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없는 야구장은 앙꼬 없는 찐빵. 8개구단의 홈구장 응원석을 지키는 ‘감초’들이 있다. 틈날 때마다 야구장에 달려와 응원을 주도하면서 관중들의 흥을 돋우는 ‘광팬’들.
관중들은 치어리더들의 현란한 춤보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열정적인 감초들의 응원이 때로 더 즐겁다고 말한다. 야구장의 재야 명물들.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비공식 구단 마스코트가 된 야구장의 스타급 감초들을 소개한다.
LG 잠실구장 ‘LG 할머니’와 ‘달마아저씨’-잠실야구장에 가면 내야에 위치한 지정석을 살펴보자. 하얗게 센 머리에 LG야구점퍼를 입고 얌전히 경기를 관전하는 80대 할머니가 보인다. 이분이 바로 LG 서포터스들이 대모로 추앙하는 LG 할머니다. 1997년 LG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홀로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잠실의 새로 뜨는 별은 ‘달마아저씨’다. 생김새 때문에 달마의 칭호를 얻게 된 아저씨는 이상훈 선수가 유니폼을 선물할 정도로 유명인이다. 이상훈 선수가 트레이드된 이후 유니폼을 입지 않는 지조있는 팬이기도 하다. 야구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소외된 팬들을 격려하는 게 아저씨의 특기.
한화 대전구장 ‘맛동산 아저씨’-대전구장에는 경기가 달아오르면 난데없이 ‘맛동산’ 봉지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홈런 등이 터져 관중석이 환희에 들뜰 때면 유대현씨(57)가 호루라기를 불며 맛동산을 사정없이 날린다. 보통 한 경기에 한 박스를 비운단다. 빨간 점퍼에 한화야구단 모자를 눌러쓰고 옆구리에 맛동산 박스를 끼고 있는 사람을 주의깊게 살피자. 잘 하면 ‘맛동산’ 먹으며 ‘야구관전’을 할 수 있다.
롯데 사직구장 ‘G’마크 사내-최근 몇년 동안의 부진 속에 골수팬들의 사기가 많이 꺾인 곳이 부산이다. 그래도 사직구장의 터주대감이 남아 있었으니 바로 ‘G’마크 사내 윤평한씨다. 롯데 야구복에 운동화를 신은 외양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짧게 자른 머리 뒤통수에 새긴 ‘G’마크에는 일종의 엄숙함이 밀려온다. 부산야구 재건을 부르짖는 그의 소망이 올해는 이루어질지 기대된다.
SK 인천문학구장 ‘김대감’과 ‘조범현호’-개량한복에 ‘놀부모자’(정자관)를 쓴 ‘김대감’(김영수씨)은 인천야구의 자존심이다. 팀이 자주 바뀌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인천야구장을 지켰다. 그에 비하면 SK수건으로 옷과 모자를 만들어 입은 ‘조범현호’는 롯데팬에서 SK팬으로 이적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SK사랑엔 구관과 신관이 따로 없는 법.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두 아저씨 야구팬들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삼성 대구구장 ‘순득이 아지매’-“큰 아가 고학년이 되 놔서. 주말에만 야구장 가야됩니더.” 대구구장 지킴이인 ‘순득이 아지매’ 김순득씨(35)는 예전처럼 야구장에 자주 못갈 것 같아 서운한 모양이다. 그래도 주말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야구장에 꼭 가겠다고 다짐한다.
고등학교 때 구미에서 대구로 이사온 다음 대구 토박이가 된 김씨는 삼성선수 모두가 좋단다. 짓궂게 더 캐물어도 누구를 편애하기 싫다며 극구 사양이다. 김씨는 야구를 제대로 응원하기 위해서 다소 어렵다는 야구용어도 공부 중이다. 이승엽 선수가 일본 가서 대구구장에 관중이 줄까봐 걱정이라는 김씨는 거의 구단주급 감초다.
현대 수원구장 ‘쌍둥이 형제’-수원에 가면 리틀 김동수 선수와 심정수 선수를 만날 수 있다. 쌍둥이인 정상준·정상혁 형제(8·오산 광성초등학교 1년)가 그들이다. 6살 때부터 엄마 손을 잡고 수원 야구장 문턱이 닳게 다닌 덕에 야구장스타가 됐다. 고사리 손으로 폴짝 뛰며 응원하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현대구단은 쌍둥이 형제 몸에 딱 맞는 야구 유니폼을 선물해 형제들의 응원에 보답했다. 등에는 형제들이 좋아하는 김동수·심정수 선수 이름이 새겨있음은 물론이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쌍둥이의 꿈이 올해 한 뼘만큼 자랄 것 같다.
기아 광주구장 ‘소녀 치어리더’-인천에 쌍둥이 형제가 있다면 광주엔 소녀 치어리더가 있다. 섹시함보다는 9살배기의 귀여움으로 광주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김서현양(화순 만연초등학교 1년)이 바로 주인공. 작년에 처음으로 응원석에 올라 깜짝 응원솜씨를 선사했던 김양은 올 시즌을 위해 1주일에 3일씩 춤연습을 했다. 한층 업그레이된 응원실력으로 광주 기아의 우승을 돕겠다고 장담이다.
두산 잠실구장 ‘상하이 아저씨’-“박철순 선수에게 홀딱 반해 프로야구 원년부터 두산을 응원했습니다.” 상하이 트위스트를 맛깔스럽게 불러 ‘상하이 아저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박노원씨(56)는 두산의 대표팬이다. 수원, 인천 출장(?)까지 합하면 한해 100경기를 거뜬히 소화한단다. 단정한 머리에 양복을 말쑥하게 빼입고 야구장에 등장하는 이유는 주로 퇴근후에 가기 때문이라고. ‘우승보다는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주문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진정한 야구팬의 관록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