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는 직접 여수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열 곳과 가장 맛있는 음식 열 가지를 골라내어 여수 10경, 여수 10미를 선정했다. 일주일 남짓한 여행 일정에는 10경과 10미를 모두 즐길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지정된 것들을 따라 하나씩 경험하고 맛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충만해졌다. 10경에는 오동도, 여수세계박람회장, 여수해상케이블카, 진남관, 이순신대교, 여수 밤바다와 산단 (여수국가산업단지) 야경, 영취산 진달래, 항일암, 금오도 비렁길, 거문도와 백도가 있다. 10미에는 돌산갓김치, 게장백반, 서대회, 여수 한정식, 갯장어회 및 갯장어 샤브샤브, 굴 구이, 장어구이와 장어탕, 갈치조림, 새조개 샤브샤브, 전어회와 전어 구이가 있다.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즐기려면, 아마도 한 달은 족히 여수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 여수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여수시 관광 안내도에서 여수 10미를 볼 수 있다.
여수시의 가이드에 따라 즐겼던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웠다. 여수의 거의 모든 것을 즐긴 것 같아서 뿌듯함도 느껴졌다. 볼거리와 놀거리가 이렇게 충만한 줄, 와보고 나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여수에는 강원도, 제주도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살아 숨 쉰다. 특히 감탄한 점은 여수의 음식들이 한결같이 맛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음식이든지 간에 맛있게 먹는 재주가 있지만, 여수의 음식은 정말 맛깔났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또, 여수의 맛에 빠져들었다.
▲ 여수의 유명한 먹거리, 장어.
여수의 먹거리 중 눈에 띄는 것은 해산물이었다. 바다와 가까운 도시답게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많았다. 상상이상으로 다채로운 맛을 선사했던 여수의 음식들 덕분에 매 끼니마다 즐거웠다. 사실, 우리는 해산물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산지의 장점은 우리의 취향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신선한 해산물의 매력을 이곳 여수에서 제대로 알 수 있었으니 정말 여행을 잘 갔다 온듯싶다. 여수가 자랑스럽게 선정한 10미 외에도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난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여수가 천국이 아닐까 싶다.
해산물의 천국, 여수
여수의 10미 중에서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8가지나 된다. 그만큼 해산물에 자신 있다는 소리다. 처음엔 뭐, 얼마나 맛있겠어 싶었는데 먹어보니 진짜다. 짭조롬한 게장백반은 물론이요, 서울에서는 맛보기 힘든 서대회, 장어탕, 선어회 등은 놀라울 정도였다. 우리가 간 계절에는 갯장어 샤브샤브나 전어구이는 먹을 수 없었기에 아쉬울 정도였다. 이 정도면 여수시가 작정하고 계절마다 사람들을 놀러 오게 만들려고 여수 10미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중에 먹자마자 놀랐던 것은 장어탕이었다. 장어를 구이가 아니라 탕으로 먹는다고 해서 귀를 의심했는데, 여수에서는 퍽 흔한 향토음식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여수의 연안과 만에서 잡히는 장어가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났고, 그래서 장어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고. 여수 사람들을 회나 구이, 탕으로 많이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여수 10미에 있긴 하겠지만, 이런 배경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여전히 장어탕에 대한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장어구이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탕은 무척 생소했기에 조금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의문은 탕 국물을 한 입 먹어보고서 스르르 풀렸다. 와, 개운하다. 시원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개운하고 담백한 국물에 장어의 살은 부드러워 훌훌 잘 넘어간다.
▲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과 부드러운 장어살은 무척 잘 어울린다. 보양식으로 추천받을만 하다.
마침 장어탕을 맛볼 때 날씨가 쌀쌀했고, 비가 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뜨거운 국물을 넘기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진한 국물이 하염없이 들어간다. 여기에 여수의 명물인 갓김치, 식당에서 파는 멍게젓까지 함께 하니 더할 나위 없다. 여기에 청양고추 다진 것을 넣으니 담백한 국물이 꽤 칼칼해진다. 덕분에 꽤 많은 것 같았던 장어탕은 금세 동이 났다. 탕을 비우고 나니 새삼 음식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푸근함이 느껴졌던 여수의 한 상차림.
두 번째로 놀랐던 음식은 두 가지다. 바로 서대회랑 갈치조림이었다. 갈치조림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으니까 별다를 것 없겠지라 여겼는데, 그 생각 또한 오만한 생각이었다. 여수의 식당마다 각기 다른 양념으로 조려진 갈치들은 그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며 입맛을 돋운다. 수수하기 그지없는 메뉴인데, 여수에서 안 먹어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푸짐하게 차려나오는 갈치조림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것이 사람의 인심인가 싶다. 갈치조림은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더 맛있게 먹으려면 조림 양념과 생선 살을 밥과 함께 김에 싸 먹으면 된다. 또는 상추쌈으로 먹어도 맛이 기막히다.
▲ 갈치조림은 어느 식당에서 시켜도 훌륭한 맛을 보장한다.
