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vRp3R73a2O4?si=WfA95D9Du69rSHj7
인내의 모범이신 예수님 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징계의 영적 유익 12:4~11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허다한 증인이 있으니 우리는 죄를 벗고 인내로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 낙심하지 말고 죄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로 여기시기에 징계하기도 하십니다. 징계로 인한 연단은 결국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
인내의 모범이신 예수님 12:1~3
신앙생활은 산책이 아니라 경주입니다. 전투와도 같은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 성도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습니다. 방종이나 탐욕 같은 방해물과 세상 길로 유혹하는 죄를 제거하고, 온전한 ‘인내’를 갖추어야 합니다. 믿음의 시작이며 완결자이신 예수님은 인내의 모범이십니다. 그분은 인류 구속을 위해 인내로 수치의 십자가를 지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자신을 거역한 죄인들을 참으신 그리스도를 기억할 때, 우리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1절)이 되어, 믿음의 경주에 참여하는 우리를 하늘에서 독려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는 완주할 때 인정받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 필요한 영적 덕목은 무엇인가요?
인내하기 힘든 상황에서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징계의 영적 유익 12:4~11
히브리서 기자는 다가올 고난과 징계에 관해 교훈합니다.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증인들과 달리,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아직 피 흘리는 싸움까지는 겪지 않았습니다(4절). 신앙의 경주에는 하나님의 징계도 따릅니다. 징계를 대하는 두 가지 잘못된 태도는 오만으로 징계를 가볍게 여기는 것과 징계로 인해 낙심에 빠지는 것입니다(5절).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며, 징계가 없다면 친아들이 아닙니다(6~8절). 따라서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 복종하는 것이 옳은 태도입니다(9절). 징계의 목적은 우리를 성숙시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시키기 위함입니다(10절). 징계는 연단을 통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11절). 고난은 감추어진 은총입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의 징계가 성도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고난 속에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
은혜 인생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얻거나 결정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인종·성별·생일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손을 벗어나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삶은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삶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있음을 아는 사람은 이러한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고집을 꺾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꺾이지 않으려고 회피해서도 안 됩니다. 반항하고 도망치다 보면 오히려 만신창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주도권을 내려놓고 수동적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이 온다 해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을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이것을 빨리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인생의 비밀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전능자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이 참된 복을 누립니다.
이기는 성도 / 이규현_ 두란노
=============
한절묵상:히브리서 12장 1~2절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 기억해야 할 것,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은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죄'요,
기억해야 할 것은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신 모범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마치기까지 경주자는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며, 예수님의 손으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시기에 인내와 충성의 시험을 기꺼이 받으셨고 실패하지 않으셨다. - 찰스 크랩
오늘의 기도
주님! 경건 훈련에 방해되는 것, 거룩함을 지키는 데 올무가 되는 죄와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저를 바로잡아 주시는 주님의 질책이 사랑임을 알고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끝까지 인내해 결승점에서 주님께 칭찬받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42 너 시험을 당해)
--------------
*믿음은 우리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어떤 고난이라도 자초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이 고난은 도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고난의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의 양면성을 생각하면서, 단순하게 믿음의 화려한 면만을 좇아가지 말아야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감당해야할 적극적인 고난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믿음의 삶은 정말 황홀한 삶입니다. 믿음의 삶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치 못하는 능력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을 우리의 것으로 끌어당기는 삶입니다. 구약의 믿음의 인물들이 특별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믿음과 그것을 가능케 했던 하나님이 위대합니다. 또한 믿음의 삶은 세상의 어떤 고난과 시험도 능히 이기게 하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허무와 불신과 배교와 무기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믿음의 삶이 요구됩니다.
