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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선물로 교회를 세워가라 (고전3-15)
2026년 7월 19일 (주일)
찬양 : 교회여 일어나라
본문 : 고전 14:1-40절
☞ https://youtu.be/Pz0-IvbMkIc?si=78cHL8OYGvkZ_lOw
어제는 저녁 기도회 시간 가족들과 함께 뜨겁게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가족이 함께 뜨겁게 기도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다. 서로가 기도의 제목을 공유하고 각자의 가슴에 담겨진 소망을 나누고 서로를 축복하며 기도하는 시간은 언제나 기쁨이며 성령님이 임재하시면 그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복이다.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린다.
거룩한 주일 아침 오늘도 온전한 예배자로 주님을 예배하는 자 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14장은 은사에 대한 최종적인 마무리로 특히 예언과 방언을 중심으로 은사를 공동체 예배에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말씀한다. 두 구절이 40절이나 되는 14장의 내용을 결론짓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26절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40절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정리하면 은사는 사랑으로 사용하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사용하고, 품위있게 그리고 질서있게 사용하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인가?
먼저 살펴볼 것은 <덕을 세우기 위해>라는 단어다. 이것은 헬라어로 <Oikodomeo>란 단어로 '집을 짓다'라는 건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은사의 목적은 '나'라는 개인의 영적 고양이나 실력 과시가 아니라, '우리'라는 교회라는 집을 짓는 것이란 말이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자재가 서로 '규격'에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덕을 세우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나의 가장 화려한 은사조차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절제'하며 사랑으로 세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26절에 나오는 찬송, 가르침, 계시, 방언, 통역이 나열된 이유는, 예배 시간에 등장하는 모든 사역이 결국 성도들을 한 몸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축하는 데 기여해야 함을 뜻한다.
또 <품위 있게> 하라는 것은 ‘보기 좋게’ 혹은 ‘적절하게’를 뜻하는 단어로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는 자리므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그리고 성도들이 보기에도 은혜롭고, 세상 사람이 보아도 존경할 만한 경건함과 단정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질서 있게>는 군대가 행군할 때처럼 정돈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혼란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은사도 교회의 화평을 깨뜨리지 않도록 통제되어 질서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의 핵심 내용인 고린도 교회의 방언 문제는 바로 이 '건축'의 원리를 잊은 데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방언을 '공적 메시지'로 착각하여 예배의 질서를 깨뜨렸다.
따라서 공동체 예배에서 은사는 자기만족이 아닌 '교회의 유익'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방언이 덕을 세우고, 질서와 품위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9절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공동체의 유익이 없는 은사 사용이 제한되어야 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이 공동체 예배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면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27-28절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이것은 방언에 통역이 없다면 방언은 개인의 기도로만 하고 공동체 예배나 모임에서는 잠잠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방언을 하나님이 주신 공적인 메시지로 여겨 강단이나 회중들에게 떠드는 문제였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4-5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여기서 조심해야 할 부분은 어떤 은사가 더 나으냐는 우열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우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은사의 목적지는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그렇게 사용될 때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무리 귀한 목재도 건축에 쓸모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처럼, 사랑의 동기가 없는 은사, 공동체의 화평을 깨뜨리는 은사는 하나님의 집을 짓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은사는 이렇게 자신과 교회를 위해 질서와 품위를 가지고 사용될 때 아름다운 것이다.
절대로 은사는 나를 증명하는 증명서나 자랑거리가 아니다. 오직 은사는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주권적으로 나눠주신 선물로 교회를 세우고 덕을 세우며 하나님의 임재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에 선용되어야 함을 분명하게 배운다.
오늘 나의 사역과 은사는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전반전의 실수를 내려놓고 이제 증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성령님이 주신 선물들이 질서와 품위를 갖추어 오직 교회를 세우고, 하나 되게 하는 화평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에만 선용되기를 소망한다. 성령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 오직 교회를 세워가는 소중한 목적을 이루도록 선용하는 자 되길 기도한다.
주님, 거룩한 주일 아침 예배자로 나아가며 이 종에게 주신 소중한 은사를 그 목적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하되 그 품위와 질서를 따라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사용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 어떤 은사도 버려지지 않고 질서 있게 사용되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은사는 성령님이 주신 선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사랑의 건축 자재로 서로 사랑으로 맞춰야 합니다.>
적용질문 :
1. 나는 나의 은사를 드러내어 나의 영적 탁월함을 '증명'하려 합니까, 아니면 깎이고 다듬어져 '공동체의 집'을 짓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까?
2. 예배의 자리에 나아갈 때, 내 감정이나 은사보다 '공동체의 화평'과 '하나님의 품위'를 더 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까?
3. 내가 가진 은사 중, 오늘 예배에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조금 더 절제하거나, 혹은 통역(가르침)을 덧붙여 덕을 세워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