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라는 서랍엔 아직 아무런 실수도 담기지 않았으니까”
세상의 틀을 지우고 오직 나만의 정원을 가꾸는 시간, 134일간의 문학적 연대기
전 세계가 사랑하는 영원한 클래식 《빨강 머리 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평생에 걸쳐 일구어낸 눈부신 문학적 지평을 아우르는 고품격 영어 필사집이 국내 최초로 찾아온다.
이 책은 단순히 널리 알려진 특정 작품의 명언만을 기계적으로 모아둔 선집이 아니다. 《빨강 머리 앤》 시리즈의 사랑스러운 순간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세상과 맞섰던 《에밀리》, 삶의 억압을 벗어던지고 비로소 영혼의 해방을 선언한 《블루 캐슬》, 《실버 부시의 패트리샤》와 몽고메리의 내밀한 시적 통찰이 깃든 초기 시까지 한 권에 정밀하게 집대성했다.
책은 영혼의 사계절을 닮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테마 아래 총 134개의 에피소드로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에는 몽고메리가 치열하게 적어 내려간 영문 원문과 편역자 이루리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번역을 담았으며, 오른쪽에는 고단한 하루 끝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내며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침잠할 수 있는 단정한 필사 노트를 마련했다. 134일의 순례를 마치는 마지막 부록 ‘내 마음의 사계절’은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만의 고요한 안식과 내면의 변화를 소중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이끈다.
상처 입은 슬픔 뒤에 숨겨진, 가장 단단하고 우아한 위로
연필 끝으로 숨을 불어넣는 나만의 숲, 내 영혼의 가장 고요한 정화 의식
■ 앤의 눈부신 초록빛 미소 뒤, 단단하게 여문 고독을 만나다
우리는 흔히 몽고메리를 쾌활하고 낙천적인 작가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녀의 문장이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을 사는 여성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녀가 삶의 고독과 타인의 무례, 그리고 깊은 상실의 아픔을 묵묵히 통과해 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단단하고 우아한 연대’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규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뜨겁게 찬미했던 그녀의 목소리는 오늘날 상처받고 지친 현대 여성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가장 강력한 정화의 힘을 지니고 있다. 편역자 이루리는 거친 숲과 바다를 묘사하는 몽고메리의 세밀하고 정교한 필치에 주목하여, 마음속 고요한 등불이 되어줄 매일의 처방전을 빚어 냈다.
■ 온전히 나만을 위해 펜을 드는 이 순간, 무너지지 않을 아름다운 울타리가 되다
필사는 눈으로 글을 훑는 행위를 넘어, 작가가 남긴 뜨거운 숨결을 내 손끝을 통해 나의 영혼으로 고스란히 옮겨오는 치유의 의식이다. “길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가장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을래요.”라는 다짐처럼, 밤바람 소리 가득한 저녁에 따뜻한 등불을 켜고 문장들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다 보면 마음속 소음은 가라앉고 오직 오롯한 나만의 고요함이 찾아온다.
서거 85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이번 에디션은 거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다정하고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게 만드는 비밀스러운 정원 하나가 당신의 가슴 깊은 곳에 찬란하게 피어날 것이다.