--------------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더 좋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기꺼이 나그네의 삶을 인내하며 살아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지금 당장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약속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기뻐할 수 있는 삶이 되고, 낙담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그 약속을 굳게 믿고 나아가도록 하자
② 이 땅에서 많은 고난과 시련이 닥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두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잘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하자
③ 이 땅에서 길손으로 살아가고, 나그네처럼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굳게 믿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가면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그분을 풍성히 누리도록 하자
-
---------------
오늘 본문은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고 독려하는 내용과 자녀를 징계하지 않는 아버지가 없듯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연단하신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연단은 의와 평강과 의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믿음의 경주, 바라보아야 할 본, 징계의 목적, 징계의 유익 등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죄와 싸웠지만, 아직 죽을 정도로 대항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비교해서 한 말입니다. 여기서 ‘죄’란 ‘악의 무리’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그런 악한 무리와 싸워 아직 순교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장차 핍박을 당할 때, 더 강한 고난을 당한 그리스도와 순교자들을 생각하여 대적자들의 싸움에서 지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징계를 받는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진정한 아들로 인정하셨기에 허락하셨다는 말입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녀 삼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징계로 인한 고난을 당할 때 슬퍼하거나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 됨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잘못이 있어도 징계를 받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사생아이며 친자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는 징계가 아들 됨의 증거임을 증명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생자’란 노예나 첩의 아들 등을 가리키는 말로, 본부인이 아닌 소실에서 난 서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상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만약 그리스도인에게 징계가 없다면 그는 서자인 관계로,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도 될 수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 이야기하면 징계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된 신분으로서 상속자로서의 특권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친자녀로 여기시기 때문에 징계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12:7~8)
오히려 불 같은 징계가 우리 눈에 더욱 뚜렷하게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보게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가 또한 그러합니다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슥13:9)
물론 환난의 징계가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그러나 징계는 미움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12:5~6)
뿐만 아니라 미움의 징계가 아니라 사랑의 징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한 것에 비하면 매우 잠깐에 불과합니다 또한 그 징계의 목표가 징벌이 아니라 의와 평강이기 때문에 근심보다는 기쁨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1:6)
잠깜의 고난으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도 주께 가까이 가기 원합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시63:8)
그리하면 주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하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145:18)
우리가 당한 경주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많은 증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주이며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봄은
그 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고 결국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참으신 그 분을 기억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직 우리가 죄에 맞서 싸우며 피 흘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때로는 우리로 권면의 말씀과 징계하심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그의 독생자 아들이 받은 그 징계와 같이 우리를 사생아로 여기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자신들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나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거룩함에 동참하게 하셔서
결국 연단 받은 자들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키고
곧은 길을 만들어 나아감으로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해야 합니다.
‘연단된 사람들(11절)’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핍박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먼저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와 순교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향해 놓여 있는 고난도 쉬이 견뎌내기 어려운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고통의 길 가운데 히브리서 기자는 잠언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그 의로우심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녀를 가르치듯 고난을 통해 우리를 훈계하시고 있으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힘든 일이나 땀 흘리는 운동을 한 후에 잠시의 시원한 곳의 휴식은 매우 유익합니다. 하지만 결국 피곤한 육체를 씻고 안식처로 돌아가는 것이 그 회복의 해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의 삶을 거룩하신 그분의 씻으심으로 초대하여 연단시키시므로 의로운 평강의 열매가 맺히는 인생(11절)으로 이끌어가십니다. 아무 일이 없고 어떤 위협을 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어떠한 위협과 장벽 앞에서도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손길을 붙드는 삶이 참 평안에 거하는 삶임을 깊이 돌아보고 인내로 연단을 이뤄내는 복된 한 주간의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은 징계에 따른 연단을 받지 않으면 사생아요 친자가 아니라고까지 선포합니다. 곧 징계에 대한 당위성을 강력하게 어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리기 시합에서 넘어진 아들을 보고 더 뛰지 말고 포기하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없을 것입니다. 괜찮으니 다시 일어나 달리라고 말할 것입니다. 밤늦게 놀다가 들어 온 딸을 보고 칭찬할 어머니는 없을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혹독하게 다룰 것입니다. 진학할 자녀를 데리고 외국 여행 나갈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T.V. 앞 안락한 소파보다는 기어이 딱딱한 책상 의자에 앉힐 것입니다.
