기까지 계속 섬겨 왔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는 출석성도가 약 만 명 정도가 되는 대형교회였고 그 안에 장애인 교회가 따로 소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주위 땅을 구입하여 사회복지법인의 기초자산으로 출자하여 법인설립을 하였습니다. 법인설립은 하였지만 활동은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주의 종들이 사회적인 경험이나 배경이 약하여 사회복지업무를 해나갈 만한 적임자가 없던 차에 마침 은행원출신이던 저를 찾아내어 법인사무국 부장으로 임명하고 장애인복지관의 건축, 노인복지관 수탁, 지역사회복지관을 수탁하여 법인사무국 안에 복지관 3개를 두고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수익기관으로 요양보호사 교육원을 산하에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획득하였습니다.
회계에 무지하고 행정을 잘 알지 못하는 직원들과 복지업무체계를 세운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교회와 마찰이 적지 않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런 일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다음 기회가 있음 그 때의 경험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회복지법인의 체계를 잡고 산하 복지관 운영을 독립적이면서도 엇길로 가지 않도록 하면서 이제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이 들 즈음에 교회에서는 제게 아예 복지부문의 전임자가 되기를 바랐고 저도 이게 제가 갈 길인가 보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생각지도 못했고 바라지도 않았던 일이 저를 지금 제가 있는 제주로 오게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주로 오게 된 것이 전혀 제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막상 제주로 내려오고 보니 참 만만찮은 곳이었습니다. 6개월을 전도와 기도에 전무하였지만 한 사람도 자기발로 교회에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딱 한 분이 계셨는데 술 취한 이였습니다. 지독한 알코홀릭입니다. 찬송시간에 앗싸 하고 장단을 맞추고 설교시간에 틀렸다 맞다 개입을 합니다. 그런데 그 부인되시는 분이 알코홀릭으로 인하여 우리 교회를 섬기시고 계십니다
6개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돈이 마르기 시작하였고 전도방법에 대해서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들의 삶속에 뛰어들자’ ‘그들이 안오면 내가 가자’ 이런 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함께 그간의 포트폴리오로 이곳 저곳에 취업을 신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제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우선 나이가 많고 또한 경력이 너무 화려하고 또한 그들의 괸당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제주는 괸당문화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괸당문화란 친인척끼리 끼리 뭉치는 문화입니다 사회복지분야에도 관장 국장 과장 등 주요직들이 친인척으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마저도 그러합니다
저는 과감히 사회복지사를 포기하고 일전에 별 생각 없이 따두었던 요양보호사 자격증으로 다시 생업을 찾았습니다. 단박에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3년이 거의 되어 갑니다. 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
3. 자비량의 장점
그러면 지금부터 목사가 생업을 가지게 되었을 때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순전한 제 경험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겠습니다. 우선 좋은 점입니다.
(1) 경제적 부담 완화
역시 제일 좋은 것은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요양보호사 한 달하면 월급이 공제할 것 다 공제하고 나오는 돈이 백오십만원 가까이 됩니다. 일을 하면서부터 교회운영비에 대한 걱정이 덜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성도들을 대하는 제 자세에도 담담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어떤 성도를 통하여 한 장로님이 성도들 이십 명 정도를 데리고 우리 교회에 오기를 원하는데 재정권을 그 장로님에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장로님들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 성도들을 데리고 또 다른 교회를 찾아갈 것을 알았기에 그분 제의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일을 하지 않고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면 솔깃할 수 있는 제의이기도 하였습니다.
