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선고를 받은 아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치료에 실패했고,
이내 온몸에 암세포가 퍼졌다.
암은 시신경까지 전이되었다.
진통제가 없으면 잠조차 편히 자지 못했고,
순하기 짝이 없던 사람이 차마 듣기 힘든 모진 소리를 했다.
나를 좀 보내달라고. 삶의 끈을 놓고 싶다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제야 내 잘못을 알았는데, 이제야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는데...
언제나 후회는 뒤늦게 찾아온다.
왜 예전엔 아내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그동안 나는 집안일 한 번 도와준 적 없는 이기적인 남편이었다.
못나게도 전처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핑계로
고마운 아내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다.
아프고 나서야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아침 아내가 일어나면 입을 맞춘다.
머리를 빗겨주고, 소파에 앉아 TV를 볼 때도 꼭 손을 잡는다.
소중한 것이 곁에 있을 때 알지 못하고
그것이 떠나려 할 때 비로소 붙잡는 어리석음.
중매로 만난 아내는 돌아서서 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축 처진 어깨가 가슴 아파서 나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내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고,
새엄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상처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서러웠던 만큼
당시 10개월이던 전처 소생 재국이도 상처 없이 자라길 바랐다.
그리고 아내는 누구보다 그렇게 해주었다.
그 덕에 아내와 함께한 세월 동안 나와 아이들은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아내의 고생은 컸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기 몸 한번 돌보는 법 없이
가족만을 위해 살았다.
아내가 아프고 4번째 가을이 찾아왔다.
요즘 외출할 때 나와 아내는 손을 꼭 잡고 다닌다.
금슬 좋은 부부처럼 보일까?
사실 우리에겐 절박한 이유가 있다.
암이 뼈까지 전이되어 이제 넘어지면 그대로 뼈가 부러질 만큼 약해졌다.
갈비뼈, 허리, 대퇴부까지 암이 퍼져 있었다.
요추는 모두가 암 덩어리 자체였다.
더 이상 할 치료도 없다.
아내를 등에 업고 다시 집으로 갈 밖에.
등에 업은 아내가 너무 가벼워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먹기만 하면 토하던 아내는 이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아내를 놓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내는 이제 내 손을 잡고 있기 힘들어 한다.
견디기 힘든 극심한 고통에 아내는 자꾸 무너진다.
그래도 아내가 집에 있으면 방에만 누워있어도 사람 사는 집 같다.
아내가 통장과 보험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글씨를 쓸 기운이 없는 아내의 말을 받아 쓰고 정리하는
사소한 일에서조차 재국이와 나는 감정이 상하기 일쑤다.
나는 재국이의 일처리가 못 미덥고,
재국이는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잔소리하는 내가 못마땅하다.
나와 재국이가 부딪치면 아내는 화를 낸다.
마음 놓고 갈 수 있겠냐고.
아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안 떠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아내가 정리해준 빽빽한 리스트를 받고 보니
늘 사소하게 생각했던 아내의 일들이 뭐 이리 복잡하고 많은지.
새삼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지금껏 아내는 큰 품으로 나를 감싸주고 있었다.
오늘은 아내의 마흔아홉 번째 생일.
건강할 땐 날짜조차 잊고 무심하게 지나쳐 버렸던
아내의 생일이 이렇게 소중한 날이 되다니.
아침 일찍 생일상을 차려 한 숟갈씩 조심스럽게 떠먹여 줬다.
주는 대로 잘 먹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내의 친구들을 초대했다.
사람을 좋아하던 아내는 친구가 많았다.
한걸음에 달려온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곧 말을 잇지 못했다.
침대 옆에 앉아 이리저리 말을 붙이다가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눈물을 흘리는 친구도 있다.
모든 친구들은 생일상이 다 식도록 수저를 들지 못했다.
"고맙다."
주위가 조용해진 틈에 아내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뭘 고맙노. 우리가 항상 너 생일도 제대로 못 챙겨줬는데.
우리가 미안치. 내년에 또 하자.
내년엔 더 크게 하자."
침대 곁으로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의 촛불을 불었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내의 친구들이 한 명씩 아내에게 인사를 했다.
"잘 가라. 울기는 왜 우노."
오히려 아내가 친구들을 위로한다.
"밥 잘 먹고 간다. 정신 차리고 있어, 또 올게."
친구들은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아내도 친구들도 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냥 또 만나자 인사를 나눈다.
6월 5일 아침 10시 25분,
아내는 왔던 곳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잘 가라. 저 멀리 잘 가라.
거기서 아프지 말고, 잘 살고.
나중에 거기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