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부-예수님을 증거하고 소망을 불러 일으키라!
단지 증인이 되는 것
“저는 짐이 저를 떠난다고 해서 그를 나무라지 않아요” C목사님과 영혼구원에 대한 공부를 마친 도로띠가 슬프게 말했다. 도로띠는 매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아주 성실한 아내요, 헌신적이고 사랑스러운 엄마였다.
그러나 도로띠는 많은 진지하고 양심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을 범했다. 그녀는 남편 짐에게 단지 예수님을 증거하는 대신에 짐의 나쁜 잘못과 나쁜 습관들을 비난했다. 그녀의 비난하는 태도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더 부드러웠을지 모르지만 남편을 그리스도께로 이끌 수는 없었다. 도로띠는 가끔 짐을 성가시게 했고, 그에게 설교했고, 타일렀으며, 그를 비판했다. 그런 방법으로는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사 43:10,12)라고 선언하신다. 예수님께서도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며 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마 24:14). 영적인 법정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신 업무가 있는데, 그것은 검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변호사가 되어 변호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도로띠는 영혼구원에 있어서 증인이 되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성가시게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온 세상에 전하라고 하신 복음은 단지 증인이 되는 것을 통하여 하라고 말씀하셨다. 비난이나, 성가시게 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것은 검사나 피고인이 변호사가 종종 상대편을 대항할 때 쓰는 방법이다. 심판관은 매우 날카로울 수가 있고, 배심원들은 가혹한 처벌을 내릴 수 있지만, 증인은 단지 그가 본 것과 그가 아는 것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이다.
종교는 우울한 노새를 만들지 않는다
어떤 때에 우리는 종교라는 것이 청교도식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울과 굳은 표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한숨과 눈물과 고통과 신음과 고개를 푹 떨구고 다니면서 하는 사람은 복된 복음의 즐거운 소식을 알리는 증인이 아니다. 차라리 그는 가짜 증인이라고 해야 맞다.
종교집회에 참석하였다가 소위 “종교를 갖게 된” 한 소년이 집회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 의자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 제가 종교를 갖게 되었어요!” 라고 소년이 기뻐서 소리치자, 이미 예수를 믿고 있던 사고방식이 다른 할아버지는 “네가 종교를 갖게 되었으면 정신차리고 조용히 앉아 있으렴” 하고 말했다. 그래서 소년은 가만히 앉아 있으려고 애썼지만 아이여서 가만히 있는 것이 어려웠다. 그 때 고양이와 개가 나타나자 무릎위에 놓고 쓰다듬어주며 놀다가 둘의 꼬리를 묶어 버렸다. 야단법석을 치는 고양이와 개, 그리고 소년을 보고 할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무엇하는 거냐! 여기서 썩 물러갓!” 소년은 마굿간이 있는 곳으로 달려나가서 한쪽 귀는 앞으로, 또 다른 한쪽 귀는 뒤로 쳐져있고, 한쪽 눈은 위로, 한쪽 눈은 아래로 향하고, 입을 삐죽히 내밀고 있는 노새를 보았다. 소년은 “아, 저기 한 그리스도인이 있다!” 고 소리쳤다.
이것이 우리가 더 잘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사람을 너무 엄숙하게 만들어서 하늘 아버지 집까지 가는 동안 늘 한숨만 지으며 길을 가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가족들과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신앙생애가 너무 기쁘고 즐거운 것이라는 인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발견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증거해야 하는 아주 멋지고도 적극적인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를 면밀히 관찰한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신앙을 가지고 싶어 하도록...
만일 종교가 별 볼일 없는 식의 소극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단지 율법주의자나 소화불량자, 혹은 조금 슬프고 우울한 사람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일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이런 것이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애가 지속적인 신실함, 친절, 온유, 순결, 순종, 세련됨, 기쁨으로 특징지워질 때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잘 증거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비난, 비판, 이기심 등의 태도를 취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거짓 증인들이다.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
“우리들의 남편을 인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C목사님의 전도 부흥회에 참석한 쌍둥이 자매가 물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동생이 먼저 진리를 받아들인 후 언니를 인도했는데, 동생은 형부를 비난하고 있어서 서로 말도 하지 않는 사이였고, 동생의 남편은 종교에 편견이 심해서 부흥회에 나가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당신들 둘 다 집에 가셔서 당신들이 남편들을 오로지 사랑해 보셔요. 절대로 논쟁하지 말며, 열띤 토론을 하려고 하면 대꾸조차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했다. “제가 형부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셔요?” 동생의 말에 목사님은 “아마 그렇게 하도록 성령께서 당신을 감동시키실 거예요. 가능하다면 다음 집회에 와서 당신이 남편에게 특별히 잘해 드린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고해 주십시오” 라고 대답했다.
