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삶의 추구 “위에서, 영에서 태어난 삶”
2026.4.13.부활 제2주간 월요일 사도4,23-31 요한3,1-8
조화와 생화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때로는 너무 흡사해서 만저보고 향내를 맡아봐야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화는 생명이 없기에 향기도 없고 시들지도 않습니다. 얼마전 지인과 AI(인공지능)에 대해 나눈 메시지입니다.
“오늘 AI시평이 그대로 제 마음을 담았네요. 표현할 말이 없네요!”
“그래서 저는 AI에 혹하게 됩니다. 사람보다 더 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그래도 AI는 생명이 아니라 기계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저는 AI를 사용하지 않기에 자주 AI를 부탁하는 자매입니다. 특히 제 자작시에 대한 시평은 얼마나 깊고 정통한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곤 합니다. 아직까지 이런 시평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읽을 때마다 감탄하곤 합니다. 때로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AI 현실에 당혹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얼마전 읽은 AI에 대한 칼럼 일부입니다.
“AI로 더 바빠진다.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이 인간을 더 바쁘게 만든 것처럼, 인공지능(AI)도 모든 사람을 더 바쁘게 만들 것이다. AI시대는 열렸고 이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 ‘AI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AI기술에서 소왼된 이들이 에이젠트와 공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교육확대와 기술접근성 보장, 사회적 안전망 마련도 시급하다.”
AI대책이나 대안이 마땅치 않습니다. 날로 바빠지는 사회요, 참나를 찾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AI시대일수록 영적 삶의 가치는 날로 증대될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찾는 영적 삶입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생명인 사람을 알 수 있는 길은 생명의 하느님뿐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최고 의회 의원 바리사이 니코데모는 참구도자의 모범입니다. 말그대로 참스승에 참제자입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았다는 말마디가 상징성이 깊습니다. 니코데모의 내면의 어둠을 상징하는 듯 하고, 어둔 세상 안에서 빛이신 예수님을 찾아 온 듯 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임을 알아보는 니코데모에게 주님은 참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AI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예수님처럼 참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람 누구나 아래가 아닌 위로부터 태어나야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니코데모의 무지를 거듭 일깨우는 예수님의 직설적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은 바로 물과 성령으로, 즉 영에서 태어난 것이요, 바로 세례성사를 가리킵니다. 성사를 통해 위로부터 영에서 태어나는 초월적 영적 삶이 없으면 육에서 태어나 육으로 끝나는 악순환의 육적 삶의 반복이 될 것입니다.
이미 세례성사를 통해 위에서, 영에서 태어난 우리들이요 이를 끊임없이 보완하고 강화해 주는 평생성사 둘이 바로 성체성사에 고백성사임을 깨닫습니다. 저는 감히 “AI 시대에 대한 답은 성체성사 미사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성체성사 미사의 진가는 AI시대 날로 빛을 발할 것입니다.
어제 자비주일 레오14세 교황은 삼종기도후 짧은 강론에서 “주일미사는 신자들의 삶에 ‘필수적’(indispensable)이다.” 말씀하셨습니다. 한주간 영적양식의 은총으로 위에서, 영에서 태어난 삶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미사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다 매일미사까지 겸한다면 금상첨화요 AI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결론 말씀이 우리 영적 삶의 지침이 됩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이와같다.”
AI에 대한 답은 성령에 따른 영적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람이 가리키는 바 성령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생명이요 사랑입니다. AI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 삶의 유일한 안내자입니다. 이래서 성사와 기도의 생활화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에 따라 인도된다면, 우리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손에 맡기며 하느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든 예수님을 따라 자유롭게 영적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니크데모에게 준 답변 요지입니다.
바로 이의 좋은 모범이 요즘 계속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도들과 제자들 그리고 신자들입니다. 부활한 파스카의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파스카의 신비를 살아갈 때 비로소 위에서, 영에서 태어난 삶의 실현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이 바로 그 좋은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구속에서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들은 동료들은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을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주소서.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기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니 그대로 공동기도의 위력입니다. 새삼 우리가 평생 매일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인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전례가 세례성사 은총을 보완, 보강하면서 AI시대, 위에서 영에서 태어난 영적 삶에 얼마다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위에서, 영에서 태어나 성령의 인도하에 예수님을 따라 자유롭고 풍요롭고 행복한 영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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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위에서,
영에서 태어나 성령의 인도하에 예수님을 따라
자유롭고 풍요롭고 행복한 영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