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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속에서 받은 옛 언약 12:18~21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도성 시온산 12:22~29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26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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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율법을 받을 때 이스라엘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그리고 그분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님의 피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말씀하신 분을 거역하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니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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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속에서 받은 옛 언약 12:18~21
모세 시대에 옛 언약은 두려움 속에서 체결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던 상황을 언급합니다. 시내산을 ‘불이 붙는 산, 침침함, 흑암, 폭풍’ 등으로 묘사해 죄인이 접근할 수 없는 거룩한 공간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당시 시내산에 사람과 짐승의 접근을 금하셨습니다(출 19:12~13). 하나님 임재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자 백성은 두려움에 압도되고 모세조차 두렵다고 고백했습니다(출 19:16).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기 두려웠던 백성은 자신들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말 것을 간청했고, 이에 모세가 중재자가 되었습니다(출 20:18~19). 옛 언약의 백성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지 못했지만,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갑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 나타난 현상은 백성에게 어떤 마음을 갖게 했나요?
내가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경험한 때는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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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성 시온산 12:22~29
새 언약은 천상의 예루살렘인 ‘시온산’에서 체결되었습니다(22절). 시온산에는 ‘천사들, 장자들, 의인의 영들, 속죄를 완결한 그리스도의 피’ 등이 있습니다(22~24절). 성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땅에서 경고하던 이’ 곧 모세를 거역해도 형벌을 받았다면, ‘하늘에서 경고하신 이’ 곧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배교에는 형벌이 가중될 것입니다(25절). 시내산 언약 때는 땅만 진동했지만 마지막 심판 때는 하늘도 진동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시는 하나님을 부각해 배교를 경고합니다(29절).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은 성도는 경건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배교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배반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새 언약 성도가 장차 이르게 될 시온산은 어떤 곳인가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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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랑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여인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았다. 그녀는 젊어서 남편을 잃고 혼자 아들을 키웠다. 그런데 성인이 된 아들과 그녀는 데면데면했다. 이유는 이렇다. 어린 시절 아버지 없이 지냈던 아들은 혼자 골목에서 공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다리를 다친 아들은 장애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마음이 아팠지만, 오히려 아들을 냉정하게 대했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였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에게 나이가 들어서도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눈 오는 날, 일을 하고 있던 아들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입원한 어머니가 병실에서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놀란 아들은 이곳저곳을 헤매며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병원 한 귀퉁이에서 빗자루로 눈을 쓸고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도대체 뭐 하시냐며 따졌다. 어머니는 미소를 띠며, “우리 아들 넘어지지 않도록 눈을 쓸고 있지.”라고 했다. 아들은 생각해 냈다. 추운 겨울, 학교에 갈 때마다 집 앞 눈이 깨끗이 치워져 있던 것을. 아들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해도 아들은 어머니가 자기를 위해 눈 치우는 것을 몰라요.”라고 했다. 어머니가 대답했다. “괜찮아요. 우리 아들이 넘어지지만 않으면 돼요.”
자녀를 아끼는 부모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한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나 있다.
십자가 새롭게 읽기 / 권해생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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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히브리서 12장 28절
이 세상 나라는 흔들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완전히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나라, 절대 망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나라를 약속하십니다. 자기중심적인 눈은 현재 기쁨과 만족에 집착하게 하지만, 영원한 나라를 보는 눈은 미래에 주어질 기쁨과 만족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오늘을 살게 합니다. 오늘 어떤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받는 일은 결코 내일로 미루면 안 됩니다.