그 아이가 자기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집 아이라면 그렇게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수하면 격려합니다. 말 안 들으면 치도곤을 합니다. 더욱 나은 내일을 위해 아이를 다그칩니다. 부모라 그렇습니다. 친부모가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도 그렇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다가 종종 넘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방해물 때문으로, 바로 죄를 말합니다. 뿌리쳤어야 했는데, 피했어야 했는데 그만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벌을 줄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친아들을 희생시켰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여러 루트를 통하여 말씀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자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듭니다. 그렇다고 버리시려고 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징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한 이유입니다. 그렇듯이 하나님의 징계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징계는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고되고 아픕니다. 그러나 훈련이 끝나면 실력이 늘듯이, 징계도 마치면 열매가 맺는다는 사실입니다.
의로운 열매입니다. 믿음의 내성의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그래서 징계의 동의어는 연단이고 훈련입니다. 일종의 성장통입니다. 또 다른 축복인 셈이지요. 징계를 환영하지는 않더라도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매도 매입니다. 가급적 안 맞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피하지 못할 매라면 확실히 맞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깨닫고 의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비 온 뒤에 땅이 단단해지듯이, 성장통 뒤에 더욱더 커진 믿음의 열매를 말합니다
---------
2. 해석 : 본문연구
1) 인내를 가지고 경주하라(1-4절)
- ‘그러므로’로 본문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경주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본문은 구름 같은 수 많은 증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인물들이 11장에서 소개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황을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함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믿음 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길 권합니다. 그 분이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고 죄인인 우리에게서 거역함을 경험하여도 참아 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인이 받는 징계와 권면(5-11절)
- 본문에서 두드러진 표현은 ‘부모’와 ‘징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징계하시는 것과 같은 경험을 주시는 것이 바로 ‘부모’ 즉 ‘참부모’이기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징계인데 우리를 사생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친아들과 같이 부르셨기에 동일한 고난을 주며 불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을 훈련하고 자녀로 인정하는 자를 채찍질하십니다. 오히려 이러한 징계가 우리로 살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훈련이 연단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
1.영광은 인내한 자에게 주어집니다.(1-3절)
11장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수 많은 신앙 인물들에 대하여 말씀한 후에 이제 그 믿음의 삶을 우리가 살아가기 위하여 어떻게 행해야 하는 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셨던 그 모범을 닮아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영광을 받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기에게 준비된 더 큰 영광의 세계를 아셨기에 십자가의 고통까지도 우리를 향한 사람으로 이겨 내시고 참아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원하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복음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괴로움과 환란을 이겨 낼 수 있는 인내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자는 곧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묵묵히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묵상하기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같은 인내로써 달려가고 있는가?
9월 24일 교회사거리에서
2.징계는 아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4-13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마귀가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하는 유혹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징계하시는 것은 곧 우리가 그분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쁘게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사생아가 아님을 하나님께서 징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고 죄와 타협하며 살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징계라는 방법을 통하여 죄에서 돌아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징계를 즐겨 받으며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성장해 가야 합니다. 나를 연단하여 더욱 더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참뜻을 바로 이해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죄와 싸우기를 피흘리기까지 하고 있는가?
