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은'시인의 '별일 달일' 을 좋아하지않았다.
어떤 아이는 아파서 보건실에 가면서도 엄마한테는 연락하지 말아달라고했다.
엄마가 걱정할까봐. 혹은 엄마는 바쁠테니까.
그런 아이를 마주할때면 살짝 화가 나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어른의 마음까지 챙기는게 싫었다.
왜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정도로 싫은지
이번호 "동시마중"(2023년 1,2월호)에 실린 이유진선생님의 격월평을 읽고 깨달았다.
나는 늘 부모를 너무 사랑하는 아이였다.
폭력으로 되돌아오는 사랑에도 사랑으로 보답했다.
어쩌면 내 삶의 모든 원동력은 부모에게 사랑받고싶음에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건없는 사랑이 아니라면 더이상 애걸하지않겠다 다짐했다.
매일 저녁 별일을 달일로 만들어 내어놓던
어린 나를 미워했다.
하지만 이유진선생님의 격월평을 읽고
어린 나를 미워했던 지금의 나를 반성하게됐다.
(어린 나는 나에게 또 한번 버림받아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저 사랑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었음을
가진 게 없어 있는 모든 것을 꺼내 사랑했었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여기.
또 제자리.
'김성은'시인의 '별일 달일' 을 사랑하게 되었다.
무지 아끼고 싶어졌다.
이 시를 앞에두고 어린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큰 아이에게 좀 큰일이 있었다.
어떤 사건 같은거였는데
그 사건을 들은 건 오후3시쯤
아이를 마주한 건 저녁7시쯤
그 사이 4시간동안 참 많은 감정을 느꼈다.
그 중 가장 날 차분하게 만든 건 어린시절의 기억.
4학년 때 나에게 벌어졌던 한 사건이 떠올랐다.
사건만 놓고 보자면 우리 큰 아이와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문제였지만 감정이 같았다.
내가 해결하지못한 어떤 문제가 아이에게 되물림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되물림을 막고자 무수히 해왔던 노력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
그래서 이번 이유진선생님의 글이 더 좋았다.
글 속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사랑의 임무를 다하였던 아이가 자라
어른(여전히 그 어린아이가 내면에 있는)이 되었고
사랑의 임무를 또 다른 방식으로 펼쳐내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음을.
그 진정성이 나를 더 사로잡은 것 같다.
이유진선생님은
"기다림을 배반하는 어른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하였지만
그 어른 또한 여전히 아이임을 알기에 보듬어주고싶다.
이 모든 건
껍데기와 알맹이와 또 다시 껍데기의 이야기.
그래서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다.
첫댓글 별일 달일
반야도 저녁 어스름 무렵 큰 딸아이의 별일을
접했습니다.
별일 없이 달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_()_
별일이 많으며 커야 더 튼튼하게 큰다는걸 아니까. 반야님의 큰딸도 무사히 더 튼튼하게 지나가길요.
별일을 꼬냥 꼬냥 다 말 하던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점차 달일만 꼬깃 꺼내 말해줍니다.근래 부쩍 거리감을 느끼며 어느새 나도 별일만 말하고있네요.새겨 돌아 보게됩니다
사랑의 임무를 다하였던 아이, 같아요. 그 아이의 얘기를 들려 주셔요.
설 명절 잘 쇠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