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울음에 갇힌, 어느 오후
김찬옥 시인
첫눈이 몸을 부풀릴 대로 부풀려 온 세상을 덮친다
뒷산 썩은 나무 둥치 뒤에서 울고있는
고양이들 목줄에 방울을 달아야 하나?
장갑을 벗어 보아도 내 손엔 방울이 없을 것이다
손을 탈탈 털어버린다
나는 문득 정신이 혼미해진다
마당 석류나무 빈 가지에서
새빨간 체리를 똑똑 따 먹는다
하얀 눈밭에 피로 얼룩진 입술이 보인다
시든 국화꽃 덤불에서 바나나를 따 앞 가슴에 품는다
접혀있던 부리가 펼쳐져 앵무새처럼 조잘댄다
‘내 손엔 방울이 없어, 내 속엔 방울이 없다고’
궁동산을 막 내려온 정신과 의사가 머리에 하얀 왕관을 썼다
산책길에서 길고양이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의사가 머리를 흔들자 왕관은 산산조각이 나고
돌팔이 의사는, 내 주머니 속에서 고양이가 울고 있다고 말해버린다
고양이가 내 귓속에서 이명처럼 울어대거나
눈앞에서 파리 날개처럼 어른거릴 뿐,
마음속 동거인 란에 짐승의 발자국을 찍을 빈칸이 없다
구름에 목이 눌린 해가 어지럼증을 일으키자
산책길에 풀어 놓은 겨울 울음소리는 더 거칠어지고
허둥지둥 길고양이의 울음을 밀고 당기는 사이
태양은 하루치의 재료를 다 소진한 듯 장을 파해 버린다
중국집에 전화해 따뜻한 요리를 배달시킨다
얼마 후 배달원은 온 집안이 울리도록 요란한 벨 소리를 남기고
고양이의 붉은 울음이 넘실대는 짬뽕 그릇을 문 앞에 꺼내 놓는다
산 아래 초소에 있는 방범대원에게 sns를 친다
혹시 산에서 내려온 길고양이를 보거나
고양이 울음 속에 갇힌 나의 오후를 본 적이 없냐고?
뒷산에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고양이들을 제발 지켜달라고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월호 발표
김찬옥 시인
전북 부안에서 출생. 1996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물의 지붕』, 『벚꽃 고양이』와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