--------------
1-3절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믿음의 모범이십니다. 믿음의 처음과 끝이시고, 그 믿음을 우리 안에 창시하시고 완성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믿음은 신념이 아닌 인내였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을 '실상'(11:1)으로 바라는 믿음으로, 십자가의 수치와 적대자들의 모욕을 참아 내셨습니다. 믿음은 반짝하고 변화와 해결을 이루는 '단축키'가 아닌, 기나긴 마라톤 '경주'입니다. 그 길이 더뎌서 지치고 고난의 장애물에 낙담할 때마다, 예수님의 인내를 본받아 포기하지 말고 더욱 힘차게 전진해야 합니다. 무거운 죄를 벗어버림으로, 인내에 가장 준비된 영적 상태를 날마다 갖춰야 합니다. 인내 외에는 이 경주를 감당할 방법이 없음을, 먼저 그 경주를 통과한 믿음의 선배들(11:4-40)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둘러싸고 응원하는 경기장 안으로 오늘도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4-8절 :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죄와 싸우되는 우리 안의 얽매는 '죄'(1절)가 아닌, 예수님을 대적했듯 우리를 공격해 오는 '죄인'(3절)과의 싸움을 뜻합니다. 죽기까지 견디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적대자들의 위협에 주눅 들거나 굴복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이 싸움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영적 근력을 키우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인 우리에게 허락하신 훈련('징계') 입니다. 그러니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가벼이 여기며 지나가기만을 바라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 시련이 나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하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9-13절 :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인간의 뜻에 불과한 육신의 아버지의 징계도 결국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것이기에 '공경'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고 사람들과 더불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도록 계획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연단에 '복종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해명할 수 없는 고난 중에 우리가 바랄 것은 상황의 반전이 아니라 나의 변화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이니, 낙망과 실의의 자리를 털고 일어납시다. 갈 길이 머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 뜻에만 집중하며 곧게 나아갑시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믿는 자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다.
주 안에 살기 위해 죄와 싸워야 한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주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주님 바라보고 나아갈 때 참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자.
현재의 상황만 보지 말자.
더 좋은 소망을 바라보자.
오늘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한다.
주님!
연약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 안에서 힘을 얻게 하소서.
새롭게 거듭나게 하소서.
날마다 주님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소서.
오늘도 붙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믿음의 완주를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 고통을 참으심을 바라봐야 합니다(1~3절).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관중이 아니라 이미 경주를 마친 믿음의 사람들(11장)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삶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증언하였습니다. 저자는 우리도 모든 무거운 것과 죄 자체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놓은 경주를 하라(1절)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합니다.
즉, 믿음의 근원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해서 지속적으로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얻는 기쁨 대신에 하늘에서 얻을 더 큰 기쁨을 생각하시고,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참고 견디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는 것(3절)이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영광을 얻기 위해 가장 큰 시험과 고난, 즉 십자가를 참고 견디셨습니다. 내 자신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환난과 고난을 당할 수 있으나 그럴 때 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과 그 고통을 참으사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심을 바라보며 견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성숙한 신앙에 이르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인내를 통해 믿음의 경주를 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기나긴 마라톤 경기와 같습니다. 골인 지점에 이를 때까지, 참 많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참아야만 합니다. 그 모든 고통을 참아내어 골인 지점을 통과한 후에 누리는 인생의 기쁨이 있습니다. 아무쪼록이 땅에서 잠시 누릴 기쁨을 찾아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하늘에서 얻을 더 큰 기쁨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연단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4~11절).
당시의 상황이 목숨을 빼앗기는 순교적 상황은 없지만, 비방과 환난, 조롱과 재산 몰수 등과 같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그들은 잠 3:11,12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경의 권면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주의 징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5~6절)라고 책망합니다.
즉, 하나님은 마치 부모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으로 성도들을 사랑하시사 그릇 행하게 될 때, 올바른 길로 돌아서도록 징계하고 채찍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당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서 속히 자신의 잘못된 행실을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고 있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는 증거(7~8절)라고 설명함과 동시에 육신의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를 대조하여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징계를 통하여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비록 징계가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지만 후에 그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9~11절)고 언급합니다.
