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삶이 힘겨울 때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확신이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길을 걸어야만 아름다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가난하다고 책을 사지 않으면 더 가난해진다는 것을. 삶이 힘겨워 음악을 사치라고 여기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늘 잊지 않았다.
나는 새벽이라는 종교를 믿는다. 새벽에 깨어나는 모든 것들은 삶의 간절함을 담고 있다. 밤의 침묵이 만들어낸 슬픔이 엷게 깔리고 어디에도 없을 구원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는 시간을 새벽이라고 부른다. 용서받지 못해 슬픈 삶은 뒤척이던 밤을 떠나 작업화의 끈을 묶고 세상에 발을 디딘다.
밤의 세상에 눈이 내린다. 나는 이따금 밖에 나가서 바람에 흔들리며 쌓이는 어둠과 그 위에 내리는 눈에 마음을 맡긴다. 고적한 밤의 공기가 나를 감싸면 누구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다가도 지금 이 순간의 차갑고 맑은 쓸쓸함에 금이 갈까봐 한 사람의 이름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하루 종일 식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것이 눈이 내리는 날에 대한 예의였고 살아 있다는 유일한 확인이었다. 이제 FM의 음악이 이끄는 밤을 따라간다.
직장을 다니다가 정년퇴직하고 경비 일을 하며 3년 6개월의 새벽을 새겼다. 간절함은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다. 희망은 성공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그저 지피는 겨울의 화덕 같다. 작가에게 책과 음악은 새벽의 위로이자 안식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알 수 없는 그의 슬픔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