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천안ubf부활절 특강 메시지 2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한복음 11장 17-43
요절 요한복음 11장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우리는 지난 주 죽음은 잠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니, 죽음은 잠보다 더 좋은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평안히 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세상에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지금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의 영광을 우리의 삶에서 체험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돌을 옮기는 가운데 부활의 주님을 지금 이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마르다 부활신앙의 문제들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셨을 때는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중동의 더운 날씨로 시신은 썩어서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나사로의 집에는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와서 위로해주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동구밖까지 나가서 예수님을 맞이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사색적인 사람이라 집에 머물렀습니다. 마르다는 울면서 왜 예수님이 늦게 오셔서 우리 오빠가 죽게 하였느냐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수님이 지금이라도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주실 줄 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리아에게 구체적으로 너의 오빠 나사로가 살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나사로가 다시 살 줄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마르다는 부활신앙이 있는 것 같지만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그가 슬퍼하고 원망하는 것을 보면 부활신앙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마르다는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두 번이나 안다고 말하지 믿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지식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공부 많이 했다고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성경지식은 우리에게 힘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한 말씀이라도 마음으로 영접하고 순종해야 힘이 됩니다.
둘째, 마르다는 추상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주실 줄을 안다고 하지만 나사로가 살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인류는 사랑할 수 있으나 가까이 있는 가족을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내 전인생을 드린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만원을 헌금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학과 공부, 건강, 직장 그리고 제자양성에서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구체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마르다는 미래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여기 계신데 예수님이 지금 나사로를 살릴 것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마지막날 부활에 살릴 것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지금 여기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바로 현재인 것입니다.
(2)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지금 에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부활이십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비록 죽어도 다시 삽니다. 지난 시간 배운 것처럼 우리는 잠자다가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살게 됩니다.
둘째,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사망권세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영원히 생명을 맛보며 살아갑니다. 제자들처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르다처럼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고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에수님을 지금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님은 그리스도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마르다는 사망권세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슬픔 대신 기쁨이. 원망 대신 감사가 마음에 생겨났습니다.
저는 과거 고일 때 할머니의 죽음으로 병든 병아리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삼학년 때 이 말씀을 영접하고 학과 공부를 승리하고 네 명의 제자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최유성 목자님은 간염으로 몸이 연약하였지만 이 말씀을 잡고 군 훈련과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전역하여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아멘!
(3)눈물을 흘리며 분노하시는 예수님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마르다는 예수님 오신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가자 사람들은 곡하러 무덤으로 가는 줄 생각하고 따라갔습니다. 마리아는 마르다처럼 예수님께 원망의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통곡을 하였습니다. 함께 따라온 유대인들도 함께 예수님 앞에서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연세가 차서 돌아가시면 슬픔이 덜합니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죽으면 우리의 슬픔이 더 큽니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 때 젊은 고등학생들의 죽음을 보면 온 국민이 슬퍼하였습니다.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들의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 두 가지 반응을 보이십니다.
첫째는 함께 슬퍼하시고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시며 함께 우셨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함께 울어줄 때 슬픔이 반감됩니다. 우리는 초상집에 가서 부활이 있을 것인데 왜 이렇게 우느냐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과 함께 울어주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들을 인하여 비통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였지만 나사로를 죽제 않게 하실 수 없어서 우는 줄로 생각하자 더 비통히 여기셨습니다. 비통히 여기셨다는 것은 분노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에 분노하셨고 그들의 뒤에 있는 사탄과 사망권세에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분노하시고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죄와 사탄에 대해서 불신해야 우리가 슬픔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4)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비통히 여기며 무덤으로 갔습니다. 무덤은 돌로 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죽은지 나흘이라 냄새가 나서 돌을 옮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고백하였지만 냄새나는 현실에 마주 하자 불신의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다고 말씀하습니다. 예수님은 절망적인 현실보다 말씀에 기초하여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믿음을 갖고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임이사야 선교사님의 요절입니다. 일학년 때 학점이 2점대 초반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도전하여 과차석이 되었습니다. 군대 갔다와서 토플 점수가 부족하였지만 이 말씀을 붙자고 도전하여 워싱턴엗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박사를 하였습니다.
(5) 나사로야 나오라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께서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믿음으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 나사로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자가 손과 발을 베로 동인 채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수건과 베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얽매인 것을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앞으로 죽을 우리를 살리실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한 줌 재가 되고 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서 살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죽으면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김다윗, 최요한 그리고 백한나를 부르실 것입니다.
(결론) 믿고 돌을 옮기자
결론적으로 나사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음을 맛보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가 죽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죽어도 다시 살게 하십니다. 이곳에서 사망권세에 시달리지 않게 하십니다.
지난 주 루디아 사모의 부친이 소천하셨습니다. 모친이 소천하고 3달 조금 지나서 다시 부친도 소천하셨습니다.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래도 감사한 것은 부모님 두 분 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부모님을 다시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루디아 사모도 슬펐지만 장례식을 치르며선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현실에서 돌을 옮겨야 합니다. 불신의 돌, 절망의 돌, 슬픔의 돌, 두려움의 돌, 원망의 돌을 옮겨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를 살려주실 것입니다. 아멘
2021년 천안ubf부활절 특강 메시지 2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한복음 11장 17-43
요절 요한복음 11장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부활절 특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