마음속에 영원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결코 이 세상을 영구한 집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 딕 루카스
오늘의 기도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주님, 저 같은 죄인에게 거룩한 하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원히 흔들림 없는 나라를 소유했음에도, 무너질 세상 것을 갈구하는 제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주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것이 제게 가장 큰 기쁨이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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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화평과 거룩을 추구하고, 쓴 뿌리를 제거하고,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무장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 속에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화평하고,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구별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자
② 많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쓴 뿌리를 제거하고, 음행과 망령됨을 피하고, 항상 거룩하고 정결한 삶의 모습을 지켜 나가고, 성실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자
③ 하나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모습을 지켜 나가면서, 우리의 삶으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하자
‘시온 산(22절)과 예수께서 뿌리신 피(24절)’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반석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그 육신에 새기고 영원한 기쁨의 나라 시온 산에서 그 뿌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한없는 용서와 영원한 구원을 이루심으로 그 율법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 소멸하시는 불로 말미암아 우리 안의 모든 거짓된 것과 죄악된 것을 태워버리시고 / 하늘과 땅을 흔드시며 세상의 모든 견고한 것들의 껍질을 벗기시며 / 오실 때 이루실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심판 가운데서/ 주님을 의지하는 이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실 계획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셨습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온전히 순종하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복된 하루의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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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성도에게 너무나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죽음이 나의 죄를 대속하셔서 구원의 소망이 있게 하신 것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께서 왜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셨는지를 자주 듣기는 그리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인생을 사는데 굳이 과거를 들추어내는 것은 너무 퇴행적이라고 여겨서일까요? 과연 그럴까요? 그래서 매일 반복되는 나의 죄를 보면서도 무감각한 것은 아닐까요? 마치 예수 믿는 것을 범죄 허가증을 받은 것으로 여겨 편하게 죄를 대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심판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오르신 것을 잊어버린 채 말입니다. 내가 죄를 짓는 일에 자유를 주시고자 십자가를 감당하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의 죄가 가져올 지독한 파멸에서 구원하시고자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죄에 대해 민감해야만 합니다. 죄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를 심각하게 보아야 합니다. 더욱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나의 참 주인이 되신 주님만 바라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오늘도 주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기를 결단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주신 주님을 기뻐하고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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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18-24)
여기서는 옛 언약(율법)과 새 언약(복음)을 시내 산과 시온산으로 대조를 시키고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 장면을 묘사합니다(18-21). 이 묘사는 그 장면이 장엄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그 곳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음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새로운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시온산은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곳에 가는 것을 환영받았습니다. 그곳은 천사들과 성도들과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며, 잔치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그곳은 두려움의 장소가 아리나 은혜의 장소입니다. 이 모든 것은 더 좋은 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입니다(24). 이와 같이 시온산에 누리는 은혜의 특권을 말해놓고 만일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마지막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29).
오늘 본문은 시내산과 시온산을 대조하여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이른 곳은 그 옛날 시내산이 아니라 시온산 곧 하늘의 예루살렘이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도성은 천사들의 무리와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와 하나님과 의인들이 있는 곳이며,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피가 뿌려진 곳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백성들이 도달한 시내산, 신약시대 성도들이 도착한 시온산, 심판의 경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 등 입니다.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은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이른 곳은 구약시대의 시내산이 아니라 시온산이라는 진단입니다. 즉, 히브리 공동체의 멤버들이 도달할 곳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시내산 같은 곳이 아니라, 시온산이라는 선포입니다. 즉,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불이 타오르며 어둡고 깜깜한 데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 옛 언약을 따르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그것보다 한층 우월한 새 언약을 거부한다면 어찌 그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입니다.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중 지지를 받고있는 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견해입니다. 구속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아직은 땅에서 생활한다고 할지라도 하늘 명부에 기록되어 있어 그렇다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실체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나라는 이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나라이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아쓴즉’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곳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 즉 하늘 성소와 새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라는 말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불신과 불순종을 향한 ‘진멸’의 묘사로, 이는 히브리 공동체의 배교자들을 경고하기 위한 진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 곳은 육체로 보거나 만지거나 들을 수 있는 땅에 있는 곳이 아닙니다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히12:18~19)
우리가 이른 곳은 우리 주와 주의 주께서 계시는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12:22~24)
