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달라집니다. 청와대는 내년 초 국민청원 게시판을 개편할 계획인데요. 지난해 8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를 모토로 첫 선을 보인 이후 1년여 만에 새 단장에 들어가는 건데요.청와대가 국민청원 게시판의 개편을 공식 발표한 것이 처음인 만큼 어떤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국민청원에 긍정적 시선 '80%'이상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금까지(27일 오후 기준) 인권/성평등, 안전/환경, 미래동력 등 17개 분야의 청원 약 35만개가 올라와 있습니다. 정부의 기대대로 대국민 소통 창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도 긍정 반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와 시장조사기관 두잇서베이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청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83.7%에 달했습니다. 특히 의제 설정 기능과 정부와의 소통 기능 등에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는데요.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도 청원에 참여할 수 있고 청원을 할 때도 별도의 형식이나 절차가 필요치 않다는 점이 국민의 정치 참여 문턱을 낮췄다는 호평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여론재판·마녀사냥 논란과 3권분립 훼손 지적도
하지만 이런 장점이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요.
우선 청와대 국민청원은 청와대가 답변을 거부할 수 있는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30일 이내에 20만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이면 정부는 의무적으로 답변을 해야 하는데요. 이 때문에 정부가 권한 밖의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하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입법부나 사법부가 책임져야 할 사안에 대해 정부가 의견을 밝히는 건데요. 이 같은 행동은 자칫 3권 분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습니다.
국민청원을 담당하는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이와 관련해 “온라인 공론의 장인 국민청원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사법부나 입법부 관련 사안은 청와대가 답변하기 어렵다”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마녀사냥이나 여론재판의 가능성도 줄곧 지적되는 문제점입니다. 청원 내용에 제한이 없는 데다 청원 글을 올리는 즉시 모두에게 공개되므로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청원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요.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청원 글은 마녀사냥이나 여론재판으로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터무니 없는 내용의 청원이나 의도적으로 혐오·갈등을 조장하는 내용의 청원이 여론을 오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명제 전환 가능성은?
무엇보다 익명성으로 인해 사실 왜곡과 2차 가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데요.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개편을 통해 국민청원 게시판을 실명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명제 전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입니다. 과거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린 데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실명제 전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명제가 국민청원 게시판의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앞서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게시판 이용 시 본인확인을 의무화한 정보통신망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켜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가로막다는 이유에서였는데요. (2010헌마47, 2012. 8. 23.)
또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지난 6월 라디오 방송에 출연, "청원이라는 공간은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말 못 하는 일들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실명제로 전환되면 그 자유로움이 아무래도 반감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이에 실명인증과 회원가입 과정을 거쳐 청원을 이용하되 게시글은 익명 처리하고 청와대 답변 시에만 이용자의 아이디를 일부 공개하는 '부분실명제' 도입이나 청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비동의' 기능 추가 등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