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천계곡 물봉선
팔월 하순 토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전날 용추계곡 야생화 탐방을 다녀온 동선을 생활 속 글로 남기면서 ‘용추골 늦여름’ 시조도 한 수 곁들였다. “올여름 마른장마 계류는 건천으로 / 돌부리 드러나자 새들도 떠났는데 / 단비가 흡족히 내려 맑은 물이 흐른다 // 여름날 피어나는 야생화 제 몫 다해 / 물봉선 뒤를 이은 상사화 때를 지켜 / 가을이 저만치 오는 나침반이 되어라”
진례산성 성내는 한여름이라도 숲속에서는 상사화가 군락을 이뤄 피어났다. 상사화는 열흘 남짓 될 개화기간이 끝나면 꽃은 시들어 내년을 기약한다. 그러나 물봉선은 먼저 핀 꽃송이가 저물면 새로운 꽃송이를 맺어 가을이 이슥해도 계속 꽃을 피운다. 용추계곡 물봉선은 예전보다 개체수가 현저히 줄었다. 원시를 지향하는 물봉선꽃의 성정이라 사람 발길이 잦아진 까닭이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은 근교에서 물봉선꽃의 또 다른 군락지를 한 곳 찾아 길을 나섰다. 아침 일찍 물봉선꽃을 완상한 후 텃밭에 들러 땀을 흘리고 올 작정이다. 안민동에서 첫차로 오는 버스를 타고 동정동으로 나가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22번 버스로 갈아탔다. 굴현고개를 넘어간 외감 삼거리에서 내렸다. 남해고속도로가 북창원 나들목에서 터널 진입을 앞둔 달천계곡으로 들었다.
달천계곡은 천주산 꼭뒤에서 시작된 계류가 신천으로 흘러 본포 부근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높다락 교각을 지난 계곡 들머리 과수원 단감은 과육이 채워지고 있었는데 여름 뙤약볕에 볼이 데어 까맣게 탄 듯했다. 울타리 곁에 선 석류나무는 여름을 건너온 열매가 토실해져 금이 가려고 하는 즈음이었다. 주차장을 지나자 오토캠핑장에는 야외에서 밤을 보낸 이들이 머무는 듯했다.
달천계곡에는 조선 중기 정객 허목의 흔적이 남았다. 외감 새터에는 그가 젊은 날 머물며 판 샘터로 구천(龜泉)과 오래된 매실 그루가 있다. 그가 영향을 입은 후손들이 대대로 이어오면서 달천정에서 추모 제례도 갖는다. 달천계곡 입구에는 미수 허목을 기리는 빗돌이 세워져 있다. 유허지 가까운 계곡 너럭바위에는 미수 서체로 전하는 ‘달천동(達川洞)’이 해서체 각자로 남아 있었다.
계곡의 각자 주변부터 내가 탐방을 나선 물봉선꽃을 볼 수 있었다. 오랜 가뭄에 수량이 줄어들었을 계류는 일전에 내린 흡족한 비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흘렀다. 너럭바위에서 손을 담가 더위를 잊었다. 한동안 머문 계류에서 천주산 꼭뒤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길섶에는 예전보다 줄기는 해도 물봉선꽃을 볼 수 있었다. 배수로를 내면서 물봉선 서식지가 망가져 아쉽다.
임도는 갈지자를 이뤄 천주산 꼭뒤로 향하는데 계곡 깊숙한 곳까지 물봉선꽃을 완상했다. 일전에 내린 비로 냇바닥에 자란 물봉선은 계류에 휩쓸려 떠내려갔었을 수도 있을 법했다. 계곡의 물봉선 탐방을 끝내고 달천 약수터로 올라 목을 축였다. 잣나무가 우거진 숲에 삼림욕장을 꾸몄는데 텃밭 일로 거기 머물 여건이 못 되어 발길을 돌려 외감으로 나가 온천장 가는 버스를 탔다.
신동리 텃밭으로 가니 오랜 가뭄에 넝쿨이 시들던 고구마는 생기를 띠었다. 먼저 심어둔 쪽파는 싹이 돋으면서 잡초도 함께 자라 김을 맸다. 깻잎을 따 먹으려고 새로 심은 들깨 포기 주변에도 잡초를 뽑아냈다. 엊그제 가을 채소를 심으려고 일군 이랑을 다시 돌봤다. 비료를 내고 두엄도 넉넉하게 흩었다. 채소잎을 갉아 먹는 벌레를 쫓는 토양 구충제를 선제적으로 뿌려 놓았다.
처서가 내일로 다가왔다. 아직 늦더위가 남았기는 해도 무와 배추 씨앗을 심는 절기다. 후일 틈을 내 텃밭에 들리면 언제든 씨앗을 묻을 수 있는 준비를 마쳐 놓았다. 이후는 들깨 이랑에서 새로이 돋는 잎을 따 모았다. 밭 가장자리 늙은 호박이 몇 덩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땄다. 새로 맺은 풋호박도 두 개 챙겼다. 귀로에 콩나물국밥집에서 곡차를 들면서 흘렸던 땀을 식히고 왔다. 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