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떤 머린 줄이나 알고들 그래, 응? 공부많이해서 대학도 가고 박사도 될 머리란 말야.
임자들 같은 돌대가리가 아니란 말야. ... 그래서 인석이 그저 틈만 있으면 책이라고. 허허...’
하는 그 감미로운 소리에 주인영감이 진짜로 자신을 위하는 것 같아
월급을 짜게 주는 것도 뼛골이 부서지게 일하는 것도 억울할 것이 없이 지낸다.
때로는 주인할아버지보다 더 악착같이 밀린 돈을 받아내기도 하고
이른 시간 일어나 말끔히 청소를 하면서
칭찬을 밥처럼 기다리는 우직함이 돋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청계천 뒷골목에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매섭게 불고
그 때문에 지나가던 아가씨가 떨어진 간판에 머리를 맞아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그리고 수남이의 자전거가 바람에 넘어져 까만색 고급 승용차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
자전거에 자물쇠를 걸어놓고 오천 원을 가져와야 돌려주겠다는 승용차 주인,
순간 수남이는 자신도 모르게 열쇠가 채워진 자전거를 번쩍 들고 도망을 친다.
그런 수남이를 주인영감은 제법이라고 칭찬을 하는데...
비로소 수남이는 평생을 머물 것이라 생각했던
이곳에서 주섬주섬 짐을 꾸린다.
불어오는 바람을 이렇게 표현한 책을 본 적이 없다.
마치 그 바람 한가운데 서 있듯
그 바람인듯.
그 바람아래 선 수남인듯.
책은 바람안으로 읽는이를 사정없이 끌어댕기고
부대끼게 한다.
인간내면의 갈등과 마음의 변화를 바람 부는 풍경에
넣어 어쩌면 이리도 감칠나게 써내려간건지
박완서 작가의 내공의 힘이
동화에서도 반짝반짝 별처럼 빛난다.
글이라는 것이 화려하고 멋지다고 되는 것이 아닌
이렇게 수수한 말과 표현으로도
가을의 곡식을 가득 채운 창고마냥 풍성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래서 자신있게 이 책을 추천한다.
첫댓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정회원으로 승급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