지금 내 자신이 겪는 고난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때, 고난의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하며 고난은 하나님이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는 선물이고, 또한 징계는 자녀들을 더 온전하게 만드는 훈련의 과정으로 믿는다면 비록 징계가 때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 과정을 마쳤을 때 오는 열매는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내 자신을 훈련시키는 도구로 여기고, 연단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될 때, 의와 평강이라는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모든 고난은 내 자신을 위한 유익한 훈련 과정으로 여기고, 그 과정 이후에 주실 상급을 기대하며,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고난의 환경들을 극복해야 합니다(12~13절).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이 찾아올 때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기 위해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12절). 이는 곤고한 중에라도 낙심하지 말며,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새 힘을 얻고 마치 독수리가 날개치며 비상하듯 천성을 향애 나아가야 한다(사 40:31)는 의미입니다. 또한 어떠한 세상의 유혹과 죄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기력이 쇠하여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다시금 일어나 새 힘을 얻고 죄에 대항해 싸우면서 최종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13절).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항상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여 육신의 축복을 누리다 가는 그런 삶이 아닙니다. 도리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는 고난의 삶입니다. 어쩌면 성도의 삶이 불신자들보다 더 곤고한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교하는 길로 나아가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바른 길로 나아가,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큰 시험과 고난, 이 땅이 주는 작은 유혹들로부터 승리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연단의 과정이 때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이 후에 찾아 오는 풍성한 열매를 바라보며 의와 평강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히 12:1~13절)...
-----------------
히12:1-13:25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권면을 합니다. 권면이란 우리가 순종할 때 유익이 되지만, 불순종할 때는 경고의 말씀이 됩니다. 히브리서 저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권면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큰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교만과 게으름과 무절제와 음란과 헛된 영광을 구하는 죄가 없는가를 살펴 보아야합니다. 그리고 그것들과 더불어 싸워 이겨야합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12:14-29).
앞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히브리서는 권면의 책입니다. 권면이란 우리의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면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삶입니다. 오늘날은 정말 영적으로 피곤하고 지친 시대입니다. 이때 히브리서를 통한 권면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 삶과 일상적인 삶으로 온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승리하시길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시합하고 있는 믿음의 경주에 대해 말씀합니다.
1.인내
신앙인의 경주, 신앙인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인내'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1절) 우리의 믿음은 먼 미래에 결과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미래를 오늘 현재에서 실상으로 누리면서도 때로는 오늘 아무 것도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보는 것보다 더욱 실제적이기도 하지만 또한 때로는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매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인내가 요구됩니다. 우리보다 앞서 신앙생활을 하였던, 앞에 나왔던 믿음의 조상들도 인내로써 그들의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하였습니다.
인내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힘든데 버틴다는 것입니다.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그 지속되는 힘든 것을 이기는 것이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주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2절) 예수님도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며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바라볼 때 우리는 "예수님도 인내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앞에서 우리의 불평스러웠던 마음을 회개하며 눈물로 고백하며 다시 인내하게 됩니다.
믿음은 철저히 인내입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한만큼 믿음이 됩니다.
2.피흘리기까지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들이 얼마만큼 인내해야 할까요? 죽기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4절) 믿음은 인내하다가 큰 영광의 것을 얻는 것이 아니고 그냥 죽기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영광은 하늘에서 얻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죽는 것입니다. 그리하기에 아직 죽지 않고 '힘들다'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는 죽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조금 더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길을 가면서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만 미워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 때도 "하나님께서 나만 힘들게 해"라고 해야 사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미워해'라는 것은 해석이고 '힘들게 해'는 사실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 때 우리는 그렇게 어리석게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미워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가 힘든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요? 인내가 아니라 인내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길이면 좋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좋지 않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5-6절) 이 세상에서 조금 편안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배부른 돼지로 사는 것 그 이상이 아닙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와 싸우는 것이고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편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징계와 사건 등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시기에 더욱더 그러합니다.
이 세상은 인내해야 하고, 시험과 징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불평하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싸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 앞의 경주가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그 경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내인 것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인내하지 않고 넘어졌습니다. 믿음은 철저히 인내해야만 가능합니다. 죽기까지 인내하십시오. 수많은 시험과 아픔은 우리를 세우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불평하지 말고 인내하며 나가십시오. 그것이 믿음의 경주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경주입니다. 싸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앞서 행하시고 또 그 갈 길을 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평안을 이루는 인내와 연단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모습으로 지어져 가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을 더 깊이 알고 그 뜻을 이루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