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더라 통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께서는 스크롤 바 쭉 내려주세요.^^;)
당주가 백암성을 항복받자 이세적에게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안시성은 성이 험하고 군사가 정예하며, 그 성주는 재능과 용맹이 있어 막리지의 난에도 성을 지키고 불복하므로 막리지가 이를 쳤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맡겼다고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조-
당태종의 이와 같은 출처불분명한 발언 하나 때문에 현 통설에서는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의 정변 때 항거한 대표적인 지방세력이라고들 해석하고 어떤 학자들은 더 나아가 안시성주 말고도 더 많았을 것이라고 확대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 발언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카더라 통신으로 진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해석들은 당태종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측면에서 분명 성급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발언을 두고 섣부르게 단정하여 확대해석하기 보다는 당태종의 저 발언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 지에 대한 추론과 분석이 우선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연개소문과 안시성주의 대립을 신뢰하는 입장과 불신하는 입장의 견해들을 여섯 가지로 정리한 것입니다.
연개소문과 안시성주의 대립을 신뢰하는 견해
1.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서 볼 때 대권을 가진 자라고 해서 무조건 약자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연개소문 정권의 고구려도 (당의 지원을 받았다지만)거란 공격에 실패했다.
2. 당과의 일전이 코앞이기 때문에 연개소문이든 안시성주든 더 이상 대립할 수 없어서 타협한 것이다.
3.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군 중 하나인 당태종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4. 당태종을 유언비어 따위를 믿을 우매한 군주로 볼 수 없다.
5. 중국사서가 타국의 모든 것을 다 기록해야 할 이유는 없다.
6. 2개성을 공파했다는것은 신라본기에도 조차 안나오고 당나라의 상리현장에 의해서만 나오는 내용인데다가 내부적 문제는 밖으로 표출하는 경우는 수도없이 많지요. 게다가 전국적인 문제가 일시에 터져나오는것이 아니라 조금씩 그리고 지속적으로 쌓여가가기도 합니다. 이미 이 관련해서는 상식적으로 생각 해 볼수있는 인사교체와 그로 인한 혼란 백암성의 함락과 가시성 출신 병사 700명의 자발적 원조행위 안시성군대와 고연수의 15만군의 미연계로 충분히 추정이 가능합니다.(레볼루션님이 퍼오신 네이버 카페의 모님의 견해 인용)
연개소문과 안시성주의 대립을 불신하는 견해
1. 당태종을 패퇴시킨 연개소문 정권이 성 하나를 함락시키지 못했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2. 연개소문과 안시성주의 대립은 연개소문을 극악으로 묘사하는 당태종과 신료들 그리고 사관들에게 상당한 화제 거리였을 것이고, 역신 연개소문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강화시켜줄 좋은 소재였음이 분명하나, 연개소문의 품행 묘사는 물론 안시성주의 대립의 자세한 기록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안시성 전투 때 당태종의 출처불분명한 발언에만 나올 뿐이다. 당태종의 어투로 볼 때 연개소문과 안시성주의 대립 관련 내용은 그가 최초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3. 당태종은 아버지인 당고조의 업적을 폄하, 왜곡한 사례가 있으며 간계와 임기응변에도 능한 인물로 거짓말을 못할 이유가 없다.
4. 고대의 대부분의 정보는 풍문이나 타지에서 온 자들에게 소식을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는 과장, 왜곡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유언비어를 믿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5.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킨 시점 관련 기록 중 대립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6. 642년 10월에 정변을 일으킨 후 불과 1년하고도 반년이 안 되는 시간에 연개소문이 직접 신라로 원정을 가서 2개성을 공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국적으로 연개소문에 대한 궐기가 일어났다면 연개소문이 외정을 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궐기가 일어났다고 하는 지역은 당태종이 대패한 안시성이었다. 당태종도 점령하지 못한 곳인데다 나라를 지킨 절의의 상징으로 안시성주가 빛났다면 반역의 상징으로서 연개소문에 대해 대비시키는 구도를 통해 그를 깎아내릴 개연성도 있을 것이다.
설령 외정의 목적이 국내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우선은 그의 부재로 궐기 가능성이 높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궐기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여지가 있다. 즉, 전통귀족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군사적, 정치적 세력들이 연개소문의 정변에 대해 쉽사리 궐기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공감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고 봐야할 것은 아닐까? (한단인님 글 인용)
이렇듯 어느 한 쪽을 택하여 다른 한 쪽을 간단히 치부하기에는 복잡한 사안들이 있는데, 회원 분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카더라 통신: 카더라는 ‘-고 하더라’의 동남 방언(경상도 사투리)에서 나온 말로서 “○○가 ~라고 하더라” 식으로 정확한 근거가 부족한 소문을 추측 사실처럼 전달하거나, 그런 소문을 의도적으로 퍼트리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이렇게 전해진 말들은 정보출처의 신빙성 자체가 떨어지거나 아예 정보의 출처가 불명확한 경우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문은 그 출처로 '업계 관계자', '모인' 혹은 '아는 사람' 등의 모호한 출처를 사용해 나름의 신빙성을 부여하려는 것이 특징이다.[1] 그런 출처를 AP 통신사이나 로이터 같은 주로 인용되는 통신사에 빗대어 카더라 통신이라고 부른다.