이틀 후 저녁 집회때였다. 그들 둘은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집회가 끝난 후에 목사님에게 왔고, 동생이 흥분된 어조로 말하기를, “목사님! 저는 집에 가서 목사님이 시키신 대로 비난이나 판단을 하지 않고, 논쟁을 피하고 무조건 사랑으로 대했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종교를 싫어하고 편견을 가진 남편이요, 글쎄 저에게 돈을 두둑히 주면서 ‘이돈으로 차에 기름을 넣고 그 집회에 다시 가서 당신이 그저께 배운 것을 좀 더 배워 오시요’라고 하지 않겠어요?”
이제 우리는 재판관이나 검사가 되는 것을 멈추고, 다만 놀라운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들이 되자! 그리고 종교가 우리를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세련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도록 하자! 그렇게 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구원하게 될런지 누가 알겠는가!
세상에는 소망이 필요함
영국 런던의 태이트 화랑에는 왓츠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그 그림에는 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눈이 가려진 채로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류우트라고 하는 현악기가 들려져 있었는데, 그 줄들 중 하나만 빼고는 전부 다 끊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 표정은 진지하고 강렬하였고, 하나 밖에 없는 줄을 팽팽하게 하여 거기에 활을 갖다 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림 바로 밑에는 “소망”이라는 낱말이 적혀있었다.
오늘 날 세계는 불화가 있는 곳에 하모니(조화)를 이루려고 모든 노력을 다 해왔다. 전쟁 대신에 평화를, 슬픔이 있는 곳에 행복을 갈구해 왔으나, 그 갈구는 채워지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실망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흑암 가운데 갇혀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다.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이 꼭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영혼에게 소망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 인류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그런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롬 8:24).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롬 15:4). 모든 성경공부나, 모든 설교나, 영혼방문, 전도의 목적은 투쟁하는 영혼에게 소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 소망을 불어넣은 이야기 1
루씨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C목사님은 그녀를 방문하여 불신자와 결혼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그녀를 설득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그녀가 불신자와 결혼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주거나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영혼구원의 효과적인 원칙 중의 하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선택권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은 루씨를 나무라기보다는 격려하며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으므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는 성경절을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기도하면서 루씨에게 말을 시작했다. 서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5마일 떨어진 곳에 사는 그녀의 언니 제니가 놀러와서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도 불신자와 결혼한지 5년이 되고 있었다.
“목사님! 제 동생이요?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요! 제가 그렇게 말려도 말을 안 들어요!” 언니인 제니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며 슬프게 말했다. “저는 바보 같은 짓을 했어요! 불신자와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동생에게 누차 얘기해도 듣지를 않아요! 5년 전에 어떤 교인이 제게 와서 말하기를, ‘불신자와 결혼하면 하나님께 잘못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이 정말인 것처럼 저의 결혼생활은 별로이고 저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제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곳에 보내신 것 같네요”라고 목사님이 말하자, 제니는 희망을 얻는 듯 했으나, 곧 “제겐 소망이 없어요. 저는 많은 세월동안 소망 없이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어요!”라고 했다.
