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15호 명품이면 뭐하냐? 내 몸에 맞아야 명품이다 (약1:14~16)
손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유리병에 망고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원숭이는 그 망고를 먹으려고 손을 유리병 속에 넣어 망고를 움켜쥡니다. 그리고 손을 빼려는데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진이 다 빠지도록 원숭이는 유리병과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사낭꾼에 잡히고 맙니다.
손에 쥔 망고, 그것이 ‘욕심’입니다. 망고만 놓으면 살 것을, 손만 펴면 살 것을, 그것을 놓지 못해서 죽는 것이 어디 원숭이뿐이겠습니까? 다윗이 그랬습니다. 수많은 처첩을 두고도 부하의 아내를 욕심냈습니다. 그래서 호되게 당하고, 안 죽을 만큼 맞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이란 덫에 걸리면 빠져나오기가 여간해서 쉽지 않습니다. 왜요? 망고만 보이거든요. 욕심에 눈이 멀고 귀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하십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누구에게나 욕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욕심을 나게 하는 영적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귀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하나님과 비겨보려는 욕심을 가졌던 루시엘 천사장, 그 욕심이 발각되어 흑암, 곧 음부인 이 땅에 갇히게 됩니다. 그가 곧 사단이요, 마귀입니다. 그놈은 제 버릇 개 못 주고 그 덫을 인간에게 놓습니다. 그놈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와 ‘조금 더, 하나만 더’ 하며 욕심을 불어넣어 결국 그들을 에덴동산에게 쫓겨나게 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했습니다. 그놈은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에게 욕심을 집어넣으려고 노립니다.
저는 요즘 서울성전이 이전할 부지를 찾으러 다니면서 기도를 많이 합니다. 까딱하면 욕심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좋은 곳, 좀 더 넓은 곳, 좀 더 가까운 곳에 집중하다 보면 욕심이 생길 수 있기에 기도로 저를 다스립니다.
저는 ‘우리에게 맞는 교회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게 맞는 것이 좋은 것이요, 내게 맞는 것이 명품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갈 때 사울의 투구와 갑옷을 입혔습니다. 왕의 것이니 얼마나 좋고 튼튼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에게는 너무 크고 무거웠습니다.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벗고 자기가 입던 편한 옷을 입고 나가 거인 골리앗을 때려 잡았습니다.
아무리 명품이라도 내게 안 맞으면 그것은 짐입니다. 멕시코 몬테레이 집회에 갔을 때 실업인 세미나에 참석했던 자들이 감사의 표시로 명품 구두를 선물했습니다. 무려 300만 원짜리랍니다. 그런데 사이즈가 작아서 신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행인 한은택 목사에게 줬습니다. 명품이니까 하고 욕심을 내서 신었더라면 제 발은 부르텄을 것이고, 아마도 발톱도 성치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맞는 성전이 분명히 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는 말씀은 맞는 걸 주신다는 말씀이지 무조건 ‘크고 비싼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느 아비가 자식에게 어른 옷을 입히고는 “명품이니까 무조건 입어라.” 하겠습니까?
크면 좋겠지요. 가까운 곳이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1t 트럭에 5t의 물량을 싣는 것과 같아, 결국 타이어가 터져 사고가 날 것이고, 차에 실었던 것들이 길에 쏟아져 물품도 망가지고, 다른 차량에까지 위협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1t 트럭에 5t의 물량을 얹어 성도들을 누르고 싶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힘들어하고, 그래서 다 떠나면 크고 멋진 교회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좋은 교회, 명품 교회는 성도들이 자유롭고 행복해하는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혹자는 “목사님, 입을 크게 벌리라고 하셨잖아요?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하실 겁니다. 여러분, 욕심과 소망은 다릅니다. 욕심은 마귀의 것이지만, 소망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요.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소망을 이루려면 준비해야 합니다.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시험을 잘 치겠다 하는 것은 욕심이지요. 준비해야지요. 공부해야지요. 열심히 공부할 때 하나님이 공부한 것을 다 기억나게 하사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입니다. 늘 말하지만, ‘무한대(∞)×0=0’ 이지만, ‘무한대(∞)×1=무한대(∞)’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은 우리가 준비할 때 무한히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눅14:28~30).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모든 재료와 건축할 사람까지 준비했습니다. 비록 건축하지는 못했지만, 준비된 것을 아들 솔로몬에게 위임했기에 솔로몬이 그것을 토대로 무난히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준비하지 않는 자는 망하기로 준비된 자이고, 계획하지 않는 자는 망하기로 계획된 자입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대형교회들이 성전을 건축하다가 부도가 많이 났습디다.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왜 그럴까요? 준비하지 않고, 예산 편성해보지 않고 그냥 ‘믿음이다’ 하고 덤볐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욕심을 버리고 준비된 상황에 맞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꼭 하나님의 결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통보가 아니라 하나님께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여쭤봐야 합니다. 고속터미널 옆에 땅끝예수전도단 건물 기억하지요? 당시 그 건물을 좋은 조건으로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왔었습니다. 절호의 기회였지요. 저는 물론 우리 성도들조차도 좋아서 기분이 붕붕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꿈을 꿨습니다. 줄로 연결된 큰 배 두 척이 잘 가다가 본부 건물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는 꿈이었습니다. 그 두 배는 서울교회와 인천교회였습니다.
또 한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저를 계속 따라오면서 김밥을 먹으라고 하는데, 맛있게 보여 먹으려는 순간 경찰이 수갑을 제 손에 채우려고 했습니다. 또 당시 건물주가 감옥에서 나오고 제가 대신 들어가는 꿈도 연이어 꾸었습니다. 꿈을 깬 저는 돌아보지 않고 그 건물인수를 포기했습니다. 다들 ‘왜 그러느냐, 이런 기회가 흔한 게 아니다, 목사님에게만 주는 특혜다’라는 말로 저를 현혹했지만, 저는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할 만큼 저는 어리석은 자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그 건물을 인수한 사람이 제 꿈대로 옥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만일 그 건물에 욕심나서 인수했더라면 망고를 쥔 원숭이 짝이 되었을 겁니다.
여러분, 시간이 촉박하지만, 조급하지 맙시다. 조급하면 보이던 것도 안 보이고, 욕심인지 소망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잠16:9).
다시 부탁합니다. 다투면 안 됩니다. 죄 짓지 맙시다. 우리 모두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꼭 맞는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감당할 수 없는 것은 화(禍)가 된다
욕심은 마귀의 덫이다 욕심은 너를 죽인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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