카더라 통신은 정치적인 목적의 발언이나 언론 보도부터[1][2] 악의적인 비방을 위한 인터넷 댓글에까지 사용된다.[3]
이러한 근거를 모르는 소문은 일반 대중에 의해 상식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그럴 개연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사실로 받아 들여지곤한다. 이러한 소문은 억측인 경우가 많지만 때론 사실로 드러나기도 한다.
“~라 카더라”라는 식의 소문은 또한 종종 “~ 아니면 말고” 식의 표현과 함께 쓰인다. 이것은 정치인 등이 ‘카더라’ 통신을 근거로 특정인을 비방하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무책임하게 발뺌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특히 저널리즘의 세계에서 이러한 ‘카더라’ 식의 보도는 경계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만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 보도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문·방송 등 보도 매체들이 신뢰성 있는 정보원(情報源)과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내는 오보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경상도민을 비하하고 비꼬는 데에도 쓰인다.
출처: 위키백과
첫댓글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하기 전에 몇 가지 궁금증입니다. 첫째, 당태종의 대군을 맞아 성을 지켰던 안시성 세력이라면 연개소문한테도 충분히 방어할 능력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둘째, 이세민의 한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반대로 무조건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가 있는 논리가 아닌가요?
첫 째는 저도 수긍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둘 째 관련 내용은 무슨 내용인지 이해 못하겠네요, 죄송하지만, 좀 더 풀어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
그러니깐 이세민이 한 말을 부정하는 것에서 위의 논리가 출발하는데 그렇다면 이세민이 위의 당시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만한 위인이라는 증거를 충분히 제시한다면 설득력이 더 생길거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저의 첫 번째 의문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여지가 생기겠지요.
당태종이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못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은 간단한 사례를 들긴 들었는데, 부족한가보네요.^^;;
님의 고민 충분히 이해합니다. 뭐 고대사 연구가 다 그런거지요 ㅋㅋ
뭐 고민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요. 그냥 양측 입장 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연개소문은 태왕을 죽인자입니다 고구려 태왕을 죽였는데 연개소문에 반하는 세력이 없다는 것이 이치에 맞을까요 그리고 수백명들의 귀족을 죽이고 원한의 씨앗을 곳곳에 퍼뜨려 놓았는데 그를 죽일려고 이를 가는 세력들이 없을까요 연개소문의 반역의 첫단추에서 이미 내부분열의 씨앗은 뿌려졌으며 고구려멸망의 제1의 원인이라고 볼수가 있을 것입니다 약간의 공이 있다면 사대주의모화에 쩌는 우리가 아닌 중국에 강하게 정벌까지 할려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작은 쾌감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연개소문의 행위가 어떤 성질인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라도, 멸망하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하지 않고 멸망의 원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비약이며 개인적인 추측일 뿐입니다. 역사적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경우는 일반사인데 이들 모두 단순히 멸망의 원인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이연은 수를 무너뜨리면서 수많은 적을 제거했고, 이세민은 가장 열세인 위치에서 형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몰아내며 황제가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내부분열의 씨앗을 운운하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내부 쿠데타로 원한관계를 만들어 내부분열의 씨앗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국가멸망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올리버 크롬웰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죽이고 호국경으로 집권한 것도 '내부분열로 인한 영국 멸망(혹은 쇠퇴)의 씨앗을 잉태했다' 고 평해야 하겠지만, 크롬웰 시절 영국에 대한 평가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이후 쇠퇴하던 영국을 다시 열강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입니다.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이 그러했듯 크롬웰 역시 그 아들 리차드가 개판친 예가 있으나 그것은 크롬웰 가문의 몰락으로 이어졌을 뿐, 영국의 몰락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지요.
개인적으로 돌부처님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문제는 전후 사정입니다...연개소문 세력이 포용력이 넓었다고 한들...연개소문세력에 반대하는 부류는 있었지만..반란의 기치를 든 세력은 없었다는 겁니다..어느 사서에도 그러한 흔적이 없다는 겁니다...왜 일까요...통상적으로 혁명에 성공하면 반대세력을 반란으로 몰아 제압하는게 이치인데....전혀 그러한 흔적도 없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조선상고사에서 연개소문과 안시성주 양만춘과의 갈등은 안시성을 뺏지못해 상처받은 당태종의 자기위안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명쾌히 밝힌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