주일 점심 애찬도 보통교회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맛있는 것으로 대접할 수 있습니다. 메뉴를 말씀드려 볼까요? 안심샤브샤브, 성게 미역국, 옥돔구이, 회덮밥, 그 무섭던 돈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성도나 부유한 성도나 제게 같은 귀중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는 공궤해줄 성도가 없습니다. 제가 오히려 성도들을 대접하고 생일도 챙겨줍니다
(2) 성도들의 삶 공감
저는 원래 평신도출신 사역자입니다. 그러므로 평신도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압니다. 예를 들면 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죽도록 일하고 주일날 예배드리고 나면 하루 종일 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종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월요일 쉬시더라구요. 뭔가 아니다라는 생각하였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저는 평신도의 수고와 헌신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평신도 삶은 책상머리 삶이었습니다. 저는 화이트 컬러였지요. 저의 인생길에는 몸으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삶은 없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저는 평신도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을 그대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아! 성도들이 이렇게 어렵게 버는구나’ ‘아! 성도들이 내는 십일조가 이렇게 만들어져 내는 귀한 것이구나’ 그렇다면 성도들이 내는 헌금은 나를 위해 쓰기보다 교회와 선교와 구제를 위해 사용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밤 새 뜬 눈으로 지새고 기저귀를 갈다 소변세례를 받고 온 몸이 쑤시고 저리는 고통을 통해서 받는 돈의 일부를 헌금으로 드리는 우리 성도들의 삶을 저는 같이 걸어갑니다.
(3) 낮아짐
저는 작습니다. 제가 낮은 일을 하기 때문에 낮아질 수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요양보호사입니다. 요양보호사 라고 하니 어쩜 그럴듯한 직업 같지만 이 일이 참 3D업종입니다.
첫째는 더럽습니다.
하는 일이 똥오줌 받아내는 일입니다. 나이가 들면 소화력이 떨어지고 대소변을 조절하는 근육이 힘이 없어져서 그것이 내 마음대로 조절이 되지 않아서 시시 때때로 배설을 합니다. 그것을 치우고 깨끗하게 하는 일이 요양보호사 일입니다. 일하는 시간의 많은 시간을 이런 신변처리에 보내게 되고 몸에는 늘 그런 냄새가 배여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치매가 걸리신 어르신은 대변을 스스로 치운답시고 하는 일이 이른바 벽에 똥칠을 합니다. 어떤 때는 그것을 숨기시느라고 침대 밑에 살짝 숨겨 놓아서 나중에 발견하기도 합니다. 소변을 손에 묻히는 것은 다반사이고 때로는 대변도 손에 묻혀야 합니다. 옷에도 묻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는 대소변보다 더 더럽다고 여기는 것은 식사하고 난 뒤에 입안에 있는 음식물 찌꺼기를 받아내는 일입니다. 식사하시는 것을 수발들다 보면 재채기를 하셔서 입안에 있던 음식물이 제 얼굴에 다 묻어버릴 때도 있고 많이 드시라고 하는 말이 거슬려 뺨을 때리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피부가 마르고 그래서 각질이 많이 생깁니다. 사람 몸에서 눈송이 떨어지듯 각질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그래도 마다 않고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수발을 들어야 합니다.
둘째는 힘이 듭니다.
어르신들이 이미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중풍으로 인하여 편마비현상으로 스스로 움직이기 힘이 드신 어르신이라 침대에서 휠체어로 또는 그 반대로 이동해드려야 합니다. 물건이라면 무거우면 놓아버리면 되지만 내 손에 든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축 늘어진 어르신은 몸무게가 30킬로라 하더라도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많은 어르신을 기저귀를 갈아드리려면 몸을 꺽어서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일을 오래한 사람들은 늘 근육통과 허리고통에 시달립니다.
셋째는 위험합니다.
치매 어르신들이 가끔 폭력적일 때가 있습니다. 의자 같은 것을 들어서 찍기도 합니다. 과도나 가위를 숨겨놓고 있기도 합니다. 잘 모셔드렸는데 느닷없이 뺨을 맞거나 꼬집히거나 침 뱉음을 당하는 폭력에 노출될 때면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본능적인 반응을 자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못 참으면 사회문제가 됩니다.
넷째는 마음이 상합니다
치매는 참 곤란한 병입니다. 걸리고 싶지 않다고 해서 걸리지 않는 병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걸리기 싫은 병입니다. 치매는 사람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시킵니다. 치매는 가장 귀한 것을 상실시켜 버립니다. 내가 누군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 목숨을 주고도 바꾸지 않아야할 것들 모두를 다 놓쳐 버립니다.
