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이념을 초월한다!
- 신만교 목사(화평교회 원로목사)
우리나라는 지금 대통령 탄핵 정국을 보내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 폐해를 따지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 계엄과 탄핵에 대해 찬반이 갈리고, 민심은 양분되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이 난국에서 교회도 양분되고, 정치적 현안에 대해 찬반을 요구받고 있다. ‘애국 운동’이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목사들도 있고, 그런 교회들이 연대해서 광장에 모여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보수 유튜브를 보면,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자기 교회 목사가 침묵하고 있다고, ‘애국 운동하는 교회’로 옮겨야겠다고 한다. 우리 교회 목사는 탄핵 찬성파인가, 반대파인가, 주시한다.
교회가 또는 목사로서, 이 예민한 정치적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때 제자들이 물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다시 말해 “지금,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 아래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언제 메시아 왕국이 도래하고, 언제 세계를 제패하고, 언제 다윗 왕 때와 같은 전성기가 옵니까? 바로 지금입니까?” 다분히 정치성 질문이다.
예수님은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다시 말해 “그건 너희가 알 바 아니니, 그 문제엔 관심을 꺼라.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신다. 지금 너희가 관심 가질 일이 있다. 오직 성령을 구하라. 그리고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은 세상 나라와 정치나 경제적인 문제에 신경 쓸 때가 아니고, 오로지 성령을 받고,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천만다행히 제자들은 주님의 분부를 받들어,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강림을 맞았고, 예수님의 심장 속에 있던 교회가 세워짐으로 사도행전의 새 시대를 열었다.
예수님의 12제자의 면면을 보면, 정치적 성향이 다 달라, 친로마파도 있고, 반로마파도 있고, 온건한 사람도 있고, 과격한 사람도 있고,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진보적인 사람도 있었다. 정치이념과 시국에 대한 견해도 각기 달랐을 것이다.
초기엔 ‘누가 크냐’를 다투기도 하였고, 주님 좌우편의 영광을 구하던 제자들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체험한 후에는 오로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목숨을 걸었다.
각자의 정치이념과 시국관이 성령 안에서 녹아져서 오로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에 한마음이 될 수 있었다. 복음 때문에 정치이념을 초월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정치이념에 빠진 목사가 많이 있다. 극우극좌적 정치이념에 매여, 정치적 선동을 하고, 교인들을 애국 운동이라는 명분으로 정치집회에 동원한다. 애국 운동은 하나 되게 하는 성령의 역사라기보다,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는 정치집회다.
물론 목사도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 개인적 정치적 신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목사라는 공인으로서, 교회의 공적 모임이나 강단에서 특정 정파나 정치이념을 주장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강단에서도 정쟁과 정치이념을 떠나, 공동의 선이요, 가치인 자유, 정의, 평화, 인권, 통일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교회가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동성애 반대에 나셨다.
복음은 정치이념을 초월하고, 보수와 진보도 초월한다. 교회가 정치이념에 매몰되면 복음이 훼손되고, 복음을 위해, 피 값으로 산 교회를 정치단체로 만들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속 단체로 전락시킨다. 그것은 곧 교회의 신뢰도 하락을 가져온다.
복음(福音)은 모든 시대, 모든 사상, 모든 이데올로기를 초월한다. 복음을 맡은 교회는 모든 이념과 사상이 녹여져 어울리는 용광로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보수나 진보나 중도일지라도 복음 안에서는 한 형제요, 영적 가족이다. 복음은 이념을 초월하기에, 진보적 교인이라도 보수적 교회를 다닐 수 있고, 보수적 교인이라도 진보적 교회를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진보가 될 수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정치이념이나 정쟁은 그것을 이용해서 권력을 쟁취하려는 정치인들에게 맡겨 놓는 게 좋다. 목사로서 영원한 복음을, 불완전한 인간의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일이다. 목사로서, 어떤 정치이념이 마치 복음인 것처럼 투쟁하듯 주장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기독교는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나라는 망해가는데 예배당 안에서 기도만 하면 되느냐고 한다. 편향된 정치이념에 함몰되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시각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사상과 정치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국가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다.
복음은 이념을 초월한다. 복음(福音)은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이 된다. 반면에 정치이념은 꼭 호불호(好不好)가 생기고, 편을 가른다. 그래서 교회에서나 친구 모임에서 정치 얘기는 피하는 것이 상식이며, 예의이다. 정치 논쟁은 반드시 마음을 상하게 하고, 화평을 깨트린다. 복음 전도자는 정치이념에 매이지 않고, 무분별하게 정치성 글이나 영상을 옮기는 일을 절제한다. 의도가 아닌, 가짜뉴스를 전파할까를 두려워한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화평을 도모하는 마음,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때문이다. 지금 대부분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이 정도를 지키고 있다.
교회는 오로지 복음에 목숨 걸어야 한다. 교회가 복음을 제쳐놓고 정치이념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념은 무조건 옳고, 다른 조직의 이념은 무조건 그르다는 진영논리(陣營論理)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교회는 좌도 우도,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복음을 맡은 교회는 모든 정치이념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녹여내, 하나 되게 하는 화해자 역할을 해야 한다. 복음은 이념을 초월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이념으로 편 가르기 하지 말고, 주의 몸 된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기도하자.
예수님은 장차 지상에 세워질 교회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신다.
“아버지, 우리와 같이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한 17:22)
(한국성결신문 게재)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