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아날로그라는 말이 디지털이라는 말과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빨강의 반대가 파랑이 아니듯이 세상에 정 반대의 개념의 말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두 낱말의 성분은 멀고도 달랐다. 약속시각을 정하고 그 시간에 늦는 연인을 기다리던 시절. 염려와 그리움을 섞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던 정다움은 디지털이라는 파도에 밀려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랑의 교류 방법조차 바꾸어 버린 디지털 세상이 새삼 싫다.
오랜만에 호미곶을 찾았다. 바람은 그대로였다. 새들이 아예 자기네 놀이터인양 자유롭게 쉬다가는 청동 손바닥은 여전히 물속에 몸을 감추고 손만 내어주고 있었다. 먼 바다에 조형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배 몇 척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근처 어디선가 불빛이 반짝임을 본 것은 환영이었을까? 눈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니 그제야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이 시대에도 물길은 등대의 불빛이 필요하다는 것이 뜻밖의 발견인양 신선하기까지 했다. 모든 것을 작은 칩 하나에 담겨 있는 정보로 해결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 있다 해도 물길에서는 등대라는 재래식 불빛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반갑고 정겹다. 마치 별을 보고 낙타를 몰아 사막을 건너는 대상이 그러했듯이.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인생의 행로에서 한 기점을 돌 때마다 등대가 위치를 알려주듯 신호를 보내곤 했다. 나에겐 대학 입시가 그러했다. 많은 형제 중에서도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보다는 여섯 명의 언니 오빠가 나의 등대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제법 공부에 소질을 보였다고 했다. 이십 년 터울의 큰 오빠는 내가 교수가 되기를 바랐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을 때 오빠는 다른 길을 가리켰다. 국문학을 해서 교수가 되라고. 그때만 해도 국어는 내 나라 말인데 따로 공부할 것이 무엇이냐는 오만이 나를 지배했다. 다른 언니 오빠도 힘을 모아 그 길을 가길 바랐지만 나는 점점 더 어깃장을 놓았다. 심지어는 그들의 바람대로 국문과에 지망해 놓고는 느닷없는 폭탄선언을 해 버렸다.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나를 향해 반짝이던 불빛들은 일제히 폭탄이 되어 달려들었지만 나는 유유히 그들을 외면하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 잠깐은 짜릿했다. 마치 행로를 벗어난 배가 미지의 바다에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흥분하듯 유쾌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나를 인도 하려던 불빛들은 안타깝게 다른 배를 찾아 반짝였고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상태였다. 갈팡질팡했다. 오래전 오빠가 인도하던 그 길이 내가 가고 싶던 길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었다. 중년이 넘은 나이가 되어 비로소 날개를 꺾고 길을 찾았다. 어둠이 가득했다. 기운차게 반짝이던 불빛도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먼지 내려앉은 등대 불빛 하나가 가리키는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것이 늦게 시작한 글쓰기였다. 태풍을 만난 배처럼 남루한 모습으로 원고지를 마주하니 그제야 숨이 돌기 시작했다.
이제 그간 어떤 일이 내게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쁨을 주었던, 상처를 주었던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역사가 되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 좋은 기억은 좋은 대로 아픈 기억은 아픈 대로 나머지 인생에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한 쪽은 두 번, 또 한 쪽은 길게 한번. 그래서 항구 쪽 등대는 서로 양쪽에 지키고 있으면서 어서 오라고 안전하다고 인사를 건넨다지 않는가. 동네 어귀에 있는 천하대장군 같은 모습으로.
멀리 보이는 곳에 또 다른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다 다른 모습이다. 어떤 것은 예술작품 같고 어떤 것은 유서 깊은 고택처럼 고색창연하다. 어릴 적 보았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항로의 안전에 미학을 입혔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을까? 기능만 생각하던 때에 예술은 사치였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다 보니 이왕이면 아름다운 기능이 선택되었으리라. 예전의 진로가 직업을 위한 길이었다면 지금 선택하는 길의 목적은 행복한 삶인 것이다.
조심스럽게 불빛의 인도에 따라 항구 쪽으로 들어서 본다. 난파선처럼 지친 모습도 보이고 만선의 깃발이 우쭐대는 배도 보인다. 최신 장비로 항해하는 타이타닉보다 느릿느릿 나가는 고깃배를 택해본다. 최신이 최상은 아니라고 나의 등대 불빛은 깜빡이며 속삭인다.
소리 없이 스며들어 목숨을 앗아가는 연탄가스보다 위험한 것은 편리와 신속함이라는 달콤한 위장술로 내 정서를 흩어 놓는 디지털이라는 놈인 듯하다. 스마트하다는 유혹을 앞세워 문명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막상 누군가 길라잡이가 되어 빛을 보낼 때도 알아채지 못하기 일쑤였다.
어느 틈에 내려앉은 검은 바다 먼 곳에 등대의 불빛이 무심하다. 깜빡이는 불빛이 시골처녀의 눈짓 같다. 디지털하고는 다르게 좀처럼 중독되는 일이 없는 아날로그라는 굼뜨고 촌스런 방식이 등대에 남아 있는 듯 느껴진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요염하게 흔들리는 불빛이 화롯불 쪼이는 그때로 데려간 듯 회상하는 것마저 가슴 언저리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