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사연
팔월 하순 월요일이다.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이른 아침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바깥 정류소에서 이웃 사는 김 노인을 만났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와 차도를 둔 이웃에 사는 분으로 대산 강가에 밭농사를 짓는 분이다. 지난 유월 초순 연로한 할머니가 집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간으로 고생한다. 할머니는 다리 골절상으로 병상에 계셔 일어나려면 상당한 시일 걸린다.
김 노인은 여든 넘는 분으로 평생 농사지어 삼 남매를 공부시켜 성혼 출가했다. 본디 논이던 북모산 강가 농장을 밭으로 전환해 콩을 비롯한 여러 작물을 가꿔 소득을 높였다. 고령에 힘이 부쳐 절반 넘을 면적은 현지 농부에 경작을 넘기고 일부만 짓다가 그것마저 할머니를 돌본다고 일을 못 나갔다고 했다. 오늘 아침은 여름이 오기 전 심어둔 작물을 살피러 가는 걸음이었다.
지난여름 무더위가 심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내가 용제봉으로 영지버섯을 찾으려 산행을 나서다 김 노인이 농장 방향이 아닌 시내로 향해 할머니 근황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 친정이 내 고향 의령으로 해방 전 한글 운동가 이극로 박사 집안이라 더더욱 관심이 갔다. 작년에도 보냈는데 일전 말린 영지버섯을 건넸더니 고마워하면서 아침에 만난 김에 농장에 같이 가십사고 했다.
북모산 밭에 캐 둔 땅콩이 있으니 나에게 나누고 싶어했다. 나는 사양하다가 계속 거절 못해 호의를 받아들였다. 본디 본포로 가는 버스를 타고 용산마을에서 주남저수지 둑길을 걸어 들녘을 걸어 가술로 갈 참이었는데 의창구청 앞에서 김 노인과 같은 31번 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 주남저수지를 비켜 봉강에서 가술를 거쳐 북모산에 김 노인이 먼저 내리고 나는 조금 더 갔다.
김 노인에 이르길 강가 산책을 반 시간 하고 농장으로 가겠노라 했다. 신설 국도에서 강둑으로 나가 둑길 따라 수산대교 길목으로 향했다. 강가 둔치 식생은 오래 가뭄에 타서 시들다가 이번에 내린 단비를 맞고 빠르게 회생 중이었다. 특히 넓은 면적을 차지한 물억새가 발갛게 타들다가 강수 이후 생기를 찾고 있었다. 둑길 언저리 무성히 넝쿨을 뻗는 나팔꽃은 꽃송이를 달았다.
강가 농장으로 가니 김 노인은 할머니가 입원 전 심었던 고추를 따고 있었다. 고추 이랑 곁에 가지가 익어 쇠고 있으니 먹을 만하면 모두 따 가십사 했다. 할머니가 병실 생활을 해 찬으로 만들 수 없어 쇠어간 채 둔다고 했다. 가지를 거두고 나서 캐 둔 땅콩을 안겨줘 고맙게 받았다. 김 노인은 남은 고추 따기를 더 하고 나는 가술로 가 오전과 오후 스마트 폰 활용 교육을 받았다.
북모산에서 신전을 출발 시내로 가는 1번 마을버스로 가술에 닿아 대산 행정복지센터에서 땀을 식히고 삼봉 어린이 공원에서 ‘강가 땅콩'을 남겼다. “여름날 숲속에서 찾아내 말린 영지 / 이웃인 김 노인에 얼마큼 보냈더니 / 모산리 밭에서 거둔 땅콩 됫박 안기네 // 평생을 들판에서 내외가 애써 오다 / 할머니 교통사고 병간에 고생인데 / 앞으로 기력이 부쳐 농사일을 접을까”
대산 평생학습센터 도서관으로 가 1시간 책을 열람하다가 강의실에서 고령층 대상 디지털 교육에 참여했다. 할머니 네댓 분과 같이 스마트 폰으로 인공 지능으로 안내문을 작성하고 여행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셀카로 사진을 찍어 중심인물 곁에 다양한 표정의 작은 캐릭터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거기다 추가해 연꽃이 핀 주남저수지를 배경으로 남기라 했더니 멋지게 그려냈다.
오후는 대산 나눔문화센터로 옮겨 가 스마트 폰 활용 수업 종강을 맞는 날이다. 칠월 팔월에 걸쳐 6주간 월요일 목요일 12회 강좌였다. 내보다 열 살이 더한 할머니들도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강사는 스마트 폰에 카카오T 앱을 설치해 택시를 호출하는 방법을 안내해 유익했다. 마지막 시간이라 센터장과 담당 연구사가 나와 수료증을 전하고 기념품도 받고 단체 사진을 남겼다. 26.08.24
첫댓글 오~^^
김노인의 이야기
조만간 우리들의 모습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