“그래요? 제니씨, 당신 마음 속에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드나요?” “그럼요!” “만일 당신이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당신이 아직도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당신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어요! 하나님께서 때때로 당신 마음 속에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녀는 뛸듯이 기뻐하면서 “그동안 5년 동안이나 아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모두들 질책의 눈초리를 던질 뿐이었지요! 오늘 저는 용기를 얻었어요.” 소망을 주는 말씀들을 나누는 동안 성령의 역사로 두 자매는 하나님께 마음을 재 헌신하는 기회를 가졌고, 모든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질책보다는 소망을 주는 한마디의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 소망을 불어넣은 이야기 2
C목사님이 부임해 간 새 교회에는 자기 부인과 아이들을 다 버리고 집을 나간 남자가 있었다. 그는 부인과 싸운 뒤 집을 나가서 가까운 도시에서 아파트를 세로 얻어 살고 있었는데, 어떤 날, 교회 장로 중에 하나가 목사님을 찾아와, “목사님, 그 블랭크씨 있지요, 그 사람에게 즉시 어떤 조치를 취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장로는 매우 강경하게 말했으므로 마치 그를 혼내주거나 제적해버리자는 이야기 같았다.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 아십니까? 제가 전화해서 약속을 한 후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아보죠” 라고 목사님이 말하자, 그 장로는 “맙소사! 목사님이 전화하시면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만나주지도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을 만나려면 갑자기 그 사람의 집으로 급습을 해야 되요” 라고 대답했다. 목사님은 성경의 약속을 의지하며 기도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요일 5:16). 기도가 마친 후, 목사님은 전화를 걸었다. “블랭크씨, 저는 새로 온 목사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전할 좋은 소식이 있는데, 당신이 들으시면 아주 좋아하실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단 둘이 해 진 다음에 차 안에서 만나고 싶은데요” 하자, “그럽시다”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주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그 잃은 양에게 “소망”으로 감동을 주셔서 교회 장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몇초 만에 해결된 것이다.
약속시간이 되었을 때, 그와 목사님은 차 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목사님은 계속 기도를 하며 그 형제에게 소망을 주려고 노력하였다. “형제여, 전화에서 말씀드린 대로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생애의 죄를 승리하고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목사님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표현, 즉 “죄를 승리한다”는 표현이 그를 압도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사람은 30~40분 중 몇 번만 목사님을 쳐다 본 후 고개를 돌리고 계속 앉아 있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목사님이 나를 친구로 삼으려고 온 것인가, 아니면 나중에 나를 괴롭히려고 정보를 수집하려고 왔는가?” 목사님은 하나님과 협력하여 그에게 소망을 불어 넣어 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그 영혼을 위해 계속 기도하며 자신이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려고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노력하며 말을 했다. 목사님은 마음 속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는 성경절을 계속 외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목사님은 그 사람과 비슷한 경험을 했으나 승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어떻게 도와주었는지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하며 그 사람에게 소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이 목사가 다른 교인들과 똑같이 나의 자백을 받아낸 후에 나를 교회에서 제적시키려고 할꺼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런 반응도 없이 시간만 흐르자, 사단이 목사님을 실망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감사하지도 않는 사람을 위해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목사님은 20분, 30분, 40분 동안 확신을 가지고, 희망에 넘치는 말로, 친절하게 계속 이야기 하였다. 목사님은 자기가 그의 친구라는 것을 확신시키느라고 40분이란 긴 시간 동안 계속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 목사가 자신의 친구가 되어주려고 왔는지, 아니면 어떤 비밀을 캐어낸 뒤 자신을 괴롭히려고 정보를 수집하러 왔는지 의심쩍어 하며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던 블랭크씨는 약 40분이 지난 후에 목사님이 정말로 자기를 도우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그는 얼굴을 자기 손에다 파묻고 아이처럼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목사님! 저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을 제가 압니다” 라며 울먹였다.
사실 블랭크씨가 엄청난 마음의 고통으로 투쟁하고 있을 때 그를 격려해주는 교인이 한 명도 없었다. 그를 조롱하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너는 소망이 없어. 너는 위선자야” 이 말은 사단이 오랫동안 사람들을 향해 하는 말이다.
목사님은 슬픔에 북받쳐 우는 블랭크씨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 어루만지며 소망에 찬 성경절들을 읽어 주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블랭크 형제여, 형제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형제의 죄를 자백하면 그분은 당신의 죄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과거는 과거입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너희 죄가 진홍같을 지라도 양털같으리라’(사 1:18) ,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 하리라’( 요 6:37),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 11:28).” 성경절을 읽을 때에 목사님의 마음이 사랑으로 따뜻해 짐을 느꼈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다.
목사님은 열렬하게 “형제여, 당신은 지금 거듭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부서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금 당신에게 승리를 주고 계십니다. 당신은 지금 그분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지금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 57:15)고 덧붙였다. 그 때 눈물을 흘리던 블랭크씨가 목사님을 바라보며 외쳤다. “목사님! 저, 집에 돌아가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실망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이 있다. 흑암 가운데 앉아 낙망하여 앉아 있는 이들에게 사단은 속삭이고 있다. “너는 너무 늦었어. 별 수 없이 너는 멸망이야!” 그러나 주님께서는 실망하고 낙담한 영혼들에게 소망을 불어 넣으신다.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소망을 불어 넣는 예수님의 인내와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위대한 전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