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지 못한 비밀
너도 이제 고등학생이 됐으니
술 한 잔쯤은 마실 줄 알아야지?
식당에 삼겹살 먹으러 간 날 아빠가
내게 소주잔을 내밀었을 때
에이, 전 술 같은 건 안 마셔요
놀라는 척 뿌리쳤지만
작년에 벌써 친구들과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셔봤다는 걸
아빠는 알까?
알면 뭐라고 하실까?
괜히 찔려서 삼겹살이 목에 걸릴 뻔했는데
순진한 얘 버려놓지 말라며
아빠를 흘겨보는 엄마 때문에
나는 또 얼굴이 달아올라
물을 마시는 척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학교 담을 넘다가 걸렸다
담은 넘으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항상
장애물을 만나면 뛰어넘으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선생님, 제 반성문은 왜 찢는 거죠?
가물치 덕
할머니
내 얼굴은 왜 이렇게 까매요?
니 엄마가 니 가졌을 때
내가 가물치를 고아 먹여서 그런갑다
가물치 대신 꽃잎을 달여 주셨으면
꽃미남으로 태어났을 텐데요
그랬다간 꽃잎처럼 벌써 지고 말았을 겨
가물치 덕에 니가 펄펄 뛰댕기는 줄이나 알어
그래도 나중에 내 색시한테는
가물치 같은 건 안 먹일 거예요
색시한테 장가갈 마음은 있는 걸 보니
그것도 다 가물치 덕인 겨
대통령감
우리 아버지가 대통령은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 친구 동섭이도 대통령 할 수 있겠다
게임에서 지면 떡볶이 사 준다고 해 놓고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딱 잡아뗀 게
벌써 몇 번짼지 모른다
하필이면
1교시가 체육 시간이라
급하게 옷을 갈아입는데
하필이면 담배를 흘릴 게 뭐야
누가 볼세라
흘린 담배를 잽싸게 줍는데
하필이면 담임선생님께 걸릴 게 뭐야
교무실에 끌려가
구석에서 벌을 서는데
하필이면 엄마 얼굴이 떠오를 게 뭐야
왜 아빠하고 헤어졌냐고
지금부터라도 함께 살자고
하필이면 아침부터 엄마 속을 긁어대고 말았지 뭐야
밥도 안 먹고 나오면서
엄마가 주머니에 넣어준 돈을 만지작거리다가
하필이면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났지 뭐야
찔리십니까? 찔리실 겁니다
선생님이 쓰는 교무실을 왜 우리가 청소해야 하는 걸까요?
교육청 말은 잘 들으면서 우리들 말은 왜 안 들어주는 거죠?
똑같은 교복을 입혀놓아도 우린 결코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웃기는 짬뽕
잠 안 잤어요
눈만 감고 있었는데요
이 자식 봐라
완전히 웃기는 짬뽕이네
선생님은 내가 중국집 배달 알바 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박일환 / 내일을 여는 작가
-1961년생
-중 고교 교사
-세종도서 문학 나눔/한티재 刊/<학교는 입이 크다> 시집에서 옮김
첫댓글 ㅎㅎ 교실안 풍경을 그대로
복사 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