서대회 또한 갈치조림과 더불어 과소평가한 메뉴 중 하나였다. 서대라는 생선이 뭔지도 잘 몰랐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대부분 무침으로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가 맛이 없어서 무침으로 먹는가 보다, 라고 오해한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장어탕과 갈치조림과 마찬가지로, 서대회 또한 먹어보고 나서 그 진가를 알게 되었다. 서대회는 1년 이상 숙성시킨 막걸리 식초를 사용한 새콤달콤한 양념으로 감칠맛을 더한 음식이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물회나 서울에 있는 횟집에서 먹던 회 무침과 또 다른 맛이 있다. 생선 살은 충만하고, 양념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회 무침만 먹어도 맛있는데, 아예 밥과 비벼 먹을 수 있도록 밥을 사발에 담아준다.
▲ 언제나 먹어도 맛있는 서대회 무침. 회 무침의 신세계를 보여주는 맛이다.
예상치도 못한 조합이지만 회 무침을 먹고, 그 무침을 밥과 비벼 먹으니 친숙하면서도 색다른 맛이 난다. 비비면 모든 음식이 맛이 없을 수 없지만 서대회 무침과 비빔밥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여기에 식당에서 같이 나오는 반찬을 하나둘씩 얹어 먹어도 맛있고 상추에 싸 먹어도 맛있다. 신선하고 강렬한 맛이 인상적이었던지, 지금도 사진을 보면 침이 먼저 고일 정도다. 집에서도 충분히 회 무침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겠지만, 여수에서 맛보았던 서대회의 맛은 따라갈 수 없을 듯하다.
▲ 두툼한 선어회는 보기만 해도 풍성함이 느껴진다. 주로 양념장을 더해 쌈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수의 별미라고 말할 만하다.
여수 10미에 들어가지 않지만, 여수 곳곳에서는 선어회를 판매하고 있다. 아예 선어회 시장이 따로 조성되고 있을 정도다. 활어회는 들어봤지만 선어회는 뭐지 싶었는데, 피와 내장이 제거된 채 유통된 횟감을 말하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상태로 운반이 어려운 생선들, 예를 들면 민어, 방어, 삼치와 같은 생선들처럼 크기가 크거나 잡자마자 금세 죽어버리는 생선들이 선어회로 주로 팔린다고 한다. 생선을 잡자마자 빠르게 손질한 후 저온 유통한 선어회는 냉동회보다 신선하고 감칠맛을 높이는 성분은 많다는 것이 장점이다. 활어회보다는 쫄깃함은 덜하지만, 숙성이 되어서인지 조금만 씹어도 회가 입안에 사르륵 미끄러져 녹아든다. 감칠맛이 더해진 회에 김과 양념장을 함께 먹으니 맛이 배가 되었다. 서대회와 마찬가지로 회의 색다른 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여수를 대표하는 김치, 돌산갓김치
▲ 항일암을 오르는 길은 갓김치 냄새가 거리에 진동할 정도로 갓김치를 판매하는 곳이 많다.
해산물도 유명하지만, 여수는 갓김치로도 유명한 곳이다. 해마다 돌산갓김치축제를 여는 여수에서는 갓김치의 알싸한 냄새를 어디서나 맡을 수 있다. 항일암 같은 관광지에서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갓김치 냄새가 풍겨 나올 정도다. 여수 시내에는 갓김치만 판매하는 상점이 모여있는 갓김치 골목도 있다.
▲ 여수 시내에서 만날 수 있는 갓김치 골목. 갓김치 골목 외에도 많은 곳에서 김치를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식당에서는 자연스럽게 갓으로 만든 다양한 김치가 반찬으로 나온다. 문어 또는 삼겹살, 새우와 조합하여 갓김치 삼합이라는 메뉴도 인기를 끈다. 알싸하고 톡 쏘는 맛의 갓이 느끼한 음식과 만나면 조화로운 맛을 선사한다. 특히 볶음밥과 만나면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여수에 오기 전까지 갓김치를 싫어했던 남편은 여수에 머물며 아예 갓김치 러버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갓김치 맛을 잊지 못해, 아예 갓김치를 사 먹기까지 했다.
▲ 낭만 포차 거리의 유명한 메뉴, 돌문어 갓김치 삼합
▲ 어느 식당이나 반찬에 갓김치가 빠지는 곳이 없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와 알칼리성 토질과의 결합으로 여수의 갓은 식감이 아삭하기로 유명하다. 알싸하고 톡 쏘는 갓은 재배방법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배추김치처럼 만들기도 하고, 물김치로도 만든다. 이렇게 김치로 유명하지만, 갓은 아예 쌈처럼 먹어도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여수 10미에 들어있는 이유가 있다.
여수에 머무르면서 일부러 여수를 대표하는 음식들만 골라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현지 식당을 많이 찾아다니며 먹었다. 그리고... 정말 다 맛있었다. 식당마다 그 나름의 맛이 있어서 비교하며 먹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여수가 자랑스러워하는 요리들도 좋았지만, 그냥 식당에서 밥과 반찬만 먹어도 무척 맛있었다. 괜히 여수 10미에 '여수 한정식'이 있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적인 입맛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은 여러 군데가 있지만, 그중에 여수가 꼭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여행을 하면서 줄곧 해온 생각이다. 그동안 여수의 맛을 몰랐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지금이나마 그 맛을 알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 여수 특산물을 종종 즐겨먹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