치매로 반쯤 정신줄을 놓은 분이 계십니다. 나름 똑똑하셔서 시장의 인사말씀을 대필하는 분이셨는데 절 더러 욕을 하시면서 “ 니가 목사냐? 도둑놈이지” 이러십니다. 물론 정신없이 하시는 말씀이지만 저는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목사는 자칫하면 정말 도둑이 되기 쉽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아내와 같이 일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동료 선생님들이 아내를 핀잔을 줍니다. “사모가 되어서 그렇게 참지 못하면 되나요?” 하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울분을 참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께 그랬습니다. “언제 선생님이 제 아내에게 사모님 대접을 해 준적이 있습니까? " 그 날 밤에 아내는 제게 말했습니다. ” 나를 왜 이렇게 살게 만들어?“
그러면서 저는 목사가 섬겨야지 섬김을 받으려 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은 하면서도 내 내면 깊숙이는 아직도 목사로써 대접을 받기 원한다는 욕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 내가 하나님 아들이야 그러니까 잘 모셔” 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당신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좀 알아달라고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그것은 대접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여기 있는 것은 나를 믿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셨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생살이 뜯겨 나가고 내 몸에 못이 박히고 숨을 쉬려면 못 박힌 다리를 들어 온 몸을 끌어올려야 한 숨 쉴 수 있는 십자가의 고통을 지신 분은 어찌 그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이런 일을 통하여 저는 제 자신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같이 일하는 요양보호사와의 관계에서 저는 제가 목사라는 어줍잖은 자만심을 내려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4. 자비량의 단점
그러면 단점은 무엇일까요?
(1) 시간뺏김
목사가 사역에 전념하지 못하고 생업을 가지게 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간뺏김입니다. 다른 목사님들은 일주일 내내 주일설교를 준비하시는데 저는 기껏 저녁시간 한 두시간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양원에서 느낀 점들이 제게 많은 설교거리를 주고 어떤 때는 뭔가 말씀이 시원찮을 때는 새벽녘 잠자리에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게 해주셨습니다.
책을 볼 시간이 별로 없지만 대신에 요양원에서 일하는 것이 설교시간 때 많은 인용거리가 됩니다. 사람이 잘난 척해도 돈도 소용없고 아름다움도 다 지나가는 것이고... 이런 것을 실지로 노인들을 섬기다 보니 실례로 다가오는 것이 참 많이 있어서 삶속에 녹아든 진리를 잘 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할 때 원고를 보지 않습니다. 물론 작성은 하지만 이미 제 마음 속에 다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눈길을 놓치지 않습니다.
제주드림교회는 성도수가 몇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에 수발을 들어야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개업을 한다든가 문상을 가야한다든가 병문안을 가야 한다든가 결혼주례를 해야 한다든가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가끔씩은 일하는 시간 중에 급한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우려가 있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사역에 전념하지 못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저는 일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장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에 대해서 해결해 나가는 방법으로 협동사역을 생각해 봅니다. 담임과 부교역자라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는 수평적인 관계말입니다
‘아이구 성목사가 사역을 잘 안해봐서 협동사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담임목사가 있어서 중심이 잡혀요’ 라고 말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말씀이 교회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가 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것이 아닌데 미련 떨고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는 일 중에는 주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주일날에 절대로 일하지 않는다고 하면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경우에는 누가 일을 합니까? 그렇지만 저는 목사입니다. 주일에는 절대로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저는 이런 모순 역시 협동사역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아는 김천의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두 분이셔서 한 분이 일하러 가실 때면 다른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다고 합니다
‘내가 해야 한다. 나만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방법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주드림교회에 나와 같이 협동사역을 하자고 해도 아무도 오려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2) 신비감 및 권위 상실
저는 우리 교회를 섬기는 평신도와 같이 일을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님, 직장에선 과장님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제가 실수할 때도 있고 국장이나 원장 심지어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서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 성 선생님 일을 그렇게 하면 어떡해요? 똑 바로 하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하나님 원망도 해봅니다.
