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라고 우리가 포괄적으로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케이블 TV 홈쇼핑 채녈의 쇼 호스트가 현란한 말재주와 광고기법을 총동원해서 상품을 환상의 제품으로 포장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그 물건을 사지 않고는 못 버티게 하는 재주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내공 만땅’ 세일즈맨이라면 자기 상품의 우월성만을 홍보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장의 불공정성 여부와 소비자의 왜곡된 소비 심리, 필요하다면 경쟁 상품에 대한 네거티브 작전까지 모든 것을 마스터해야 한다. 요컨대, 최고의 품질, 최저의 가격을 갖춘 상품이 반드시 대박을 터뜨리진 않는 게 현실세계의 시장이라는 거다.
태평양 적도의 외딴 섬, 그것도 평생 비행기 타고 바깥 세상에 나갈 일 없는 원주민에게 히말라야용 방한복과 알프스 산맥용 스키 풀세트 정도는 팔아치울 능력은 되어야 지존급 세일즈맨의 반열에 들 것이다. ‘우리 상품이 최고이고, 저쪽 상품은 최악이에요!’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읊조리다가 쫄딱 망해 쪽박 차고 나서 ‘우리가 파는 이렇게 좋은 물건을 안사고 놓치다니 사람들 정말 바부탱이들이야!’라는 푸념만 죽어라 늘어 놓아 보았자 그런 3류 세일즈맨들에겐 노숙자 신세만 약속되어 있을 뿐이다.
상품을 파는 세일즈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파는 상품을 모든 사람이 사도록 만들겠다는 의지이다. 무기상의 이야기를 다룬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1995년 영화 ‘Lord of War’에서 전세계 인구의 30%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개탄의 목소리를 들은 주인공 무기상은 ‘그럼 나머지 70%를 무장시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고 말한다. 총기의 만연으로 인한 부작용? 그런 거 걱정하는 놈은 절대로 무기상 따위 안한다. 아니, 무기 팔아먹고 살려면 절대로 그런 걱정하면 안된다.
마케팅이 가장 필요없는 상품은? 매니아 지향적 고급 취미 용품이다. 이런 물건은 광고 안해도 알아서 소비자가 찾아오고, 가격이 너무 싸면 오히려 안 팔린다. 이른바 ‘명품 소비심리’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을 거다. 그러나 선거에서 판매되는 후보라는 상품은 절대로 취미용품이나 명품이 아니다. 100만원어치 소비 심리를 가진 소비자나 10원어치 소비 심리를 가진 소비자나 사는 물건의 양은 똑같다는 거다. 어느 해괴한 시장바닥처럼 인구보정으로 매출량 조작하는 짓거리는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힌다.
물론 우리는 무기상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가 파는 상품을 사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만이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파는 상품이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우리에겐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파는 상품을 무조건 사도록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사기를 쳐서라도 사람들이 내가 파는 상품을 사게 만들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왜? 그래야 세상이 오늘보다는 나아지니까.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지금 세일즈의 기본에 가장 충실한 집단, 적도에서 방한복을 파는 수준에 가장 근접한 존재들은 다름 아닌 새누리당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파는 상품이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팔고 보자는 의지가 누구보다도 절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세일즈 소명’을 받은 우리들은? 우리가 파는 상품이 가장 완벽한 상품이기 때문에 언젠가 어느 세월엔가 사람들이 진가를 알아주어 대박이 날 것이라는 알량한 믿음 하나로 엄동설한에도 장갑 한 켤레 팔지도 못하는 세일즈 맨 수준임에도 나야말로 최고의 세일즈맨이라는 오만과 자아도취 속에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어긋난 호남 민심을 달래보겠다는 문재인 진영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심정은 한마디로 가련함을 넘어선 참담함이다. 지금 호남 민심 이반 현상이 옳다, 그르다를 가려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민심 이반을 야기한 이른바 친노 정치세력의 정치적 행보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도 현재 시점에서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진영의 최우선 순위 해결 과제는 호남에서의 지지율을 올리는 거다.
선거 마케팅의 핵심은 사람들의 머리를 얻는 게 아니라, 마음을 훔치는 거다. 문재인이 호남에서 개자식 취급을 받아도 과거 노무현이나 김대중의 지지율에 필적하는 지지를 얻어낸다면 그게 제대로 된 정치이고, 선거이다. 하지만 문재인과 친노 정치세력의 정치적, 도덕적 완결성을 100% 보증 받는데 성공하더라도 지지율이 바닥으로 곤두박질한다면? 역사가 문재인을 백범 김구의 반열에 올려줄 지 몰라도 대통령은 절대로 될 수 없다.
나의 서프 글질 경력은 7년을 넘어간다. 이제는 의미없는 간판이지만, 객원필진에 한자리 끼게 된 세월도 짧게 잡아 5년 이상은 될 것이다. 어떻게 글을 쓰면 점수를 잘 받아 ‘울뷰글’이 되고 대문에 올라갈 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흔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서프에서 내가 올린 글이 대문에 올라가고 울뷰 글 되는 것이 내 글질의 목표라면 나는 절대로 지금 쓰는 따위 글은 올리지 않는다. 서프가 원하는 모범답안을 아주 예쁘게 데코레이션해서 쓰는 일이야 발가락으로 타이핑해도 5분이면 끝나는 작업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솔까말, 요즘 서프에서 대문 가는 거 정말로 쪽팔린 일이거든.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내가 서프에 취하는 까칠한 행동과는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선거 마케팅이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에 승패가 갈린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훔치고자 하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외치는 일이 필요한 순간이 분명히 있다. 그것이 나의 신념과 지조와 신앙마저 배신하는 역겨움의 극치라 할지라도, 선거에서의 승리가 나의 신념과 지조와 신앙을 세상에 구현하는 최고의 수단적 가치라 여긴다면 그 정도 치욕쯤은 씹어 삼킬 수 있는 그릇은 되어야 대한민국 대통령 감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자는 궤변이 아니다. 선거라는 전쟁. 선거법이라는 법만 어기지 않으면 된다. 적들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훔쳐서 너무도 쉽게 권력을 취하는데 왜 우리는 언제나 사람의 머리를 얻는 일에만 집착하여 승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명분과 도덕적 우월감에만 탐닉할까. 아니, 그렇다고 사람들의 머리라도 제대로 얻었을까? 혹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매니아 지향적 취미 용품 마케팅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좋다. 세상이 지옥이 되더라도 나에겐 귀하디 귀한 난초 화분 하나면 만족이라면 그렇게 영원히 살아도 그만이겠다.
나는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나는 자유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를 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야 할 순간을 느껴야 하고 알아야 한다. 이것도 모르는 초등생 수준 정치인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대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내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