즉,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경건과 주의 크심을 경외하는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기 원합니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12:28)
땅의 시내산에서 하신 말씀을 거역한 자들도 그 판단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하늘의 시온산에서 하신 말씀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히12:25)
전에 땅의 시내산에서 말씀하실 때에는 땅이 진동했지만,
이제 곧 하늘의 시온산에서 말씀하심으로 하늘이 진동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욜3:16)
그러나 하늘과 땅이 진동할지라도 우리에게 주신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아서
우리도 흔들리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10)
그러므로 우리 주만 기쁘시게 섬기기 원합니다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슥2:10)
그리하면 평강의 주께서 항상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후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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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 여기서 ‘너희’는 히브리공동체의 수신자들입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은 성취된 하나님나라를 말합니다. 문제는 동사 ‘이르렀다’가 완료시제로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즉, 신약의 성도들이 도달한 곳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천상의 예루살렘이었다는 것입니다. 지상의 시간개념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차원이 아니라 믿음의 차원에서 보면 극복될 수 있습니다. 땅의 시간에 맞춘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늘의 시간에 맞춘 것으로, 하나님 안에서 예정된 것은 이미 성취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미래를 앞당겨 있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시공간이 별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하늘의 시간은 늘 우위라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설령 감기나 몸살에 걸렸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몸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일손을 놓치는 일은 없습니다. 건강하므로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공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력이 점점 나아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부진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요 보이는 것들의 증거라고 볼 수 있으니, 그 확신 정도에 따라 실력의 차이가 나는 셈이지요.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험난한 이 세상에서 살아도 힘차고 즐겁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하늘나라에 들아 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의 말대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천국을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상 겁먹지 않겠습니다. 돈이 없어도, 건강이 좀 약해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가 있고, 단지 그 여정이 남아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맞서겠습니다. 아니 즐기겠습니다. 찬란한 미래가 우리에게 보장된 것이 아니라, 완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종착역을 향한 하늘 기차를 멈출 그 어떤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완료시제를 쓰신 분이 또 있습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주님은 병자들의 믿음을 보고 믿음대로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병이 고쳐집니다. 이미 믿은 데로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적세계 주인의 힘을 덧입어 미래를 앞당겨 사는 것입니다. 곧 믿음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완료형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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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시민으로 정체성을 인식하게 해야 합니다(18~24절).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는 장엄했습니다. 옛 언약 아래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아래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만질 수 있는 어떤 것, 불붙는 산, 어두움, 흑암, 폭풍,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더 말씀하시지 않기를 간청했습니다(18~19절). 즉, 모세를 통해 자신들에게 말씀해 달라고 간청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는 그 어떤 피조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기 때문(20절)이었습니다. 그러한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자요,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모세 마저도 ‘심히 두렵고 떨린다’(21절)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사람들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미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들이며,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에 가입된 사람들입니다(22~23절).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아벨의 피와는 달리 원수를 용서하고 죄인을 대속하는 피라는 뜻에서 더 좋고 은혜로우며 위대합니다(24절).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내 자신이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이 지시하는 바를 믿고, 준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새 언약을 버리고 옛 언약으로 돌아가게 되면 자비로우신 아버지가 아니라 준엄한 심판자로 그리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우신 분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하늘에 속한 하늘 시민이라고 하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므로 흔들리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기에 힘쓰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모두 감사함과 기쁨으로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25~29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옛 선조들이 모세를 통해 경고를 받고도 순종하지 않아 벌을 받았는데, 이제는 하늘에서 경고하시는 분을 배반하여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25절)는 것입니다. 옛적에 땅을 진동시키신 하나님은 장차 하늘도 진동시킬 것(26절)입니다. ‘또 한 번’(27절)이라는 말은 흔들릴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없애 버리시고, 흔들리지 않는 것들만을 남겨두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가졌으니 이제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28절). 왜냐하면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 즉,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도무지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29절).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 진동 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타시고...’(찬 180)..