하나님 다른 목사님들은 존경을 받고 넥타이 매고 잘 만 하시는데 우째 저는 이런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까? 이런 생각으로 우울해질 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목사라는 알량한 제 마음의 마지막 보루까지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목사라는 신비감이나 존경받는 사람의 자리는 완전히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목사는 오직 여러분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그 때는 목사로서 권위가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여러분과 똑 같다. 그러므로 나를 존경한다고 말하거나 섬기려 하지 말라 라고 말합니다. 대신 사랑해 달라고 말씀드립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목사라고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목사라고 대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으러 가거나 영화를 같이 보러 가도 제가 훨씬 더 많이 돈을 지불합니다. 교회 화장실 청소, 운전 이런 것도 당연히 제가 하는 것이고 그분들은 누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내가 이렇게 권위가 없어서 교회가 유지될까 하는 걱정도 들고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저의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제주드림교회 성도님들은 저를 우러러보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저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목사도 성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 잘할 수 있는 만능 맨이 아닙니다. 거리갑을 두고 신비감을 주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 앞에서 다 똑 같은 먼지와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씀전함을 맡았을 뿐인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가 독사가 되고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높임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이시오 성령님뿐이십니다.
5. 자비량 목회를 위한 제언
(1) 과연 옳은가?
저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개척교회 목사님들께서 경제적인 문제로 허덕일까요? 매월 말만 되면 한 번씩 몸서리를 쳐대고 자기뿐만 아니라 아내 심지어 부모님을 위시하여 일가친척에게까지 빚을 지웁니다. 그러고도 주님 은혜를 기다리면서 눈물로 십자가 앞에 엎드립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는 병원 갑니다. 목사님은 왜 기도하고 자신이 스스로 일하려 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개척교회가 생겨나지만 생겨나는 것만큼 교회 수가 많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생기는 만큼 사라지는 교회.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스러져 없어지는 것을 보면 저는 제가 섬기는 교회가 저보다도 먼저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교회 임대료에 전기 수도료 그리고 주일애찬비용 등 지출은 십만단위로 나간다면 헌금으로 들어오는 액수는 주에 만원 단위 그런 상태를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저는 버티기 작전으로 나갔습니다. 엎드려 기도만 하고 있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나섰습니다.
목사 특별히 오직 믿음만으로 맨 몸으로 시작하는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분이시라면 기도하면서 분연히 ‘ 나 목사야’ 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평신도들의 삶에 같이 뛰어드십시오. 이런 용기와 내려놓음이 없이 교회 삼년 버티기 어렵습니다.
(2) 눈 높이를 낮춰라
그러면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다른 분은 어찌하는지 잘 모르겠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요양보호사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학력도 나이도 성별도 제한이 없습니다. 교육도 한 두 달이면 끝이 나고 시험도 쉽습니다. 취업도 비교적 쉽습니다. 가게를 내지 않아도 되니 돈도 필요 없습니다. 경험 없어도 됩니다. 취업하면 한달에 백삼사십만원은 받습니다. 모자라면 사모님도 같이 일하십시오. 대신에 사모로부터 “ 마누라 영감탕구들 똥오줌 받게 해놓고 그렇게 교회가 좋소?” 라는 소리는 들을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교회를 유지하려 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지요. 취업하면 2교대 또는 3교대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비교적 많습니다.
목사가 목사다운 일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섬기는 일이나 육체노동을 해야 합니다. 목사가 일을 찾을 때는 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 ‘ 나 목사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도 써주지 않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아무도 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일하는 요양보호사로 일을 할 수는 있었습니다.
(3) 책임 있는 자리 피하기
교회를 섬기는 목사는 사역을 주로 하고 생업은 부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책임 있는 자리에 앉게 되면 아무래도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배경을 보고 요양원에서 골치 아픈 요양보호과장직을 제의해왔습니다만 저는 그런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맡을 사람이 없고 아내의 권유가 있어서 맡았습니다. 맡고 난 뒤에 처음에는 영 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일을 마치고도 요양원에 일이 있거나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문상을 가야 했습니다. 전 철저하게 근무시간 외의 시간은 뺏기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요양원과 크게 다투고 요양원에서는 저를 다른 사람과 바꾸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통에 현재까지 맡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자비량 목회를 하시는 분이 주와 종을 분명히 하자는 것입니다. 교회사역을 꿈꾸신다면 목회를 위한 자비량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복지사업을 위한 것이라면 복지사업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저는 교회유지를 위한 생업으로 요양보호사를 선택하였습니다. 실은 그래서 누가 큰 일을 같이 하자고 해도 거절을 하는 것이 그저 몸으로 섬기고 마음으로는 오직 교회를 섬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비량 목회를 꿈꾸시는 분들은 이것을 최종적으로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장시간 제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목사님 ~~ 기도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