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물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6월 이후 18개월 동안 한국은행 물가 목표 범위 하한선인 2.5%를
밑돈다.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 역시 지난해 3월 이후 21개월 연속 1%대에 머물렀다. 외환위기 후
원화절상으로 물가상승률이 크게 낮아졌던 1999년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그래프1 참조).
이처럼 전례 없이
낮은 물가 수준에도 우리 사회에선 아직 디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간 디플레이션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고물가, 즉 물가상승률이 높게 형성되는 것만 경계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같은 저물가 상황에서도 체감물가는 높은데 지표물가가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더 클 정도다. 통화당국 역시 낮은 물가 수준에 대해 금리 인하 등 좀 더 적극적인 완화정책으로
대응하지 않는 모습이다. 물가 목표 범위 하한에 대한 경계심이 상한에 비해 약한 셈이다.
그
래도 좋은 것일까. 사실 디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 충격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보다 오히려 크다. 일본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의 절반 이상이 디플레이션과 함께했다. 1990년대 후반 디플레이션 초기 일본은 인플레이션을 지나치게 경계했다. 물가
하락이 시작되자 소비자는 기업 간 경쟁이 촉발한 가격 파괴를 반겼고, 세계적인 현상이던 고물가의 자연스러운 조정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일본을 수렁에 빠뜨린 디플레이션
그러나 디플레이션이 일단 시작되자 이야기는 전혀 달라졌다. 한
번 잦아든 물가 추세는 좀처럼 되돌리기 힘들었고 일본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이
디플레이션 직전 맞닥뜨린 모습이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일본이 왜 디플레이션을 맞았는지 그 구체적인 원인을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일
본은 1999년 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약 7년간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이후 약 3년간은 물가상승기로 돌아섰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재차 물가가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 디플레이션에 진입하던 시기를
되돌아보면 그 발생과 지속 원인을 크게 세 시기로 나눠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만성화한 저성장·저물가 기간이
디플레이션 진입의 단초를 제공했다.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에서는 기업과 금융 부실이 확산됐고, 금융 중개 기능이
약화하면서 소비와 투자 부진에 따른 저성장이 장기간 지속됐으며, 물가상승률도 낮아졌다. 80년대 평균 4.5%씩 성장하던 경제는
버블 붕괴 이후 1993~98년 불황기 중 1.4% 성장률로 급전직하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80년대 평균 1.9%에서 이 기간
0.7%로 낮아졌다. 구조적인 내수 저하도 저성장·저물가를 부추겼다. 대표적인 요인으로는 고령화에 따른 소비 저하, 건설경기의
장기 침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그래프2 참조).
둘째, 금융 부실과 엔고라는 추가적인 충격이 일본 경제를
디플레이션에 진입하게 만들었다. 버블 붕괴 기간 중 부실채권 처리가 지연되고 저금리로 수익 기반이 악화하면서 1997년 이후
닛산생명, 산요증권 등 대형 금융기관이 잇달아 파산하는 금융위기를 겪었다. 98년 후반부터
엔화 강세가 다시 가속화하면서 수입 물가를 크게 낮춘 점도 디플레이션 진입에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외환위기로 안전자산으로서의 엔화 가치가 부각된 결과다.
마
지막으로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자 악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저물가 상황이 오래 이어지다 물가하락이 시작되자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가 생겨난 게 대표적이다. 소비자는 구매하려던 상품의 가격이 앞으로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고, 이에 따라 소비를 미뤘다. 각
기업도 미래 제품가격의 하락에 따른 수익 감소가 예상되자 투자를 늦추는 현상이 벌어졌다. 결국 소비와 투자 등 총수요가
줄어들면서 물가하락 압력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자산가격 측면에서도 부채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디플레이션으로
실질 부채 부담이 증가하면서 채무자는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을 매각했고, 그에 따라 자산가격이 더 하락하는 연쇄효과가
이어졌다.
최근 한국 경제에서 벌어지는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90년대 평균 6.3% 성장을 구가하던 국내
경제는 2000년대 3.9% 성장률로 한 단계 낮아지더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차 둔화됐다. 경기불황이 지속된 최근 2년간은
평균 2.4% 성장에 그쳤으며, 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아 성장잠재력이 한 단계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저물가 상황도 지속된다.
최근 2년간 평균 물가상승률은 1.7%에 그쳤다. 내년에도 경기 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고 원화절상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2% 내외
물가상승률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물론 1990년대 일본과 같은 급격한 하락 추세가 아니므로 직접 비교하기엔 과한
측면이 있다. 다만 방향성이 유사하고 성장률 하락이 중·장기적인 구조적 요인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다소 우려스럽다. 고령화로 생산
가능 인구 감소, 그동안 과도했던 근로시간 감소 추세는 지속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의 요인이 될 것이다. 노후 준비 부족으로 고령층의 소비 성향이 낮아지고 건설투자 역시 장기 부진이 예상된다. 원화의
중·장기적인 절상 흐름도 염려스럽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수입에서 원자재 비중이 커 당분간 국제 원자재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무역수지 흑자가 지속될 개연성이 높다.
통화정책 기조 전환 고려해볼 만
최근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게 형성된 데는 채소류 등 국내 농산품 가격과 국제 원자재가격 안정 같은 공급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무상보육 등 정책 요인도 물가하락에 기여했다. 경기흐름상 앞으로 물가는 다소 오를 개연성이 있다. 올해 크게 좋았던 공급여건도
다소 완화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성장 속도가 한 단계 떨어지면서 추세적으로는 물가상승률도 과거에 비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물가상승률에 대한 비대칭적 기준,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 경계에만 주로 초점을 맞추는 기존의 틀은
이제 바꿀 때가 됐다. 물가상승률이 낮게 유지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일 수 있지만, 상승률이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선다면 걷잡을 수
없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물가상승률이 장기간 물가 목표 범위 하한을 밑돈다면, 좀 더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로 전환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워낙 현재
정책금리
수준이 낮은 데다 민간부문의 부채 수준이 높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을 감안한 통화정책의 효용성을 높이려면 물가 목표 범위 하한도 좀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물만큼이나 차가운 물도 경계해야 하긴 마찬가지다.
첫댓글 아베노믹스때문인거야?
마트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데..ㅋㅋ 경제성장률에 비해 물가는 너무 오르고 있는거 아닌가
아 또 환율장난질하면서 외환보유고 털어먹자고? 이명박때 신나게 해놓고
저물가는 어디서 온 소리냐.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구만
저물가는 무슨. 뭐 살때마다 많이 사지 않아도 돈 많이 들어서 덜덜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