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천지가 진동하여 피조물중에 흔들리는 것들은 제거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것들은 영원히 존재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내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 장차 이 세상 끝날에 완성될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에 내 열정을 쏟지 말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았으므로 이제는 세상적인 두려움과 모든 염려를 버리고, 오직 경건함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흔들리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기에 힘쓰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해져 서로 가르치며 권면하고, 성령 안에서 무시로 설고 기도하는 은혜 위해 서 가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뿐만 아니라 하늘 시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또한 감사함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 공동체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히 12:14~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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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 나라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나라입니다. 우리는 본래 지극히 자격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그 나라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히브리서 12:18–19, NKRV) 시내산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중보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상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영광스럽지 않은 분입니까? 천만에요.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참으로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오직 중보자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가기는 하지만 철저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었을 때, 그 나라를 가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그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28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차지했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경건한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히브리서 12:28, NCTB) 감사와 예배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알고 그 나라를 확장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 나라를 몰랐으면 우리는 자신의 멸망의 나라를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중보자를 알게 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영광과 중보자의 사역으로서 성육신과 십자가를 생각할 때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감사하지 않고 대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예배합니다. 감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사의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경건과 두려움이 있는 예배입니다. 먼저는 공예배이고 또한 삶의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된 사람이 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떨림으로 나아가며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 같은 죄인이 중보자를 통해 하나님께 나가게 되었으니 감사함으로 떨면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예배는 의무이기 이전에 환희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자리인데 그것을 의무로만 생각하면서 꺼리는 마음을 갖겠습니까? 할수만 있다면 더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하루종일이라도 예배해야 합니다. 하루종일 예배할 수 없으니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해야 합니다. 항상 떨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세상과 구별된(거룩한) 삶입니다. 그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 나라를 확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알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그 영광스러운 나라가 있는데 어찌 그것을 두고 다른 나라를 위해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에서가 장자권을 판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 때 떨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은 하나님께 인심쓰는 것이 아닙니다. 의무적으로 억지로 가야 하는 길이 아닙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그영광스러운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기에 떨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께 조금씩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더 떨어야 합니다. 영광의 하나님께 나가기에 기쁘면서 떨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의 중보사역을 기억화고 힘입어 거룩함과 떨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9월26일 공동체교회 필그림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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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절 :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임재가 장엄했지만,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성도들이 누리는 하나님 나라(시온산,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는 물리적인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심판자 하나님과 중보자 예수님과 언약의 피가 있고, 구속받은 성도들과 축제를 벌이는 천사들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시내산에서는 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을 만큼 두려웠지만, 이제 성도들은 하늘의 보좌 앞에 담대히 (10:19) 나아가 교제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로 부족함만 바라보며 실망하지 말고, 그 축복을 더 풍성히 누리는 공동체로 꾸려 나갑시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심은 말할 수 없이 큰 은혜다.
그러다가도 예전 이스라엘에 나타난 하나님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시니 얼마나 확실했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말씀으로만 깨달아야 하니 그야말로 믿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주님께 직접 나아가 기도할 수 있고 말씀을 아무 때나 들을 수 있음이 축복이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이 있음을 감사하며 살자.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식하며 살자.
25-29절 :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하나님 나라,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만 두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다 변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피조물이 흔들릴 것입니다. 특히 죄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소멸할 것입니다. 그러니 있다가 사라질 이 세상 권력이나 명예나 소유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영원할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지 맙시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소멸하시는 불을 두려워해야 한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고 한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믿자.
세상 것 다 변할지라도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자.
주님!
아무 공고 없는 저에게 영원한 나라를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그 나라 갈 때까지 주님 기쁘시게 하며 살 수 있길 소원합니다. 늘 연약합니다.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할 때도 많은 연약한 저를 늘 붙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꺼지지 않는 소망과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죽고 다시 살아나는 주님의 백성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십자가의 대속과 구원을 통해
믿음의 눈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임재를 간절히 소망하며 거룩하게 구별되는 삶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이끌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기억하고 높이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